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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융프 [895076] · MS 2019 · 쪽지

2026-07-11 17: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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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윤]2025.6평.자연관 출제오류논란[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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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학년도 수능 대비 6월 모의 평가 생활과 윤리 9번 문제에 관해 출제 오류 논란이 있습니다.

 

9번 문제의 ㄹ은 환경 윤리 관련 문제로,

 

‘레건, 테일러, 칸트 공통: 수단으로만 이용되어선 안 되는 존재는 도덕적 의무의 대상이 될 수 있다.’가 옳은 선지로 출제되었습니다.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은 반론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 ‘수단으로만 이용되어선 안 되는 존재’가 칸트에게 있어서는 인간을 염두에 두고 출제된 것인데, 이 말은 칸트가 인간을 ‘수단으로도 이용 가능하지만 수단으로만 이용되어선 안 되고 목적으로도 이용되어야 하는 존재’로 본 것으로 출제된 것이다. 이것은 칸트의 인간관에 맞지 않다. 칸트는 인간을 ‘수단으로는 이용되어선 안 되는 존재’로 보았다. 즉 인간은 ‘수단으로도 이용 가능하지만 동시에 목적으로도 대우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수단으로는 이용 가능하지 않고, 항상 목적 그 자체로 대우 받아야 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이 선지는 칸트에게 옳지 않은 선지이다. 칸트에게 옳은 선지가 되려면 ‘수단으로 이용되어선 안 되는 존재는 도덕적 의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로 수정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출제하신 선생님과 반론 중 어느 쪽이 칸트의 입장에 더 적합한지 칸트의 책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칸트는 1785년 “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 ‘수단’과 ‘목적’에 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의지란 어떤 법칙의 표상에 맞게 행위하게끔 자기 자신을 규정하는 능력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그러한 능력은 오직 이성적 존재자들에서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의지에게서 그것의 자기규정의 객관적 근거로 쓰이는 것이 목적이다. 이 목적은, 그것이 순전한 이성에 의해 주어진다면, 모든 이성적 존재자에게 똑같이 타당함에 틀림없다. 이에 반해 그것의 결과가 목적인 행위의 가능 근거만을 함유하는 것은 수단이라 일컫는다.”(칸트 저, 백종현 역, 174쪽)

 

이를 한국 칸트학회에서 기획한 “도덕형이상학 정초, 실천이성비판”에서 김석수 경북대 철학과 명예교수님은 이렇게 옮기고 있습니다. 

 

“생각건대 의지는 어떤 법칙의 표상에 맞추어 행동하도록 스스로를 규정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이 능력은 오직 이성적 존재자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의지가 스스로 결정할 때 이것의 객관적 근거로 사용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목적이 오로지 이성을 통해서 주어진다면, 이는 이성적 존재자 모두에게 똑같이 타당해야 한다. 이에 반해서 어떤 행위의 결과가 목적일 때, 행위의 가능 근거만을 포함하는 것은 수단이라고 한다.”(칸트 저, 김석수, 김종국 역, “도덕형이상학 정초, 실천이성비판”, 80쪽)

 

여기에서 칸트는 ‘수단’을 ‘어떤 행위의 결과가 목적일 때, 행위의 가능 근거만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목적’과 ‘수단’에 관해 이야기한 후 칸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나는 말한다: 인간은, 그리고 일반적으로 모든 이성적 존재자는, 목적 그 자체로 실존하며, 한낱 이런저런 의지의 임의적 사용을 위한 수단으로서 실존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그리고 일반적으로 모든 이성적 존재자는 그의 모든, 자기 자신을 향한 행위에 있어서 그리고 다른 이성적 존재자를 향한 행위에 있어서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서 보아야 한다.”(칸트 저, 백종현 역, “윤리형이상학 정초”, 175쪽) 

 

