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 이야기 22편 - 단순함과 효율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28594440
병기공학의 세계에서 '구조적으로 단순하다'는 조건은 아주 중요한 장점으로 작용합니다. 기술이 발전하고 무기개발 단가가 올라가며 복잡하고 다양한 부품이 필요한 병기가 개발됩니다. 이런 경향을 보면 구조적으로 단순하다는 것은 곧 원시적이고 뒤떨어진다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도 우리는 더 화려하고 복잡한 거대병기에 열광합니다. 가 처음 개봉했을때 차가 이족보행 로봇으로 변신하는 장면은 우리에게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무기의 세계로 들어가보면, 정작 복잡하고 화려한 무기보다도 단순하며 쓰기 쉬운 병기가 군인들에게 선호됩니다. 단순히 군인들이 좋아할 뿐만 아니라 만드는 사람도, 보급하는 사람도 단순한 무기가 더 쉽고 편리합니다.
간혹 지나치게 단순함만을 추구해서 성능이 뒤떨어지는 무기도 있었지만, 훌륭하고 널리 쓰이는 좋은 무기들은 보통 단순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런 '간단함, 단순함'이 왜 중요한지 설명해보겠습니다.
(AK47은 전쟁과 관련된 매체에서 정말 지겨울 정도로 쉽게 볼 수 있는 총입니다. 왜 하필 이 친구를 자주 보는 걸까요?
https://www.shutterstock.com/ko/search/ak-47 )
AK47은 돌격소총이 처음 개발된 세계 2차대전 무렵의 소련에서 개발되어, 지금까지도 테러리스트와 아프리카 반군에게까지 애용되는 총입니다. 이 총은 저렴한 가격과 더불어 단순한 내부 구조 덕분에 훌륭한 신뢰성을 자랑합니다.
수험생들도 흔히 쓰는 샤프나 컴퓨터용 싸인펜이 고장이 나서 불편을 겪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특히 허구한날 충격을 받고 외부에 노출되어 마모되고 풍화되며, 극단적인 경우 총알이나 폭탄을 정면으로 얻어맞는 총들은 고장나기 쉬우면서 동시에 민감합니다.
의 초반부를 보시면 해변에 상륙하는 군인들의 총이 투명한 비닐같은 것으로 싸여져있습니다. 총에 물이 들어가면 젖고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사막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모래가 총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가서 총알이 걸리고 불발이 날 수도 있습니다.
고장이 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계속 쏘면 총알 화약폭발로 인해서 총신의 온도가 상승하고 총구가 녹아버리기도 하고, 또 총을 위해 총알과 탄창을 공급해주는 것도 귀찮은 일입니다.
이렇게 총이라는 물건이 원체 고장이 자주 일어났는데, 과거 일본제국군은 자체 기술로 여러 총기를 개발한 적이 있으나 적군이 사용하던 총보다 고장률이 너무 높아서, 일선 병사들은 적에게서 노획한 총을 더 애용하는 일도 벌어집니다.
그런데 이 AK47은 간단한 구조와 부품 덕에 고장이 적게 나고, 또 고장이 났다고 하더라도 수리가 쉽습니다. 부품 종류가 적으니까요. 휘황찬란한 부품을 주렁주렁 복잡하게 단 총보다도 이 총이 더 널리 쓰이는 이유는 그것입니다.
(항공모함은 병기공학의 결정체이며, 인간이 가진 첨단 기술을 전부 집어넣은 그야말로 복잡함의 끝판왕입니다. 이 배 한척을 운용하기까지 거대한 몸체를 만들고 조립하는 일부터,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항공기를 관제하는 일까지 수능 저리가라 수준의 난이도를 자랑합니다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서 항공모함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항공모함은 그야말로 바다 위를 떠다니는 공군 기지라고 볼 수 있으며 인간 기술의 정수입니다. 미국을 제외한 세계 강대국들은 많아야 한두척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의미가 크면서도 동시에 비싸고 강력합니다.
