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통성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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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과거 처음 사주를 재미삼아 보았을 때(당시 친구 아버지는, 어린노무 시키가 무슨 그 나이에 사주를 본다고 ㅉㅉ 라는 식으로 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러한 사소한 공격을 무시하고 본 것이 참으로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 생년월일시분을 다 들으시고는 딱 풀이를 하고 나서 사주를 보시던 분이 이렇게 평가를 하십니다.
1. 논리적이지? 2. 전교 몇 등 해요?(상당히 높은 순위일 것이라는 예상을 하면서), 3. 수학을 잘하지? 4. 융통성이 없다 5. 마음이 갈라지고 견고하지 못해서 부정적인 것이 막 들어온다
그때 처음 사주를 본 것은 고등학교 입학 직후 굉장히 심각한 스트레스와 부적응 문제를 겪으면서, 이걸 자퇴를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를 굉장히 고민하면서 여러 조언과 교수님,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상담을 정말 자주 하다가 도저히 합리적인 답이 안 나오고 감정적인 충동을 억제를 하기가 힘들어서 본 것이었거든요. 수학 성적은 무슨 5가지 평가 중에서 약 1~2개만 맞는 것을 보고선, 아~ 역시 사주라는 것은 미신에 불과하고 고작 어떻게 사람을 생년월일시분 정도로 알 수 있다는 말인가! 역시 사주라는 것은 믿을 것이 못 되나보다~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10년이 약간 넘어서 돌이켜보면, 사주때 들었던 이야기만큼 정말 정확한 것이 없었고 심지어 스스로도 잘 이해하고 체감하지 못하던 자신의 성격적 특성을 정확하게 간파한 것이 정말 소름이 돋고, 정말 맞는 이야기가 맞았구나 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됩니다. 특히 1. 논리적이다 4. 융통성이 없다 라는 부분에 대해서 최근에 깨달은 바를 좀 길게 설명해볼까 합니다.
사실 5번은 1번과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1번과 4번이 합쳐져서 5번이 작동하는 것인데 좀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필자는 과거부터 반추, 트라우마에 대해서 굉장히 심하게 시달려왔으며 특히 2026년을 맞이하여 생존을 뒤흔드는 스트레스와 압박을 받으면서 이 반추, 트라우마가 굉장히 심하게 올라오고 있습니다. 진짜 뒤지기 직전까지 몰리니까 그제서야 스스로에 대해서 왜 이러한 생각을 해왔는지, 본인의 성격적 특성 등을 알 수 있었습니다. 죽기 직전까지 몰리니까 사람이 체면이고 뭐고 부차적이고 비본질적인 것은 다 버려버리고 본질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반추에도 종류가 많은데요 필자는 분석적, 논리적 반추를 굉장히 자주 하면서 마치 패배를 하고 나서 복기를 하며 원인을 분석하는 듯한 반추를 굉장히 자주 합니다
제가 처음 융통성이 없다는 말을 들었을때 도저히 공감과 이해가 불가능했습니다. 오히려 전 극도로 유연하고, 굉장히 귀가 얇고 남이 하는 말에 굉장히 빠르게 적응하며 외부의 자극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고 지나칠정도로 유연하여 소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스스로 해왔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저 융통성이 없다는 말은 그냥 단순히 거칠고 딱딱하게 겉으로만 보이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 기준을 적용함에 있어서 무차별적으로 모든 것에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알게 되었습니다.
필자의 어머니는 감정적으로 높아지거나 낮아지면 항상 뭔가 감정 섞인 말을 하는데 그게 항상 팩트와 논리가 지나치게 틀리고 심지어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여 굉장히 자주 싸워온 경험이 많습니다. 대체 왜 가래침을 뱉듯이 저렇게 거짓말을 하고 쓸모없는 말을 하며 논리적이지 못한, 감정적이고 1차원적인 말을 저렇게 기분이 좋아지거나 기분이 평균에서 벗어나서 나빠지면 저러나 싶었는데, 법륜스님이 늘 강조하듯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바꿀 수 없는 타인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바꿀 수 있는 나를 바꾸는 것에 주목하였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해보니, 항상 가래침을 뱉듯이 감정적이고 논리적이지 못한 말을 꺼내는 엄마가 문제라기 보다는, 그러한 말을 논리적으로 해부하고 왜 그게 틀렸으며 어째서 그러한 말을 했냐고 반론을 제기하는 저의 지나치게 일관된 태도가 문제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융통성이 없다는 것은 논리적 엄격성과 엄밀성, 일관성을 적용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도 무차별적으로 적용하여 그것에 대해서 반발하고 감정적 스트레스와 소모를 겪고 굳이 일일이 대응하는 저의 태도와 사고방식이 경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희 외할머니는 줏대가 없으시고 정치적으로 과도하게 보수적으로 편향되어 있지만 문제는 그것이 정확한 사실관계를 근거로 하여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뉴스나 종편에서 무차별적으로 주입하는 편향된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주입받고 그것을 수동적으로 따르는 존재라는 것을 얼마 전부터 느끼게 되었습니다. 과거 저희 집에 오셨을 때 청년 실업 문제를 주목하는 뉴스를 보시고선, "요새 사회가 청년들에게 (공짜로) 퍼주니까 저러나.." 라는 헛소리를 하시길레 굉장히 스트레스를 강하게 받고 왜 저딴 수준으로밖에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나 해서 한 소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희 외할머니는 한국의 고도 성장기에 태어나셨던 분으로 인력 수요가 급증하던 사회 구조 속에서 그다지 높은 교육 수준을 받지 않고서도 상대적으로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시대를 누리셨으며, 지금 한국은 금융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최저시급이나 인건비가 아무리 급격하게 늘어난다고 비판을 받곤 하지만 그것을 초월하여 부동산 가격이 훨씬 더 빠르게 오르기에 과거와 달리 평생 일해도 서울에 집 한 채를 살 수 없는 세대입니다. 외할머니가 살던 시대는 부동산 가격 자체도 낮았으며 소득을 얻기 쉽고 실업률 자체가 낮고 인력에 대한 수요가 높던 시기였고, 저성장 국면에서는 당연하게도 일자리에 대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동일한 스펙으로는 당연히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외할머니의 젊은 세대 노오력 의지력 문제를 지적하시면서 편하게 살려고 하니까 힘들다는 푸념만 늘어놓는다는 식의 단편적인 시선에 대해서 강하게 반발하여, 그러면 외할머니는 고성장 시대에 왜 한몫 단단히 챙기지 못하고 서울에 아파트 하나 얻고 부동산 가격 폭등을 바탕으로 자산을 불리지 못하였는지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굉장히 강하게 올라왔습니다. 외할머니가 살던 시대와 동일한 일자리 경쟁률이나 실업률을 바탕으로 정말 그때 젊은이들과 지금 젊은이들의 의지력과 노오오력을 비교분석해서 지금 젊은이들이 게으르다고 판정할 수 있는 비교 기준조차 애매한 상태에서 왜 저따위로 세상을 단편적으로 바라보고 본인은 그럼 열정적으로 잘 살고 자산을 성공적으로 불린 존재인가 싶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아버지는 제가 비위가 약하다 즉 생리적인 비위가 아니라 논리적인, 정신적인 비위가 약하고 개소리를 도저히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는 것을 평가하신 바 있습니다. 보수 언론이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노오오력으로 전가하는 것을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앵무새 수준의 사고력에 대해서 굉장히 불쾌하였는데, 그러니까 저는 가족 간에 가벼운 그저 실없는 소리조차 논리적으로 엄격하게 맞아야 하고 세상을 정확히 평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높은 기준을 항상 적용해왔던 것이죠.