칸트는 여기에서 인간이 ‘목적 그 자체로 실존’하며, ‘수단으로서 실존’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즉, ‘수단으로서만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으로도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수단으로서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로 실존’한다는 것입니다. 독일 사람인 칸트는 이를 독일어로는 ‘existiert als Zweck an sich selbst’ (목적 그 자체로 실존하며), ‘nicht bloß als Mittel’ (한낱 수단으로서 실존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를 김석수 교수님은 “이제 나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과 대체로 모든 이성적 존재자는 이런저런 의지를 좇아 마음대로 사용하기 위한 단순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목적 자체로서 실존하며, 모두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성적 존재자를 향한 자신의 모든 행위에서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칸트 저, 김석수, 김종국 역, “도덕형이상학 정초, 실천이성비판”, 81쪽)로 옮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번역의 독일어 원문으로, 백종현교수님과 김석수교수님이 참고하신 Bernd Kraft/Dieter Schönecker판(Felix Meiner Verlag, Hamburg)의 2016년 간행본과 Wilhelm Weischedel판의 2019년 발행본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der Mensch und überhaupt jedes vernünftige Wesen existiert als Zweck an sich selbst, nicht bloß als Mittel zum beliebigen Gebrauche für diesen oder jenen Willen, sondern muß in allen seinen, sowohl auf sich selbst, als auch auf andere vernünftige Wesen gerichteten Handlungen jederzeit zugleich als Zweck betrachtet werden.

 

독일어 ‘als’는 ‘~로서’, ‘Zweck’는 ‘목적’이니 ‘als Zweck betrachtet werden.’은 ‘목적으로서 간주(고려)되다’, ‘jederzeit’는 ‘언제나, 항상’, ‘zugleich’는 ‘동시에, 함께’의 의미이니, ‘jederzeit zugleich’는 ‘항상(언제나) 동시에(함께)’라고 할 수 있습니다. ‘sowohl A als auch B’는 ‘A뿐 아니라 B도’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sowohl auf sich selbst, als auch auf andere vernünftige Wesen gerichteten Handlungen’은 ‘자기 자신뿐 아니라 다른 이성적 존재를 향한 행위에서도’가 됩니다. 이로써 ‘jederzeit zugleich(항상 동시에)’가 무엇과 무엇을 연결해 주는 지도 분명해집니다. ‘자기 자신을 향한 행위를 할 때도 인간은 목적으로 간주되어야 할 뿐 아니라 다른 이성적 존재를 향한 행위를 할 때도 인간은 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단으로 인간을 대할 뿐 아니라 동시에 항상 목적으로도 대하라’는 의미가 아님이 분명합니다. 

 

바로 이어서 칸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경향성들의 모든 대상들은, 단지 조건적인 가치만을 갖는다. 왜냐하면 만약 경향성 및 그에 기초한 필요들이 없다면, 그것들의 대상은 아무런 가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향성들 자신은 필요의 원천들로서, 그 자체를 소망할 만한 절대적 가치를 갖지 못한 것으로, 오히려 그러한 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 그것이 모든 이성적 존재자의 보편적 소망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행위로 얻어질 수 있는 모든 대상들의 가치는 항상 조건적이다. 그것들의 현존이 비록 우리의 의지에 의거해 있지 않고, 자연에 의거해 있는 존재자들이라 하더라도, 만약 그것들이 이성이 없는 존재자들이라면 단지 수단으로서 상대적 가치만을 가지며, 그래서 물건들이라 일컫는다. 그에 반해 이성적 존재자들은 인격이라 불린다. 왜냐하면 그것들의 본성이 그것들을 이미 목적들 그 자체로, 다시 말해 한낱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는 어떤 것으로 표시하고, 그러니까 그런 한에서 모든 자의(이 ‘자의(恣意)’에 관해 번역자이신 전 칸트학회 회장 백종현 교수님은 ‘인격을 아무렇게나, 다시 말해 수단으로라도 사용하려는 자의’라고 해석하여 인간을 ‘수단으로라도 사용하려’해서는 안 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를 제한하기 (그리고 존경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격들은 한낱 그것들의 실존이 우리 행위의 결과로서 우리에 대해서 가치를 갖는 주관적 목적들이 아니라, 오히려 객관적 목적들이다. 다시 말해, 그것들의 현존 그 자체가 목적인, 그것 대신에 다른 어떤 목적도 두어질 수 없는 그런 것들로, 다른 것들은 한낱 수단으로서 이에 쓰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렇지 않다면, 도대체가 어디서도 절대적 가치를 가진 것은 만나지지 못할 터이니 말이다.”(칸트 저, 백종현 역, “윤리형이상학 정초”, 175, 176쪽) 