이렇게 중요하고 비싼 항공모함을 관리하고 관제하는 데에는, 얼마나 비싼 첨단 기술이 들어가있을지 궁금합니다. 잠깐 항공관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자면, 지상활주로가 아닌 항공모함에서 이착륙하는건 더 어려운 문제입니다. 훨씬 더 짧은 거리를 빠르게 주파하며 이륙하기 때문에 항공모함에서도 추진력을 넣어서 항공기를 밀어줍니다.
항공기의 무게가 현대에서는 많이 무거워졌기 때문인데, 반대로 착륙을 할때는 활주로에 장력이 강한 와이어를 설치해서 착륙하는 항공기의 꼬리에 달린 고리가 걸리면서 강제로 항공기를 멈추게하는 장치를 사용합니다. 예전에 한번 미국 항모에서 항공기가 착륙하는 도중 와이어가 끊어지는 사고가 있었는데, 쇠줄로 된 와이어가 갑판 위에서 고무줄처럼 진동하면서 갑판요원들의 발목을 아작낸 대형사고도 있었습니다.
항공모함의 모든 업무는 긴장과 스트레스의 연속이며, 한치의 실수나 방심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최초로 항공모함이 개발되던 시절에는 항공기가 이착륙에 성공하면 박수를 칠 정도였는데, 지금도 항공모함의 관리는 어렵기로 악명이 자자합니다.
이런 첨단무기인 항공모함의 관제, 가장 중요한 갑판 위의 상황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이를 '위자보드'라고 하는데 호러영화랑 관련된 동명의 장난감과는 다른 것입니다.
(항공모함 관제의 핵심역할을 하는 '위자보드'의 모습입니다. 네, 우리가 흔히 보면 장난감으로 불리는 부루마블 판 위에 모형들을 놓은 이것이 바로 인류 최강의 병기를 관리하는 설비입니다
https://newatlas.com/us-navy-ouija-board/50087/ )
지금까지 항공모함에 대해서 설명한 걸로 보면, 항공모함의 관제에는 무슨 스카이넷 수준의 슈퍼컴퓨터가 있으리라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인 눈에는 그저 장난감, 놀이기구로 보이는 저 보드가 항공모함에서 가장 막중한 임무를 수행합니다. 관제요원들은 저 상황판을 계속 주시하며 갑판요원들이 보고하는대로 각 항공기의 연료 주입여부, 무장 여부, 출격준비 여부를 표시하고 확인합니다.
왜 저렇게 단순한 도구를 사용할까요? 왜냐하면 단순한 만큼 확실한 강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위자보드라는 것은 세계 2차대전때부터 도입되어 지금까지 항모와 함께하며 그 효과를 입증해왔습니다. 이 단순한 도구는 사람이 직관적으로 다루기 쉬우면서 이해하기도 용이합니다. 또 전기를 공급할 필요 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아까 총기를 설명하면서 이야기 했다시피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무슨 기상천외한 고장이나 문제가 발생할 지 모르는데, 항공모함의 관제시스템은 단 한순간이라도 멈추면 안됩니다. 우리가 가끔 컴퓨터에 저장한 중요한 문서를 날려먹는걸 생각해보면, 항공모함은 정말 날벼락을 뛰어넘는 재앙이 닥칠 수도 있습니다.
이 위자보드는 프라모델처럼 정확한 비율의 스케일로 만들어져 있어서, 항공기 외에 다른 물체가 갑판 위에 자리할 수 있을지도 가늠하기 쉽죠. 신용카드가 단지 자석으로 한번 긁어지는 순간 정보가 날라간다는 최약점을 보았을 때, 전자기술이 무조건 뛰어나지는 않습니다. 강한 전자기파를 쬐여도 위자보드는 꿈쩍도 안할 껍니다.
항공모함의 여러 부분이 자동화되고 첨단화되며 교체되었지만, 여전히 항공모함의 최사령탑에는 아날로그 방식의 위자보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위자보드는 그 단순함과 편리, 안정성 덕에 현대에서도 위험이 도사리는 항공모함의 관리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조건 복잡하고 최신 기술로 무장한 것보다도, 단순한 것이 효율적인 경우를 종종 봅니다. 수험생이 수능을 풀때 복잡하고 여러가지 도구를 동원해야하는 풀이 방법이 과연 좋다고 할 수 있을까요?