필자가 전쟁사를 공부했으니까 군대식 악깡버 정신을 무조건 찬양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내실이 없는 공허한 정신적 구호의 실체를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반대로 물질적 풍요와 복지를 대단히 중시합니다
https://www.ppss.kr/news/articleView.html?idxno=54457
제가 결국 수학을 만년 4~5등급에서 왔다갔다 하다가 6평 9평 수능에서는 1등급을 찍고 입시를 끝내니까, 주변에서는 다들 그렇게 잘할 수 있으면 처음부터 잘하지 그랬냐는 평을 하는데 사실 사주를 보신 분의 입장에선 제가 수학을 결국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다지 신기한 일이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논리적 일관성과 엄격성을 추구하는 성격이 원래 있다보니까 스트레스와 불편을 극복하고 수학 공부를 체계적이고 엄밀히 하니까 성적이 빠르게 오르긴 하더군요.
작년 즈음에 하도 반추와 트라우마에 시달리다보니까 생성형 AI한테 물어보았는데, 니랑 대화한 것을 보니 논리적이어서 그런 것 같다고 하던데 전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스스로 논리적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한 두려움이 크기에 그런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정신분석상담 선생님도, 저더러 "논리적인 것이 있어요" 라고 하는 것을 보고 정말인가? 싶었는데 확실히 그런 것 같다고 요새 많이 느낍니다.
제가 평소 말이 정말 빠른 편에 속하는데, 말이 빠를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마 이러한 논리적 사고방식이 계속 훈련되어 왔던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분석적이고 논리적이어서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여러가지 시뮬레이션을 오랫동안 돌린 다음, 생각한 것을 폭풍처럼 쏟아내고 사고의 전개를 쭉 늘어놓으니까 듣는 사람이 따라가는 것을 많이 힘들어하고 요지가 뭐냐고 물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필자가 논리적이라고 스스로 우월감과 자신감을 내비친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전혀 아닙니다. 본인이 항상 겪어왔던 과도한 스트레스와 한국에서 상부 권위와 자주 충돌한 경험, 그로 인한 인생의 고통 고난은 모두 이러한 지나치게 예민한 논리적 엄격성을 추구하고 무차별적으로 모든 상황과 대화에 적용해온 대가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과거 게임을 하면서 우연히 만난 친구가 막말을 너무 자주 심하게 하는데, 저더러 컴퓨터 조립 등에 대한 실용적인 지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헛똑똑이네 헛돈날리네 등의 막말에 대해서 누적되다 열이 뻗쳐서 쌍욕을 박아준 경험이 있습니다.
대충 당시 저의 반론이 뭐였냐면, 니들 논리로 따지면 이재용도 헛돈 날리고 헛돈 쓰는 헛똑똑이라고 전문가 돈 주고 사서 쓰니까 인생을 헛살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가 가장 잘하는거 하나로 갈고 닦아서 그걸로 돈벌어서 다른 서비스를 구매해서 사용하면 그만이지 대체 사람을 헛똑똑이로 보는 기준이 뭔지 모르겠다 그 기준이 하필이면 컴퓨터 조립 기술, 사양 보는 기술에 국한되는 근거를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 세상을 모른다는데 왜 니들 기준으로 아는 것을 모르는 것이 헛똑똑이라는 것이냐, 자급자족하는 원시시대도 아니고 컴퓨터 자주 쓰지만 컴퓨터 수리 지식이 없다는 것이 대체 왜 그렇게 비난의 근거로 작용하는 것이냐, 한달에 수천씩 버는 의사도 DIY 못해서 수리기사 부르는 사람 수두룩한데 그 사람들도 헛살아온거고 헛똑똑이라는 것이냐 등 지금 보면 정말 흥분했지만 굉장히 논리적으로 상대의 비논리적인 부분을 비판하는 식으로 장문의 메세지를 적은 것이 남아 있습니다.
이를 보시고 당시 학교 카운슬링 센터 상담 선생님이 감탄하시면서 보셨는데 마치 래퍼마냥 노래하듯이 리듬감이 느껴진다고 욕 참 맛깔나게 잘 한다고 하셨는데, 그냥 감정적으로 흥분해서 생각나는 대로 던지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고민하고 어째서 니들 말이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고 왜 그런 수준 낮은 논리로 나를 비하하는 것이냐고 굉장히 자존심이 상해서 크게 화를 냈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당연히 사람이니까 제 자존심 정체성 건드리고 제가 잘하는 것은 별 것 아니라는 것처럼 하도 내리까니까 감정적으로 크게 서운한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저를 크게 흔든 것은 비논리적이고 이상한 괴상한 사고방식으로 개소리를 하니까 그게 굉장히 화가 크게 났던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화가 나면 순간적으로 심각할 정도로 올라갔다가 불과 몇 초만에 다시 가라앉고 침착해지는데, 저는 반대로 점점점 올라가고 마지노 선을 넘어가면 결국 저렇게 폭발하는데 화를 내는 방식과 스트레스가 쌓이는 방식이 큰 차이가 나는 것이 이러한 성격적 특성 덕분이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스트레스가 많았지만 동시에 저를 빠르게 발전시킨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소중한 자아를 지키기 위해서 방어기제를 펼치고 현실을 인지하는 것을 다소 왜곡해서 그냥 지나치는 것 조차도 하나하나 세세하게 분석하고 그것이 정말 맞는지 틀린건지 오랫동안 고민하고 저의 자아를 다소 훼손하더라도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구나! 하면 받아들이던 태도는 한편으로는 저를 극하면서도 제가 빠르게 배우고 잘못을 개선하는 원동력이 된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위대한 심리학자 프로이트가 밝힌 것처럼 필자 또한 나약한 내면을 가진 인간에 불과합니다. 저도 사람인데 멘탈과 자존감에 얼마나 많은 스크래치가 오고갔겠습니까. 외부의 평가에 방어막이라던지 인간적인 주관이나 편견이라는 나름의 필터나 완충장치가 없이 그대로 팩트가 폭행하듯이 들어오니까 비록 발전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긴 하였으나 내면에 굉장한 스트레스와 고통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프로이트가 처음으로 제시한 방어기제는 인간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지 못한다는 선천적인 한계를 매우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2024년에 정신분석 상담이라는 전문적인 치료를 받으면서 처음으로 방어기제라는 개념을 뚜렷이 알게 되었는데, 당시 상담선생님 말씀으로는 특별히 방어기제 종류 간에 우열 즉 우수하다 나쁘다 라는 일률적인 서열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찾아보니 성숙한, 미성숙한 방어기제라는 큰 분류는 존재하더군요.