 

여기에서 칸트는 물건과 인격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성이 없는 존재자인 물건은 경향성들의 모든 대상인데 단지 조건적인 가치만을 갖고, 그 자체를 소망할 만한 절대적 가치는 갖지 못하며, 수단으로서 상대적 가치만을 가지는데 반해, 이성적 존재자들인 인격은, 인격들의 본성이 인격들을 이미 목적들 그 자체로, 즉 한낱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는 어떤 것으로 표시하는 것이라고 구분합니다. 여기에서도 칸트는 인격인 인간이 ‘목적 그 자체’이며 목적 그 자체는 ‘한낱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되는 존재’임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수단으로서만 사용되어서는 안 되고, 목적으로도 사용되어야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목적 그 자체이기에 수단으로서는 사용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입니다.

 

이 부분을 김석수 교수님은 이렇게 옮기고 있습니다. 

 

“경향성의 대상은 모두 제약된 가치만 갖는다. 경향성과 이에 토대를 둔 필요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대상들도 가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요의 원천인 경향성 자체는 그것들을 그 자체로 바랄 정도의 절대적 가치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오히려 모든 이성적 존재자는 일반적으로 여기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를 소망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 행위로 얻게 될 모든 대상의 가치는 언제나 제약되어 있다. 어떤 존재자의 현존이 우리 의지가 아니라 자연에 의존한다 해도, 이런 존재자가 이성이 없는 존재자라면, 이들은 단지 수단으로 상대적 가치만을 지니며, 따라서 물건이라고 불린다. 그에 반해서 이성적 존재자는 인격이라고 명명된다. 이런 존재자의 본성은 이 존재자를 이미 목적 자체로, 즉 단순히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드러내며, 따라서 그런 한에서 모든 자의를 제한하기 (그래서 존경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 인격은 주관적 목적이 아니다. 이런 목적의 현존은 우리 행위의 결과로 우리에게 가치를 가질 뿐이다. 오히려 이들 인격은 객관적 목적이다. 즉 현존 자체가 목적인 것들이다. 게다가 이들 인격은 다른 어떤 목적도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없는 목적으로, 다른 목적은 이 목적을 위해 그저 수단으로만 쓰여야 한다. 이런 인격이 없다면, 어디에서도 절대적 가치를 가지는 것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칸트 저, 김석수, 김종국 역, “도덕형이상학 정초, 실천이성비판”, 81, 82쪽)

 

 

위의 주장에 이어 칸트는 그 유명한 다음의 실천명령을 도출합니다. 

 

“네가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 인간(성)을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한낱 수단으로 대하지 않도록, 그렇게 행위하라”(칸트 저, 백종현 역, “윤리형이상학 정초”, 176, 177쪽)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 인간(성)을 결코 한낱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항상 목적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결코 한낱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고 항상 목적으로도 대하라’가 아니라 ‘결코 한낱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항상 목적으로 대하라’고 하였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를 김석수교수님은 “너는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도 인간성을 결코 단지 수단으로 사용하지 말고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행하라.”(칸트 저, 김석수, 김종국 역, “도덕형이상학 정초, 실천이성비판”, 82,83쪽)라고 옮기고 있습니다. 역시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 인간성을 ‘결코 단지 수단으로 사용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성을 ‘결코 단지 수단으로만 사용하지 말고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도 사용하라’가 아니라 ‘결코 단지 수단으로 사용하지 말고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사용하라’고 한 것이 칸트의 입장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빌헬름 바이셰델이 편찬한 “별이 총총한 하늘 아래 약동하는 자유”를 번역한 손동현 성균관대 

철학과 명예교수님과 김수배 교수님도 이 책에서 이 부분을 이렇게 옮기고 있습니다. 

