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다의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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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다의 어원
수능이 22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수능을 보실 텐데 이번에는 ‘가깝다'의 어휘사를 보겠습니다. ‘가깝다'는 15세기에 등장하는 ‘갓갑다'로 소급되는데 다른 ㅂ 불규칙 활용을 하는 용언과 마찬가지로 모음어미가 올 때는 원순성을 가진 ‘갓가ㅸ-(순경음은 받침)’의 형태가 쓰였습니다. 그러다 순경음이 반모음 w로 변하면서 표기상으로 ㅂ 불규칙이 일어나게 되는데 ‘가'가 양성모음이기에 ‘갓가오-’의 표기가 등장했습니다.
16세기 문헌에 ‘갓ㅺㅏ오-’의 예가 나타나므로 적어도 16세기부터 경음화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 근대에 들어서서 ㅅ계 합용병서를 각자병서로 대체함에 따라 ‘ㅺㅏ'는 ‘까'로 바뀌었고 모음조화가 파괴되어 ‘오'는 ‘우'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거쳐 ‘가깝다'가 쓰이게 되었고 얘는 ‘가까우-’로 변칙 활용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갓갑다'의 ‘갓'과 ‘갑다'는 무엇일까요? 인터넷에 쳐 보면 ‘갓'은 눈을 의미하고 여기에 파생 접미사 ‘-갑다'가 붙은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갓'이 고대 국어에서 ‘눈'의 의미로 쓰였다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접미사 ‘갑다'가 등장할 환경이 아니라는 점에서 신빙성은 떨어집니다. 참고할 만한 얘기는 방언형에서 ‘가찹다'가 나오고 ‘갓'의 이형태로 ‘갗'을 제시한다는 건데 과연 그렇다 할지라도 ‘갓'의 정체를 확언하지 못하는 이상 눈을 기반으로 하여 거리감을 나타내기 위해 조어되었다는 의견은 합리적이지 않아 보입니다.
또다른 견해로는 접미사 ‘-압다'가 결합했다는 것인데 ‘갗-’에 ‘-압다'가 붙었다고 하거나 ‘가ㅈㆍㄱ-’에 ‘-압다'가 붙었다고 하나 둘 다 말이 안 되는 게 ‘갗다'나 ‘가ㅈㆍㄱ다'와 같은 어휘가 발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갑다'나 ‘-압다' 모두 단어를 파생할 때 용언의 어근에 붙는데 ‘갓'을 눈으로 본다면 접미사의 출현 환경이 아니게 되고, ‘갗-’이나 ‘가ㅈㆍㄱ'과 같은 어근은 상정할 수 없으므로 ‘-압다'가 붙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물론 ‘가ㅈㆍ기'라는 표기도 보이긴 하지만 이는 근대국어에만 보이는 표현이므로 중세 때 ‘가ㅈㆍㄱ-’이라는 어근이 있었다는 근거는 될 수 없습니다.
어원을 조사할 때는 과연 중세나 고대에 그러한 쓰임이 있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아무리 교수가 제시한 어원이라도 말이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수의 어원설은 그래도 믿을 만하지만 절대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대부분의 어원, 그중에서도 르완다어나 타밀어를 운운하는 어원은 거들떠보지도 마시길 바랍니다. 음을 끼워 맞추고 비교 언어학의 기초조차 모르는 비전문가들의 의견일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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