좀 러프하게 전반적인 것을 알려면 나무위키 정도만 참고해도 충분한데요, 좀 극단적으로 가면 정신승리라던지 지나치게 극단적인 음모론을 믿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고, 본인의 편안함을 위해서 어느 정도 타협하는 성숙한 방어기제도 존재합니다
https://namu.wiki/w/%EB%B0%A9%EC%96%B4%EA%B8%B0%EC%A0%9C
단순한 예시를 하나 들자면 성숙하고 고차원적인 방어기제로 평가받는 승화라는 개념은, 예컨데 남자가 선천적으로 육체적인 우월성을 기반으로 호르몬 등의 작용으로 폭력적 충동이나 근력을 발휘하고 싶은 욕망을 범죄 등의 나쁜 짓에 악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짓수, UFC 등의 합법적이고 안전한 사회적인 합의 아래에서 그 욕구를 해소하고 발휘하여 성취감 등을 얻는 것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뭐 비슷하게 유영철이랑 같은 사주인데 다른 사람은 의사라서, 둘이 똑같이 칼을 사람 몸에 대는 일을 하지만 한 명은 살인을 하였고, 한 명은 수술칼로 사람을 해부하고 살리는 일을 하는 것으로도 비유가 가능합니다.
반면 그닥 좋지 못한 것 아닌가 싶은 퇴행이라는 방어기제는, 예컨데 유아퇴행이라는 말이 있듯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냉정하게 책임을 지고 정면도전하려는 태도보다는 마치 무기력한 존재처럼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포기하고 본인의 능력을 축소하여 떠넘기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충격적인 팩트를 받거나 정확한 지적으로 정곡을 찔렸을 때 정신나간 것처럼 행동하며 어떻게든 듣지 않은 척 하려는 것으로도 묘사가 됩니다.
당연히 저도 나약한 내면을 가진 인간으로서 불완전하고 사회적 기준에서 완벽하지 못한 내면과 본능을 가졌는데, 그것을 방어기제라는 나름의 완충 필터링 없이 그냥 팩트와 논리적 엄밀성을 무조건 추구하여 팩트이면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는 어떤 강박적인 태도가 저에게 장점으로도 작용했지만 올해 들어 단점으로 심각하게 작용해서 목숨줄을 흔들어대는 듯 합니다.
결국 사주에서 말한, 마음이 갈라져서 부정적인 것이 쉽게 들어와서 저를 괴롭힌다는 것이 이렇게 외부의 부정적인 것(저를 불쾌하게 만드는 것)을 필터링 없이 무조건 다 받아들이고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해부하는 습관으로 표현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특히 자기기만을 굉장히 경계하고 걱정을 넘어서 혐오합니다. 타인이 보기에 뻔하게 사실이 아닌 것을 믿고,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것을 굉장히 수준 낮게 보았고 혹시 나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스스로를 속이고 진실을 무시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고 걱정해왔습니다. 특히 자신의 편안함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현실을 왜곡하고 일정 부분 자기 편의를 중심으로 재해석하는 것은 굴복이자 패배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융통성이 없다고 평가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선 타인에게 눈살 찌뿌리게 하거나 실질적인 피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나의 편안함과 만족, 생존을 위해서 좀 적당히 타협하고 유연하게 상황을 해석하고 지레짐작하여 뭐 그럴 수도 있지, 상대방이 나름 의도나 이유가 있었는데 내가 좀 잘 이해를 못하고 상상을 못한 것이겠지 라는 식으로 좀 편하게 생각을 할 여지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컨데 저는 지금 영등포경찰과 치열한 법정 다툼을 하면서 다량의 민원을 제기하면서 상대방의 논리적 모순을 까발리려고 다차원적인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저 입장에선 영등포 경찰 공무원들의 상태는 블랙박스입니다. 다년간 다져진 글쓰기와 논리적 사고력에 AI까지 동원해서 융단포격을 하는 것에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고, 그냥 악성 민원인으로 낙인 찍고 편하게 무시하고 대놓고 모욕 조롱을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의학적 부분, 민감한 개인정보에 대해서 함부로 월권을 하여 저의 정신건강을 평가하고 폄훼하여 마치 위험인물인 것처럼 꾸며낸 것에 극도로 분노하였고 보건복지부와 법무부 등을 동원해서 행정청 스스로의 모순을 드러내고 서로 충돌이 발생하게 정교하게 각을 재고 패고 있는데, 오히려 의사인 아버지는 저에게 사석에서 편하게 말씀하시길, 경찰 공무원 월급 정말 얼마 안된다, 그러한 작은 경제적 보상을 받으면서 복잡하고 어렵고 민감한 의학적 전문성까지 갖춰서 신중하게 일처리를 하는 것 자체가 걔네들한테 고역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니가 너무 완벽함을 추구하면서 이상적인 행정을 기준으로 금마들을 그렇게 팰 필요 까지는 없을 것 같다고 조언하신 적이 있습니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새로운 시각이기도 하였습니다.