 

“너는 너 자신의 인격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 있어서 인간성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간주하여야 하며, 결코 한갓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151쪽)

 

폴 가이어의 『칸트의 “도덕형이상학 정초” 입문』을 번역한 김성호 교수님은 이 책에서 이 부분

을 이렇게 옮기고 있습니다.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 인간성을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단지 수단으로 대하지 않도록 행위하라”(154쪽)

 

김재호 서울대 교수님도 “도덕형이상학 정초” 번역에서 이 부분을 이렇게 옮기고 있습니다.

 

“네가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 인간(성)을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한낱 수단으로 대하지 않도록, 그렇게 행위하라.”(칸트 저, 김재호 편역, “도덕 형이상학 정초”, 70쪽)

 

이러한 입장은 “호모 에티쿠스: 윤리적 인간의 탄생”을 저술한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님의 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김상봉 교수님은 칸트의 ‘목적으로서의 인격’을 설명하면서 선의지와 연결하여 주장을 펼칩니다. 김상봉 교수님은 먼저 칸트의 선의지가 “어떤 경우에도 자기 아닌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일 수 없”(295쪽)음을 강조하며, 칸트에게 있어 인간이 목적 그 자체이기에 한갓 수단으로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칸트의 주장을 소개합니다. 

 

“이성적 존재자들은 인격이라 불린다. 왜냐하면 그들의 본성이 그들을 이미 목적 그 자체로서, 즉 한갓 수단으로서 사용되어서는 안 될 어떤 것으로서 두드러지게 하며”(295쪽). 

 

칸트에게 있어 인간이 수단으로 사용될 수 없는 ‘목적 그 자체’임이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백종현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님이 편찬한 『한국 칸트사전(Koreanisches KANT LEXIKON)』에서도 이러한 칸트의 입장에 대해, 무엇을 위한 ‘수단’은 물건에만 해당되고, 인간은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가치를 갖는 목적’에만 해당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787쪽) 

 

 

다음은 칸트가 든 사례입니다.

 

칸트는 인간을 ‘수단으로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을 다음과 같은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필연적인 의무의 개념에 따라, 자살하려 하는 사람은, 과연 자신의 행위가 목적 그 자체로서의 인간성의 이념과 양립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 물을 것이다. 만약 그가, 힘겨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라면, 그는 그의 인격을, 생이 끝날 때까지 견딜 만한 상태로 보존하기 위한, 한낱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물건이 아니고, 그러니까 한낱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의 모든 행위에 있어 항상 목적 그 자체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인격 안에서 인간에 대해 아무것도 처분할 수 없으니, 인간을 불구로 만들거나 훼손하거나 죽일 수 없다.”(칸트 저, 백종현 역, “윤리형이상학 정초”, 177쪽) 

 

칸트는 자살을 예로 들어 인간이 ‘한낱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며 ‘항상 목적 그 자체’로 보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인간이 스스로를 죽이면 안 되듯이 자신을 ‘한낱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수단으로도 사용 가능’하고 동시에 목적으로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목적 그 자체’로 보아야 하는 인간은 ‘수단으로는 사용하면 안 되는 존재’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간을 ‘수단으로 이용하면 안 된다’는 것을 칸트는 또 다른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필연적이거나 당연한 의무에 관한 것인데, 다른 사람에게 거짓 약속을 하려고 뜻한 사람은 곧바로, 그가 다른 사람을, 이 사람도 동시에 자기 안에 목적을 포함하고 있음을무시하고, 한낱 수단으로 이용하려 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러한 약속에 의해 나의 의도를 위해 대하고자 하는 그 사람은 그에 대한 나의 처신 방식에 동의할 수 없을 것이므로 그 자신 이 행위의 목적을 함유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원리와의 이 상충은, 다른 사람의 자유와 재산에 대한 침해의 예를 들어보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왜냐하면 거기서, 인간 권리의 위배자가, 다른 사람들도 이성적 존재자로서 항상 동시에 목적들로, 다시 말해 바로 그 동일한 행위에 의해 그 자신 안에도 목적을 함유할 수 있어야만 하는, 그러한 존재자로 평가되어야 함을 보지 못한 채, 타인의 인격을 한낱 수단으로 이용할 생각을 하고 있음이 분명해지기 때문이다.”(칸트 저, 백종현 역, “윤리형이상학 정초”, 178쪽) 