단순하고 쉬운 풀이가 있다면 그 방법이 더 가치있습니다. 단순하다는 것은 짧다는 것 뿐만 아니라 실수할 여지도 적다는 뜻입니다. 복잡한 부품으로 구성된 무기는 단지 사소한 부품의 부재나 마모로도 전체가 마비될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단순한 구조를 가진 물건은 완전히 가루로 빻기 전까지는 계속 돌아가겠죠.
단순한 도구와 방법은 빠르고 정확하며 효율적입니다. 풀이가 쓸데없이 현학적이고 복잡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런 서커스 묘기는 아무런 압박없이 혼자 모의고사 풀면서 심심할때 꺼내는 수준으로 합시다.
당장 1점이라도 아쉬운 우리들 입장에선 간단명료하고,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단순한 풀이가 제일 좋습니다. 원시적인 것은 단순하지만, 단순하다고 모두 원시적인 것은 아닙니다. 무기 개발사에서도 고장이 덜나고 단순한 병기들이 살아남았습니다.
전쟁사 시리즈
https://orbi.kr/00020060720 - 1편 압박과 효율
https://orbi.kr/00020306143 - 2편 유추와 추론
https://orbi.kr/00020849914 - 번외편 훈련과 숙련도
https://orbi.kr/00021308888 - 3편 새로움과 적응
https://orbi.kr/00021468232 - 4편 선택과 집중
https://orbi.kr/00021679447 - 번외편 외교전
https://orbi.kr/00021846957 - 5편 공감과 상상
https://orbi.kr/00022929626 - 6편 정보전
https://orbi.kr/00023174255 - 7편 실수와 인지오류
https://orbi.kr/00023283922 - 번외편 발상의 전환
https://orbi.kr/00023553493 - 8편 준비와 위기대응
https://orbi.kr/00023840910 - 번외편 비전투병과
https://orbi.kr/00024082234 - 9편 예상과 예측
https://orbi.kr/00024160983 - 10편 신뢰성
https://orbi.kr/00024418374 - 번외편 보안
https://orbi.kr/00024715925 - 11편 기출분석
https://orbi.kr/00025035755 - 12편 파일럿 교육 양성
https://orbi.kr/00025121266 - 13편 인적자원과 교육
https://orbi.kr/00025579054- 14편 설계사상
https://orbi.kr/00026239605 - 15편 독소전쟁
https://orbi.kr/00026862509 - 16편 목적과 효율
https://orbi.kr/00027274206 - 17편 현대전의 발전 양상
https://orbi.kr/00027336409 - 번외편 항공모함 시대의 도래
https://orbi.kr/00027382337 - 18편 러일전쟁
https://orbi.kr/00027503697 - 번외편 기만과 속임수
https://orbi.kr/00027559260 - 번외편 MHRD
https://orbi.kr/00027622118 - 번외편 미래의 전쟁
https://orbi.kr/00027786178 - 19편 의료전선
https://orbi.kr/00028148901 - 20편 중립과 군사력
https://orbi.kr/00028250151 - 21편 장전과 방아쇠
https://orbi.kr/00028339193 - 번외편 음식
https://orbi.kr/00028397136 - 번외편 잠수함
알고리즘 학습법(4편예정)
https://orbi.kr/00019632421 - 1편 점검하기
학습이란 무엇인가(11편 예정)
https://orbi.kr/00019535671 - 1편
https://orbi.kr/00019535752 - 2편
https://orbi.kr/00019535790 - 3편
https://orbi.kr/00019535821 - 4편
https://orbi.kr/00019535848 - 5편
https://orbi.kr/00022556800 - 번외편 인치와 법치
https://orbi.kr/00024314406 - 6편
삼국지 이야기
https://orbi.kr/00024250945 - 1편 일관성과 신념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수학에서 평가원이 6 9모에서 안내다가 수능에서 뒤통수친 사례가 있나요? 0
특정유형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수능에서 뒤통후 딱 때린 사태가...
-
[2025수특] 정지용의 '장수산 1' 분석 및 관련 기출문제 0
안녕하세요, 남윤입니다! 2025학년도 EBS 문학 연계 대비 자료를 업로드...
-
기숙사 2인실이고 룸메는 나보다 1살어림 애가 쫌 안치우고 더러움(발냄새랑 채취가...
