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다. '나이'의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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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고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되었는데 '세상에 나서 살아온 햇수'를 뜻하는 단어 '나이'의 어원은 뭘까?
무지성의 극치인 르완다어빠의 주장인 'raba'에서 왔다는 유사언어학적 개소리도 있고, 다른 의견으로는 소위 알타이제어라고 일컬어지는 어족과 연관을 지으려는 쪽에서 주장하는 몽골어와 튀르크어에서 어원을 찾아 날(日)과 동원어인 nar에서 유래했다는 이론도 있다. 여기선 '해'를 어근으로 갖는 '날-'에서 '나리'가 조어되고 이게 ㄹ이 약화되며 '나이'가 되었다는 것인데 이 주장도 신빙성은 떨어진다. 그리고 고형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은 현대 어형만을 보고 섣불리 '나-이'로 분석해 '나다'의 어간 '나-'에 접미사 '-이'가 붙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나이'의 정확한 어원을 알기 위해서는 중세 한국어의 문헌 기록을 보면 된다. 단독으로 실현될 때는 '나'로만 쓰였고,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와 쓰일 땐 '나히'나 '나흘'과 같이 ㅎ이 덧났다. 또 평음으로 시작하는 조사가 오면 '나콰(낳+과)'나 '나토(낳+도)'처럼 쓰였다. 이는 '나이'의 고형은 ㅎ종성체언이었다는 뜻이므로 기저형을 '낳'으로 삼으면 된다. 즉 '날'과의 유사성을 찾을 게 아니라 '낳다'와 유사성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나리'로 쓰인 적은 애초에 없거니와 '날'에서 '낳'으로 변화할 음운론적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현대국어의 '나이'는 현재 훈민정음 문헌에서 등장한 최고형은 '낳'인데 이는 '낳다'의 어간 '낳'이다. 동사의 어간이 아예 명사로 쓰인 건데 이를 영변화라 한다. 형태의 변화(굴절) 없이 품사만 바뀌는 것을 영변화(/영파생)이라고 하는데 한국어에선 용언이 어미 '-다'를 필요로 하기에 어간과 명사의 형태만을 비교한다. 어간 '낳-'과 중세 국어 명사 '낳', '신(신발)'과 '신다'의 '신-', '띠(band)'와 '띠다'의 '띠-' 모두 같은 관계이다. 이런 경우는 용언에서 체언이 온 건지 체언에서 용언이 온 건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낳다'의 경우 문헌상 기록에서 용언의 기록이 압도적으로 많기에 용언에서 체언이 온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낳다'에서 유래된 명사 '낳'이 후행하는 형태소의 성격에 따라 교체되며 쓰이다가 주격조사 '이'와 붙은 '나히'가 아예 명사로 굳어진 거다. 이는 더 이상 그 당시 언중이 '나히'를 '낳(명사) + 이(조사)'로 분석하지 못하게 되어 어원 의식이 멀어진 것이다. 이러한 이유는 17세기 이후에는 7종성법 때문에 체언과 조사를 분리하여 분철 표기를 하려 하더라도 종성에 ㅎ이 있어 '낳이'로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히'로 계속 표기함에 따라 '나히'가 이미 조사가 붙은 형태라는 인식을 하지 못하는 언중들이 '나히'에 다른 조사를 붙여 쓰기 시작한다. '나히가'나 '나히의', '나히는' 등의 표기가 등장한 것이다. 기록을 보면 19세기부터 이런 표기가 쓰였다고 하며 20세기 초까지 이런 표기가 보였다고 한다. 이는 '내(나+이)'와 '네(너+이)'가 조사가 붙은 형태라는 인식을 하지 못해 '내가'나 '네가'로 쓰이는 것과 비슷한 경우이다.
그러면서 어중의 ㅎ이 유성음 사이에 껴 있어 약화되며 결국 ㅎ이 탈락해 '나히'가 '나이'로 변했다. 19세기 말부터 '낳'이 사라지고 '나히'와 '나이'가 쓰이다 20세기 들어서 '나이'가 정착하여 오늘날까지 '나이'가 쓰이게 된 것이다
아무튼 결론은 '낳다'의 어간 '낳-'에서 유래된 명사 '낳'이 '나이'의 고형이라는 것이다. '낳'은 '나/낳'으로 교체되며 ㅎ종성체언으로 쓰이다 주격 조사 '이'와 결합한 '나히'가 하나의 명사로 굳어져 후기 근대국어에서는 단독으로 실현될 때도 '나히'로 쓰였다. 이 '나히'에 다른 조사가 붙기 시작하며 어원 의식이 아예 사라졌고, 그후 ㅎ은 유성음 사이에서 흔히 탈락하니 '나히'가 '나이'로 통시적으로 변화하며 '나이'로 굳어진 게 현재까지 이어진 것이다.
'낳>나히>나이'로 정리할 수 있다.
국어 어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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