 

칸트는 다른 사람에게 거짓 약속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통해 사람을 ‘한낱 수단으로 이용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시 ‘수단으로만 이용’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타인도 이성적 존재자로서 항상 동시에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칸트는 모든 이성적 존재자들은 다음과 같은 법칙 아래에 종속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무릇, 이성적 존재자들은 모두, 그들 각자가 자기 자신 및 다른 모든 이들을 결코 한낱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항상 동시에 목적 그 자체로서 취급[대]해야만 한다는 법칙 아래에 종속해 있다.”(칸트 저, 백종현 역, “윤리형이상학 정초”, 183쪽) 

 

이를 김석수 교수님은 이렇게 옮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성적 존재자는 모두 각자 자기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을 결코 단순히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언제나 동시에 목적 자체로 대해야 한다는 법칙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다.”(칸트 저, 김석수, 김종국 역, “도덕형이상학 정초, 실천이성비판”, 89쪽)

 

이어서 칸트는 ‘목적들의 나라’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목적들의 나라에서 모든 것은 가격을 갖거나 존엄성을 갖는다. 가격을 갖는 것은 같은 가격을 갖는 [동가의] 다른 것으로도 대치될 수가 있다. 이에 반해 모든 가격을 뛰어넘는, 그러니까 같은 가격을 갖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존엄성을 갖는다. 보편적인 인간의 경향성 및 필요들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시장가격을 갖는다. 필요와 상관 없이, 어떤 취미나 순전히 무목적적인 유희에서 우리 마음 능력의 흡족함에 따르는 것은 애호가격을 갖는다. 그러나 그 아래에서만 어떤 것이 목적 그 자체일 수 있는 그런 조건을 이루는 것은 한낱 상대적 가치, 다시 말해 가격을 갖는 것이 아니라, 내적 가치, 다시 말해 존엄성을 갖는다.”(칸트 저, 백종현 역, “윤리형이상학 정초”, 183쪽) 

 

‘목적들의 나라’에서 모든 것은 가격을 갖거나 존엄성을 갖는데, 가격을 갖는 것이 허용되지 않아 같은 가격을 갖는 다른 것으로 대치될 수 없는 즉 목적 그 자체인 존재는 ‘한낱 상대적 가치, 다시 말해 가격을 갖는 것이 아니라 내적 가치, 다시 말해 존엄성을 갖는다.’고 합니다. 칸트는 목적 그 자체인 인간이 ‘상대적 가치인 가격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존엄성도 가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분명하게 ‘상대적 가치 즉 가격은 가지지 않고 존엄성 즉 내적 가치를 가진다’고 하였습니다.

 

이를 김석수 교수님은 이렇게 옮기고 있습니다.

 

“목적의 나라에서는 모든 것에 어떤 가격이 있거나 존엄성이 있다. 가격이 나가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또 자신에게 맞먹는 다른 어떤 것과 대체될 수 있다. 그에 반해 모든 가격을 초월해서 어떤 것과도 대체가 불가능한 것이 있다면, 그것에는 존엄성이 자리하고 있다. 인간의 보편적 경향성이나 욕구와 관련된 것에는 시장가격이 존재한다. 또한 욕구를 전제하지 않고 어떤 취미에서, 즉 우리 마음의 능력들이 목적에 얽매이지 않고 순전히 놀이하는 데서 만족해하는 것에 적합한 것에는 애호가격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어떤 것이 오로지 목적 자체일 수 있도록 해주는 조건을 이루는 것에는 단순히 상대적 가치, 즉 가격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적 가치, 이른바 존엄성이 자리하고 있다.”(칸트 저, 김석수, 김종국 역, “도덕형이상학 정초, 실천이성비판”, 90, 91쪽)

 

칸트는 또 ‘목적들의 주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목적들의 주체, 다시 말해 이성적 존재자 자신은 결코 한낱 수단이 아니라, 모든 수단의 사용에 있어 최상의 제한 조건으로서, 다시 말해,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서, 행위들의 모든 준칙의 근저에 놓여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기 때문이다.”(칸트 저, 백종현 역, “윤리형이상학 정초”, 189, 190쪽) 

 

‘목적들의 주체’인 인간은 결코 한낱 수단일 수 없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김석수 교수님은 다음과 같이 옮기고 있습니다.

