Cognita Sapiens [847641] · MS 2018 · 쪽지

2020-08-20 14:5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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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이야기 30편 - 명분과 세계관, 그리고 편견 (1)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31680019







 오늘은 다소 심오한 주제를 다룰 예정입니다. 오늘 다루는 주제는 제가 나름 오랜 시간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고 겪으면서 공통적으로 관찰한 '인간의 편견'과, 전쟁사나 역사적으로 명분, 편견, 세계관이 어떤 식으로 이용되었는지 설명해보겠습니다.




 우선 간단한 이야기로 시작해보겠습니다. 우리는 흔히들 '명분과 실리'라는 말을 씁니다. 명청 교체기의 중국이 혼란스러워지자 당시 임진왜란을 겪고 난 후, 선조를 이어 뒤를 이은 광해군은 '명분'보다는 '실리'를 택했습니다.




 비록 과거 조선이 명나라와 밀접하게 교류해왔으나, 현실적으로 청나라의 국력을 무시할 수 없으므로 청나라에도 여러번 접촉하고 외교적 조치를 취하는 균형외교, 쉽게 말해서 줄타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광해군이 폐위된 이후 인조반정으로 정권이 바뀌고 난 후, 청나라라는 실리를 완전히 버리고 명분에 치우친 외교를 하면서 병자호란이 발발하고 인조는 남한산성까지 도망갔다가, 결국 항복하고 끌려나와 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숙이는 굴욕을 당합니다.






(영화 <남한산성>에서는 코앞까지 몰려온 청나라에게 적당히 양보하고 화친을 하느냐, 끝까지 저항하느냐를 가지고 치열하게 고민하던 조선의 입장을 아주 현실적이고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9/12/2017091201762.html )







 과연 이때 조선 조정을 채운 사람들이 무식하고 부패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해야할까요? 간략하게 조선의 고위공직에 대해서 알아보자면, 과거시험은 3년에 한번씩 33명 정도 채용했습니다. 그러니까 조선 팔도에서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은 다 몰려와서 관료가 되기 위해 시험을 치고 왔다는 것이죠. 단순 인구대비로 생각하더라도 조선의 관료들은 일반인을 능가하는 천재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조선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명나라에게 큰 지원을 받아서 임진왜란을 극복한 기억이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명나라와 교류했을 뿐만 아니라 이런 지원을 받은 입장에서, 단지 명나라를 섬긴다는 명분뿐만 아니라 이런 과거를 완전히 덮어버리고 청나라에 굽힌다는 것은 실리를 저버리는 부분도 있습니다.




 만약 상황에 따라서 과거에 받았던 지원을 무시해버리고, 이리붙었다 저리붙었다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면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기 어려울 것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실리만 추구하며 명분을 내팽겨치는 행위는,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서 더 크고 장기적인 이익을 포기하는 극단적인 선택이기도 합니다.




 현대 한국도 이러한 맥락에서 대단히 '명분'을 중시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내수시장이 작고 수출을 통해 성장하는 나라로서는, 세계 무역이 정치적, 사회적 이유로 자유 무역이 제한되는 상황은 불리합니다. 그래서 한국은 외교적으로도 자유무역을 일관성있게 옹호하며, 동시에 자신 또한 다른 나라를 상대로 정치적 이유로 무역 문제를 건드리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결국 명분을 일관성있게 표방하면서 실리를 얻는 것이죠.




 만약 일본이나 미국, 중국같은 한국보다 덩치가 큰 나라가 정치적 이유로 경제적 압박을 가한다면, 우리는 자신있게 그동안 일관되게 주장해온 명분을 바탕으로 대항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국가에든 상관없이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논리를 일관되게 주장해왔고, 이런 힘은 소프트파워로서 국제사회에 발언권을 가집니다.








(한국은 과거부터 외국에 대해 수출을 하면서 경제를 성장시킨 나라이며, 조선업은 현재도 한국의 대표적인 산업입니다. 수출규제나 무역보복이 횡행하는 국제 질서는 우리에게 극히 불리하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익뿐만 아니라 세계의 이익을 위해 자유무역을 계속 고집하고 있습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E%90%EC%9C%A0_%EB%AC%B4%EC%97%AD )







 이런 '명분'(혹은 세계관)이라는 것은 전쟁사에서도 매우 많이 등장합니다.




