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 이야기 - 장제스의 국민당군과 정예 독일식 사단 | 오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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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nita Sapiens [847641] · MS 2018 · 쪽지

2026-06-21 11:52:59
조회수 1,678

전쟁사 이야기 - 장제스의 국민당군과 정예 독일식 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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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근현대사, 일제강점기와 도립운동, 625 전쟁으로 가장 깊숙히 관여하였으며 큰 임팩트를 가지면서도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뭐니뭐니해도 바로 국민당군을 이끌었던 장제스(한국식으로는 장개석)이다.




다만 장제스 또한 열렬한 민족주의자로서 중화 민족의 부흥을 꿈꾸었고 조선 또한 그저 여타 중국 황제처럼 식민지나 지방 오랑캐로 보고 이후 또 다른 지배자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어두운 의도가 숨어있다는 설명도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임시정부를 도운 사실 등은 명확하니 그러한 공로를 전부 부정하기에는 어렵다고 본다

https://namu.wiki/w/%EC%9E%A5%EC%A0%9C%EC%8A%A4


HOI4(Hearts Of Iron 4)에서 중국 지도자로 등장하는 장제스의 초상화 버전

https://namu.wiki/jump/vhgb4sE0I00%2FEOO5vrApvxm%2FBrUCOYaO%2Fzy6gI9BmBkJOt4oy4irlm1562UcSth78SNKHKahCg6Ol87CNIw51A%3D%3D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마치 한국에 대해서 잘 모르는 외국인들도 가끔 북한과 남한을 헷갈리고 같은 것으로 취급하거나(과거 필자가 미국에 있을 당시, 초등학교 5학년 친구가 북쪽이 좋은 애들이냐 남쪽이 좋은 애들이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오해하는 것처럼 장제스 또한 중국이니까, 현재 공산당이 집권 중인 중국을 생각하면 큰 오해를 할 수도 있는 위험이 있다.



 간략히 요약하자면 1930년 후반부터 1945년 연합국의 일원으로서 승리하는 과정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였으며 실제 카이로 회담 등에 참석하여 조선의 독립을 요구해준 고마운 장제스(참고로 당시 제국주의자였던 처칠은 자기네 식민지인 인도 등이 들고 일어날까봐 장제스의 조선 독립 요구를 굉장히 못마땅한 것으로 알려져있다)는 한국의 독립유공자이기도 하며 실제 임시정부의 든든한 후원자였으며, 김구와도 인연이 있고 공산당과는 척을 진 인물이다. 중일전쟁 당시 여러 군벌로 분열되었던 중국에서 실질적인 항일 투쟁의 대부분 몸빵을 담당하고 전면전을 치른 것은 장제스가 이끌던 국민당이었으며, 치열한 대일투쟁에서의 소모전과 1945년 직후 깨진 국공합작, 2차 국공내전에서 여러 실책을 거듭하며 결국 대만으로 쫓겨났으며 장제스 정부는 현재 대만에서 근근이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역사의 가정법은 무의미하지만, 만약 장제스의 국민당군이 공산당과의 국공내전에서 승리하여 대륙을 통일하고 소련의 영향을 차단했더라면 어쩌면 한반도에서 625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북한이 남한과 장제스 사이에서 찌부려져 대한민국은 상대적으로 온건한 통일을 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미국의 최대 위협으로 떠오른 공산당이 이끄는 중국이라는 현대의 경쟁자가 애초에 나타나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극도의 민족주의자였던 장제스가 결국 중국을 세계 제일의 국가로 만들고자 하여 다른 방식으로 미국과 대립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만큼 장제스가 조선의 독립과 일제강점기, 광복, 그리고 더 나아가 625전쟁과 더불어 최근까지 한국이 북중러와 생존을 걸고 치열한 대립을 하는 일에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결정적이고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것은 조금만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장제스가 일본과의 전쟁보다도 공산당이라는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더욱 우선순위를 두자, 항명을 하고 장제스로 하여금 공산당과 타협하고 국공합작을 통해 대일전선을 결성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 장쉐량이라는 사람 또한 재미있는 사람이다. 이 사람 이야기도 참 재미있는데 개인적으로 한국 근현대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친 중국의 대일항쟁기 또한 공부하면 안목을 넓히는 데에 도움이 된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E%A5%EC%89%90%EB%9F%89