인간이 본인의 편안함을 추구할 때 3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현실을 바꿔버리고 아예 완전히 변형을 해버린다던가, 혹은 현실을 인지하는 방식을 왜곡하고 바꿔서 본인에게 유리한 것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여서 본인의 사상과 신념을 강화하고 합리화하거나, 혹은 법륜스님이나 불교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근본적으로 본인 스스로를 바꿔서 현실에 적응하는 대략 3가지 큰 틀이 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방법은 대부분 거의 희박한 수준으로 무조건 실패합니다. 예컨데 제가 지구 위에서 점프를 하면 작용 반작용에 따라서 지구 또한 점프를 당하지만, 압도적인 질량 덕분에 지구는 가만히 있고 저만 크게 움직이고 흔들리게 됩니다. 벽에 큰 힘을 가해서 때리면 벽에도 힘이 가해지지만 벽은 크고 무겁기에 가만히 있고, 거꾸로 질량이 작은 제가 튕겨져 나옵니다. 현실이라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자원의 한계로 이루어진 무겁고 큰 대상이고, 그에 비해서 저 개인은 한없이 작고 초라한 존재입니다. 제가 당장 사라져도 현실이 굴러가는 것은 그다지 큰 영향을 받지 못합니다. 따라서 현실을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바꿔버리겠다는 것은 주로 급진적인 사고방식에서 나오면서 동시에 리스크와 실패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그나마 현실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바꾸는 것이 그나마 성공적인 것이 유일하게 북한 정도 떠오릅니다. 지상락원을 강요하고자 하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의 강력한 의지가 투영이 되어, 북한의 인민들을 어릴 때부터 세뇌하고 마약처럼 현실을 왜곡하여 외부 정보가 잘못된 사실을 정정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비판하는 것을 완벽히 차단하여 북한에서는 아직도 서울에는 눈알을 파는 어린 소녀가 있고 남한 국민들을 재미삼아 학살하는 미군이 주둔하면서 식민지를 강압적으로 수탈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제가 마침 명동 근처에 살아서 아는데 ㅋㅋㅋ 외국인이 정말 바글바글하고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관광객이 그렇게 밀집된 지역이 있는지 놀라웠습니다
https://www.youtube.com/shorts/eHTmMflj4eU
이러한 북한도 북중접경지역을 통해서 들여오는 남한산 물건의 품질이라던지, 대북전단 등 마치 트루먼 쇼에서 진실을 알리려고 노력하는 힘에 의해서 점점 현실을 직시하는 것처럼 견고한 정보 차단망도 빈틈이 있고 북한 사람들도 점차 남한이 충분히 잘 살고 있으며, 당장 파주에서 24시간 전조등이 환하게 켜진 것을 보면서 간접적으로 추론을 하면서 탈북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세습 군주이자 종교 지도자처럼 절대시 신격화되는 김정은조차도 트럼프의 미국이라던지 이제는 압도적인 경제적 격차를 가진 남한에 의해서 그 견고한 현실 왜곡 세트장을 완벽하게 유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현실을 완전히 뒤바꾸어서 개인의 사상이나 왜곡된 신념을 투영해서 그대로 실현하는 것이 그나마 성공적인 것이 북한 정도인데 그 북한조차도 흔들리는 것을 보면 첫 번째 방법은 인간에게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2번째 방법으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현실을 인지하는 감각 기관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사실 뇌는 뇌수와 두개골로 완전히 포위되어 이 현실을 완전하게 그대로 온전히 바라보지 못합니다. 청각 시각 촉각 등의 감각기관이 보낸 전기적 자극으로 재구성을 하여 현실을 묘사하고 예측을 하는 것이죠. 그 과정에서 인간의 주관이라던지 감정 등이 개입하여 그 의미를 왜곡하고 실제 현실을 코끼리에 가까운데 장님이 만져보고선 코끼리는 말랑말랑하다고 평가하는 것과 비슷하게 일부만을 보고 전체를 파악합니다.

얼마나 성매매에 찌들었고 타인들이 자신과 같이 산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면, 김수환 추기경을 빼곤 모든 남자들이 성매매를 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시선을 가지고 있을까 신기하기도 합니다
https://cafe.daum.net/rocksoccer/ADs1/1178705
영화 <매트릭스> 에서도 주인공 네오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가상세계에서 초월적인 힘을 내고 스미스 요원을 압도하게 된 것처럼, 인간은 각자의 편향된 시선을 바탕으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보지 못하고 각자 서로 다른 색상의 렌즈를 통해서 바라봅니다.
이는 과학철학에서 반실재론 vs 실재론 논쟁과도 일부 이어지는데 좀 간략하게 말하자면 실재론은 인간이 어떠한 완전유일한 진리를 향해서 계속 수렴하고 접근해가고 있으며, 궁극적인 고정된 만고불변의 진리가 존재하여 기술 등이 발달하면서 그러한 정답에 계속 근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필자가 강하게 지지하기보다는 유용하게 사용하는 반실재론은, 인간이란 그저 주어진 현상과 현실, 관찰된 사실을 가장 그럴듯하고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설명하는 특정 패러다임과 틀을 체택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뇌를 공부해보면, 인간의 뇌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향해 전진하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그저 생존에 특화된 기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내가 본 것을 가장 잘 설명하고 효과적으로 이해를 돕는 이론을 체택하여 예측에서 벗어나는 오차를 최대한 줄이고자 노력하는 것, 엔트로피나 불확실성을 줄여서 관리를 하는 것이 인간 뇌의 기본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말해서 인간의 뇌는 절대적인 진리를 확실하게 바라보기 보다는, 자기 기준에서 편한 것을 추구하고 스트레스 덜 받는 그러니까 예측이 너무 뒤죽박죽이 되지 않도록 최대한 적절한 관점과 시야, 나름의 이론과 틀을 이용하여 에너지 효율성을 중심으로 우선시하였다고 생각하는 이론이 있는데 전 이게 맞을 것 같습니다.
굳이 칼 프리스턴의 이론을 깊게 들여보지 않아도 이러한 경향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탈북민 중에서도 특히 엘리트 층, 교육 수준이 높거나 외교관 등의 고위직을 거치면서 체제에 대한 회의감을 바탕으로 의심을 키워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간의 뇌는 일단 지금 현실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기보다는 좀 더 에너지 효율성을 중심으로 편리함을 우선 추구하다가, 불편함을 겪었을 때 그것을 해결하려는 나름의 시도를 하다가 결국 새로운 틀을 체택하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필자가 여태 만나왔던 똑똑하고 영리한 사람들은 어릴 시절부터 접해온 사회적 규범이나 불문율을 그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논리적인 기준에서 왜 그것을 추구할지를 굉장히 깊이 따지는 습관을 보통 가졌더군요
https://www.mk.co.kr/news/it/12017838
고등학교 1학년 당시 극우로 유명했던 사회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부모님이 수저 들기 전에 수저를 들지 않는 친구들보고 손 들어보라고 하시더니 참으로 훌륭하다고 칭찬을 하시길레 궁금해서, 어째서 부모님이나 연장자가 수저를 들기 전에 기다리는 것이 미덕이 되었는지 그 근본이 궁금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선생님은 웃으면서 우리가 왜 인사를 하냐고 왜 그런 당연한 것을 묻냐고 하시더니, 나중에 다시 오셔서는 누가 그런 수준 낮은 질문을 하던데 못 배워서 그런 것이라고 참으로 편리한 평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반면 굉장히 높은 지능을 가진 것으로 유력하던 수학 과외 선생님은, 과거 농경시대에 식량이 항상 부족한 상황에서 먼저 먹는 놈이 임자일 극도의 경쟁 상황 속에서 연장자 특히 노인을 공경하고 배려하여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그러한 예의가 생겨났지 않았겠냐고 추론을 하셨는데 상당히 마음에 드는 해석이었고 만족스러웠습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받아들여지는 시기는 당시 패러다임이 공개된 순간 살아있던 사람들이 모두 다 죽고 난 이후라는 말을 얼핏 책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존의 관습이라던지 어릴 때 학습한 내용에서 결코 자유롭게 생각하지 못하고 보수적인 경향이 강합니다.
