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비, 그리고 유대종이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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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여름이었던걸로 기억납니다. 당시 저는 27살, 오랫동안 만난 여자친구와의 실연을 조금씩 극복해가고 있는 중이었고, 먼저 떠나보낸 아이의 가슴 아픈 뒷모습을 잊기 위해, 20대 초반부터 지속되어온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사정없이 발버둥치던 때였습니다.
보습학원에서 무료로 수업을 하며 아이들과 함께 미래를 그리고 있던 어느날, 수업을 듣던 한 친구가 제게 오르비를 소개해준게 시작이었습니다. 제 머릿속의 오르비는 상위권들의 커뮤니티 정도로만 인식되던 곳이었는데, 그 친구 말이 오르비가 '클래스'를 런칭하여 인강사업을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물었고, 다시 돌아온 대답은, 선생님께서 조금은 더 큰 곳에서 많은 아이들을 향해 수업을 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과 비슷한 또래의 강사들이 그곳에서 고군분투 하고 있다면서 말이지요.
당시 MOVE는 클래스를 런칭하여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던 회사였습니다. 입시 상황 역시도 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입시의 절대 강자였던 영어와 수학을 넘어 국어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 해 시행되었던 6월 모의평가(17학년도 6월)가 그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이지요. 이에 덧붙여 오르비에서 큰 회사로 한 젊은 강사가 이적을 하여 '젊은 강사'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할 무렵이기도 했습니다.
여러 변화의 흐름이 강사로서의 저를 여기까지 끌고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지요.
그때 당시에 받았던 메일을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오르비로부터 받은 첫 메일입니다. 당시 저는 기출문제들을 출력해서 수업을 했던 터라, 교재가 따로 없었습니다. 어찌할 줄 몰라 수험생 때 들었던 선생님들의 교재를 적당히 짜깁기하여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훌륭한 임기응변(?)이었는지 2주가 지나 회사와의 면담 일정이 잡혔습니다.
그 후로 모든게 일사천리였습니다. 난생처음 스튜디오를 갔고, 난생처음 카메라 앞에 섰으며, 난생처음 대치동으로 무대를 옮기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행된 9월 모의평가 해설강의를 15시간씩 찍으며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대한민국에서 그렇게 긴 시간 해설강의를 진행한 것은 제가 처음이었다더군요. '심찬우'라는 이름이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해 첫 단과를 개설하게되었으며, 교재를 만들게 되었고, 강사로서의 위상을 높여갔던 그 모든 과정들이 말입니다.
보습학원에서 출발하여 재종, 단과, 인강의 순서로 가던 기존의 과정이 아닌, 역순으로 진행된 제 인생의 2막은 그렇게 불현듯 시작된 것입니다.
허나 돈도 없고, 인맥도 없고, 더더군다나 명문대가 장악하고 있는 학원판에서 비아냥과 멸시의 대상이 되는 명지대라는 학벌을 가지고 있었던 제가 대치동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었을까요. 첫 단과는 운좋게 성공했지만, 해설강의가 나름 파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해에 개설된 단과 강의는 모두 폐강되고 딱 하나의 강좌만 개설되었습니다. 첫날 수업을 갔더니 여학생 한명이 앉아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다음주에 폐강되었습니다. 그 친구가 혼자 수업을 듣는 것이 부담이 된다며 환불을 했더군요. 저는 어찌해야할 줄 몰랐습니다. 환불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저를 더 당황하게 했던 것은 학원의 문화와 관계자들의 태도였습니다. 제가 인사를 해도 본척 만척하던 사람들이 유명 강사분이 학원에 오니, 잽싸게 달려나가 그분의 가방을 들어주는 모습이라든지, 젊은 놈이 맨날 이상주의적인 소리만 한다고 훈계를 한다든지, 실모를 쓰려고 했더니 쓰지말라며 같은 과목의 한 강사가 회사에 압력을 넣는다든지, 어떤 학원에는 출강을 못하게 막는다든지 등등 온, 오프 관계없이 들어오는 수많은 공격들에 정신을 못차릴 정도였습니다.