 

임시정부에 대한 든든한 후원자였던 장제스는 조선의 독립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공식적인 한국의 독립유공자이기도하다. 한반도에서 쫓겨나 중국 등지에서 활동하던 김구의 임시정부에 중요한 후원자였으며 여러가지 편의를 제공해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https://shindonga.donga.com/society/article/all/13/1651984/1





당시 일제의 식민지였던 조선은 중국으로부터 동병상련이라기보다는, 저항할 힘조차 없어서 나라를 무기력하게 빼앗기고 이제는 그 앞잡이나 하는 쓰레기 같은 놈들 이라는 인식에 불과하였다. 조선의 적극적인 독립 운동은 그러한 편견을 극복하였고 장제스를 비롯한 중국 인사들의 호의와 후원으로 연결된다

https://www.fmkorea.com/best/1466299472





우리가 나라가 없지 쫀심이 없나!

https://www.scmp.com/week-asia/people/article/3304791/japan-museum-korean-nationalist-hero-yun-bong-gil-reopens-old-wounds





마오쩌둥의 지휘 아래에 공산당은 국민당만큼 대일항쟁에 적극적이지 않았으며, 이후 국공내전에서 일본과의 치열한 소모전을 치른 국민당군은 여러 자체적인 패착이 겹치면서 대륙통일에 실패하게된다. 그렇다 소위 한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정치질로 인하여 진짜 노력하고 열심히 일한 사람은 찬밥 대우를 받게 된 것이다 돈은 엉뚱한 놈이 받아버리고

https://m.blog.naver.com/kwon20001/221714363015




 서론이 너무 길어지는데 조금만 더 이야기를 하자면, 국공내전에서 참패한 국민당군과 장제스는 대만으로 유물 등을 들고 튀게 되었고(국부천대) 지금도 중국 본토의 찬란했던 문화재를 아직도 대만이 가지고 있으면서 세계적인 박물관을 운영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오히려 중국 본토는 이후 마오쩌둥이 개인적인 사리사욕을 위해서 권력투쟁 과정 중에서 홍위병을 선동하여 문화대혁명을 통해 여러 귀중한 문화재를 파괴해버리는 자해행위를 함으로써, 문화적 역량에서는 자타공인 대만이 정통성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공자 가문 후손도 대만에 있다) 하지만 대륙 본토를 차지했다는 점으로 인하여 결국 중국 공산당이 이끄는 대륙 중국의 경제력 등의 하드파워가 급속히 증대하였으며 UN에서 대만은 연합국의 승전국임에도 아예 나가리가 되어버렸고 지금은 시진핑이 언제쯤 통일을 명분으로 대만을 침공하냐는 것이 주요한 쟁점이 되는 시대이다.



 625 전쟁이 터지고 중공군이 개입하여 한반도 통일이 물건너가자, 이왕 이렇게 된거 대만군을 중국 본토에 상륙시키고 핵무기까지 써버리자고 하던 맥아더에 대해서 세계 3차대전이 일어날 걱정을 하던 트루먼 대통령의 눈 밖에 나버렸다. 625 전쟁 당시 대만의 직접적인 군사적 조력은 없었고 있었더라 하더라도 국제 정세로 인하여 은폐되었을 것이다. 625 전쟁 초기 중국 공산당은 다소 충성심이 의심스럽던, 국민당군 출신부터 고기방패처럼 한반도로 갈아넣었는데 여러모로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나약한 개인의 극명한 대비가 측은하다.