 

“목적의 주체, 즉 이성적 존재자 자신은 단순히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모든 수단을 사용할 때 최상의 제한 조건으로서, 즉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서 행위의 모든 준칙에 토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칸트 저, 김석수, 김종국 역, “도덕형이상학 정초, 실천이성비판”, 95쪽)

 

칸트는 돌아가시기 7년 전인 1797년 “윤리형이상학”을 통해서도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습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타인들에게도 목적이니, 그가 그 자신도 타인들도 한낱 수단으로 대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인간 일반을 목적으로 삼는 것 그 자체가 인간의 의무이다.”(칸트 저, 백종현 역, 480쪽)

 

인간 일반은 목적으로 삼아야지, 그 자신도 타인들도 한낱 수단으로 대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낱 수단으로만 대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가 아니라 ‘한낱 수단으로 대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이를 한국 칸트학회에서 기획한 “도덕형이상학”에서 김수배 충남대 철학과 교수님은 이렇게 옮기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해서도 목적이 된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기 자신이나 타인을 단순히 수단으로 사용할 권한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인간 일반을 자기 목적으로 삼는 것 자체가 인간의 의무다.”(칸트 저, 이충진, 김수배 역, “도덕형이상학”, 274, 275쪽)

 

백종현 전 칸트학회 회장님이 ‘그 자신도 타인들도 한낱 수단으로 대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번역한 것을 김수배 교수님은, 인간은 자기 자신이나 타인을 ‘단순히 수단으로 사용할 권한이 없다’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한낱 수단으로 대할 권한’ 또는 ‘단순히 수단으로 사용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죠.

‘인간 일반을 목적으로 삼는 것’ 또는 ‘인간 일반을 자기 목적으로 삼는 것’ 그 자체가 우리 인간의 의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나 타인을 ‘단순히 수단으로만 사용할 권한이 없다’가 아니라 ‘단순히 수단으로 사용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 칸트의 입장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칸트는 “그 자신을 그의 임의의 목적을 위한 한갓된 수단으로 처리하는 것은, 인간(현상체 인간)이 보존을 위해 그에 위탁했던, 그 인격에서의 인간성(예지체 인간)의 존엄을 실추시키는 것이다.”(칸트 저, 백종현 역, “윤리형이상학”, 517쪽)라고 하여 그 자신을 임의의 목적을 위한 ‘한갓된 수단으로 처리하는 것’이 ‘그 인격에서의 인간성의 존엄을 실추시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칸트는 그 자신을 임의의 목적을 위한 ‘한갓된 수단으로만 처리하지 말고 동시에 인간성의 존엄도 존중하게 처리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한갓된 수단으로 처리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김수배 교수님은 이렇게 옮기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임의 목적을 위한 한낱 수단으로 처분해 버리는 것은, 자기 인격 안에 있는 인간성(예지적 인간)을 실추시키는 짓이다. 그 인간성이야말로 인간(현상적 인간)이 그 인격에 보존해주도록 위탁했던 것이다.”(칸트 저, 이충진, 김수배 역, “도덕 형이상학”, 309쪽)

 

자기 자신을 임의 목적을 위한 ‘한낱 수단으로만 처분해 버리는 것이 인간성을 실추시키는 짓’이라고 하지 않고, ‘한낱 수단으로 처분해 버리는 것이 인간성을 실추시키는 짓’이라고 하였습니다.

