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TTACA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70947705

세기 말의 풍경은 여러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해보셨겠지만, 다음 세기에 만나게 될 세상에 대한 여러 추측과 상상들로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제 초등학교 시절이 그랬습니다. 그땐 97년 외환위기로 그늘 진 세상이었지만 그래도 조금씩 희망과 긍지를 가지고 나아가던 시절이었고, 판문점을 지나는 기나긴 소 떼 행렬을 티브이로 바라보며 저렇게 돈 많은 할아버지가 우리나라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미술 시간에 툭하면 날아다니는 자동차와 어머니 대신 집안일을 하는 로봇을 그리기만 하던 철없던 그 시절에 저는 우연히도 GATTACA(1998)를 만났습니다.
한국에서는 '가타카'라는 이름으로 개봉을 했던 이 영화를 소개해준건, 다름 아닌 당시 영어를 가르쳐주시던 젊은 여선생님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일반적인 선생님들과 다르게 수업하시는 걸로 당시 학교에서 유명했던 분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저는 쥬라기 공원처럼 공룡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스타워즈처럼 광선검 싸움을 하는 것도 아닌, 따분하고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이 영화를 왜 우리에게 소개해주셨는지 도통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날 수업도 뒤로 한 채 종일 영화를 시청하게 했고, 이후 종이를 나눠주고 느낀점을 써보라고 하셨습니다. 기억이 나는 장면은 예쁘게 생긴 누나와 휠체어를 타는 잘생긴 아저씨가 우주로 가는, 나중에 다시 보니 그런 내용이 전혀 아니었지만, 내용 뿐이었는데도 말이죠.
선생님은 우리가 낸 감상문을 다 읽어보고 나서 말했습니다.
"빈센트는 왜 포기하지 않았던걸까?"
교실에는 정적이 흘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도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우물쭈물하고 있는 우리들을 보며 선생님은 몇 달 전 남자친구와 영화를 보고 나온 자신만의 소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적자가 되기 위해 한 없이 노력했던 스스로가 너무나도 부끄러운 새벽이었다"
이십여년이 흘렀는데도 그 말씀이 잊히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누군가의 흘리듯 지나가는 말조차도 오랫동안 기억하고 곱씹어 보는 편이었는데, 션티는 이런 저를 두고 매번 뒤끝 있는 놈이라고 놀리지만, 그 중에서도 선생님의 말씀은 특히 또렷이 기억이 납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나름 어른이 된다는 생각에, 그래봤자 중학생이었지만, '가타카'를 다시 봤습니다. 여전히 이해가 안되는 내용들 투성이었지만 그래도 무언가 유전적으로 부족한 주인공이 우주로 가고 싶어한다는 것 정도는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저런 세상이 오기 전에 태어나서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뭘 해보기도 전에 죽었을거야!'
받아쓰기 점수를 못 받아올 때면 어머니는 매번 다음은 잘 볼거라고 저를 위로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저런 세상에 태어났으면 꼼짝 없이 포기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을거라는 생각에 내심 안도하면서도, 막내 삼촌이 사온 386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며 닥쳐올 미래에 대한 약간의 불안감도 느꼈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가타카'는 그렇게 기억에서 잊혀갔습니다.
-
그러다 우연히.
