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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nita Sapiens [847641] · MS 2018 (수정됨) · 쪽지

2026-07-08 19:20:09
조회수 448

전쟁사 이야기 - 교리와 철학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78856601




 철학이라는 단어는 전쟁사에서 '기본 전략' 내지 '교리' 정도로 활용됩니다. 뇌과학을 공부하게 되면 여러분은 필연적으로 인간에 대한 철학적인 탐구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이 뇌세포가 어떻게 인간을 구성하는가? 어디서부터 인간인가? 그렇다면 그 기준 인간이라는 선을 만들게 된 원인 원리는 무엇인가? 등등. 그래서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으면서도 유익하고 저를 깨우쳐준 철학 전공 수업이 <과학철학>과 <인공지능 심리철학>인데요, 앞으로 철학을 좀 과학의 언어로 번역을 하는 작업을 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철학의 주요한 이득 중 하나는 빠른 문제 해결 방법 탐색 전략이라는 점입니다. 누구는 과감한 직관과 추론을 주로 하는 철학적 사고방식을 가졌다! 부정확할 수도 있지만 빠르게 정답에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점차 빨라지는 현대사회에 적합한 방식일 것입니다. 반대로 누구는 엄밀하고 탄탄한 논증을 좋아하고 신중하다! 라면 여러 논문을 쓸 수 있는 자산이 될 것이면서도 설득력 있고 튼튼한 주장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각기 일장일단이 있는 법이며 철학은 그러한 사고방식과 전략의 한계와 장단점을 동시에 내포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인간은 천재가 아닌데 설령 천재조차도 급박하게 돌아가는 전장 상황에서 모든 증거를 100% 확신을 가지고 의사결정을 천천히 할 수가 없습니다. 예전에도 글에서 언급했듯이 우리의 인생, 개인의 노력과 자유의지가 많이 개입되는 개인 진로나 미래 계획조차도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기 일쑤인데, 여러 이해관계와 오해 등이 관여하는 전쟁이 우리의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은 심각한 낙관주의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2차 세계대전 연합국을 이끌었던 미국의 명장 아이젠하워는, "Plans Are Worthless, But Planning Is Everything" 라는 유명한 격언을 남겼는데 신중하고 꼼꼼하던 그의 성격을 잘 반영하면서도 실제 현실에 적용할 때의 그 한계를 함축적으로 잘 요약하는 명언입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B%93%9C%EC%99%80%EC%9D%B4%ED%8A%B8_D._%EC%95%84%EC%9D%B4%EC%A0%A0%ED%95%98%EC%9B%8C



참고로 이후 그는 공화당 소속의 대통령이 되어, 민주당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전쟁 기간 등이 겹치면서 4선을 연임하던 정국을 깨게 됩니다

https://quoteinvestigator.com/2017/11/18/planning/




 뇌과학을 공부하면 할 수록 우리는 겸손해지게 됩니다. 의외로 자유의지라는 것은 강건하지 않고, 우리의 생각과 사고방식은 어떤 위대함은 별로 없으며 오히려 부끄럽고 낯뜨거워지는 이야기를 꺼내서야 그 본질적인 속성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작업기억은 (필자도 그런데) 정말 대단히 한정적이어서, 순간적인 집중력이 흐트러지거나 한꺼번에 많은 정보가 들어오면 많은 정보가 소실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름 인간은 미리 대비를 해서 우선순위를 세운 것으로 교리를 이해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일단 이쪽 방향부터 진로와 해법을 탐색해나간다 라는 임의의 규칙을 정해두고 그러한 훈련을 의식적으로 하여 무의식적으로 체득되게끔 하는 것이 군대의 기본 작동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완벽한 생존을 보장하는 완벽한 교리는 있을 수 없지만(그런게 있었으면 개나소나 그걸 다 썼겠죠) 그래도 무기력하게 패배하는 것을 막아내는 나름의 대안을 찾는 해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교리와 다른 이야기지만 인간에게 수치심 등 각종 감정 또한 나의 행동을 표출하고 전략을 정하기 위한 1차적이고 굉장히 빠르고 즉흥적인 사고 회로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결정에 대해서 심사숙고해서는 절대 인간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어쩔 때는 타협도 해야하고, 어떤 때에는 완벽히는 모르지만 보수적이고 안전하게 행동하고 어떤 때에는 과감하고 투자를 공격적으로 할 때도 있습니다. 감정은 각자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질이자 행동 방식에 대한 기본 지침이며, 각자 타고난 다른 성향이 사회나 그때 태어난 시대 배경과 맞물려서 여러 이벤트가 터지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과감하고 기습적인 공격적인 교리를 추구한 일본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개전 직전까지 굉장히 과감하고 어그레시브한, 상대를 선제타격하고 반격의 여지를 주지 않아서 격멸하여 승리한다는 기본 원칙을 은근히 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계 최초로 항공모함을 집단적으로, 보조하는 역할을 벗어나 주도하는 역할로 운용하여 함재기를 한꺼번에 많이 투사하여 순간적인 화력을 폭발적으로 내어 상대방의 함선을 공격해서 치명타를 입히는 전략을 입안하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전략적 성공 사례가 바로 진주만 기습이며, 전쟁사를 잘 모르는 필자의 아버지도 그 썰을 듣고선, 아무리 평시라기는 하지만 주력이 결집된 기지가 그렇게 허무하게 공격당한 것이 어이가 없다고 할 정도로 여러 징후가 포착되었음에도 행운 등이 겹쳐 일본의 함재기들이 자신들의 모함 위치도 노출하지 않은 채 일방적인 치명타를 입힙니다.