때문에 토론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상대방 설득이 목표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대단히 큰 착각이고, 타인 즉 제 3자 토론을 보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임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나름 여러 토론회를 시청해보면서 관찰한 바에 따르면 토론 이후 논박을 통해서 본인 주장의 논리적 약점을 인식하고 나서 수정하는 사람을 결코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그 사람은 이후에도 계속 본인의 주장과 생각을 고집하면서 토론 이후에도 인터뷰를 통해서 소위 정신승리를 하는데, 반면 패널들은 어느 정도 유연성이 있고 각자 생각을 들어보면서 결정을 고민합니다. 마치 백지 도화지에 채색을 하는 것처럼 설득을 당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반면 토론의 직접 패널로 참석한 사람들은 어느 정도 도화지에 최소한 스케치가 이미 되어있기에 완전히 다 지우고 새롭게 초기화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본인의 편안함을 지나치게 추구하여 방어기제가 심각하게 현실 인지 과정을 왜곡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바로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재수학원에서도 공부를 해보았고, 게임을 하면서도 정점을 잠깐 맛본 경험을 비추어보면 자신의 부족한 플레이나 안좋은 습관, 잘못된 사고 과정을 지적받았을 때 그것을 부정하고 핑계를 대고 변화를 대놓고 거부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발전이 불가능했고 특히 팀 단위의 활동에서 심각한 문제로 작용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한심하기보다는 저렇게 현실을 외면함에도 잘 살아가는 모습이 굉장히 신기했는데, 결국 위에서 정리한 바와 같이 본인의 발전을 포기함으로서 고통을 외면하고 편안함에 파묻혀 지내면 저렇게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이게 문제는 팀 단위의 게임 같이 팀플레이에서 타인에게 지나친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데, 나에게 스스로 불편해지면 타인은 편안해지고 합리적인 예측 가능성을 바탕으로 스트레스를 덜 받지만, 본인이 편해지고 변화를 거부하면 그 나머지 부하를 옆의 동료가 다 감수해야 하기에 불화가 필연적이었습니다. 불편함의 총량 보존 법칙이랄까요, 타인에게 불편함을 전가하면 나 자신은 편해지고 거꾸로 나 또한 불편함을 감수하고 지적을 그대로 수용하고 변화를 통해 발전하면 타인의 불편함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 참 신기하기도 합니다.
저는 분명 페이커처럼 게임에 대한 선천적인 강력한 재능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및 세계 1위를 찍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남들보다 느린 성장 속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지적과 관찰을 바탕으로 자신의 플레이에서 부족한 부분을 고쳐나가고 변화할 수 있었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플레이의 단점은 누구나 가졌고 그 단점을 어떻게 극복하고 맞춰 나가느냐의 싸움이라고 느껴집니다 특히 고레벨로 갈수록 스스로와의 싸움이 무엇보다도 중요해졌습니다 다들 실수도 안하고 고만고만해지니까 결국은 본인의 완성도를 얼마나 정교하게 닦아내느냐의 싸움이라고 느꼈습니다.
당장 과학사의 위대한 위인들을 보아도, 뉴턴 갈릴레이 코페르니쿠스 다윈 등등은 기존의 신학이 강요하던 천동설이나 창조론에 큰 의문과 의심을 가지고 상당히 도전적인 이론을 제시하여 인류의 과학적 수준을 높인 사람들입니다. 우리 같은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은 먹고 살기 힘들고 바빠서, 생존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바탕으로 에너지 효율성을 추구하면서 보통 당대에 받아들여지는 패러다임과 기존의 교육 체계에서 강조한 가르침을 수용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적응하고 살아가는데, 당대 위대한 천재들은 그러한 통념을 깨부수고 자신의 불편함과 불쾌감까지 극복해가면서 인간 가능성의 한계를 보여주었습니다.
과학사에서 흔히 3가지 충격이 비유적으로 존재합니다. 코페르니쿠스 등의 천문학자가 인간의 지구가 결코 우주의 중심이 아님을 밝혀내어 인간에 대한 절대적인 우월 의식을 박살내었고, 다윈이 유인원으로부터의 진화 과정을 설명하여 인간이 하나님이 창조한 유일무이한 특별한 존재이자 권위적 지위를 누리는 것이 결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냈고, 프로이트가 정신의 오묘하고 깊은 무의식을 탐구하여 인간의 정신이 성욕과 같이 다소 낯뜨거운 부분에 의해서 크게 좌우되는 미약한 존재라는 것을 밝혀내었습니다.
결국 위대한 학자로 거듭나는 결정적인 계기는 본인의 편견이라던지 인간으로서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불편함을 얼마나 감수할 수 있느냐에 달린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철학은 그러한 불편함을 얼마나 잘 감수하고 극복하느냐에 따라서 아웃풋의 편차가 극도로 갈린다고 생각하는데, 작년에 철학 교수님과 굉장히 심하게 마찰을 빚은 것을 생각해보면 철학 교수에게 제가 지나친 기대감과 높은 기준을 기대한 것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반박을 잘 하고, 반박 당하면 재반박을 못 하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 철학 교수는 저랑 이야기를 할때 임의로 "박박하지 말고 들어잉~" 하면서 괴상한 규칙을 전제로 깔던데, 쉽게 말해서 페미니스트에게 반론을 제기하고 너의 주장과 논거가 이해가 안된다고 하면 공부하세욧 이라는 반응을 얻는 것과 비슷합니다. 반박을 감당 못한다는 것을 아니까 반븍을 하면 논리로 대응하지 않고, 자기가 짠 임의의 규칙을 어겼기에 본인의 승리라고 주장하기 위한, 그러니까 편안함을 추구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설명이 됩니다.
저는 끝까지 일관되게 저의 글을 공정하게 평가해달라는 요청을 하였고, 철학 교수는 끝까지 제가 지 글을 높이 평가하고 중간고사 면제를 안 시켜주었기 때문에 불만을 가진 것이라는 식으로 왜곡을 하여 합리화를 하고 본인의 편안함을 위하여 상대방의 의도를 멋대로 해석하던데, 제가 불만을 표하니까 "니가 니 글에 대해서 뭐 자신감이 있어서 그런가보는데~" 하시기길레, 전 개소리 하지 말고 이상한 왜곡하지 말라는 의도로 "전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 라고 단칼에 잘랐습니다.