 본격적으로 장제스의 국민당군 중에서도 특히 독일식 정예 사단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군이 패전국의 위치로 베르사유 조약 등으로 인하여 군대가 박살이 나버리고 국제 관계에서 눈치를 보게 되고, 유명했던 독일 장군들이 전부 실업자가 되어버리거나 갈가리 찢긴 조국으로 인하여 몸값이 낮아지자, 눈부신 경제 성장과 세계대전을 일으킬만한 군사력을 달성했던(다만 빌런이 뚜렷한 2차 세계대전과 달리 1차 세계대전에서는 독일이 많이 억울한 점이 있다) 독일에 대한 열망은 여러 국가들과 이해관계가 일치하게 된다.



 특히 중국 또한 여러 군벌들과 마찬가지로 장제스도 독일로부터 군사 고문단을 초빙하여 유명한 장군들로부터 노하우를 듣고, 당시 산업 기반이 열악하고 중세 봉건사회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중국을 급속도로 현대화하는데에 독일 장군들의 역할은 지대하였다. 단지 군대를 현대화하는 것 뿐만 아니라 독일의 여러 선진 시스템을 통해서 사회 전반의 발전을 꾀한 것이 곳곳에서 관찰이 된다.



 독일 군사고문단은 실제로도 단지 중국군을 독일식 무기로 무장시키는 것을 넘어서 군대에서 대단히 중요한 인적 자원의 개발과 교육 시스템 도입, 산업 기반의 발전과 국가적 총력전의 개념, 중앙 집권식 명령 체계를 가진 단일한 지휘부, 잠재 적국인 일본 제국에 대한 방어 전략 수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장제스 또한 이들의 건의와 조언을 적극 받아들였으며 만족스럽게 활용하였다.




독일식 철모 등으로 무장한 중국 정예 사단

https://history-today.tistory.com/entry/1926-%EB%8F%85%EC%9D%BC%EC%8B%9D%EC%9C%BC%EB%A1%9C-%ED%9B%88%EB%A0%A8%EB%B0%9B%EA%B3%A0-%EC%A4%91%EA%B5%AD-%EA%B5%AD%EB%AF%BC%ED%98%81%EB%AA%85%EA%B5%B0%EC%9D%98-%EC%A0%95%EC%98%88%EA%B0%80-%EB%90%9C-%EC%A0%9C-8788-%EC%82%AC%EB%8B%A8


웃긴게 독일식 장비가 일제 장비보다 뛰어난 점이 있었기에 수량 자체는 부족했고 중국군의 근본적인 역량에 한계가 있었지만 이 독일식 정예 사단은 이전의 지리멸렬하던 청나라나 중국 지방 군벌들의 군대와는 차원이 다른 역량을 보여준다

https://www.youtube.com/watch?v=AxoMjHTOv2w



왜 파시즘 일본 제국에 대항하는 국민당군이, 파시즘을 상징하는 독일식 장비를 쓰지...? 라는 재밌는 모순을 느낄 수도 있는데 당연히 독일과 일본이 밀접해지던 1938년에는 중국에 있던 독일 군사 고문단이 전면 철수하게 된다. 천연 자원이 풍부하던 중국이 독일식 무기를 수입하고, 베르사유 조약 등으로 영국의 감시를 받던 독일이 전쟁 물자 생산에 필요한 자원을 중국에서 수입하면서 둘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였는데, 만약 독일이 일본이 아닌 중국과 손을 잡았다면 역사가 재미있게 흘러갔을 수도 있겠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nitzz&logNo=140038028395&proxyReferer=




