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gnita Sapiens [847641] · MS 2018 · 쪽지

2020-04-10 12: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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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과 경제 - 전문성과 자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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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한번 생각나는 직업 이름을 쭉 나열해보겠습니다. 의사, 변호사, 판검사, 교사, 교수, 장차관, 대통령, 외교대사, 군 장성, CEO, 함장, 선장.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전문직종'으로 분류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사' 자 이름을 쓰는 전문직을 꿈꿉니다. 보통 이들의 보수나 사회적 시선은 아주 높은 편이죠. 굳이 물질적 보상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들 직업을 관찰하면서 한가지 중요한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자율성'입니다.






(제가 여태 본 전문직 중에서 제일 특이했던 직업은 배를 주차해주는 도선사입니다. 선장 경력이 충족되어야지 할 수 있는 고소득 직종이라고 들었습니다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796 )








 만약 보편적인 회사를 상상한다면, 상사와 부하직원 간의 위계질서가 뚜렷하고 위로부터의 지시사항이 절대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직종들은 사뭇 분위기가 다릅니다.




 학교 선생님들은 각자 자신이 배우고 공부한 바에 따라서 학생들을 자유롭게 가르칠 권리가 있습니다. 교장선생님이 더 윗사람이라고 해서 함부로 개입하기는 커녕, 교육부 장관이 와도 건드리지 못하는 고유의 영역입니다.




 이런 경향은 교수를 보아도 아주 잘 드러나는데, 교수 또한 마찬가지로 학생을 가르치는 일 뿐만 아니라 한명한명이 각 분야에 높은 전문성과 지식을 갖춘 사람들이기에 존중받습니다. 교수님들이 보통 몇십년간 한 분야를 오래 연구해왔고, 보편적인 사람들보다도 훨씬 뛰어난 깊이를 자랑합니다.




 대학교에 총장이라는 사람이 학교의 교장처럼 존재하지만, 당연히 총장이라고해서 교수를 함부로 대하거나 수업에 구체적으로 참견할 수 없습니다. 교수들은 각자 자신의 특성과 노력, 흥미에 따라 자유롭게 학부, 대학원생들을 지도할 자유가 있습니다.




 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원에는 병원장도 있을 것이고, 그 밑에 각각 의사들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병원의 입장에서는 병원장과 의사의 관계는 수직적이지 못합니다. 오히려 병원장도 의사의 한 명으로서 일할 뿐이지, 다른 의사를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의사들은 한명 한명이 전문성과 권위를 인정받은 존재들로, 만약 어떤 의사가 퇴직하게 된다 하더라도 병원 입장에서는 그 의사가 끝까지 자신의 환자에 대한 진찰, 치료에 집중해주길 바랍니다. 만약 의사가 자신의 환자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순간 병원 입장에서는 매우 곤란한 상황에 놓입니다. 그래서 다소 수평적인 관계가 형성됩니다.








(의사가 되기까지 의예과 6년에 군의관에 인턴, 레지던트 수료 기간까지 합하면 20대에 의대를 진학해도 어림잡아 30대는 되어서야 의사로서 확실히 활동할 수 있습니다. 그 오랜 시간 똑똑한 사람들이 공부에 투자한 노력을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2660360 )








 전쟁사에서도 비슷한 예시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병사와 장교의 질서는 매우 수직적이고 확실히 상명하복 원리를 따라갑니다. 그런데 장교들끼리의 관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컨데 어느 함선을 맡는 함장이 있다고 상상해봅시다. 함장의 직급도 맡고있는 함선의 배수량과 승조원 규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작은 구축함의 함장은 비교적 지위가 낮은 편이고, 전함이나 항공모함처럼 전략적 가치가 매우 큰 함선의 함장은 자연스럽게 위상이 높아지겠죠.




 그러나 해군 참모총장, 장관같은 높은 사람이 작은 구축함에 탑승했다고 해서 그 함선의 함장을 막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해당 함선에 승선하는 순간 계급이 높더라도 함장의 명령과 지도를 존중해야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단순히 높은 계급의 장교가 승선한다고 해서 모든 권한이 높으신 분한테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러한 전통과 분위기의 명확한 근거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해상의 특수성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전에 칼럼에서 설명한대로 함선은 각각이 하나의 크고작은 조직체이며, 확고한 질서가 모두의 생명을 책임집니다. 그리고 함장은 많은 승조원의 생명을 책임지는 리더로서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습니다.