진주만 기습을 성공적으로 기획, 수행하며 일약 일본 사회의 대스타가 된 유명한 명장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의외로 미국을 직접 생활하며 국력을 체감하였으며, 전쟁 시작 직후 대대적인 기습 공격으로 상대방의 주력을 박살내어 그 틈에 자유롭게 활동한다는 기본 틀을 세웁니다. 일종의 승부사 도박수이죠.

https://ko.wikipedia.org/wiki/%EC%95%BC%EB%A7%88%EB%AA%A8%ED%86%A0_%EC%9D%B4%EC%86%8C%EB%A1%9C%EC%BF%A0



지금이야 항공모함은 초강대국 미국 등을 상징하는 강력한 무력 집단이지만, 항공 산업이 빈약하던 초기 항공모함을 보조적인 정찰에서 벗어나서 과감한 공격에 쓰고 집단적으로 운용한다는 발상은 일본이 최초이다. 이건 정말 치명적인 결정타로 미국에게 날라옵니다.

https://blog.naver.com/chsshim/50157189800



일본의 함재기들은 일부러 동선을 꼬아서 날아옴으로써 모항의 위치를 직접 노출시키지 않는 주도면밀한 모습을 보이면서, 당시 근처에서 항행 중이던 미국 항공모함의 반격을 피하고 유유히 퇴각할 수 있었습니다. 공세적이고 극단적으로 공격 일변도의 일본 해군의 교리는 미드웨이 해전까지 찬란한 전과를 누립니다.

https://www.seoul.co.kr/news/plan/2023/12/07/20231207500088




 흥미롭게도 공격적인 수단에 발달했던 일본은 그 외의 여러 방면에서는 형편없었습니다. 일단 자신이 기습을 당하는 상황을 상정하고 그에 대비한 체계적인 대처를 하지 못하여, 공격당하면 곧장 근처의 아무 승무원이 달려들어서 소화 방재 작업을 시작하는 미국과 달리 소수의 화재 전문 담당 요원이 함선 전체의 안전을 책임지는 분리된 구조를 가졌었습니다. 진주만 기습이야 사전에 선전포고 직전에 가해진 기습이었기에 미국이 방심했지만, 본격적인 개전을 시작하자 오히려 정찰에 더욱 신경을 쓰는 미국에게 미드웨이 해전에서 오히려 먼저 위치가 발각되어 기습을 당하는 등 우여곡절을 격게 됩니다.



 어쩌면 국력의 차이를 정확히 체감하고, 장기전으로 끌고가기만 한다면 승리는 결정된 미국 스스로도 마음과 정신에 여유가 있었던 덕분인지 모르겠습니다. 공격에 과감하고 집중적인 투자를 하는 일본과 달리 미국은 그 외의 함정의 정비, 수리, 보수, 인력보충, 정찰, 정보전 등 여러 전투 외적인 요소들에 대해서도 충분한 투자와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비한 덕분에 일본의 암호 해독을 성공하여 정보전에서 우위를 점한다던지, 워낙 튼튼하고 유연한 함선의 방호 체계 및 신속한 수리 복구반의 숙련도 덕분에, 일본 함재기들이 성공적으로 타격을 입히고 침몰을 확신한 이후 돌아와보니 멀쩡한 항모를 보고 2번째 새로운 항모로 착각할 정도로(실제로는 수리를 마친 동일한 항모) 전투 중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변수에 대해서 훨씬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대처를 보여줍니다.



 




적 함재기의 접근을 사전에 격추하고 요격하여 함선에 대한 위협을 체계적으로 제거한다는 발상에서 함대원형진은 여러 구축함과 순양함 등의 보조함이 항공모함 주위를 일정한 간격으로 미리 사전에 위협을 인지하고 보고, 격추하며 혼자 함부로 대열을 이탈하지 못하는 식으로 대단히 뛰어난 방어력을 자랑하는데, 무전기의 보급과 통신의 발달, 요격기의 발전 등으로 전쟁 말기 미국 항모는 무적에 가까운 방어능력을 자랑하게 됩니다.

https://blog.naver.com/imkcs0425/60154778190




적은 차이라도 반 집이라도 이기기만 하면 결국 승리하기에, 강력한 인내심으로 끝까지 상대의 도발을 극복하며 승리를 스노우볼링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창호 9단의 싸움 방식이 떠오르는 대목인데, 제비라고 불리며 경쾌한 수읽기로 한국의 국수 칭호를 얻은 조재훈이라는 스승을 손수 꺽기도 하였으며 이후 다시 새로운 느낌의 바둑 전략을 가지고 온 이세돌 9단에게 정점을 내어주는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천재입니다.