필자의 아버지는 영화 보는 눈이 굉장히 높은데, 상하이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혈투를 벌인 중국 국민당군의 독일식 정예 사단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800>은 아주 재미있게 시청하셨다

https://namu.wiki/w/800%28%EC%98%81%ED%99%94%29




위의 이야기로 큰 영향을 받아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HOI4의 중국 국민당군 테마 로딩 페이지 일러스트. 여러가지 열세에도 불구하고 용감히 맞서 싸우는 독일식 중국 정예 사단의 모습이 정말 멋지게 그려져있다

https://devtrackers.gg/heartsofiron/p/06e4ceb1-developer-diary-arts-achievements




1935~1938년 나치 독일이 일본과 밀착하며 주중 군사고문단을 전면 철수시키기 직전까지 마지막 주중 독일 군사고문단을 이끈 알렉산더 폰 팔켄하우젠의 모습. 이전 고문단장들과 마찬가지로 대일 항쟁에 대비하여 중국에 상당한 기여를 하였으며 HOI4 게임에서도 상당한 능력치로 중국 국민당군 장군 인물로도 등장한다. 이 사람은 직접 전투 지휘 경력이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지만, 오합지졸 전근대식 군대를 철저하게 발전시키는 전문가로 유명하다

https://namu.wiki/w/%EC%95%8C%EB%A0%89%EC%82%B0%EB%8D%94%20%ED%8F%B0%20%ED%8C%94%EC%BC%84%ED%95%98%EC%9A%B0%EC%A0%A0





 일본이 만주에 괴뢰국을 세운 이후, 1937년 경 자작극을 벌여 관동군이 발생시킨 국경 분쟁에 끌려가면서 중일전쟁이 터지자 나치 히틀러가 소련을 상대했을 때와 비슷하게, 속전속결로 중국을 점령하고 거대한 중국의 인프라와 자원을 차지하겠다는 장밋빛 시나리오를 그리면서 상하이에 무대책하게 상륙을 개시한다.



 하지만 쪽수만 많고 훈련도나 사기가 심각하게 부실하여 조금만 밀어버리면 지리멸렬하던 과거 청나라나 중국 지방 군벌들의 군대와 달리, 장제스의 국민당군 특히 상하이를 지키던 독일식 정예 사단 등은 결코 만만찮은 전투력을 보여주었으며 오히려 적극적인 공세를 통해서 일본 주력의 상륙 전에 상하이 점령군을 섬멸 시도하기도 하였으며, 일본 본대가 상륙하고 막강한 재해권으로 도움을 받는 와중에도 적절한 방어 전략을 통해서 자만했던 일본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기도 하였다.



 결국 물량공세로 중국군을 밀어낸 일본군은 초반의 호언장담과 달리 상하이 점령에만 상당한 시간을 쏟으면서, 중국을 순식간에 밀어붙이고 난징 등의 수도를 점거하여 일거에 거대한 중국을 무력화한다는 당초 계획은 백지로 돌아갔으며, 특히 이 과정에서 심각한 피해를 입은 일본군이 약이 오를 대로 단단히 올라서 민간인에게 무차별한 보복과 학살을 벌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난징 대학살이다.



 이후 중일전쟁의 늪에 빠진 일본군은 복잡한 국내 정치 상황과 육해군 대립, 자원 부족 문제, 미국의 대대적인 금수 조치를 해결하기 위하여 더더욱 심각한 무리수를 두고 남방 작전과 진주만 공습, 미국과의 태평양 전쟁이라는 막장 선택지를 고르면서 1945년 패망의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마치 안중근 의사가 권총 하나로 온건하고 계획적이던 이토 히로부미를 보내버리면서 강경파가 득세하고 일본 제국이 폭주하여 멸망으로 서서히 빠져든 것과 비슷하게, 주중 독일 군사고문단은 장제스 휘하 국민당군을(당연히 전군은 아니지만) 정예화하고 독일식으로 무장, 훈련시켜서 상당한 전투력을 기르는데 큰 기여를 하였고 그 스노우볼링이 굴러서 결국 일제의 멸망에 기여하게 된다.