학생들 앞에서는 온갖 좋은 말로 떠들며 학생들을 위하는 척 했던 강사들이, 자본의 논리 앞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잔혹한 인간의 모습을 보이고, 학원 관계자들은 거기에 편승하여 그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이 형국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학생 수가 곧 권력'이라는 학원판의 생리를 처음으로 인지하게 된 순간이었죠.
그동안 내가 달려온 시간들은 학교 선생님이 되겠다는 순수한 열망만을 가지고 시작한 것이었는데, 무대가 학원으로 바뀌면서 오는 무자비한 괴리감을 견디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전 그때 모든 것을 그만두어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제대로 시작한게 없으니, 내 손으로 끝내는 것 역시 크게 부담이 없었던 것이지요. 그때가 오르비에 런칭한지 1년째 되는 해로, 28살 때의 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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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정리를 하고 있을 때쯤 '유대종'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사실 유대종 선생은 그 전에 한번 밥을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오르비에 들어온 첫 해에 제가 쪽지를 보내서 만났습니다. 그때 만나 한번의 통성명은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사적 교류를 하던 사람이 아니었죠. 그때도 뚱뚱했습니다.
학원과 관계된 모든 것들에 염세적 감정을 가지고 있던 저는, 욱한 마음에 수화기 너머로 온갖 욕설을 내뱉었습니다. 내가 짧은 시간이지만 느꼈던 학원과 강사들의 추악스러움에 경악한다며 두번 다시 나한테 전화하지 말라고 일침을 놓고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다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지금도 선명하게 감지되는 것은, 그가 무슨 이유에선지 저를 계속해서 설득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얘기도 듣지 않고 욕만 해대는 저를 진정시키며 들어주고 이해하려고 하는 그 사람의 태도를 저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꽤 오랜 시간 대화를 하고 전화를 끊으려 할 때 그가 마지막으로 했던 얘기는 이랬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이 학원판에 남아주었으면 좋겠다"
"무슨 소리. 나는 별 미련이 없는 사람이오. 당신같은 종자들과 달라"
지금 생각하니 좀 아찔합니다. 서로 -씨, -씨 하던 사이에 오가기에는 적절하지 못한 말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 씨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강남에 집을 하나 잡아주겠다는 것이었죠. 저는 그때 강북에서 친형과 함께 살며, 오르비 촬영이 있을 때면 지하철을 타고 오거나, 근처 사우나에서 잠을 자곤 했었습니다. 씨는 아무런 대꾸 없이 본인 명의로 집 하나를 계약하여 제가 머물 수 있는 곳을 마련해주었습니다. 집을 마련하는데 들어간 돈은 차근차근 갚으라면서 말이죠.
강북에서 짐을 챙겨 이삿짐 트럭을 타고 내려오던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알 수 없는 감정들에 혼란스러웠습니다. 잘은 모르겠는데, 이 바닥에서 느껴보지 못한 낯선 감정들이었습니다. 가관이랄까, 기관이랄까. 새로 지은 건물에 깨끗하게 정돈된 방에서 짐을 풀고 있자니 괜스레 그에게 미안하기도 했었죠.
강남에 살기 시작하면서 그는 꽤 여러번, 자주, 저를 본인의 연구소로 불렀습니다. 제가 밥을 잘 못챙겨먹고 다니는 것을 알았는지 매일같이 밥을 사줬습니다. 지금 살이 찌게 된 모든 원흉이 그 사람 때문입니다.
어느날 그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수업 준비는 어디서 하세요?"
"그냥 집에서 하는데요"
"그럼 그냥 저희 연구소에서 하시죠"
그는 후에 선뜻 연구소 내(內) 자신이 쓰던 큰 방을 제게 내주고, 본인은 밖에서 수업 준비를 했습니다. 이후 제가 조교들이 생겼을 때는 회의실 사용도 마음껏 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그 후 러셀에 들어가 '처음으로' 100명이 넘는 강의를 하게 되었을 때는 저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본인의 수강생도 아닌, 제 수강생들에게 본인이 직접 사비로 아이스크림을 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제가 힘들 때면 친히 본인의 시간을 내서 씨는 잘 먹지도 못하는 술잔을 기울여준 적도 여러번이었죠.