https://www.hani.co.kr/arti/sports/baduk/959273.html





극단적인 공격 일변도에 집중하고 자신이 공격을 당하는 상황에 대한 상정과 대처 방안, 훈련이 부족했던 일본 항공모함은 진주만 기습을 통해 세계 최강의 무력을 자랑했으나 그 과도한 도박수에 가까운 전략으로 인하여 결국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의 함재기들에게 사소한 공격에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되는 원인이 됩니다

https://www.segye.com/newsView/20191229505407


 

 



 여러분도 게임을 해봐서 알지만, 2보 전진을 위한 당장의 1보 후퇴는 이론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도저히 감정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큰 안목과 장기적 거시적 관점을 요구하는 전략입니다. 흥미롭게도 방어전에 있어서도 보통 국토가 침략당하는 국가는, 자신의 소중한 재산과 국토, 국민의 침해라는 손해가 너무나도 크게 받아들여져서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방어에 유리한 지역까지 유연하게 후퇴하여 정비를 하고 상대방의 보급선이 늘어지는 시점에 반격을 가한다기 보다는, 국토 1미터에 집착하면서 훨씬 더 심한 소모전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시작으로도 유명한(2차 세계대전의 시작은 중일전쟁이라고 보는 시각 등 혼재되어 있습니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에서 즉각 영국과 프랑스가 반발하여 선전포고를 하자, 폴란드 입장에서는 그것 또한 전략 수립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폴란드로서는 2가지 선택지가 있는데 1. 국토 위치에서 방어에 불리하기에 전선에서 병력을 신속히 후퇴시켜서 방어에 유리한 강 등의 지형까지 적을 끌여들여 싸운다 2. 조금의 손실도 보기 싫고 조금만 지나면 곧 프랑스와 영국이 독일의 뒤통수를 쳐줄 것이기에 모든 전선에서 일단 반격한다. 라는 선택지에서 불행히도 2번을 선택하고 맙니다.



 그러나 프랑스와 영국은 생각보다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독일을 견제하거나 움직이지 않았고(폴란드 침공에 대해서 극렬히 반대하던 현실론 독일 장군들은 당연하게도 영프 연합국의 공격을 방어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생각보다 신속했던 독일의 동원령에 대해서 다소 늦게 군대가 동원되면서 폴란드는 체계적이고 적극적으로 효과적으로 반격하고 방어할 수비의 기회와 이점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화살표의 진행 과정만 보아도 어떤 하나의 전선에 병력을 집중하고 병목현상을 이용하여 수비하기 대단히 어려운 상황임이 한눈에 보입니다. 웃긴게 이때까지는 독일이 그다지 강하지 못하여 폴란드가 완벽한 수비를 하지는 못했으나 독일도 상당한 소모로 승리를 결정지을 확신이 없었는데, 뒤통수에서 소련군이 느닷없이 들이닥쳐 폴란드의 배후를 치면서 폴란드가 소위 인터넷 은어 반갈죽을 당해버리게 됩니다. 적극적으로 독일을 공격해주지 않은 영프 연합군은 폴란드 국민의 원망을 엄청나게 받습니다.

https://chocohuh.tistory.com/1123102




불행인지 다행인지 북진 통일의 의지를 강경하게 표출하던 이승만 대통령의 대외적 메세지와 달리 국군은 북한에 대해서 초기부터 진격을 할 의지나 실행 능력이 부족하였고, 웅진반도 등 38선을 기준으로 고립된 남한군은 국토를 빠르게 포기하는 대신 병력을 온존하며 부산까지 내려가며 지연전을 펼쳤고 그 사이 유엔군과 미군의 증간으로 교착 상태에 빠진 전쟁이 인천상륙작전 한방에 전세가 뒤집어집니다. 만약 국경선에서 방어전이 아닌 공격적으로 남한군의 희생과 소모가 더 컸다면 낙동강 전선 사수가 더욱 힘들어졌을 것입니다.

https://www.korea.kr/multi/visualNewsView.do?newsId=148797194





 1차 세계대전에서 발생한 참호전도 약간 비슷한 양상이 연출되는데, 초기 독일군이 프랑스 내륙까지 빠르게 진격하고 참호를 서로 파고 전황이 교착되자 양쪽의 참호 건설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발생합니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국토는 빠르게 회복해야 할 나의 소중한 고토이자 국토이기에, 지금 전선에 뭔가 애정이랄까 그다지 큰 공을 쓸 필요가 없었기에 참호를 건설할 때도 독일군만큼 꼼꼼하게 건설하지 않습니다.



 반면 독일은? 어차피 남의 나라이고 남의 땅에 시즈모드를 박은 것이니까, 그냥 여기서 잘 싸우자는 주의였고 조급한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인간적인 감정과 한계가 적용된 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독일군은 장기전을 대비해서 참호를 상당히 깊고 튼튼하게 체계적으로 건설하였고 국토 회복에 집착하는 프랑스와 달리 잃을 게 없는 독일군은 느긋~하게 참호를 건설하고 버티기 시작합니다.