 어느 함선이 새로운 부대에 편성된다면, 아무리 작은 함선이더라도 따로 떨어지고 분리되서 편제될 수 없겠죠. 그 함선이 통째로 항상 움직이는 것이기에, 함선 하나를 책임지고 이끄는 함장이라는 개념이 필요한 것으로 추측합니다. 보통 뛰어났던 함장들은 승조원의 존경과 신뢰를 받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해군은 이렇게 각 함선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함장의 권한이 큰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적으로 훨씬 규모도 작고 승조원도 두자릿수를 넘어갈 수 없는 전차의 경우, 전차장이 최고책임자이긴 하나 그 권한이 함장에 비해서 작습니다. 함선에 비해서 전차는 한대 한대가 조직의 일부로서 전체 부대의 지휘권에 더 크게 영향받습니다.


 




(얼마전 코로나 문제를 언론에 공개했다가 수뇌부의 미움을 받아 경질된 미 핵항모 함장 크로지어는 항공모함의 승조원을 책임지는 입장으로서 자신의 소신을 다했으며 경질 처분에 대해서도 분분하게 의견이 갈립니다. 승조원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막강한 권한을 자유롭게 행사했다는 부분에서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는 평가가 많으며, 승조원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09/2020040903655.html )








 이렇듯 전문직종들은 자신의 권한 내에서 자유로운 행동을 할 권리를 인정받습니다. 보통 우리가 보는 상명하복식, 위계질서를 가진 조직과 다소 분위기가 다르죠. 재밌게도 이러한 전문직종의 특성은 오늘날 다양한 직업에서도 양상이 관찰됩니다.




 고려대 허태균 심리학교수의 에서는 자기결정권을 위임받은 직원과 그렇지 못한 직원의 업무 능률을 비교해서 설명했습니다. 가끔 회사에서 유명인을 초청해 강의를 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초청하는 자유를 가진 직원은 매우 적극적으로 업무에 몰입하여 초청을 성사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심지어 강의료를 살짝 올리는 방법까지 동원하며 최대한 협상을 성사시키려는 태도를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기결정권이 결여된 채, 단순히 어떤 사람이 어느 날에 강연이 가능한지 기계적으로 확인하고 상사에게 보고하는 일만 해야하는 직원은 소극적이며 수동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허태균 교수 또한 소극적으로 반응하게되고, 결국 강연이 성사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해당 서적에서는 인간에게 '자기결정권과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줍니다. 자신에게 큰 권한이 부여된 직원은 자신의 취미나 흥미에 따라 성공을 위해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는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 덕에 해당 직원의 업무 성공률은 높아졌다고 합니다.




 이런 분위기는 현재 전문직종뿐만 아니라 다양한 직업에 퍼지고 있습니다. 게임의 운영자를 하더라도, 요즘은 자신의 경험과 개성에 따라 새롭게 유저들을 위한 컨텐츠를 스스로 고민해서 자유롭게 활동하기도 합니다. 게임업계건 스타트 기업이건 이렇게 각자가 자신의 업무에 전문가적인 태도를 가져야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이 국가별로 이러한 문화에 대한 차이가 보이기도 합니다. 보통의 한국인들은 자신의 업무에 대해서 자율성을 위임받기를 바라며, 맡겨만 주면 신이 난다고 합니다. 수동적인 존재에 머무르게 되는 경우에는 몰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반대로 일본의 경우에는, 상명하복과 위계질서가 매우 명확하여 개인이 자율성을 가지는 것보다, 수동적으로 수행하는 역할을 더 선호한다고 합니다. 일본인 직원에게 업무를 분담할때는 아주 명확하고 뚜렷하게, 구체적으로 지시를 해야한다고 합니다. "저 책상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닦아라"는 식의 명료하고 구체적인 지시를 따르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합니다. 만약 한국인 직원에게 그런 식으로 업무를 지시하면 무슨 대답이 날라올지 여러분도 대충 상상이 갈 껍니다.




 비슷하게 이면우 산업공학과 교수는 에서 한국과 일본의 국민성 차이를 '사냥개'와 '사역견'에 비유했습니다. 둘 다 같은 개이고 주인을 도와주는 역할이지만, 사냥개는 자신에게 일정한 자유가 위임되었고 사역견은 주인의 구체적인 지시에 충실하게 따라가는 특징을 보여주죠. 한국인들이 보통 전문직종을 선호하는 것이 단순히 보상때문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이러한 자유에 대한 열망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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