 미국이 초강대국이 되기 직전, 남북전쟁에서 북군과 남군은 나름대로의 명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남군은 자신의 지역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웠고, 북군은 미국의 통합과 노예 해방, 국가의 발전이라는 더 대국적인 명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실제 북군 장병들에게까지 잘 설득되어, 실제 편지에서도 '노예의 해방과 자유의 이념을 위해 싸운다'고 스스로 적을 정도로 중요한 원리였습니다.




 남북전쟁 초반에는 유럽이 미국의 약체화를 바라며 남부를 지원하였으나, 이러한 강력한 명분을 앞세우면서 동시에 남군에 동등하게 대항하는 북군은 유럽 국가들이 남부에 쏠리는 것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유럽은 미국보다 일찍 노예제도를 폐지한지 오래였고, 이런 유럽이 노예제를 지지하는 남부를 지원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죠.




 비슷한 이야기로 당장 한반도와 중국의 역사에 큰 상처를 남긴 세계 2차대전이 있습니다. 당시 일본 제국은 군국주의를 바탕으로, 다른 나라들에 침략하였죠. 그런데 아무런 이유없이 무작정 착취를 위해 침략하는 행위는 그야말로 날강도이고, 국제사회의 비난과 거부에 직면합니다. 실제로 일본 제국의 진출은 미국에게 계속 견제받을 정도로(물론 결국 쌓이다 쌓인 관계는 진주만 공습으로 터져버렸습니다) 일본은 명분이 약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자신의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명분을 내세웁니다. 유럽과 미국이 제국주의를 바탕으로 세계를 침탈하는데, 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이 아시아에 진출하여, 아시아인들을 대변하면서 유럽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논리였죠.




 꽤나 그럴듯하고 멋져보이는 이 명분을 바탕으로 일본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고, 아직까지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일본은 근대화에 일찍 성공했으나 중국과 한반도, 만주, 동남아시아들은 아직도 미개하고 산업적으로 열악하기에 뛰어난 일본군이 들어가 일본 문물을 전파하고 다 같이 아시아의 해방을 위해 싸워야한다는 명분으로 진출합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B%8C%80%EB%8F%99%EC%95%84%EA%B3%B5%EC%98%81%EA%B6%8C )








 또한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흐르면서 패전이 코앞에 닥쳐오자 조선인들에게 '내선일체'(일본과 조선은 하나다)를 앞세워, 일본의 전쟁은 곧 조선의 전쟁이라고 포장하며 강제징용과 수탈을 해갔습니다.




 그냥 사람 납치해가고 뺏어가는 것은 그냥 도둑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 행위를 잘 포장하고 그럴듯하게 만들어서 조금이라도 납득(?)시키기 위해서 갖가지 명분과 표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나치 독일은 위대한 게르만민족의 우수한 혈통을 유지하고, 열등한 종족을 말살시킨다는 명분으로 우생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대학살을 벌입니다. 홀로코스트가 아직도 끔찍한 역사로 기록되는 이유는 단지 독일인이 유대인 몇명을 때려잡은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조직적이고 효율적으로 특정 인종의 학살을 계획하고 실행했다는 점입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얼마나 또라이같은 생각이었는지 알 수 있지만, 당시 나치 독일 수뇌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한반도에서 발발한 625 전쟁도 명분의 관점에서 극명하게 갈리는 전쟁입니다. 북한이 남한을 침공한 것은 어떠한 명분이나 포장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냥 꿀꺽 하려고 무력으로 밀고 들어온 것이죠. 그래서 북한은 아직도 625에서 먼저 전쟁을 터뜨린 것은 남한이라고 뻔뻔하게 우기고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88jangsu&logNo=220473002746&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반대로 남한은 침공을 받았으며 국제사회의 지지를 바탕으로 UN군과 미군, 영국군, 프랑스군, 터키군 등의 다국적연합군대가 파병와서 도와줍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분 아래, 2차 세계대전때 한끗발 날렸던 내로라하는 강대국부터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까지 한국을 도우기 위해 지원을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625 종전기념일마다 한국의 대통령은 자유 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침략자를 상대로 맞서 싸운 전쟁을 기념하며, 전 세계의 참전유공자들을 한국에 초청하여 기념식을 진행하고 예우를 갖춥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를 바탕으로 민주화까지 성공한 한국은 '민주주의'라는 이념을 기초하여 돌아가고 있습니다. '명분'은 단지 껍질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활에 깊숙히 파고들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체계입니다.