1차 세계대전 전령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1917> 에서도 이러한 장면이 은근히 잘 드러납니다. 독일군은 침대도 두고 참호 자체도 깊고 잘 지었고 보급도 잘 되는 간접적인 묘사가 있는 반면, 영국군은 훨씬 비좁고 얕고 흝으로 대충 마감된 참호에서 뒹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https://www.universalpicturesathome.com/movies/1917




 왜 갑자기 1차 세계대전 이야기를 굳이 길게 하냐면, 프랑스의 이러한 인식과 생각은 은근히 2차 세계대전에서 허무하게 패배하는 요인으로도 작동하게 됩니다.



 일단 유명한 마지노 선을 생각해봅시다. 독일과 국경을 맞단 곳에다가 강력한 요새를 건설하여 방어를 하고 상대방에게 출혈을 강요한다는 생각은 결코 어리석은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 자체로 오히려 역으로 프랑스가 밀고 들어가서 예방 전쟁을 치른다거나, 독일군이 오기 전에 반격해서 독일 땅에서 물리친다는 발상과는 멀었습니다. 철저하게 프랑스 본토 사수에 시야와 관점이 집중되었었고, 문제는 마지노 선 위에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와 연결된 저지대는 강력한 요새가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독일과 직접 국경을 맞닿은 곳에는 강력한 방어 진지를 건설하여 공격을 막되, 벨기에와 네덜란드에 연결된 곳에서는 그들과 연합하여 그들 땅에서 싸우겠다- 즉 자신의 본토에서 직접 침략당하고 국토가 손실당하는 것을 하기가 싫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래나 저래나 어차피 침략 당할 벨기에 등의 소국은 당연히 그나마 프랑스가 와서 같이 싸워준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https://namu.wiki/w/%EB%A7%88%EC%A7%80%EB%85%B8%EC%84%A0




 강대국으로서 자신의 영토에서 피비린내나는, 특히 1차 세계대전처럼 막대한 인명이 기관총에 갈려나간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변명이 가능할지, 아니면 중소국가의 영토에서 대신 싸우고 그들의 영토에서 분쟁이 해결되길 바라는 것이 지나친 갑질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개전 초기 프랑스군은 저기 마지노 선이 강력하게 이어지지 않은 북부를 통해서 네덜란드 벨기에로 진격하여 그들을 돕기로 했지만 독일군의 공수부대 등의 신속한 활약 덕분에 네덜란드까지는 돕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일단 개전 초기에 네덜란드까지는 어찌어찌 성공적으로 빠르게 기습하여 선제 공격을 날리고 네덜란드는 넉다운을 시켰는데, 벨기에와 프랑스가 버티고 있잖아요? 정면으로 가면 당연히 이기더라도 출혈이 심하다는 것을 알기에 독일이 의외의 진격로로 우회하는 것을 기획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아르덴 숲 우회 기동작전'입니다.



 숲이 지나치게 빵빵하던 곳인데 만약 이때 프랑스 정찰기가 이들을 발견하고, 폭격기들이 와서 몇 방 때려주었다면 진격은 커녕 맨 앞 차선이 막혀서 좁은 통로에 갇혀서 독일 전차가 줄줄이 소세지 신분에 전락했을 테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고 프랑스가 방심한 배후로 독일의 전차가 갑자기 툭 하고 튀어나옵니다.



 이때 흥미로운 것은 독일 전차가 튀어나오자마자 바로 프랑스와 교전에 들어가기보다는, 일단 진격로에서 막고 있는 프랑스군을 공격하고 밀어내긴 하지만 일단 달려버린다는 상당히 흥미로운 결정을 합니다.



 프랑스 입장에서 모든 국토는 방어의 대상이며 소중한 나의 영토이고, 따라서 전 국토를 방어하기 위해서 병력 밀도가 낮게 여기저기 흩어져있었으며 특히 국경선을 전부 다 지킨다는 맹목적인 강박 관념에 의해서 충분한 예비대를 후방에 배치하여 급단적인 상황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를 하기보다는, 처음부터 모든 병력이 방어선을 지키고 한 치의 국토도 내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결과론적인 비평이긴 하지만 일본군처럼 다소 경직된 사고방식이었습니다.



 반면 독일군의 교리는 소위 '기동전'이라고 불리는데(이에 대해서는 극단적인 성공으로 그 신화가 과장되었다는 비판이 많이 있지만 편의상 기동전 이라는 말로 퉁치고 계속 쓰겠습니다), 아래 명언을 들으면 프랑스 군의 방어 교리와 확연히 다른 느낌이 들 것입니다.