2차 상하이 사변 전투 과정 유튜브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H3jhj-XUuGM&t=8s





 이처럼 상당히 분투한 중국 국민당군이었지만 일본 제국과의 치열한 혈전은, 단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전쟁 즉 군대끼리 붙어서 이기는 쪽이 승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나치 독일이 인종 청소를 같이 하면서 소련을 침공하고 민간인조차 족족 학살해버리고 완전히 슬라브 민족을 지구상에서 지워버리려고 한 것처럼 총력전에 더해서 절멸전에 가까운 수준으로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이 과정에서 심각하게 피폐해진 중국 대륙 본토와 인명, 물적 손실을 감당하지 못한 중국 국민당군은 독일식으로 무장한 정예 사단마저도 손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숙련병을 대거 잃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영화 <800>에서도 중국 국민당군 중에서도 독일식으로 무장한 정예로 유명한 88사단의 이야기인데, 이후 88사단은 추가적인 물적 인적 보충을 충분히 하지 못하였고 국공내전에서는 88사단은 그저 과거 한때 이름을 날린 88사단에 불과하였으며 대부분이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급하게 채워진 병력 위주였으며 국부천대까지도 온전히 과거의 명성과 전투력을 회복하지는 못하게 된다.



 이후에도 장제스는 나치 독일과 절연한 대신 소련이나 미국 등으로부터 원조를 다양하게 받게 되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초기 암울했던 시기(그러니까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지 않아서 영국과 미국 등으로부터 지원도 못받고, 중국이 홀로 몸빵을 해야했던 애매했던 시기)를 극복하고 견디게 만들어준 원동력은 중일전쟁 초반까지 활동하였던 독일 군사 고문단의 역할이 지대하였다. 1938년까지 5대 단장이 중국을 거쳐갔고 모두가 진심을 다해서 중국을 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마지막 단장이었던 팔켄하우젠 또한 소환 명령에 대해서 중국에 남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가족을 인질로 잡고 협박하는 나치 독일에 굴복하여 떠날 수 밖에 없었고, 1938년 귀국 직전 장제스가 열어준 잔치에서 중국의 승리를 확신하며 떠났으며 실제로 그의 예언대로 중국은 일본이라는 거대한 적으로부터 승리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장제스와 관련되는 미국 등의 장성들 중 일부는 인종차별적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장제스와 심한 마찰을 겪은 경우도 종종 있었으나, 열악한 현실 속에서도 중국에 대해서 편견 없이 대하고 장제스를 높이 신뢰한 군사 전문가들의 헌신과 인간적 노력이 없었다면 중국이 승리할지언정 훨씬 더 큰 희생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장제스와 심한 마찰을 빚기도 하고 중국에 대한 인종차별적 편견이 심했던 것으로 유명한 조지프 스틸웰 장군은 그닥 능력도 별로였으며 실적 또한 그다지 높이 평가할 수가 없다. 대놓고 뇌물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사리사욕으로 현실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여, 실패도 많이 경험하였고 특히 1944년 일본이 마지막 발악으로 중국을 분쇄하던 와중 스틸웰 장군의 고집과 아집으로 장제스는 귀중한 정예 병력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된다

https://namu.wiki/w/%EC%A1%B0%EC%A7%80%ED%94%84%20%EC%8A%A4%ED%8B%B8%EC%9B%B0




스틸웰과 달리 장제스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공군 비행대를 이끌며 중국에서 상당한 도움을 준 클레어 셔놀트 장군은 이후 장제스가 국공내전에 패퇴한 것도 트루먼 미국 정부의 미흡한 지원 때문이라고 상당히 비판하기도 하는 등 장제스를 높이 평가한 외국 군인들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HOI4에서 중국 측 인재로 상당한 능력치 등으로 도움을 준다

https://namu.wiki/w/%ED%81%B4%EB%A0%88%EC%96%B4%20%EC%85%94%EB%86%80%ED%8A%B8?from=%ED%81%B4%EB%A0%88%EC%96%B4%20%EC%85%B0%EB%86%80%ED%8A%B8





