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 이야기 2편 - 유추와 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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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비밀 요원을 다룬 B급 영화 <킹스맨>에 이런 대사가 등장합니다.
‘Kingsman agents needs to be able to solve problems under the pressure'
'킹스맨 요원들은 큰 압박감 속에서도 문제를 풀 수 있어야 한다‘
제가 지난 1편에서 하고자 한 말입니다. 우리는 압박감 속에서 효율적인 알고리즘을 구축해야 하며, 수능날 받을 온갖 압박감을 대비해야 합니다. 느슨하고 풍족한 자원(여기서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자원은 ‘시간’이겟지요?) 속에서는 결코 좋은 알고리즘이 나올 수 없습니다.
제가 이번 편에서 말하고 싶은 ‘유추와 추론’은 결코 어렵고 낯선 단어들이 아닙니다. 비록 익숙하지 않은 어휘이고 논리학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지만,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이러한 사고과정을 하고 있으며, 전쟁에서 또한 주요하게 쓰였습니다.
저는 이번에 다룰 ‘유추와 추론’의 의미를 이렇게 정의해두고 싶습니다.
‘직접 보지 않아도 정보를 통해 상상하여 알 수 있다’
만약 우리집에 도둑이 들었었다면, 귀가한 당신은 방의 흔적들을 보고 문제가 있었음을 직감합니다. 보통 귀중품을 빠른 시간안에 찾으려고 방을 심하게 어지럽히기 때문입니다. 은행원들이 출근을 했는데, 금고의 문이 열려있고 안에 내용물이 없다면 뭔가 큰 일이 벌어졌구나 생각합니다. 직접 범죄현장을 목격하지는 않았지만 무엇인가 일이 터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추와 추론’은 왜 다루느냐? 하고 물으신다면, 그 이유는 ‘수능 국어에서는 같은말 아니면 반댓말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답변하고 싶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제가 다루고자 하는 ‘유추와 추론’을 설명하기 위해 태평양 전쟁(일본과 미국이 세계 2차대전 기간동안 태평양을 두고 벌인 전쟁)의 미드웨이 해전(말 그대로 미국의 미드웨이라는 지역을 두고 벌어진 대규모 전투)을 예시로 들어보겠습니다.
미드웨이 해전에 대해 다루기 전에 미리 알아야할 사안이 있습니다. 보통 해전이라고 하면 육안으로 적이 보이고 서로 함포를 쏘아 포탄을 주고받는 것을 상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에서 본격적으로 항공모함이 운용되면서 해전의 양상이 180도 달라집니다.
당장 미드웨이라는 섬은 태평양 한 가운데에 외로이 박혀있는 아주 작은 섬(정확히 말하면 ‘환초’라고 표현해야 하지만 일단 이렇게 부릅시다)입니다. 미드웨이 섬 자체의 면적은 매우 조그마한 수준이지만, 그 섬을 둘러싼 해상 영역은 매우 광대합니다. 미드웨이 해역 전체의 면적은 프랑스 국토보다 15% 더 넓습니다.
미드웨이 해전은 양국의 해군 함대가 서로를 육안으로 식별하여 포탄을 주고받은 수준의 전투가 아닙니다. 장장 수백km에 달하는 거리에서 서로 전투기를 날리며 가시선 너머 보이지도 않은 적과 싸워야 했습니다. 파일럿들은 몇 시간에 걸쳐 비행하여 적 함대를 공격하고 다시 같은 거리를 날아와 복귀해야 했습니다. 당장 전투 중에 일부 파일럿들은 자신이 속한 함대로 귀환하지도 못하고 해상 미아가 되기도 했으며, 실종자 또한 다수 존재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눈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상대가 나의 공격으로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지는커녕 이 넓은 해상의 어디에 숨어있을지 감도 안 잡히는 스케일입니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미 해군은 아주 훌륭한 ‘유추와 추론’을 통해 멋지게 상대의 정보를 알게 됩니다.
당시 미 해군 정보부는 일본 해군에 대한 수많은 정보를 저장해두고 있었습니다. 그 자료들 중에서 특이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각 함정의 통신병들이 보이는 습관’이었습니다. 사람마다 글씨체가 모두 다르듯이, 통신병들마다 전보를 보낼 때 타자기를 두드리는 습관이 확연히 차이가 났다고 합니다. 어떤 통신병은 아주 조용하고 차분하게 타자를 두드리는 반면, 어떤 통신병은 마치 발로 차듯이 시끄럽고 요란하게 두들겼다고 합니다.