저는 그렇게 그와 친해졌고, 호형호제 하며 제 앞가림을 할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갔습니다. 시간이 지나 제가 어느 정도 돈을 모아 연구소 샛방살이(?)를 정리해서 나갈 때, 그가 어깨를 두드리며 얘기하더군요.
"이제는 극복해볼 수 있지?"라고.
그로부터 햇수로 5년의 시간이 흘러 저는 지금의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이제 오르비의 끝자락에서 유대종 선생을 처음 만났을 때, 그때 그분의 나이가 되어 이 글을 쓰고 있네요.
태생이 부족한 사람이었기에 부단히 노력하고 애를 썼습니다만, 그럼에도 부족한 것이 많았기에 많은 질책도 받고 또 경우에 따라 과분한 사랑을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풋내기가 오르비에서 치열하게 강의하고 또 많은 아이들을 만나며 저 역시도 처음보다는 꽤 많은 성장을 이루어내게 된 것 같습니다.
갑자기 이 글을 왜 쓰게 되었는가. 종강 이후 그동안 온전히 돌아보지 못했던 삶을 돌아보며, 숨고르기를 하던 중 20대 중, 후반의 내 인생을 바꿔준 두가지를 압축해보니 오르비와 유대종이라는 단어가 도출되었습니다.
저 두 단어가 저를 여기까지 오게 한 가장 큰 계기고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오르비는 제 인생에서 엄청난 전환점을 마련해준 곳입니다. 저에게 오르비는 학교였고, 강사로서의 저를 만들어준 곳이며, 제가 푸른 숨을 쉴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해준 곳입니다. 친구 한명 없는 이 냉혹한 현실 속에서 수많은 친구들을 만들 수 있게 해준 곳이기도 하고요.
아마 16년 여름의 저 메일을 받지 못했다면, 저는 이 자리까지 절대 올 수 없었을 겁니다. 회사와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스스로 돌아봤을 때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광복님과 환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유대종이라는 사람은 저에게 갚을 수 없는 기회와 전환점을 마련해준, 어쩌면 제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에 가장 결정적인 사람으로 저에게 남아있습니다. 그가 그 당시, 저에게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포기하고 싶어질 때면 그때 새벽에 걸려온 그 전화를 기억하곤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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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수능이 끝나고 나서, 저는 앞으로의 제 삶을 어떻게 설계해야할지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는 중입니다. 내년을 위한 준비도 준비지만, 그보다는 조금은 더 근원적인 고민 앞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저를 비롯한 수많은 강사들에게 쏟아지는 감사 인사들을 보며 결국 누구의 수업을 듣든 성적을 올리는데는 크게 상관이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노력만하면 모든 것들이 이루어질 거라는 순진한 믿음이 있었지만, 막상 학생들의 결과를 보며 그것이 필연성을 띄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정말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은 학생들도 보았고, 운이 좋아 노력에 비해 물론 그 노력을 지근거리에서 온전히 본 것은 아니지만 좋은 결과를 내는 학생들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제가 가지게 된 의문은 이것입니다. 수능이라는 시험은 그 학생의 노력과 실력을 온전히 측정할 수 있는 시험인가. 도대체 무엇을 아이들로부터 측정하려고 하는 것일까. 최선의 시험이 아니라면 차선으로서 이 제도를 이해해야하는가. 그러면 나라는 강사는, 내 수업을 들으면 반드시 1등급을 또는 만점을 받게 해준다고 당당히 얘기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대학, 성적, 과정 중 어떤 것을 보고 강단에 서야하는 것일까.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 것일까. 아이들에게 시험의 요령과 그에 필요한 적절한 지식들을 흥정하며 내 통장 잔고를 늘려가는 것이 맞는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인가를 제시하고 그에 따라 학생들을 끝까지 설득해야하는가. 세상을 바꾸겠다는 그 알량한 믿음을 아직도 믿고 있다면, 무엇을 가르쳐야하고, 그들에게 어른으로서 어떤 비젼을 보여야할 것인가 등에 대해서 말이지요.
