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돗개 [723230] · MS 2016 (수정됨) · 쪽지

2019-11-14 12:09:09
조회수 21,412

시계 부정확으로 국어 끝나고 시험 포기 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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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삼반수였습니다. 무휴학반수.


나름 열심히 했습니다. 성적도 잘 나왔었고.


학점과 반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을 거라는 편견 깨부순다는 마음으로 시험장에 입실했습니다.


근데 오늘 제가 시계를 잘못 세팅했었나봐요.


제 시계상으로 국어 시험시간 2분 남긴 때였는데


종소리가 나더라구요.


마킹 절반밖에 못했습니다. 


문제는 다 풀었습니다. 검토 중이었지요. 


제 잘못이었기에 감독관님께 감정의 호소도 할 수 없었습니다.


만회가 불가능한 OMR이라 그냥 중도 포기하고 시험장 나왔습니다.



복도에서 감독관님께 말씀드리고 감독관실 갈 때까지는 그냥 무감정이었습니다. 머릿속도 마음속도 그냥 허했어요. 아무것도 없고 그냥 무(無)의 상태였습니다.


근데 포기 확인서 작성할 때...종이에 눈물이 떨어지더라구요. 


괜히 저 때문에 감독관실 안의 분위기가 숙연해져 재빨리 퇴교했습니다.


수위 아저씨가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런데 


나갈 때, 수위 아저씨가 절 한 번 안아주셨습니다.


"학생, 괜찮아... 수고했어... 정말 수고했네..."


재수 실패했을 때도 울지는 않았습니다. 근데 그 한마디에 근 몇 년만에 펑펑 울었습니다.


정말 흐느끼면서....사람이 정말 서럽게 울면 그런 소리도 내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자취방에 왔습니다.


제가 지금 저의 감정이 어떤 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확실한 건.... 썩 유쾌하진 않네요. 




그리고 집에서 누워서 성찰해봤습니다. 제가 왜 그렇게 수능에 집착했었는지...

왜 그리 필사적이었는지......


생각해보니 전 솔직히 그냥 인정 받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전 ADHD와 우울증 및 강박증/불안증이 있습니다. 그리고 고지능자이지요. 약 1년 전에 진단받았습니다. 재수 때 이걸 알았으면 전 지금 오르비를 안 보고 있을 수도 있었겠네요.


그리고 진단 받기 전부터도, 아주 옛날부터 항상 느껴왔습니다. 

뭔가 생리적인 한계로 내 능력이 충분히 결과로 도출되지 않는 것 같다고.

자연스레 제 능력을 이 질환때문에 증명하지 못하는 게 항상 제 콤플렉스였습니다.

그리고 21년에 걸친 저의 선천적/후천적 신경질환을 고칠려고 고군분투했습니다. 가치관을 교정했고, 강박증은 전문 서적도 구입해 연구하며 의사선생님께 조언을 받으며 고쳐나갔습니다. 그리고 특히 ADHD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매한순간 행동 연습을 했습니다.  

그 결과 제 인생의 전환기라 할만큼 큰 성과가 있었고... 올해는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하는 욕심마저 생겼습니다. 급기야 마음에 없었던 무휴학반수까지 하게됬습니다.


근데 이게... 나름 저한텐 의미가 컸던 도전이었는데... 너무 허무하게 끝나버렸어요.


끝나고 다시 돌아보니,

저는 머릿속으로는 남의 말, 시선, 인정 이런거 좆까고 내 판단, 내 주관대로 마이웨이로 살아왔고

실제로 결과도 잘 나오니까 저 자신에 도취되어 살아왔지만


속마음은 그냥 남들이 인정해주길 바랬던....

남들이 우러러봐주기를 원했던....

남들이 칭찬해주기를 바랬던......


그냥 그런 어린 애였던 것 같습니다. 전 제가 또래보다 성숙하다고 오만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네요.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계획을 다시 짜야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과거를 돌이킬 수는 없으니까요. 


과거의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실수를 철저히 분석하고,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되 변수를 항상 고려하면서

현재에 집중하는 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겠죠.




하지만...

오늘은 조금 쉬고 싶네요. 오랜만에 묶여둔 눈물 다 뱉어내고 싶네요.


이젠 저에게도 봄이 왔으면 좋겠어요. 봄햇살을 못 본지 너무 오래됬어요.






수능 한파 바람이 다른 여느 때보다 괜히 시리게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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