 

칸트는 “윤리 형이상학”의 ‘덕이론의 형이상학적 기초원리’ 의 ‘순전히 도덕적 존재자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인간의 의무’ 중 ‘1. 거짓말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도덕적 존재자(예지체 인간)로서 인간은 물리적 존재자(현상체 인간)로서 자기 자신을, (생각을 전달하는) 내적 목적에 묶여 있지 않은 것 같은, 한갓된 수단(발화장치)으로 이용할 수는 없고, 오히려 도덕적 존재자의 설명(선언)과의 합치 조건에 묶여 있으며,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성의 책무를 지고 있다.”(백종현 역, 528쪽)

 

인간이 자기 자신을 ‘한갓된 수단(발화장치)으로만 이용할 수는 없고,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성의 책무를 지고 있다’가 아니라 ‘한갓된 수단(발화장치)으로 이용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를 김수배 교수님은 이렇게 옮기고 있습니다. 

 

“도덕적 존재(예지적 인간)인 인간이 자연적 존재(현상적 인간)인 자기 자신을 한낱 수단(말하는 기계)으로, 즉 (생각을 알린다는) 내적 목적에 구속되지 않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 그는 오히려 [자신을] 도덕적 존재로 표명(선언)하는 것에 [자기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는 조건에 구속되어 있으며,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성이라는 의무를 지고 있다.”(이충진, 김수배 역, “도덕 형이상학”, 319쪽)

 

역시 ‘자기 자신을 한낱 수단으로만 사용할 수는 없다’가 아니라 ‘한낱 수단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칸트는 “윤리 형이상학”의 ‘덕이론의 형이상학적 기초원리’ 의 ‘순전히 도덕적 존재자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인간의 의무’ 중 ‘3. 비굴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주장하였습니다.

 

“인격으로서, 다시 말해 도덕적-실천적 이성의 주체로 여겨지는 인간은 모든 가격을 뛰어넘는다. 무릇 그러한 인간(예지체 인간)으로서 인간은 한낱 타인의 목적들, 아니 심지어는 자기 자신의 목적들을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목적 그 자체로서 평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는 존엄성(절대적인 내적 가치)을 가지며, 이에 의해 그는 다른 모든 이성적 세계존재자들에게 그에 대한 존경을 강요하고, 이런 종류의 모든 타자들과 자신을 견주어 평등의 입장에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백종현 역, 535쪽)

 

인격으로서의 인간은 타인이나 자기 자신의 목적들을 위한 ‘수단으로서만 아니라 동시에 목적 그 자체로서 평가되어야 한다’고 하지 않고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목적 그 자체로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김수배교수님은 이렇게 옮기고 있습니다. 

 

“인간이 인격으로, 즉 도덕적, 실천적 이성의 주체로 간주될 때에는 모든 가격을 넘어선다. 이 같은 인간(예지적 인간)은 단순히 타인의 목적, 심지어 자기 자신의 목적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 자체로 평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그는 존엄성(절대적인 내적 가치)을 지닌다. 그리고 이 존엄성에 따라 그는 다른 모든 이성적 존재자들에게 자신을 존중하라고 강요하며, 자신을 같은 종에 속하는 타자들 모두와 비교하여 그들과 동등한 처지에서 평가할 수 있다.”(칸트 저, 이충진, 김수배 역, “도덕 형이상학”, 325쪽)

 

도덕적, 실천적 이성의 주체로서의 인간은 ‘수단으로만 평가되어서는 안 되고 목적으로도 평가되어야 한다’가 아니라 ‘수단이 아니라 목적 자체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 칸트의 입장임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인격으로서의 인간은 절대적인 내적 가치(존엄성)를 지니기에 ‘수단으로는’ 평가될 수 없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수단으로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칸트는 “윤리 형이상학”의 ‘덕이론의 형이상학적 기초원리’ 의 ‘순전히 인간으로서의 타인에 대한 의무들에 대하여’ 중 ‘당연한 존경에서 나오는 타인에 대한 덕의무들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주장하였습니다.