강사로서 고민해야하는 강의와 컨텐츠는 그가 가르치는 과목과 직결되어야 함이 틀림없지만, 어쩌면 그 조차도 오랜 시간 이 사회를, 이 문화를 지배해온 관성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오직 대학 진학에 포커스를 맞춘 강사 본연의 목적, 그 조차도 기존에 만들어진 생각들이긴 하지만,에는 부합하겠지만, 변화하는 시대에 그것이 정말로 유의미한 것이 맞는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형태의 강의와 컨텐츠, 그것은 비단 입시 과목과 직결되는 것에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와 관련해서 여러분들께 새로운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로 말이지요.
아이들의 근원적인 무언가를 일깨우고, 결핍을 충족시키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바꿀 수 있는 무엇인가를요.
이와 관련해서는 고민이 마무리 될 때쯤, 제 생각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같이 공유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곧 저희 유튜브에서 말씀 드릴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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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이래저래 메모해놨던 단상들을 그냥 끄적여보자 하고 시작했던 것들이 이렇게 길어져버리고 말았네요. 한 자리에 모아놓고 보니 참으로 별볼일 없고, 두서없는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럼에도 이해해주실거라 믿습니다.
사실 이제 작별인사를 할 때가 된 것 같아, 괜한 마음에 또 길게 글을 쓰게 된 것 같습니다. 아마 이 글이 제 이름으로 오르비에 쓰는 마지막 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원래는 수능을 끝낸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썼다가, 그냥 제 이야기와 끄적여놨던 단상들을 나열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어서 지우고 다시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오르비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오르비에 계신 많은 학생, 관계자분들께 이 글을 빌어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저를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유대종 선생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외로웠던 열십자 한복판의 갈림길에서 제 첫번째 팬이 되어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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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도 뚱뚱했습니다"
십ㅋㅅㅋㅅㅋㅅㅋㅅㅋㄱㅋㄱㅋㄱㅋㄱ
존경이라는 말을 달면, 어쩌면 싫어하실 테지만, 오르비에 남기시는 마지막 글이기에 존경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 해 수능의 만족스럽지 않은 성과에도 제 삶을 찾아나선 것은 누가 뭐라해도 선생님의 영향이 가장 컸습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대학이라는 별에 다다르고 난 후 제가 느낄 공허함과 무력함을 미리 생각해보게 해주신 것도 선생님이고, 수능이 끝난 후 창창히 빛나는 저만의 별을 찾게 해주신 것도 선생님입니다.
비단 수능 이후가 아니더라도, 18년 봄, 대학 축제를 즐기는 친구의 연락을 애써 무시하며 조용하고 무거운 자습실의 그 공기 아래에 눌려 공부하던 저를 버티게 해준 것도, 수업 때마다 역설하시던 '불편한 생각'들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수업은 항상 저를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그 불편한 생각들이 없었더라면 수능이 끝나고 마주한 그 두려움도, 대학에 진학하고 당장 마주한 현실의 압박감도, 이겨내기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 선생님의 수강후기에 남겼던 그 말처럼, 공장 속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만났던 '외딴 방'의 그녀처럼, 그 해 겨울에 마주한 선생님은 저에게 첫 '어른'이셨습니다. 아무도 해주지 않았던 말들을 던져주셨으니까요.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시든, 어떤 길을 나아가시든,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앞으로의 삶도 응원합니다 선생님 괜시리 아쉽네요
감동...
너무 감동적이에요. ㅜㅜ
유튜브 기대하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고생많으셨습니다.
선생님의 강의를 직접 수강하거나 직접 만나뵌 적은 없어도 '찬우가 보내는 0번째 편지'를 아침마다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뭔가 가까운 어른이 해주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때 자주 올려주시던 편지처럼요.
오르비에서 더 이상 뵙지 못하는 건 아쉽습니다만, 아무쪼록 앞으로 잘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강단이든 교단이든 혹은 또 다른 자리이든 선생님이 계신 곳에서 신념에 따라 나아가시길 바라겠습니다!
-윾대종의 충신 딱따구리 올림
감동에 차 있었을때 보고 말았다.. '그때도 뚱뚱했습니다'...
와 근데 대종이형 ㄹㅇ 사람이 멋있다...
선생님, 작년, 올해 2년을 들었던 수강생입니다..
힘들고 암울했던 고3과 재수의 기간동안 매주 한번씩 여러 인생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해주시기도 하고 또 미리 예습해갔던 내용들을 선생님께 인정받는 시간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3시간 동안에는 온전히 수업에 몰입해 선생님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빠져들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즐거운 수업이었습니다.