"전차의 엔진은 주포만큼이나 강력한 무기이다" 라는 말은, 기동력이라는 개념이 단지 신속히 이동을 하는 것을 넘어서 상대방의 방어 진지 빈 틈을 포착하고 빠르게 진격하여 우회하고 보급로를 차단, 상대방 주력을 포위 섬멸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였습니다.




k2 전차의 재원입니다. 최고 속력이 시속 70km에 달하는데 이는 당연히 사람이 달리기로는 절대로 비빌 수 없는 속도입니다. 사람보다 더 크고 무겁고 튼튼한 저 덩치가, 사람보다도 더 빠르고 신속하게 돌아다닌다고 생각해보십시오. 홍길동 전의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라는 말이 생각나더군요.

https://www.chosun.com/economy/industry-company/2024/10/22/HIHGRE3P5FBVBOHEFJLCZJQAJY/





 재미있게도 1차 세계대전 직전, 그러니까 나폴레옹 시대의 승리의 비법은 빠르고 과감한 기동과 공격주의였습니다. 나폴레옹 황제가 특히 이것을 잘하여, 그 유명한 통조림 병조림의 시초가 되는 것도 보급을 가볍게하여 프랑스 군이 도보로 신속하게 이동, 상대방이 예상치 못한 지점까지 먼저 가서 방어를 하던 선제공격을 하던 유리한 이득을 차지한다는 개념은 1차 세계대전이 급격히 연쇄 폭발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은 실제로 참호전과 기관총 등 굉장히 방어적이면서도 지루한 소모전의 양상을 펼치게 되었으나, 개전 초만 하더라도 모든 나라들은 하나 같이 나폴레옹 시대로부터 내려온 필승의 비결 '신속한 군 동원과 선제타격'에 집착하여,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외교적인 해법을 시간을 가지고 투자하여 전쟁을 방지하기보다는, 상대방보다 먼저 군을 소집하고 동원하여 대규모의 군대가 상대방 국토를 유린하고 쳐들어가서 지휘부를 박살내는 시나리오를 생각하였습니다.



 때문에 1차 세계대전의 초기 양상은 서로서로가 오해와 의사소통의 부재가 겹치면서, 상대방이 군을 동원하여 나를 치기 전에 내가 먼저 군을 동원해야지 방어라도 할 수 있다는 강박적인 속도 관념이 적용되면서 각 국의 선전포고가 지나치게 동시다발적으로 연쇄적으로 작용하였기에, 전쟁사를 조금만 아는 사람들도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빨려들어갔다' 라고 서술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1차 세계대전을 직접 겪고보니? 참호와 기관총의 위력이 더욱 강력해졌고, 지루한 소모전과 방어전 양상의 전쟁은 전쟁을 단기 결전이 아닌 무조건적인(이게 중요합니다 무조건이라고만 생각하였기에 패착이었습니다) 장기전 양상이라고 생각하였으며, 프랑스의 교리는 다소 시대 변화에 뒤쳐지게됩니다. 전차라는 수단이 등장하여 참호를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은 했지만 미약하였기에, 선구자적 관점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 구데리안 장군을 비롯한 소수의 장군들만이 전차라는 빠른 무기로 적의 후방을 신속히 격파한다는 전략을 지지하였으나 대부분은 느린 보병의 진격에 맞춰 전차는 그저 보병을 지원하는 보조 수단으로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한 교리와 사고방식의 차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가 바로 무전기 보급인데, 기동전과 속도가 생명이던 독일 전차에게는 무전기가 꽤 괜찮은 성능으로 제공되어 보급되었으며 유기적인 협동과 원거리 통신이 발달하였습니다. 반대로 충분히 하드웨어 스펙이 뛰어나서 독일군을 당황하게 만든 영프의 중전차들은 분명 하드웨어 스펙은 뛰어났으나 전차를 운용하는 개념이 부족하였고 무전기가 보급되지 않아서 각 전차마다 상황 파악과 의사소통이 불가능하였고, 그러한 약점 때문에 한계를 맞이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의 대대적인 소련 침공까지만 하더라도 독일군의 전차는 튼튼하고 육중하며 거대하고 느리기보다는, 날렵하고 작고 빠르며 경쾌한 느낌의 2~3호 전차류가 주력이었습니다. 기동성을 극대화한 이 전차들은 빈약해보이지만, 충분히 보병을 상대할 수 있엇고(저걸 소총으로 어떻게 막어 ㅋㅋ) 동시에 인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동하여 진격할 수 있었습니다.

https://namu.wiki/w/2%ED%98%B8%20%EC%A0%84%EC%B0%A8




바로 이 붉은 화살표가 신속하면서도 과감한 독일군 전차와 보병의 진격 과정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프랑스 주력이 북쪽에 묶인 사이에, 독일군의 기갑 부대 등이 전선의 빈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그냥 그대로 지나쳐서 영국 해협까지 달려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저질렀고 실제로 보급이 못 따라갈 정도로 병사들이 각성제를 먹고 억지로 강행군을 할 정도였습니다.