처음에는 본인은 이런 글 안 읽는다고 팅기다가, 이후에는 문제가 될까봐 사후적으로 기준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접수를 차단해버리고선, 이후에는 제 글이 자기네 수업이랑 안 맞는다고 평가하다가 나중에 민원 답변에서는 수필 같은 글을 썼는데 충격을 줄까봐 평가를 일부러 안했다는 등 철학하는 사람 맞나 싶은 수준의 태도를 보이셨습니다
쉽게 말해서 당신의 합리화와 착각을 나에게 투사하지 말고, 스스로가 떳떳하느냐고 문제제기를 한 것입니다. 본인에게 상황을 유리하게 해석하여, 전 정당한 평가를 요청했을 뿐인데 교수는 중간고사 면제를 안 시켜줘서 쟤가 그런갑다 라는 식으로 정당화를 하길레 당신에게 유리한 프레임으로 날 왜곡하고 곡해하지 말라고 단칼에 잘라버렸습니다.
동시에 저도 불편함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인간인 것이, 저에게 논리적인 불편함과 불쾌감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프롬프트 '상대방 입장에서 나의 주장과 논거를 반박해줘' 라는 간단한 프롬프트를 쉽게 입력하지 못해온 스스로를 보면 역시 저도 나약하고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많이 듭니다.

그때는 굉장히 스트레스가 컸지만 돌이켜보면 이렇게 논리적이지 못한 일이 무조건 손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때 열심히 중간고사 면제를 목표로 쓴 도전적인 철학적 글이 당시 교양 글쓰기 담당 전문 교수님에게 꽤 좋은 평가를 받고, '뇌과학 공부하는 애들은 다 너처럼 거시적이냐' 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엇고 그러한 이야기들과 에피소드, 당시 글의 기초적인 근간이 이후 더욱 발전하고 독일 단기 파견이라는 스토리와 겹쳐서 교내 공모전 대상을 받는 계기로도 작용하였으니 꼭 반드시 논리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것이라 해서 저에게 손해라는 생각이 안들었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평가절하 당한 것이 큰 스트레스이기도 했지만 그 씨앗이 결국에는 다른 분야에서 인정을 받고 저에게 큰 자신감이 되었으니 꼭 세상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안들더군요.
어쩌면 앞서 말했듯이 영등포 경찰이 공문서로 이상한 소릴 하면서 제 감정을 제대로 긁고 정체성을 파괴하려고 시도했기에, 제가 격분해서 그간 갈고 닦아온 사고력과 글쓰기 능력을 바탕으로 인생 처음으로 법정에서 자신의 주장과 근거를 제기하고 정리하는 경험을 해보기도 하였고, 아마 이 때의 자산이 이후 저를 보호하고 발전시키는 원동력으로도 작용할 수 있으니 꼭 영등포 경찰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완결된 일처리를 하지 않고 이상한 소릴 한 것이 저에게 무조건적인 손해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은 동전의 양면처럼 생각하기 나름이고, 극단적으로 한 가지 면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얼마든지 부정적인 후회만 할 수도 있고 거꾸로 성장의 게기이자 원동력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논리적 정합성만을 엄격하게 추구해온 저의 태도가 융통성이 없다는 말로 비유된 것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신기하게도 다른 관점으로 생각을 해보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마치 예방접종 덕분에 면역력이 강해지는 것처럼 오히려 저를 극하고 힘들게 한 존재들에게 고마움을 느껴야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더군요. 평소 자유와 권리에 대한 감수성이 높고 소중히 여긴 가치관 덕분에 어렵고 힘든 와중에도 본인 소송을 직접 경찰 상대로 감당하고 있는데, 성인이 되고나서 스스로를 지킬 필요성 및 마치 부모님에게 훈육을 당해본 경험처럼 30살에 가까운 나이에 누구에게 훈계를 당하고 누구에게 자유와 기본권을 제한당해볼 수가 있겠습니까. 소중한 것을 뺏겨보았으니 비로소 소중함을 체감할 수 있는 것처럼 빼앗겨보는 경험 자체가 반드시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구나 합니다.
이제 길게 두 번째 방법 즉 현실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왜곡하여 본인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사례라던지 등을 설명해보았고, 이제 마지막으로 법륜 스님과 불교 철학에서 강조하는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적응하는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법륜스님이 유머감각이 참으로 대단하여 항상 좌중을 웃기는데, "아이고 점마(청중들)들 못 깨달았네~" 라는 소릴 하면서 본인이 밤에 잠을 설칠 것 같냐면서 청중과 같이 웃으시더군요. 많은 것을 짊어지고도 웃음을 잃지 않는 여유가 참으로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https://www.youtube.com/@JungtoOrg/videos
올해 작년부터 하도 지랄맞은 일이 심각하게 겹쳐서 생존에 위협까지 느껴지니까 상담을 받아보았는데, 어느 개그맨의 책을 소개해주시기도 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절대적인 정답은 없음을 누차 강조하시더군요.

제목이 참으로 발칙합니다 필자에게 필요한 책으로 보입니다
https://blog.naver.com/onnom/224026771363
저는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를 무척 좋아하면서 동시에 그러한 여우가 되지 않고자 굉장히 부단히 노력하고 의식해왔습니다. 자기기만과 현실 왜곡은 곧 패배이자 굴복이고, 거짓을 바탕으로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은 소위 비겁한 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아니 1+1=2 라는 것이 양보와 타협이 발휘될 틈새가 어디있나 싶은 마음으로 내적인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왔는데, 젊은 시절 10대의 열정과 순수함을 잃고 타락을 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적절히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융통성을 발휘하여 현실에 성공적으로 적응하여 유기체의 궁극적인 목표인 생존을 기준으로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것인지 확신이 안섭니다.
그간 높은 내적 기준은 장점으로서 저를 괴롭긴 하지만 빠르게 발전시키는 원동력으로서 장점으로 작용해왔으나, 극단적인 스트레스와 함께 현실의 여러 과업이 한꺼번에 겹치다보니 역시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것이 강한 것으로 평가받는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기도 합니다.