고3 종강때 해주셨던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세상의 중심은 어디인가?" 아직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기억하며 마음속에 새기고 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롬곡줄줄
진짜... 두 분의 삶이 너무 멋있네요. 요즘 부동산이 폭등해서 조금 우울했었는데... 세파를 이겨낼 의지를 얻고 갑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세 줄 요약 좀
와 글 진짜 잘쓴다 진짜 글이 술술읽히네
두 분 다 앞으로도 잘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유대종 선생님이야말로 다른 어떤 사람보다 “선생”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ㅠㅠ
그간 오르비, 강의, 공감콘서트...를 통해 선생님이 전해주신 말씀이 앞으로 경험하게 될 사회의 무자비함, 냉혹함을 견디게.. 또 누군가는 바꿔나갈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항상 말씀하시던 '어려운 얘기'를 듣는 게 참 좋았습니다. 던져주신 단초들을 곱씹어 보게 되는 그 시간이 힘들고 어렵기도 했지만 행복했었습니다.
저 또한 선생님의 영향으로 저만의 광장을 찾아 나서는 첫걸음을 만들었습니다.
심멘에겐 그 새벽 통화가 저희에겐 종강편지와 같은 것처럼...
선생님의 결정, 신념 항상 응원합니다.
앞으로도 온라인으로 자주 뵙긴 어렵겠지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ㅎㅎ
고민하시는 생각의 결과 또한 천천히 기다리겠습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행복전도사님도 행복하세요..ㅋㅋ 감사합니다.
2016년 여름 어느날 새벽 선생님께서 (아마 오르비 채팅방이었던 것 같네요) "오르비 계약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했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 납니다.
4년 전에도 이렇게 감동의 쪽지를 보내주셨던 기억이 나고.. 츤데레처럼 일년 한두 번씩 응원의 카톡을 보내주시는 것도 감동이었네요 ㅎㅎ
비슷한 나이 비슷한 시기에 오르비에서 활동을 시작해 또 비슷한 시기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으니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저와 같은 강사나부랭이보다 높은 차원의 고민을 하시는 모습을 보며 경외감을 느낍니다.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선생님 유튜브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당신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
ㄹㅇ 인성이 보다 중요시되는 시대가 왔으면...
+월선헌십육경좌. 어차피 1년있으면 물갈이되는 학원판이라고 지금도 뻔뻔하게 가르치는거보면 책임감이라는게 과연 있는건지 궁금함
큰 울림을 주는 글과 리플이네요.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 인생에 있어서 오래시간 굉장히 고민되던 한가지 길을 어떻게 가야할지 결심했습니다.
너무 많은것을 품어서 커다래진 배..
서초매가때 주셨던 윤동주 시집 요즘 잘 읽고 있습니다 요즘 대학생활을 하면서 보니까 또 느낌이 다르네요
진짜 인생 행복하게 사시는 분이셨네
멋지다 정말정말
서메에서 2년 배운 학생입니다
다른 수업은 안들어도 샘 수업은 다 들었었네요ㅋㅋ 항상 좋은 말씀 해주셨어요.
수능에서 좋은 결과 낸 사람은 그 짐을 지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했어요
영화보다 영화같네
쌤 이제 인강 안 하시나요?
네. 현장수업만 올해부터 하시는걸로 알아요.
심찬우 선생님과 유대종 선생님 어디에서 무얼 하시든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수업때 얘기하셨던 토론 수업에 관한건가요...!
너무너무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심찬우 선생님께서 어디서 무엇을 하시든 응원하겠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
그저 심멘......