https://namu.wiki/w/%ED%94%84%EB%9E%91%EC%8A%A4%20%EC%B9%A8%EA%B3%B5




 세계 최강의 육군력을 자랑하던 프랑스가 허무하게 6주만에 더욱 약하다고 평가받던 독일군에게 허망하게 패배해버린 것은 분명 우연과 행운도 겹쳤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너무 극단적으로 신격화해서도 안되지만 동시에 비판적이면서도 정확하게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필자 또한 처음에는 이러한 현상을 피상적으로 이해했지만, 교리라는 개념과 기본 철학의 차이에서 온 현상으로 설명 가능하지 않을까 하여 이렇게 길게 서술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1차 세계대전은 분명 이후 전쟁은 단순한 국지전과 결정적인 주력 간의 전투 몇 번으로 전쟁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총력전의 형태가 되어 결국 국력과 경제력, 인력과 산업력이 총체적으로 동원되어 전쟁의 향방이 갈릴 것이라는 점을 알려주었으나, 오히려 거꾸로 극단적으로 모든 국가들이 1차 세계대전의 그것과 비슷한 장기전으로만 전쟁이 갈릴 것이라는 착각을 주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신속하고 과감한 메타가 원래 정석인 줄 알았는데 장기전으로 변해버리니까, 이제는 거꾸로 무조건 장기전과 방어전 위주의 전략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오히려 그 틈을 다시 신속하고 과감한 기동전술로 뒤집어버린 것이죠.



 필자는 개인적으로 밀리터리 게임에서 여러 차례 소개해드린 HOI4라는 게임을 통해서 이 느낌을 직접 체감하였고, 특히 해당 게임에서 훌륭하게 고증되어 구현된 시스템인 '교리'와 일명 '촉수질'(전선에 구멍을 내고 사이사이 병력이 들어가서 적의 보급선을 차단하여 약화시키는 전술)로 현실적으로 묘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과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선택적이고 전략적인 집중이 필요하다는 경제학의 기본 개념이 게임으로도 구현되어 특정 캐릭터나 무기에 집중적인 혜택을 주는 여러 교리들이 다양하게 구현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게임인만큼 1차 세계대전 마냥 참호전을 그대로 답습하고 효과적인 참호전 플레이도 가능하기도 합니다.

https://www.reddit.com/r/hoi4/comments/1qd70n6/doctrine_tier_list_in_singleplayer/?tl=ko




해당 게임에서는, 상대방의 보급이 부실해지면서 지형의 차이로 인해 상대방이 패널티를 많이 받기에 효과적으로 사수할 수 있는 방어 라인이 몇 개 존재하기로 유명합니다. 중일전쟁에서 중국 플레이어들이 즐겨 쓰는 유명한 방어 라인을 그린 스크린 샷입니다.

https://arca.live/b/heartsofiron/125228439




 '전선'이라는 것은 일종의 선으로, 그 선을 기준으로 아군과 적군이 나눠지고 아군은 그 전선의 유지를 사수하는 기본적인 역할을 특히 보병이 수행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선에 구멍, 점을 뚫고 그 사이로 파고들어서 전선에 충격을 주는 것이 마치 벽에 못을 대고 망치를 박아 넣으면서 벽에 구멍을 내는 것과 비슷하여 '망치와 모루'라는 개념으로 해석이 되기도 하는데 이 개념은 비단 2차 세계대전 뿐만 아니라 고대 중장갑 보병들끼리 충돌하여 버티는 싸움을 하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구한 개념입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도 이러한 전선을 유지하는 기본적인 보병 병과와 더불어, 전차나 차량 등으로 무장하여 기동력과 방어력, 돌파력, 충격력이 있는 군대가 따로 조합되어 적의 약점 한 곳을 뚫어내고 그대로 깊숙히 들어가서 후방에 난장판을 펼치는 '충격군'이라는 개념이 독소전쟁 과정에서 소련군도 독일군이 전격적으로 선보인 개념과 비슷하게 모방해서 활요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에 비유자하면 프랑스 군은 모든 벽을 촘촘히 균등하게 나누어서(그마저도 균등하게 나누지 못했지만), 모든 전선에서 이겨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적인 사고방식을 가졌었다면, 반면 독일은 상대방을 마음놓고(?) 침략한다는 입장에서 좀 더 유연한 발상과 기동이 가능했으며, 일점에 강한 힘과 전력을 집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우회하여 전선의 주력이 묶여있는 동안 적을 포위 섬멸한다는 개념을 훌륭하게 구사합니다. 마치 바둑에서 끊임없이 서로 단수를 치고 잡아먹으려는 행위를 기초 전제로 하여 큰 전략을 수립하는 것처럼, 한번 우회한 부대가 상대의 후방까지 도달하여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보급을 끊고 약화시켜서 섬멸하고, 다시 전선이 새롭게 생기면 우회하고 일점을 돌파하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납니다.