이러한 정보를 굳이 왜 정리해놓았을까? 이걸 알아낸다고 밥이 나오나 떡이 나오나 싶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 해군이 이러한 자료를 통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먼 거리에 있는 일본 해군의 전력손실을 ‘유추와 추론’을 통하여 알아냅니다. 직접 일본 해군이 얼마나 뚜들겨 맞았는지 보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사고 과정을 통하여 멋지게 적의 상태를 추론해 냅니다.
(미 해군의 전투기에 의해 공격받은 일본 함대의 항공모함 삽화. 이 전투로 일본은 복구가 힘들 정도의 심각한 손실을 입게 된다
http://www.eylandt.info/battle-of-midway-painting-5fe81/)
미드웨이 해전이 중후반에 들어섰을 무렵, 미 해군의 전투기들은 일본 함대에게 맹렬한 공격을 가한 뒤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워낙 전투 자체가 넓은 해상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정보 취합이 힘들었습니다. 아직 통신 기술이 완벽한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미 해군의 전투기들은 자신들의 성과를 정확하고 빠르게 보고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전투기가 공격한 직후 적에게 큰 피해가 발생하는걸 보지 못하고 귀환했을 수도 있습니다. 당시 해전에 쓰인 항공모함 정도의 거함은 침몰조차 몇시간에 걸쳐 일어나는 초대형 병기입니다.
당시 일본 해군은 4대의 주력 항공모함과 그 밑에 다수의 함정으로 이루어진 함대였습니다. 그 중에 일본 해군의 현장 최고 지휘관 나구모 제독이 타고 있던 함선은 ‘아카기’라는 이름의 항공모함이었습니다.
당시 미 해군은 일본 해군이 송수신하는 전파들을 감청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해군 사이의 교신을 감청한다 하더라도 직접적으로 적이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지는 알기 힘들었습니다. 이때 미 해군이 정리해둔 각 통신병들 사이의 습관에 대한 자료가 빛을 보게 됩니다.
미 해군은 유심히 관찰한 끝에 어느 순간부터인가 일본 해군의 최고 현장 사령관 나구모 제독의 명령을, 일본 해군의 기함 아카기에 근무하는 통신병이 아닌, 경순양함 나가라의 통신병이 송수신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각 통신병들마다 키를 두드리는 습관이 확연히 차이가 났기 때문에 충분히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미 해군은 이 정보를 가지고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요? 당시 일본 해군의 상황은 미 해군의 맹렬한 공격을 받은 끝에 기함 아카기는 물론 다른 항공모함들까지 큰 피해를 입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적의 사령관인 나구모 제독의 명령을 엉뚱한 함선의 통신병이 송수신한다는 것은 곧 적의 수뇌부가 기함 아카기를 포기했다는 의미였습니다. 이는 곧 기함 아카기가 매우 심한 피해를 입어 작전이 불가능해졌음을 암시했습니다.
비록 미 해군은 일본 해군의 항공모함들이 굉침당하는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 충분히 유추해 낼 수 있었습니다. 수백km에 걸쳐 매우 넓은 해상에서 일어나는 전투였기 때문에 이러한 유추를 통해 아주 중요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미 해군 정보부의 머릿속을 한번 정리해보겠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적군의 통신병이 교체되었다 -> 그 통신병은 원래 기함 아카기에 소속된 통신병이 아니라 웬 엉뚱한 함선의 통신병이다 -> 최고 사령관의 명령이 그 통신병을 통해 전달되는 것은 적 수뇌부가 함선을 옮겼다는 의미이다 -> 즉 일본 해군의 수뇌부는 기함 아카기를 포기했다 -> 이는 곧 기함 아카기가 미 해군의 공격으로 전투 불능의 상태에 빠졌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너무나 멋지지 않습니까? ‘각 함정의 통신병들이 가진 다양한 인간적 습관’을 통해 결국에는 ‘상대 전력의 현재 상태’까지 알아냈습니다. 이렇듯 뛰어난 사고력과 정보력을 가진 미 해군은 태평양 전쟁 내내 일본 해군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듯이 까발려버립니다.
직접 일본 해군의 항공모함이 격침되는 장면을 보지 않았어도, 여러 가지 사실을 통해 항공모함이 격침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다루게 될 수능 국어에서도 이 ‘유추와 추론’은 중요합니다. 직접 말해주지 않아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제시된 정보만 가지고도,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특히 수능 국어에서는 같은말 혹은 반댓말밖에 없기 때문에 이러한 유추가 요긴하게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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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국의 정보국은 진짜 대단하네요. 어떻게 각 함정의 통신병들의 타자 습관을 기록해둘 생각을... 머리가 좋다는 게 어떤것인지 알려주네요...
글 흥미롭다
멋진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