 이렇듯 장제스의 중국 국민당군과 해외 원조 이야기, 주중 독일 군사 고문단 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는 통찰이 있다. 군대라는 것은 단지 총을 든 무력집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군대가 성장하고 군사력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춰 무기 체계와 더불어 산업 기반 시설, 교육 수준, 인적 자원을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시스템과 문화적 환경, 정치적 안정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군대 또한 사회의 일부로서 해당 국가를 대표하는 작은 표본이며, 사회의 모습과 행태가 군대에도 그대로 작용하고 국력은 단지 총칼에서 나오는 단순무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청나라 시절 유럽 열강에게 군사적으로 패퇴한 이후, 양무운동이라고 하여 이미 교육 체계나 문화는 우수하니 양놈들이 쓰는 좋은 무기만 쥐어주면 우리도 이길 수 있다! 라는 식의 단순한 사고방식으로 접근한 개혁 시도가 있었다. 독일 제국이 1차 세계대전을 감당할 수 있었던 비결 또한 단지 무기가 우수했던 것을 넘어서 산업 전반에 경쟁력과 제조업 규모가 비약적으로 성장하여 영국을 위협할 정도였으며, 민족주의적 가치와 통일된 정치 체계 아래에서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국가적 역량 덕분이었다.




근대식 무기를 생산하는 군수 공장을 건설하는 부분에 집중하던 양무운동은, 서양의 근대 민주주의와 민족주의, 교육적 환경과 정치적 결단력, 안정성, 부패하지 않고 효율적인 관료 시스템, 합리적인 계급, 신분제도 등에 대한 미비한 접근으로 그닥 성공적이지 못한 개혁 시도였다. 실제로 청일전쟁 당시 부패한 관료나 서태후의 개인 비자금으로 빼돌려진 군자금 덕분에 함포가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되지 못한 웃픈 이야기가 전해진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6%91%EB%AC%B4%EC%9A%B4%EB%8F%99




 장제스 또한 결국 독일 군사고문단을 통해서 결론적으로 군대와 군사력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집중과 투자, 발전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며 군벌들이 난립하고 지휘 체계가 엉망이며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애매한 상황에서는 결코 근대화에 성공하여 강력한 국력을 자랑하던 당시 일본 제국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 또한 알았을 것이다. 군사 고문단은 명목상 중국 국민당군의 정예화를 추구했을 뿐이지 결국 그 과정에 필요한 여러 인적 자원 관리를 위한 교육 체계, 선진적인 통신 지휘 체계, 무기를 지속적으로 공급할 국가 인프라와 산업의 중요성, 항공기 등의 첨단 무기를 활용한 현대전 개념을 종합적으로 전수하였다. 단순히 중국인들에게 독일식 철모와 소총을 쥐어준다고 정예군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한국의 저출산이 군대에도 영향을 미쳐서 이젠 공익들마저 현역으로 어떻게든 끌고가려고 난리를 치는 병무청만 보아도, 사회경제적 현상과 실태는 그대로 군대에 직결되며 군사력과 국력은 서로 균형잡히고 맞춰서 성장해야 하는 것이지 기형적으로 군사력을 통해서 통제만을 하는 북한의 사례라던지, 국력과 찬란한 과학 기술에 비해서 군사력이 지나치게 약했던 송나라의 사례를 본다면 역시 이 세계는 복잡하며 단순한 인간의 시야만으로 쉽게 규정하고 결정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다 전문적인 수준에서 중일전쟁에 대해서 깊은 내용을 추가로 알고 싶다면 아래의 블로그를 추천드리는 바이다.



https://blog.naver.com/kwon20001/222030689454







 마지막으로 학생과 성인 여러분에게 감히 조언하고 싶은 것이 있다. 대한민국처럼 세계 최강대국들 사이에 낑긴 나라에 사는 사람으로서 외교와 국제 관계에 대해서 유연하고 해박한 지식과 융통성을 갖추는 것은 생존을 위한 필수적 교양일 것이다. 때문에 빈약한 농업 국가이자 오랜 전쟁과 내전으로 피폐해진 중국이 독일식으로 교육과 무장을 하고 강력했던 일본 제국과 치열하게 싸운 이야기를 들으면 참으로 가슴이 벅차오르고, 해외의 선진 문물을 통해서 급격히 발전한 것을 보면 큰 감명을 준다.