정말 우연하게도, 이십여년이 지나 '가타카'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영화 리뷰를 하는 유튜브 영상이었습니다. 평소 그런 리뷰 영상들을 좋아하지 않아서 빠르게 넘기려던 차에 '가타카'라는 큰 이름이, 채널을 넘기려는 저의 손가락을 멈추게 만들었습니다. 오랜 시간 보지 못했던 친구를 만난 것 같은 반가움, 온전히 정복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 여튼 그 알 수 없는 어떤 감정들이 저로 하여금 리뷰 영상을 누르게 만들었고, 10분 정도 보던 차에 어느 순간 '가타카'를 유료로 결제하여 처음부터 정주행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내가 근래에 이토록 집중하고 본 영화가 있었나'
영화를 다 보고 한 동안 정신이 멍했습니다. 뭐랄까. 그냥 알 수 없는 벅차오름이랄까. 타이탄으로 향하는 빈센트의 표정을, 소각로에서 금빛으로 물들어가는 제롬의 은메달을 보며 그간 인지하지 못했던,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었던 유년 시절의 불안감이 조금씩 지나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피 한 방울로 앞으로 발생하게 될 모든 가능성을 예측하며 인간의 삶을 규정하려는 세상이 아니라, 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무한한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미래가 현실로 다가와줘서 너무나 다행이라고. 스스로 돌아갈 힘을 남기지 않고 헤엄치겠다 결심할 용기가 있었기에 겁쟁이 게임에서 이길 수 있었던 빈센트가, 아니 스스로가 대견스럽다고. 그리고 한없이 외롭다고 생각했던 내 주변에 나를 묵묵히 도와주던 사람들이 있었음을 끝내 깨달을 수 있었다고.
-
우주선을 보기 위해서는 '가타카'의 청소부가 되는 길 뿐이라는 부모님의 말을 들었을 때, 빈센트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노력'이 아니라 '믿음'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믿음이 결국 그 자신으로 하여금 편견의 장벽을 넘어선 것이 아닌, 온몸으로 뚫고 지나가게 만들었던 것이죠.
이제 개강입니다.
새로운 세계에서의 삶은 또 어떨까 궁금합니다.
많은 생각들이 있겠지만
그래도 일단 걸어가보시죠.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
남들의 시선만으로 규정된 세상이 아닌
내 마음 속에 '믿음'이라는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서.
누군가 과정은 필요없고 어차피 결과 뿐이라고 짖어대도
저는 멀리서 누구보다 그 과정의 온전함을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혹시 알겠어요.
빈센트처럼 진짜 해내게 될지도.
자 이제, 떠날 시간이 왔네요.
영화의 마지막 대사로 갈음합니다.
"우주선 놓치겠어, 빈센트"
0 XDK (+2,290)
-
1,050
-
10
-
50
-
10
-
10
-
500
-
500
-
100
-
50
-
#07년생#08년생#독학생 오르비의 주인이 될 기회 37 39
-
다른사람 특징이 잘 안외워짐 0 0
오르비로 치면 얘는 몇살 무슨대학 무슨과 이런게 많이 봤던사람도 자주 헷갈림
-
분명 대학커플들을 더 부러워해야 하는 게 맞는데 눈앞에 당장 보이는 게 참 무섭네요
-
내 시간표를 내가 짜지 못함 0 0
교대특임
-
진지하게 입학하는 그 즉시 인생이 밑바닥 되어버리는 1 1
그런 대학들이 있음 입학하는 그 즉시 인생 바로 하류층 직행인 대학들
-
로또 사는 느낌으로 지원했어요ㅋㅋ 올해는 일반과 중에서 시립이 제일 높아서 예비가...
-
일생일대의 고민이다 2 0
강의력 개차반인데 1학년들만 있는 수업이고 수강인원이 32명인 수업 VS 강의력...
-
이 프사 어때 6 0
ㄱㅊ을까
-
발음해보면 이상하단 생각이 안드나
-
최소 학점으로 반수를 할테야 1 0
반수 고고혓
-
에피는 미친놈이다 2 0
이게 대체 뭐지
-
하.. 잇올 장학 뺏김 0 0
내신장학 80% 받으려했는데 이미 고딩들이 받고있어서 to 다 찼다는.. 돈 겁나 깨지겠네..
-
육군 운전병으로 가고 입대는 4월 27일에 합니다. 2달전에 뭘해야 할까요?
-
의대다니거나 지망하시는분들 9 0
어떤과 하고싶으신가여
-
학고반수인데 밥약 잡힘 0 0
어카죠 제 사회성 dna가 그냥 그 과 다닐 새내기처럼 이야기했는데 스몰토크가 끝일...