심씨는 선생이다. 아아 심씨는 선생이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무엇인가를 하나의 결정으로 만들어 다음 세대로 넘겨주는 것. 그것이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그런 점에서 제게 선생님은, 선생님으로 충분하고 넘치도록 불릴 수 있는 분입니다. 하지만 심찬우라는 인물을 특별히 만드는 것은-비록 단편적인 모습일지 모르지만-강단에 서서 아이들에게 본인의 혹은 미래의 아이들의 삶의 궤적을 알려주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선생님은 '어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입시판에서 학생을 단순히 돈으로 엮어 있는 관계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토양에 걸맞는 나무로 성장하게끔 도와주는 분이라는 점에서 선생님을 따르고,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선생님을 롤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방향대로 제 롤모델을 바라보며 걸어가보려 합니다. 선생님!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선생님께서 행복을 찾으시면 좋겠네요. 그다지 먼 곳에 있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늘 응원합니다 :) p.s)시니,혀노 작가의 '죽음의 관하여'라는 책을 추천드립니다. 제가 감히 좋은 책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고, 내적 성숙을 위해 참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작년 러셀기숙D반에서선생님수업들엇던학생입니다.현역19수능때 국어백분위41 ,6등급에가까운5등급을받고 국어라는과목에흥미도없고 공부해도별로오르지도않겟지라는생각에사로잡혀잇던 저에게 선생님수업은 정말큰충격이엇습니다. 일주일에한번잇는선생님이수업이기다려지게되엇고 국어라는과목자체에흥미가생기고 활자를읽는것자체에 재미가생기게되엇습니다.그렇게하루하루 꾸준히 작년수능에서3등급중반,아쉬워서 한번더본올해수능2등급을받으며 현역때에 비하면 많은점수가오르게 되엇습니다.
위의이야기모두작년쌤의수업때 들은이야기지만 이런곳에서 다시보니또새롭네요 ㅎㅎ 이자리를통해 정말감사햇다고전하고싶습니다!!
빛대종♡빛찬우 forever...
배처럼 머리만 풍성하면 완벽하신 대종T...
제가 오르비를 처음 들어오고 나서 제일 잘한 일은 선생님의 오티를 클릭한거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국어라는 과목에 회의감을 크게 느낄 때 였는데 첫 강의를 듣는 순간 그 충격은 잊을 수 없네요.. 선생님이 국어를 가르치는 방향도 마음에 들었지만 '주체성'을 잃지마라는 덕담 한마디가 머리에 꽂힐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죠ㅎㅎ
그러다가 선생님을 직접 현강에 가서 보는 날도 생기고 수업 끝나고 저한테 다가오시더니 열심히 듣는다고 한마디 해주시고 포옹 한번 하는 날이 있었는데 수능생활에 있어서 그날 만큼은 정말 행복했네요. 나중에 수험생활 끝나면 선생님이랑 술 한잔 마시면서 얘기해보고 싶었는데 뭐..언젠가는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네요:)
어쩌다보니 서두가 너무 길었는데 선생님한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선생님이 학생들 앞에서 분필을 딱 잡았을 때 손이 떨리는 그 날이 다시 찾아오길 빌면서 행복하셨으면합니다..
선생님 너무너무 존경합니다 7월부터 커리를 타긴 했지만 반년동안 단순한 수업이 아니라 인생을 배운것 같았습니다 태어나서 단한번도 롤모델,좌우명을 가져본적 없었는데 선생님이 제 첫 롤모델이에요 좌우명도 선생님 덕분에 생겼습니다 심찬우선생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혹시 재수하게 되면 현강갈게요 ❤️
수능이 끝나서 말씀드리는거지만... 선생님께서 강사덕질 같은건 도움안된다고, 그런거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도저히 못참겠더라고요.. 숨어서 정말 열심히 덕질했습니다
수능 탐구 끝나고서 선생님이 주신 편지 읽고 가슴이 웅장해졌습니다. 심천지의 일원으로서 1년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최고의 시간이자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월이자 의심의 세월이었다.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앞에 모든 것이 있으면서 앞에 아무 것도 없었다.
천국을 향해 가고 있으면서도 반대 방향으로도 가고 있었다.
-<두 도시의 이야기>,찰스 디킨스
군의 입학이 유독 축복받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조금 생각해 보기로 하자. 군의 입학이란 한갓 우연성의 일종이라 볼 수 없겠는가. 군보다 머리 좋지 않은 자, 이 세상에 혹시라도 있었을까. 어림도 없는 일이다. 당초부터 단추 구멍 뚫는 데로 간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우연히도 군은 밥술이나 먹는 집에서 태어났고, 그 때문에 혹은 고액의 과외도 또는 재수도 할 수 있었고, 혹은 튼튼한 근육과 맑은 귀를 유지할 수 있지 않았던가. 밥 잘 먹었느냐, 잘 잤느냐, 내복 입었느냐, 공부했느냐고 묻는 보살핌 속에 군이 놓여 있지 않았을까. 심지어 기르는 강아지조차도 군의 안색을 살피는 그런 곳에서 군은 살았다. 무슨 대학을 가야 된다든가, 무엇을 전공해야 된다는 것도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갈 데 없는 돼지였다.