 특히 인력이 많았으며 기동전의 교리를 확신하고 프랑스 침공의 성공에 자신만만해진 독일군은 소련에 대한 대대적인 기습에서도 비슷한 면모를 보여줍니다. 굉장히 빠른 속도에 집중하여 최대한 적의 내륙 깊숙히 들어가서 방어선을 펼친 적의 주력을 잡아먹고 포위한다는 개념으로 시작하여 실제로 영토 사수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후퇴 금지 명령까지 때려버린 스탈린과 대조적으로 초반에는 독일군이 소련군을 한 묶음씩 계속 각개격파하면서 포위 섬멸하며 상당한 양의 전과를 누립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소련은 프랑스와 달리 인력이 훨씬 더 많고 국토는 훨~~씬 더 거대했다는 점? 독일군이 꽤나 초기에는 성공적이었지만 저 거대한 소련이 스스로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전의를 다지면서 전선에서 시간이 지체되는 사이에 나름 군수 산업이 열차를 통해 공장 전체가 부품마냥 분해되고 뜯겨서 안전한 동쪽으로 이동하고, 계속해서 소련은 풍부한 인력을 징집하여 독일군에게 소모전을 강요하니 아무리 교전비가 유리해도 국력에서 차이가 있던 독일군은 점차 소모되고 지쳐가면서 그 초기의 빠른 돌파력과 속도를 잃고 점점 느려지고 정체되기 시작합니다. 625 전쟁도 초반 1년간은 북한군과 한국 연합군의 파죽지세로 인해 전선이 굉장히 빠르게 바뀌고 혼란스러웠으나, 점차 참호선이 형성되고 서로 방어전 위주의 성격으로 작은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 엄청난 포탄과 인명을 갈아 넣는 방식의 고지전이 펼쳐집니다.





겨우 언덕 하나, 산 하나를 위해서 수 많은 인명이 쉽사리 윗선의 명령에 의해서 갈려나가는 전쟁의 현실을 잘 보여준 영화 <고지전>은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나름 수작인 625 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조건적인 찬양이나 무조건적인 비난 비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균형 잡힌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https://namu.wiki/w/%EA%B3%A0%EC%A7%80%EC%A0%84%28%EC%98%81%ED%99%94%29







 지금도 이러한 육군의 교리 차이는 명백합니다. 예컨데 섬나라인 일본과 영국은 기본적으로 중요한 방어를 일단 해군이 1차적으로 맡습니다 육군이 방어를 책임지는 한국과 굉장히 느낌이 다릅니다. 때문에 일단 해군이 주력이면서 동시에 육군의 규모가 작고, 방어 중심이며, 특히 적이 상륙하는 순간 방어를 하는 것에 기초하기에 일본의 전차는 상륙하는 적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도록 맞춤 설계되어 있습니다.



 영국의 해병대 또한 유명한 예시인데, 영국은 인구가 그렇게 많지도 않고 마찬가지로 육군도 거대하지 않기에 소수의 정예 육군을 마치 포탄을 쏘듯이 활용하여, 중요한 곳에 쑤셔박고 집어넣는 느낌으로 규모가 작으면서도 그 작은 규모의 해병대 등의 상륙군이 돌파를 하고 적의 영토에 들어가는 역할을 합니다. 만약 한국과 북한이 전면전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요? 일부 국지전으로 끝날 리가 없습니다. 전차가 다닐 수 있는 길목마다 격전이 벌어질 것이 뻔하고, 모든 전선에서 육군들이 한꺼번에 몰려서 병목현상이 일어날 것입니다.



 마지막 시간에 주중 독일 군사고문단이 중국의 현대화에 기여한 점을 상당히 높이 평가하였는데, 1차 세계대전 이후 거대한 규모의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에 받춰주는 산업력 등이 충분해야 한다는 점은 중국에게 상당히 중요한 교훈이었습니다. 오합지졸의 머릿수만 많은 군대는 그저 보급을 쓸데없이 퍼먹는 낭비에 불과하며, 머릿수로 주로 밀어붙여서 이기던 중국 군벌들끼리의 전쟁과 달리 현대적인 군대를 위해서는 과감하게 규모가 축소가 되면서도 정예화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시켰습니다.



 당시 이탈리아 군사고문단도 중국에서 활동을 하였는데, 당시 이탈리아 장교들은 1차 세계대전으로 새롭게 떠오른 혁신적인 개념의 병기인 항공기만으로 전쟁이 성패가 갈릴 것이라는 다소 과감한 생각을 했지만 여전히 육군에 대한 보조 수단으로 복합적인 역할이 요구되는 항공기에 대해서 이탈리아보다는 좀 더 정확히 예측을 했었고 여전히 주력은 육군이었습니다.





독일군의 교리 뿐만 아니라 그에 받춰줘야 하는 산업 기반, 기술력, 여러 군수 장비 등에 대한 생산시설의 필요성을 종합적으로 조언하며 독일의 민간 회사들까지 중국에 소개하면서 중국군 현대화에 큰 기여를 한 막스 바우어.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kwon20001&logNo=222037235540&referrerCode=0&searchKeyword=%EC%A3%BC%EC%A4%91%20%EB%8F%85%EC%9D%BC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지기 직전 고요했던 시기, 아직도 새롭게 다가오는 전운에 대비하여 정확히 가장 적합한 맞는 전술에 대해서 불투명하던 시기 독일 장교들의 조언은 현실성과 예측력이 충분했습니다. 영국 등 섬나라라는 특성을 바탕으로 소규모의 육군을 운용하던 나라는 오히려 군대의 크기가 훨씬 줄어들고 특히 사기가 높고 전문 지식이 있는 전문가로 이루어진 모병 집단이 답이라고 생각했으며, 적백내전 시기부터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것이 기본적인 메타였던 소련은 비숙련 노동자라도 일단 총을 쥐어주는 순간 나름 제 값을 한다는 생각에 풍부한 인력을 총동원하는 전면적인 거대한 육지전을 기본 전제로 깔았습니다.