-
전체 39개 의대 중 사탐 가능한 곳은 15곳이고 그마저도 가산 3% 학교는 서울...
-
외부인 더프랑 6모 9모 신청 가능한 학원좀 알려주세요 4 1
노량진에서 재수하고 있고 노량진 아니어도 강남이나 서울에서 더프랑 모고 볼 수 있는...
-
이거 max 사가지고 좀 제대로 깎아보고 싶은데 후기 좀
-
약리학 많이 어려워요? 1 0
선배가 약리시험 어렵다고 해서 갑자기 세상이 무너짐ㅋㅋㅋㅋ 통학도 해야하고 하는데...
-
김준 지금시작하면 뭐부터해야함 3 0
방학동안 화2하다가 지금 화1으로 넘어왔는데 겨울 커리가 케미스토리 개념하고 기출...
-
김승리 tim 0 0
2월28일/3월1일 두각에서 개강하던데 김승리 한번도 안들어본 사람이 들어도...
-
성대야입학식좀해줘 6 0
-
올클 실패 1 0
-
나랏말쌈 고트 0 1
유일하게 추천하는 오르비책
-
공부하는중 0 0
-
화작 반타작 못하는 과외생 1 0
국어 6~7등급 나오는데 틀리는 개수를 보면 화작을 문학보다 더 많이 틀려요 문제...
-
삶의 효율이 달라지네
-
시립대 추가모집 뜸 1 1
https://trs01.uwayapply.com/038DK6HF7OT40000004...
-
연대 약대 인증하면 2 1
연뱃 약뱃 둘다 나와야 하는건가요? 약뱃만 신청하긴 했는데
-
독재학원 조교하는데 0 1
추가모집 정시추합 기다리는 사람 생각보다 많네잉..
-
존예 청순 귀염 내조녀랑 동거 2 0
하면무슨기분일까? 동거안해봐서궁금하네
-
반수생 시간표 ㅁㅌㅊ 8 2
사강 포함 13학점임
-
성대 입학 메인키트 지리네 3 0
+후드&노트
-
멀리 떠나고 시퍼 0 0
-
호엥ㅇ 2 0
길 존나막히네 진짜
-
아잇 시벌 교양 놓쳤네 1 0
이거 지금 못하면 나중에는 다른 학년 전체랑 경쟁하는건데 지금도 못했는데 나중에도...
-
[생명과학 1] 유전 실전 논리서 DECODE 2027 출시 0 3
안녕하세요. 경북대학교 의예과 23학번 지니입니다. OBSERVE 2027에 이어서...
-
https://englishterminator.co.kr/제가 어쩌다 알게된...
-
메디컬 구간에서 사과탐 유불리 0 1
의치=과탐 압도적 유리 한=사탐 압도적 유리 약:애매 수:사탐 약간 유리 맞음?
-
입학식 야르 1 0
ㅈㄱㄴ
-
입학식 왔다 3 0
-
요즘은 노트북과 아이패드중 어떤걸 더 많이쓰나요??. 4 0
어떤가요???
-
"삼성전자 34만원, SK하이닉스 170만원 간다"… 글로벌 IB까지 역대급 전망 내놨다 1 0
[파이낸셜뉴스] 코스피가 25일 사상 처음으로 6,000선을 돌파한 가운데 글로벌...
-
수국김 작년꺼로 해도 되나요? 0 0
실수로 수국김 2026꺼 사버렸는데 작년꺼로 해도 별 차이 없나요...?...
-
안녕얘들아 6 2
프사바꿀때가된거같아
-
지1 261120 4 0
ㄴ선지 이렇게 풀어도 됨
-
[속보] 미 부통령, 이란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을 확인함 3 0
Breaking News
-
헤겔 질문 9 0
2번문제 4번판단
-
아침 일찍 일어났더니 2 0
머리아프고 속안좋아
-
오노추 0 0
-
한 번만 도와줘요 추가모집 3 0
추가모집 가천대 예비 2번인데 전문대 추가모집 자금이라도 쓸까요 ? 강제 군대행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