군이 돼지 또는 노예였음이란 물론 군의 잘못이 아니리라. 군이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닌 까닭이다. 군은 다만 태어나졌을 따름, 던져진 존재(Geworfenheit)였던 것. 어디에 던져졌던가.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 아니겠는가. 거기 군은 혼자 던져졌고 따라서 불안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또한 무서움에 오돌오돌 떨지 않으면 안 되었다. 혼자 있음(Einsamkeit), 불안(Angst), 무서움(Furcht), 이 삼각형 도식이 군의 본래의 모습이었다. 이 조건을 철저히 은폐시킨 자 누구였던가, 다름 아닌 지금까지의 군을 에워싼 아비, 어미이고, 환경이었다. 군을 노예로 만들기 위해 그들은, 아마도 사랑이란 위선의 이름으로 그렇게 했던 것이리라.
그러나 어느 순간 군은 마침내 운명의 순간에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계기에 직면하게 된다. 그들의 간교한 전략을 간파하는 순간이 오고 만다. 그 계기란 도처에서 예감처럼 온다. 군이 창공의 별을 응시할 때 온다. 헤겔을 읽을 때 온다. '무진기행'을 읽을 때 온다. 릴케를 읽을 때 온다. '태백산맥'을 읽을 때 온다. 들판에 외로이 핀 이름없는 꽃을 볼 때 온다. 가차 없이 오되 예감처럼 온다.
어떤 사회적 조건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나' 자신의 세상에서의 있음의 의미란 무엇인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인가. 어떤 방향성도 해답도 없음을 서서히 군은 알아차릴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다. 지금 여기 '나'가 있다는 것. 이것만은 절대 의심할 수 없다. 여기 '나'가 있되, 혼자 있다는 것. 불안하다는 것. 무섭다는 것. 이 엄청난 짐을 지고 있다는 것.
이 짐은 아무도 벗어날 수 없다. 차라리 의무라 불러야 마땅하리라. 의무는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다. 의무니까. 이 의무를 수행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있다. 권리가 그것. 혼자 있음으로 말미암아 감당해야 할 불안과 공포를 대가로 하여 비로소 얻어진 권리, 이를 두고 자유(Freiheit)라 부를 것이다. 자유이되, 무한한 자유가 아닐 수 없는데 그것은 던져진 존재로서의 그 의무의 철저함에 정비례하는 것, 이를 결단 또는 계획(Entwurf)이라 부를 것이다. '나'는 무엇이며,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그 아무도 궁극적으로는 관여할 수 없기에 그 계획은 저주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의무 그것만큼 권리의 처절함이 아득히 펼쳐져 않겠는가. 돼지에서 벗어나 이 저주스런 자유인으로 변신하는 장대한 장면의 입구에 작은 팻말이 하나 서 있지 않겠는가. 거기적힌 글씨를 군은 이제 똑똑히 읽을 수 있으리라. '대학'이란 두 글자가 그것.
군은 아는가. 훔볼트가 세운 저 베를린 대학 창립이념을. '혼자 있음'과 '자유'로 그 이념이 요약되어 있음을. 대학의 주체는 학생(시설 이용자)도 건물도 아님을. 이념 그것이 이곳의 주체임을. '살아 있는 정신'이라 부르는 이 자유 앞에 군은 지금 서 있다. 군의 입학이 축복받아야 될 이유가 혹시 있다면 바로 이 장면에서이리라.
-살아 있는 정신에게 - 자유인의 표상에 부쳐,김윤식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음에 감사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우리들의 앞 날을 응원하셨듯이 저희 또한 선생님의 앞 날을 더 응원하겠습니다.