-
자작 문제 입니다. 저녁애 답 올릴게용
-
과기원 (카이 X) 재학중인 05입니다. 스카이가 너무 가고싶어져서 정시반수를...
-
라운드 숄더 조금씩 고쳐지는게 눈에 보이는데? 개뿌듯하노 ㄹㅇ 님들운동하세요...
-
잘잤다 6
-
11kg도 이제 들만 한듯? 근데 더이상 못늘려 원판 없어
-
역쟁이 2주차 1
수인분당,경강,신분당,2호선 다 외우고 3호선 보는중
-
하춘혜 믹구당 1
비례대표 23석 획득
-
어떻게 이런 이상한 방식으로 진화를 했는지 싶을 정도로 신기함... 대체 뭘까
-
어그로제목 ㅈㅅ 근데 대부분 여자들= 여성향 성인페스티벌도 천박하다 욕하고 남성향...
-
Sega 0
Tv
-
ㄷㄷㄷㄷㄷㄷㄷ 1
다리를 덜덜덜덜덜덜 진짜 죽여버려.... 이걸 진짜 어떡할까 살려줘 먈아 하 옷도...
-
계산이 진짜 개많은듯… 11~15 사이에서 적어도 한번은 꼭 계산때문에...
-
(인생 망함)
-
지금부터 수과탐만 파서 6평때는 2턱걸이라도 하고싶은데 무엇을 집중적으로 하면...
-
방금 주식 사려고 환전하다 매수랑 매도를 착각해서 원화를 사야 하는데 팔아버림......
-
90년대생 00년대생 기준으로
-
여자반 앞이 자습실이라 여자애들 얘기하는거 다들리는데 어떤 애가 OO이 여자랑...
-
이게 왜 황밸 3
-
카페 즐거웠다 4
지금은 학교로 가는길....... 이대로 집에 가고 싶다ㅏㅏ 무공강의 삶은 너무 슬프다
-
약속까지 50분 4
초면인 사람이랑 하는 소규모 모임은 처음인데.... 살아남을수있을까
-
수능 공부한다 수능수능수능
-
물가 왤케 비싸냐 책도 비싸고 거기다 코인도 박고 주식도 박고 ㅋ...
-
다 레이저로 지져버리고싶다 근데 돈이 없다.....
-
공군 훈련소 준비할때 여벌옷 얼마나 챙겨야 할까요 10
속옷 양말도 챙기고.. 5월 말 입대니까 반팔 반바지 챙겨야 하나?
-
국어 > [리트 전개년 기출 언어이해] 2020 16~18 > [리트 전개년 기출...
-
몸보신하러 옴 3
미역국
-
방송하는 사람이 있는데 뭐지
-
만성피론가 5
늙고병든..이젠 관 짜야되나봐 진짜
-
예쁜 사람봐도 설렘 근데 연애하고싶진않음 뭐임?
-
"이스라엘, 이란 본토 미사일 타격…시리아·이라크서도 폭발음" 1
이스라엘이 이란의 한 시설을 미사일로 공격했다는 외신 보도가 18일(현지시간)...
-
기차탓당 4
히히
-
홍대입구역에 있는 수못은 과연 지각을 면할 수 있을까 2
목적지는 동대입구역..
-
어떤 심한 말을 해도 11
뒤에 :) 만 있으면 다 용서되는거같아요 :)
-
밸런스 게임 ㄱ 0
ㅈㄱㄴ
-
이번추석이 조금 두려워지는
-
재밌음? 지하철 광고 볼때마다 캐릭터는 잘 뽑힌거 같던데
-
세상에는 수능공부보다 재밌는 게 무한정 많다
-
잡담 잘 들어줄 수 있는데 수학 1등급 딱대~
-
예제좀 떤져줘봐요 하아 언조비카이
-
공부를 합시다 14
노베 오수생…
-
양질의 컨텐츠로 준비도 많이 해오고 잘 가르쳐 주는 선생님 X 그냥 잡담 잘 들어주는 선생님 O
-
지금 수1수2 공통반을 들어가야할지 미적반을 들어가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수1수2...
저 위자보드는 비트겐슈타인의 그림 이론이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