 마치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에는 확실한 직업과 분야가 정해지지 않았다가, 나름 특기와 특성, 적성을 찾고 좁은 범위의 전문가로 성장하여 자신의 분야와 장점, 주특기로 먹고 사는 것과 비슷하게 중국군 또한 일단은 현대전에 맞게끔 기초 성장을 통해 최소한의 체력을 기르기 시작합니다. 일단 중국은 현대전에 걸맞는 교리와 철학, 군사 체계, 교육 시스템, 막대한 인력을 보급할 철도와 도로망 인프라, 그들에게 쥐어줄 무기를 생산할 공장 등이 절실하였습니다. 나름의 방어 전략을 수립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로, 일단 다가올 것으로 명백한 일본과의 전쟁에 대비해서 체계적이고 나름의 준비가 필요했으며 어쩌면 일본은 1937년 전쟁을 우발적으로 터뜨리면서 중일전쟁을 시작한 것을 행운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착실하게 준비되어가던 중국군의 현대화가 완료된 시점이었다면 국가적 잠재력이 동원되어 일본군은 전쟁에서 훨씬 더 가혹한 대가를 치르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독가스 등의 일본군의 공격에 허무하게 와해되던 중국 군벌들과 달리 국민당군은 오히려 부분적으로 우월한 독일제 무기들을 바탕으로 훨씬 튼튼하게 잘 버티기 시작하였고, 단기 결전으로 쉽사리 끝나리라 낙관하던 일본 군부는 지나치게 길어지는 장기전의 늪에 당황하고 여러 실수와 학살을 저지르게 됩니다.






 결국 각국의 현실적인 특성, 지형적 특징, 산업력과 기술력, 군대를 구성하는 인원들의 교육 수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각자에게 나름 잘 맞는 옷이 다 다르게 존재한다는 것이고, 그러한 점을 극대화하여 잘 다룬다면 충분히 전쟁을 잘 수행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무조건적으로 특정 국가의 방식이 모든 상황에 만능적인 완전무결한 해법은 아니고, 오히려 각자 다른 상황과 현실에 적합한 전술과 전략이 요구된다는 점이 이번 글의 교훈입니다.



 인력이 풍부한 나라는 그 장점을 십분 발휘하여 응용할 수도 있고, 미국처럼 극단적으로 산업 기술과 군사력, 경제적 체력이 강한 나라는 굉장히 가성비가 나쁘고 비싼 최첨단 무기도 아낌없이 쏟아붓는 전략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한국군의 k9 자주포는 현실적인 경제적 한계 속에서 나름 최저가로 대량으로 찍어내어 대한민국 전 국토 방위에 기여하는 대표적인 예시이며, 한국의 경우에는 미국과 달리 항공모함이 절실하지 않기에 당장 해군력보다는 육군력의 성장이 시급하였고 실제로도 여태 그렇게 발전해왔습니다.





영화 등의 매체에서 자주 등장하는 특수 부대의 4안 야간 투시경은 개당 가격이 약 5천 만원 정도인데, 한국군 몇 십 몇 백만에게 모두 이것을 사줄 수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돈이 썩어 넘치면 그 짓을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https://m.blog.naver.com/mc341/221629072503




 이처럼 군사 교리나 철학이라는 것은 그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닙니다. 열심히 하자 노력하자 최선을 다 하자 이런 말은 어디에나 쓸 수 있는 공허하고 속 빈 말에 불과하지만, 각 국이 나름의 현실적인 타협을 통해 최적화된 전략을 세우고 그것을 함축적으로 제시하고 정리한 것이 바로 교리이며 그 좋은 교리는 각자 우열을 쉽게 메기기 힘든 각자만의 노하우이자 최적화 비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둑사도 그렇고 전쟁사도 그렇고 전략이라는 것, 교리나 철학이라는 것은 결국 돌고 도는 것이며 어떤 하나의 메타가 영원하게 유지되지는 않았습니다. 새로운 메타가 정착되고 자리잡으면 그것을 공략하기 위한 혁신과 도전이 발생하였고,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이전과 달라진 환경이 작용되어 또 다른 새로운 메타가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방침으로 자리잡기도 하였습니다.



 당장 수능 국어가 80분이 아니라 800분이 되어 조건이 달라진다면 수험생 여러분의 풀이 방식과 전략, 학습법도 대단히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800분간 열과 성을 다해서 초집중을 쥐어 짜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느긋하고 천천히 여유있게 에너지를 아끼면서 장기적인 사고를 다듬는 식으로 교육 방향과 방식이 전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다만 수능이라는 현재의 시험이 그저 현재와 같은 형태를 띠고 있으니 그것에 맞추어 다들 비슷한 제한 속에서 준비하는 것에 불과하지, 또 각자의 성격과 성향, 학습량으로 디테일하게 들어가는 순간 또 서로 다른 전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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