그리고 심찬우 선생님에게 많은 기회를 주셨던 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심찬우 선생님과 '정도'를 함께 걸어온 '2020년'이 행복했습니다.
'사유'할 수 있는 생각의 체력을 끌어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이 규정한 ‘잘못된 길’, ‘실패’라는 딱지에 굴복하지 않는 것과
우리네 삶은 누군가에 의해서 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운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더 크게, 넓게 보며
나의 이기적인 '밀실'에서 벗어나 드넓은 '광장'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선생님도 행복해지세요!!
파이팅..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길
선생님 주예지쌤 관련글도 그렇고 이글도 그렇고 필력 진짜 너무 좋으신듯
내 세계 단 한 어른
"실모를 쓰려고 했더니 쓰지말라며 같은 과목의 한 강사가 회사에 압력을 넣는다든지, 어떤 학원에는 출강을 못하게 막는다든지" 이 강사 누구냐 설마 대치동 운운하면서 학생들한테 온갖 착한척 다 하는 그 강사는 아니겠지?
이번으로써 수능이 3번째인 학생입니다. 수능이 끝나고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dm을 보내면서 짧은 2~3개월동안 1.0배속으로 긴 러닝 타임을 다 소화했다고 생각한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오늘 이 글을 보면서도 제가 삼반수를 시작할려고 했을 때 오르비에 댓글 단 과거의 모습을 보며 어리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수능이 끝난 지금도 아직 많이 사회에 부딪혀보지 않은 현재의 저도 좁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보며 이제 저도 모르게 책을 대출하여 보게 되었고 뿐만 아니라 글을 읽을 때 모르는 어휘가 있으면 핸드폰으로 찾아보는 습관까지 생겼습니다(염세적,흥정하다,단상 어휘를 몰라 저절로 네이버키고 찾아보게 되더군요 ;) 짧은 시간 저는 결과보다 세상을 넓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신 심찬우 선생님께 이 자리 빌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많은 고민이 해결 될 수 있도록 저 또한 같이 생각하고 고민해보고 공감하는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ㅎㅎ
선생니임,,,보고시퍼여,,,16년 여름부터 수능전날까지도 용기 주셨던게 넘나 생각나요ㅠㅠㅠㅠㅠ뭐 절 기억하실지는 모르겠지만 두고두고 생각나는 분이셔요... 갑자기 생각나서 휴먼해제까지하고 오르비 찾아왔어용ㅋㅋㅋㅋ승승장구하시는 쌤 모습 뵙고 그러니까 너무 행벅하고,,,~~저는 제자리에서 맡은일 다하고 있겠습니다 쌤 화이팅ㅎㅎ
선생님, 항상 피하기만 해서 죄송해요. 조금 여유를 되찾고서, 제가 먼저 다시 연락 드려도 될까요? 아 수능은 생각만큼 망하진 않았어요. 제 기준에서는요 ㅎㅎ,,
단과 2년을 들으면서 특히 올해 수업은 선생님으로부터 멘탈이 많이 망가지면서도 .. 선생님 덕분에, 스스로에 대한 거짓됨을 반성하고 현역 때와는 다른 성찰을 했어요. 제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을 정말 많이 갖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선생님께 실망을 안겨드렸던 때도 있던 것 같고, 저의 이기심만을 생각했던 때도 있던 것 같아요. 다 받아주시고 조언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을 항상 지니고 있어요. 그리고 정직하게 살겠습니다.
선생님이 꼭 행복해지길 바래요
심ㅡㅡ멘
아...안돼... 온라인으로 돌아와....
김소월 길..크..
선생님 말씀처럼 항상 세상의 중심을 향해 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 이겨내야할 일들이 많음을 느낍니다.
항상 마음 속에 감사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국어 성적과 같은 결과 때문이 아니라
과정의 소중함을 알려주셔서
올바르게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셔서
어렵고 아픈 삶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파도파도 미담만 나오는 그는 대체...
선생님의 글로 저때의 선생님을 만나본 것 같아 재밌네요. 가끔씩 보러 오겠습니다 !
지금봤는데 저같으면 당신같은 종자랑달라!
했을때 욱했을거같은데
유대종쌤의 포용력에감탄하고
찬우쌤의 필력과 일대기에 감탄하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