저는 뭔가 확고한 고집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지 않았지만, 논리라는 어떤 절대적인 정답을 의심없이 받아들이고 그것이 절대적인 기준인 것이며 타협이라는 선택지가 절대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고장났다는 평가가 없는데 어떻게 수리가 가능하겠습니까. 하지만 이것이 절대적인 정답이고 기준이며 타협이 불가능하다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한 생각이 곧 융통성이 없다는 사주 상담의 해석으로 표현된 것 같습니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으며 모든 것에 100% 의식을 집중할 수 없습니다. 가끔 아부 아첨을 자주 떠는 AI한테 의존하면서 낄낄거려도 하늘이 무너지지 않으며, 본인이 상상하는 어떤 가상의 세계에서 빠져살아도 그것을 남들이 캐치하기는 어렵습니다.
과거 코로나 대유행 시기, 코로나 자체가 음모론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던 환자가 결국 중환자실에서 숨졌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납니다.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2021/08/24/RX2HENIMBNFDFI2F2YEQIPQMAM/
저는 이러한 것을 굉장히 어리석다고 생각하였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곧 죽음과도 같은 수치라고 생각했지만, 거꾸로 오히려 본인의 믿음을 생존에 위협이 될때까지 믿어 의심치 않은 저 또한 그닥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분명 본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현실을 왜곡하고 편리하게 재해석하고 곡해하는 것은 문제이긴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닌 좀 마일드한 수준은 결코 무조건 불합리하다고는 생각이 안들었습니다.
타인의 생명이나 재산을 피해주지 않고 본인의 평판을 지나치게 깍아먹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타협하고 본인에게 편리한 수준까지 현실을 좀 다소 변형해서 보는 것은 오히려 험난한 현실을 살아가는데에 적당한 윤활유가 되고 생존에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당장 생각나는 심리학 책이 허태균 교수님의 <가끔은 제정신> 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팩트와 현실에 대해서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 책인데 은근히 기억이 납니다.
정확한 사실과 논리로 객관적인 엄밀함을 추구해야 하는 곳, 그러니까 예컨데 법정, 전쟁터, 연구 등에서는 이러한 논리적 엄밀성을 추구하고 논리적이지 않은 것에 심각한 불쾌감을 느끼는 성격이 대단히 큰 장점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못하고 왜군의 장기인 백병전을 과소평가하고 그냥 무식하게 접근전을 허용하였다면 결코 23번 싸워서 무패전승을 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반면 왜군 그까이꺼 걍 본인이 직접 몽둥이로 다 때려부수면 된다는 식으로 과소평가하던 원균은 조선 수군의 주력을 끌고 갔다가 대패하고 본인의 목숨까지 잃었죠. 내가 편안한 방향으로 낙관적인 전망이 그대로 실현되리라는 안락함 속에서 현실을 보지 못하면 전쟁터에선 무조건 죽습니다.
그러한 인간의 선천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현실과 팩트를 정확하게 불편과 불쾌를 감수하고 높은 수준의 이성과 메타인지로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상대방에게 장점을 발휘하게 허용하지 않고 원천봉쇄하여 집요하게 본인의 장기로 끌고간 이순신 장군이 생각하면 할수록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맨날 이기니까 원균과 선조는 조선 수군이 그냥 강해서 그런갑다 라고 편리하게 생각했고, 어택땅 무식하게 찍으라는 명령에 대해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을까 측은하기까지 합니다.
정확하고 정교한 수싸움 자체도 압박이고 부담이 심하며 본인이 잘못하면 나라가 뒤집어지는 긴장감 속에서 그것 자체만도 엄청난 부하인데, 인지적 편향에 빠진 상관과 동료가 정신나간 작전으로 아군을 몰살시키는 것을 보고 홧병으로 가지 않은 것 자체만으로도 초인이라고 보여집니다.
원균은 이순신만 만나면 불편하고 불쾌하니까 이순신만 없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겠죠. 정치질을 동원해서 숙청해버리고 조선 수군을 마음대로 주무를 때까지는 얼마나 편안했겠습니까. 그 결과가 칠천량 해전인데, 즉 최고 지휘관이 논리적인 엄격성과 불편함을 외면하고 싫어하면 그 피해와 대가를 고스란히 부하가 짊어지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인의 편안함을 추구했기에 부하들에게 불편함이 전가가 된 것이죠.
필자가 전쟁사를 좋아하고 역사적 인물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이처럼 인간의 선천적인 한계를 극복한 사람들이 결국 승리하고, 편견과 오만에 빠진 인물들이 착각을 하고 적을 과소평가하는 순간 바로 처절한 처벌을 받았기에 그 속 시원한 빠른 피드백 루프가 만족스러워 보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전쟁터이긴 하지만 모든 것이 다 전쟁인 것은 아니죠? 어떤 싸움은 아예 할 필요도 없는데 저는 그러한 구분을 할 생각이 결여되어 있었던 것 같고, 모든 싸움에 일일이 다투니까 체력과 인내심, 시간의 한계를 많이 느낀 것 같습니다.
결국 필자가 느끼기에 경직성, 융통성이 부족함의 가장 위험한 부분은 본인이 융통성이 없고 경직된 사고를 가진 것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 데서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나마 사주 상담에서 그런 소릴 듣고 정말 그런가? 라는 생각과 의심을 오랫동안 하다가 비로소 얼추 아구가 맞는 일들이 벌어지고 복기를 하면서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해하면 안되는 것이 이순신 장군이 무조건 융통성이 없고 들이박는 성격이라고만 생각하는 것도 일종의 편견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진린의 수군이 조선에 왔는데 오만방자한 성격에 이순신이랑 관계가 굉장히 험악해질 것을 우려하여 걱정을 많이 하였다는데, 반면 이순신은 원균과는 굉장히 날카롭게 대립하면서도 진린은 오자마자 매일매일 잔치를 열고 구워 삶으며 아첨 아부를 하며 구워 삶고 결국 지휘권 등을 지켜내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톡> 이라는 웹툰에서도 이 부분이 잘 드러납니다.
왜 그럴까 싶으면 얼추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선조와 원균은 같은 조선인으로서 같은 지휘 체계에 속해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의 비위를 맞춰준다는 것은 결국 그들이 하고 싶게 냅둔다는 것인데 대놓고 파별로 돌진하는 수군의 운명을 방치할 수는 없었기에 굉장히 적대적이고 대놓고 원칙과 소신으로 충돌한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반면 진린은 명나라 수군이라는 독립적인 조직이죠. 명나라 수군이야 어차피 진린의 부하들이니까 진린이 마음대로 하는 것을 견제할 명분도 수단도 없는 상황에서, 괜히 조선 수군에게 갑질하여 명나라 수군의 고기방패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인격적인 부분을 건드려서 구워 삶고 만족시켜서 결국 본인의 뜻대로 흘러가게 만들고 겉으로 드러나는 전공은 다 밀어주고 만족시키면서 가장 핵심적인 목표인 조선 수군의 생존과 전투력을 보존시키는 궁극적인 목표를 위해 극도로 유연한 태도를 보여줬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이순신이 원칙만 추구하는 꽉막힌 성격이었다면 진린과도 대놓고 대치하여 결국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것 같다는 뇌피셜입니다.