 

“인간성 자체는 존엄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어떤 인간에 의해서도 (즉 타인에 의해서도 또 자기 자신에 의해서라도) 한낱 수단으로 사용될 수 없고,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해져야 하며, 여기에 바로 그의 존엄(인격성)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는 인간 이외의 사용 가능한 다른 모든 세계 존재자를, 그러니까 모든 물건들을 능가한다.”(백종현 역, 574쪽)

 

인간은 어떤 인간에 의해서도 ‘한낱 수단으로만 사용될 수 없고,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도 대해져야 한다’고 하지 않고 ‘한낱 수단으로 사용될 수 없고,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인간의 존엄(인격성)이 성립한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이 수단으로 대해지면 인간의 존엄(인격성)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 칸트의 입장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를 김수배교수님은 이렇게 옮기고 있습니다. 

 

“인간성은 그 자체로 존엄하다. 인간은 어떠한 인간에게서도 (타인에게서든 본인 자신에게서든) 한갓 수단이 아니라 언제나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우받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바로 그 인간의 존엄성(인격성)이 성립한다.”(칸트 저, 이충진, 김수배 역, “도덕 형이상학”, 366쪽)

 

인간은 그 자체로 존엄하기에 타인에게서든 본인 자신에게서든 ‘한갓 수단으로만 대우받아서는 안 되고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도 대우받아야만 한다’가 아니라 ‘한갓 수단이 아니라 언제나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우받아야만 한다’가 칸트의 입장임을 재차 확인할 수 있습니다.

 

칸트는 “윤리 형이상학 정초”(1785년)와 “윤리 형이상학”(1797년)의 사이에 쓴 “실천이성 비판”(1788년)에서도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습니다.

 

“전체 창조물에 있어서 사람들이 의욕하고, 그에 대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한낱 수단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 오로지 인간만은, 그리고 그와 더불어 모든 이성적 피조물은 목적 그 자체이다. .....이성적 존재자는 곧 수동적 주관 자신의 의지로부터 생길 수 있는 법칙에 따라 가능한 것이 아닌 어떠한 의도에도 복종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이 자는 결코 한낱 수단으로가 아니라, 오히려 동시에 그 자신 목적으로 사용된다. 이 조건을 우리는 당연히 신의 창조물들인 세계 내의 이성적 존재자들과 관련해 신의 의지에 대해서도 부여한다. 이 조건은 오로지 그로 인해 이성적 존재자들이 목적 그 자체인, 그들의 인격성에 근거하는 것이니 말이다.”(칸트 저, 백종현 역, “실천이성 비판”, 172쪽)

 

‘한낱 수단으로도 사용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의욕하고, 그에 대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물건임을 밝히며, 오직 인간과 모든 이성적 피조물은 수단으로는 사용될 수 없는 목적 그 자체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즉 이성적 존재자는 ‘한낱 수단으로만 사요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목적으로도 사용된다’가 아니라 ‘결코 한낱 수단으로가 아니라, 목적으로 사용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단으로는 사용될 수 없고 목적 자체로 사용되는 것은 인간뿐 아니라 신의 의지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즉 신의 의지가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고 항상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처럼 인간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를 한국 칸트학회에서 기획해서 펴낸 “도덕형이상학 정초, 실천이성비판”에서 김종국 경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님은 이렇게 옮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관은 단순히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동시에 그 자체 목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정당하게도 우리는 이러한 조건을 신의 피조물인 세계 내 이성적 존재자와 관련한 신적 의지에도 적용한다.”(252쪽)

 

인간이 ‘수단으로만 아니라 동시에 목적으로도 사용되어야 한다’가 아니라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동시에 그 자체 목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가 칸트의 입장임을 누차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상의 칸트의 글을 통해 칸트는 인간을 ‘수단으로만 이용되어선 안 되는 존재’ 즉 ‘수단으로 이용되어도 되는 동시에 목적으로도 대우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수단으로는 이용되어선 안 되는 존재이며 항상 목적 그 자체로 대우받아야 하는 존재’로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생윤 9번 ㄹ은 칸트의 입장으로 보기 어려우며, 칸트에게 해당하기 위해서는 ‘수단으로 이용되어선 안 되는 존재’로 수정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반론을 제기하신 분들의 견해가 칸트의 입장에 더 적합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youtu.be/ZDxHXNRaAec?si=TmkQu25lEfLgZw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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