 하고싶은 이야기나 예시가 많이 남았는데 분량의 관계상 1편으로 마무리짓고 2편에서 더 설명하겠습니다.









전쟁사 시리즈

https://orbi.kr/00020060720 - 1편 압박과 효율

https://orbi.kr/00020306143 - 2편 유추와 추론

https://orbi.kr/00020849914 - 번외편 훈련과 숙련도

https://orbi.kr/00021308888 - 3편 새로움과 적응

https://orbi.kr/00021468232 - 4편 선택과 집중

https://orbi.kr/00021679447 - 번외편 외교전

https://orbi.kr/00021846957 - 5편 공감과 상상

https://orbi.kr/00022929626 - 6편 정보전

https://orbi.kr/00023174255 - 7편 실수와 인지오류

https://orbi.kr/00023283922 - 번외편 발상의 전환

https://orbi.kr/00023553493 - 8편 준비와 위기대응

https://orbi.kr/00023840910 - 번외편 비전투병과

https://orbi.kr/00024082234 - 9편 예상과 예측

https://orbi.kr/00024160983 - 10편 신뢰성

https://orbi.kr/00024418374 - 번외편 보안

https://orbi.kr/00024715925 - 11편 기출분석

https://orbi.kr/00025035755 - 12편 파일럿 교육 양성

https://orbi.kr/00025121266 - 13편 인적자원과 교육

https://orbi.kr/00025579054- 14편 설계사상

https://orbi.kr/00026239605 - 15편 독소전쟁

https://orbi.kr/00026862509 - 16편 목적과 효율

https://orbi.kr/00027274206 - 17편 현대전의 발전 양상

https://orbi.kr/00027336409 - 번외편 항공모함 시대의 도래

https://orbi.kr/00027382337 - 18편 러일전쟁

https://orbi.kr/00027503697 - 번외편 기만과 속임수

https://orbi.kr/00027559260 - 번외편 MHRD

https://orbi.kr/00027622118 - 번외편 미래의 전쟁

https://orbi.kr/00027786178 - 19편 의료전선

https://orbi.kr/00028148901 - 20편 중립과 군사력

https://orbi.kr/00028250151 - 21편 장전과 방아쇠

https://orbi.kr/00028339193 - 번외편 음식

https://orbi.kr/00028397136 - 번외편 잠수함

https://orbi.kr/00028594440 - 22편 단순함과 효율

https://orbi.kr/00028616772 - 23편 준비

https://orbi.kr/00028633462 - 번외편 기업가정신

https://orbi.kr/00028751436 - 번외편 단수와 보급

https://orbi.kr/00028918449 - 24편 자율성과 민주주의

https://orbi.kr/00028929569 - 25편 경험과 실패

https://orbi.kr/00028954207 - 26편 문화

https://orbi.kr/00029459571 - 번외편 인디아나폴리스 침몰사건

https://orbi.kr/00030326474 - 27편 낙엽이 지기 전에

https://orbi.kr/00031115960 - 28편 늑대떼와 양떼

https://orbi.kr/00031424411 - 29편 불공평하다





알고리즘 학습법(4편예정)

https://orbi.kr/00019632421 - 1편 점검하기






학습이란 무엇인가(11편 예정)

https://orbi.kr/00019535671 - 1편

https://orbi.kr/00019535752 - 2편

https://orbi.kr/00019535790 - 3편

https://orbi.kr/00019535821 - 4편

https://orbi.kr/00019535848 - 5편

https://orbi.kr/00022556800 -  번외편 인치와 법치

https://orbi.kr/00024314406 - 6편

https://orbi.kr/00030479765 - 7편





삼국지 이야기

https://orbi.kr/00024250945 - 1편 일관성과 신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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