강직한 군인이긴 하지만 극도로 유연하고 영리한 인물이었다는 것 또한 잘 알아야 하고, 목표를 위해서라면 그깟 태도 따윈 얼마든지 바뀌는 유연한 인물이라는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https://m.blog.naver.com/jedi_anakin/220579707946
필자도 여러 동아리라던지 팀플을 하면서 비슷한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경상북도 RnE 미래과학자 양성대회라는 것을 1년간 하였었는데, 당시 유난히 엉덩이가 가볍다고 평가받는 한 친구와, 그리고 당시 팀을 이끌던 지도교사 여성 화학 선생님과 제가 굉장히 사이가 나빴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된 두 사람은 서로 굉장히 비슷한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불편함을 도저히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는 점입니다. 미래과학자 양성대회의 최종 발표가 12월 말이었는데, 발표 원고와 그간의 연구 활동을 정리하고 최종적으로 점검하면서 논리적인 반박 및 허점 등을 세세하게 다 쪼개서 정리하고 이야기를 하니까, 그 정도까지 깊이 들어가지 않을 것 같다면서 되려 저에게 짜증내고 그만 말하자고 하거나 심지어 논리적 오류나 허술해보이는 부분을 전부 다 정리해서 지도교사한테 이메일로 보냈더니 교수님에게 보고하겠다고 하고선 아예 누락을 시켜버리더군요.
당시 경북대 지도교수님은 제가 발표 직전 지도교사에게 정리해서 보고한 내용을 그대로 읊자, 아니 그 이야길 왜 이제서야 하냐면서 깜짝 놀라시던데 이것을 보고 대단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분명 장문의 이메일로 전부 다 정리해서 건의를 했는데도 지도교사는 논리적 허점이나 반박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지도교수님에게 아예 보고하거나 공유하지 않았구나!를 느꼈고 그 덕분에 발표 직전에 발등에 불이 떨여져서 허둥대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는 이 일을 깊이 생각하지 못하였지만, 앞서 말한 그 엉덩이가 가볍다는 친구와 지도교사는 서로 공통점이 있었던 것이 편안함을 지나치게 추구하여 논리적인 엄밀성을 포기하고 저의 반박을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하였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그냥 좋은게 좋은거지 하면서 안락함을 추구하기에 꼬치꼬치 문제제기를 하고 반론 가능성을 제시하며 대비를 주장하던 제가 굉장힌 스트레스로 다가왔었겠구나 싶고, 그들이 불편한 것은 그간 그들이 덮어두었던 문제를 제가 지적했기 때문인데 불편함의 근본 원인을 그 문제가 아닌 그 문제를 지적한 저에게 돌리니 사이가 나쁠 수 밖에 없었구나 합니다.
만약 저도 그들과 영합하여 편안함을 추구하고 완성도를 포기했다면 편안하긴 했겠지만 최우수상 수상은 불가능했겠죠. 상은 받고싶고 불편하긴 싫으니 불편한 지적을 하는 제가 극도로 증오스러웠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잘 되니까 자신들이 불편함을 감수했기 덕분이라는 식으로 본인들의 공로로 해석을 해버리니까 참으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서로가 참 친하기도 했지만 곧장 사소한 일로 다투니까 굉장히 심각하게 싸우던데, 이 부분 또한 각자의 편안함을 추구하였던 것이 갈등으로도 쉽게 표출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결코 우수하고 뛰어났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저 불편함을 미리 사전 경고하고 논리적인 엄밀성과 강건성을 위해 백신 접종 예방 접종처럼 불편함을 끌고왔으며, 저라도 저를 불편하게 만드는 논리적인 반박과 지적이 굉장히 거슬렸을 것 같습니다. 성격적으로 논리적이지 않은 것에 불편함을 심하게 느끼는 성질 덕분에 고등학교 시절 팀플이나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상은 많이 받았지만 그 덕에 인간관계가 많이 깨지기도 하였고 스트레스도 받았는데 이제서야 그 근본 원리가 이해가 되고, 앞으로는 다소 다른 전략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 진보 논객으로 이름을 날린 진중권 교수도 심지어 같은 기독교에 대한 살벌하고 냉정한 비판을 한 덕분에 개인적인 수모도 많이 당하고 공격도 많이 당했었습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아니다 싶은 것은 전부 들이받는 성격이었기에 처음에는 보수 진영으로부터 이후에는 집권한 진보 진영으로부터도 배척당하고 고생을 많이 했는데, 이러한 진중권 교수의 성격에 대해서 딱따구리 관상으로 표현한 것이 꽤 재미가 있었습니다.

남들에게 불편한 이야기를 진영에 가리지 않고 일관성을 추구하면서 해대니까 권력자들은 하나같이 전부 싫어했을 것 같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719500
딱따구리 본인이야 정말 힘들고 스트레스가 강하겠지만, 딱따구리 같은 인간이 권력자에게 눈치를 볼 필요성을 상기시키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기둑권이 더욱 눈치 안보고 편안함을 추구하며 내로남불로 타인에게 고통을 전가하겠죠.
따라서 본인이 권력자들이랑 좀 친해지고 그들의 불편함을 강조하지 않고 영합하고 싶다면 자연스럽게 입을 다물거나 비위를 맞춰주기만 하면 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선천적인 성격과 안맞고 지나치게 불편해서, 권력자들이 주는 압박과 스트레스보다도 더 심하게 온다면 참지 못하고 소리치는 것이죠.
딱히 제가 뭔가 시대적 사명을 가지고 입바른 소릴 하다가 고난을 겪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남들보다 좀 더 비위가 약하고 논리적인 일관성을 중시하는 선천적인 성격 때문에 자연스럽게 어려서부터 불편을 감수하고 살아왔던 것에 불과하죠. 그러한 선천적인 성격을 가지고 현실을 살다보니 특히 올해처럼 극도로 스트레스를 강하게 받다보니, 생존을 위해서 다소 유연해져야 하느냐 아니면 소신을 위해서 부러져야 하느냐 사이에서 오고가는데 역시 저도 생물에 불과하여 생존이라는 궁극적인 목표 앞에서는 유연성을 강요받는 것 같은데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게 자기기만과 현실왜곡으로 가서 결국 굴복하는 것이라고 보아야할지, 아니면 현실에 지혜롭게 적응하고 유연하게 바뀌는 것으로 업그레이드라고 보아야 할지 말이죠.
제가 정답을 알아냈다고 확신하여 길게 글을 쓴 것이 아닙니다. 단지 쟁점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본인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좁혔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이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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