 필자 또한 어려서 미국을 1년 살아본 경험 등이 있지만 너무나도 어린 시절이었기에 부모님의 보호 아래에 있었기에 그다지 엄청나게 성장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2025년에 잠깐 독일을 다녀오면서 짧은 시간에 훨씬 많은 것을 배운 것 같다. 영국, 독일 교수님들로부터 신선하고 색다른 사고방식과 문화적 차이, 멘토링 문화와 교육 방식의 다양성을 경험하면서 세상을 보는 폭이 훨씬 넓어지고 새로워진 것 같다.






 단순히 해외여행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 또한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경험이겠지만 그런 일을 통해서는 그들의 사고방식과 교육, 문화적 차이, 지역적 특성과 나름 오랫동안 발전시켜온 합리적인 생존 방식을 깊이 접해볼 수가 없다. 짧은 시간이라 하더라도 무언가 뚜렷한 주제로 밀접한 대화를 나누고 토론이나 교류를 통해서 생각의 차이를 직접 부딪혀야 알 수 있는 지혜가 있다고 생각한다.



 흥미롭게도 사주 팔자에서도 물이 부족한 사람, 그러니까 오행 중 수가 부족한 사람에게 해외 유학 등을 추천하는데 직관적인 비유로 물을 건너는 의미로서 해외를 설명하기도 하고 필자 또한 큰 바다를 건너 물을 끌어오라고 조언해준 사주 상담 선생님이 있으며 더 큰 물을 얻기 위해서 일본처럼 다소 짧은 거리가 아닌 미국처럼 더 큰 태평양과 같은 거리에 비유를 하신 적이 있었다. 독일을 다녀오고 나서야 성인이 되어서 홀로 독립을 하고 책임질 나이에 직접 어떤 긴장과 미묘한 권력 관계, 생존을 위한 집중력을 발휘해보니 무슨 말인지 알겠더군요.



 재미있게도 사주 팔자에서 수, 즉 물은 지혜, 사고, 유연성 등을 의미하며 바위가 중간에 있으면 옆으로 피해서 흘러가는 유체에 비유되기도 한다. 여담이지만 사주 오행 중 물에 대한 설명과 해외에 연결시킨 재미있는 글은 아래 글을 참조하길 바란다.




https://yavares.tistory.com/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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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윈 · 1148936 · 06/21 11:54 · MS 2022

    이따 밥먹으면서 봐야겠다

  • PVF Point · 1421309 · 06/21 13:25 · MS 2025

    오늘도 야르한 글 야르하게 읽었습니다

  • 섬세한1등급 · 1249120 · 06/21 13:47 · MS 2023

    안중근이 이토 죽여서 강경파 득세햇단건 뭐노?
    긴모치는 40년까지 살아잇엇는데 어떻게 강경파 된걸 설명할거임?

  • 섬세한1등급 · 1249120 · 06/21 13:49 · MS 2023

    글고 애초에 지방 군벌들
    특히 쓰촨같은 지방은 100년치 세금을 한번에 걷어가는 ㅂㅅ 집단이엇는데 국민당 기습숭배 뭐지다뇨 ㄷㄷ

  • 섬세한1등급 · 1249120 · 06/21 13:51 · MS 2023

    심지어 평협 안한건 군부가 아니라 고노에가 트라우트만 공작 걷어 차고 완전한 항복 받겟다<<<이러다가 수렁 속에 빠져서 ㅈ되니 그제서야 동아공영 하겟다노 개조정부 세우겟다노 그런거지

  • 섬세한1등급 · 1249120 · 06/21 13:55 · MS 2023

    글고 중국은 중일전쟁 터지고 계속 지원 받고 잇엇음
    일본이 인도차이나반도 점령한게 애초에 하노이루트 끊을려고 한건데

  • 섬세한1등급 · 1249120 · 06/21 13:57 · MS 2023

    중국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황금의 20년대도 북벌 이후 대륙이 국민당란 당 아래 어느정도 하나로 뭉치고 관세 자주권도 되찾아오고 법폐 개혁이 더 크지 않나? 단순히 외국인도르치기엔 애매한 면이 없지않나 잇은데

  • Weltmacht · 1390254 · 06/21 20:05 · MS 2025

    강경파 득세는 이미 메이지 유신과 헌법 제정 때부터 필연적이었으나
    온건파의 최중요 원로였던 이토 공작이 죽음으로써 그 속도가 빨라진 건 맞는 듯요…
    사이온지 공작은 다이쇼 정변 즈음해서 결국 육해군에 밀려났다고 봐야 되고

  • 섬세한1등급 · 1249120 · 06/21 23:02 · MS 2023

    솔직히 군부대신 현역손흥민제<<<<이게 문제긴 함뇨
    군부가 노 하면 내각이 무너지는 ㅜㅜ
    글고 애초에 일본이 온건한다<<<말이 안되는게
    청일 러일 다 이겨서 국체 보전하고
    20년 내내 공황에 시달리는데
    온건하게 노 라 외침 죽는(진) 시대에서
    누가 노라 할 수 잇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함뇨

  • 섬세한1등급 · 1249120 · 06/21 23:03 · MS 2023

    게다가 원로<<<이게 진짜 보장된게 아니라 그냥 존중해주는 거라 사실 이토가 안중근 의사에 의해 죽지 않앗어도 언젠가 밀려낫을 것 같음뇨

  • Weltmacht · 1390254 · 06/22 12:05 · MS 2025

    그래도 좀 더 오래 살았으면 군부에 그나마 대항할 세력이 더 컸을 듯. 당장 야마가타 공작만큼 권위 있는 초창기 원로가 육군에 버티고 있어서 되게 큰 구심점이 되었던 사례도 있으니까요

  • 섬세한1등급 · 1249120 · 06/22 12:12 · MS 2023

    그래도 솔직히 일제는 아무리 길게 봐도 30년대가 한계인듯요
    걍 맘에 안듦 죽임 되잖아?+왜 쟤네 존중해줘야 하는데?+우리 황군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데? 쓰리콤보로 언젠간 극단화가 되지 않앗을끼 싶음뇨

  • Weltmacht · 1390254 · 06/22 12:34 · MS 2025

    황군은 ㅂㅅ이 맞음
    황군마냥 사고방식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애들이 폭력을 독점하니까 극단주의로 갈 수밖에 없었던 건 맞는 듯요
    사실 저는 이토 공작이 1909년에 살아남았어도 1차대전 개전 전후로 일본인한테 암살당했을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 섬세한1등급 · 1249120 · 06/22 12:53 · MS 2023

    ㄹㅇㅋㅋ 소련 개무시까다가 지니깐 아무튼 소련이 더 강해서 진거라노 우린 최강 맞다노<<<이게 결론인 ㅂㅅ군대
    안중근 의사 없엇고 암살 운이 좋아 안당햇어도 다른 원로들처럼 그냥 늙어 죽지 않앗을까 싶기도 함뇨 스트레스 ㅈㄴ 받아서 ㅋㅋ

  • 섬세한1등급 · 1249120 · 06/22 12:53 · MS 2023

    아니 답글 최대 5개 제한 에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