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괴물 [26215] · MS 2017 · 쪽지

2004-08-08 20:04:49
조회수 4,669

파란만장 뒷산괴물 대학생 만들기 - (1) 여전히 개념없던 고3의 초, 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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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리플을 달아주셨더군요. -_-a

제목과는 다르게 그리 파란만장하지도 못하고 ;;

제가 글재주가 부족해서 별 재미도 없을지 몰라요 으흑 ;

그리고 부족한 글솜씨로 인해서 그렇게 긴 연재(?)는 못할 것 같습니다. ^^;

Intro라는 이름까지 붙여둔 게 민망해서 최대한 많은 일들을 담으려 노력중이에요 ^^;

일단 참고자료로; 제가 집을 다 뒤져서 찾은

고1, 고2시절 모의고사 성적을; 공개합니다. 으흑 부끄럽 ;

고1 9월 총점 291   언어 108  수리 38 ;;  과탐 33  사탐 54  외국어  55

고2 4월 총점 271   언어 96   수리 43    과탐 31(72만점;;)  사탐 32  외국어  69
  
    5월 총점 251   언어 100  수리 34    과탐 33.5  사탐 30.5 외국어 61
    (3학년 모의고사였음)
  
    6월 총점 286.5  언어 98   수리 44   과탐 47.5   사탐 33.5 외국어 63.5
  
    9월 총점 265   언어 80    수리 32   과탐 51    사탐 36   외국어 66
  
    11월 총점 290  언어 102   수리 38   과탐 38    사탐 37   외국어 64

2학년때 내 모의고사의 특징을 하나 말하자면

점수만 봐서는 문과인지 이과인지 알아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_-

총점기준 가장 좋은 백분위는 83-_-이었다. 심히 압박스러운 결과였다.

물론 이러한 점수를 맞으면서도 수능에 대해서 전혀 개념없던 나는-_-

지망학교에 당당히 서울대-_-를 쓰곤 했다.

누차 말하지만 이것은 결코 자랑이 아니다. ㅠ_ㅠ

고등학교 올라와서 가장 공부를 많이 한 겨울방학이 끝나고 나는 고3이 되었다.

군인과 함께 사람 축에 못끼기로 소문난 바로 그 고3말이다. -_-

3월 말경에 점수가 곧 수능점수로 이어진다는 3월 모의고사;를 치르게 되었다.

이미 몇 년이 흐른 일이라 자세한 기억은 안나지만 그 당시 영어 듣기 1번이

신문사 건물을 찾는 문제였는데 보기 4번인가-_-건물에 OO신문 이라고 써있었다.-_-

D사의 모의고사를 집근처의 D학원 분원;에서 보았는데 이 모의고사에서 나는

총점 327점 처음으로 2등급 진입의 쾌거를 이루어냈다.
(앞서도 말했지만 부끄러울 따름이다.;; )

그 당시에 내 짝이었던 우리반 2등녀석이 328;점을 맞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굉장한 결과였다. 물론 그 아이는 망친;시험이었고 나는 대박;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는 J사-_-모의고사였다.

뭐 이것저것 다 떠나서 마냥 기분이 좋았다. 여러번 시험을 보면서 느낀 것이지만

나는 D사의 모의고사에 더 강했던 것 같다. -_-a

암튼 그때는 \'운이 좋았군...\' 따위의 생각은 하지않고;

그냥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이려니;;;하고 말았다.

마음이 풀어진 것인지 결국 나의 성적은 그 후로 조금씩 조금씩 떨어졌지만

반면에 만담가로는 더욱 명성이 높아졌다.-_-;

2학년 때 만난 좋은 파트너;가

3학년 때도 같은 반이 되었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남철 - 남성남, 서수남 - 하청일의 모습이었다. -_-;

그리하야 우리는 \"또라이 형제\"로 이름을 날렸고

3학년 담임선생님은 요즘도 나를 이름대신 개그맨;이라고 부르신다.

이랬으니 공부는 했을 턱이 없다.

바로 한달 후인 4월 모의고사에서부터 점수는 떨어졌다.

원점 315-_-a

하지만 어찌된 노릇인지 교내석차는 생각보다 좋았고

무엇보다도 언어는 114점 -_-a 전교 2등이었다. (물론 이때는 모의고사가
쉽게 나오던 시절이다.)

게다가 내가 개인적으로 맘에 안들어하던 옆반 L군을 제친 것까지 겹쳐서

그저 우쭐할 뿐이었다. -_-

이때도 역시 개념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조금은 정신을 차렸는지

모의고사 예비지원란에 서울대가 아닌 연대-_-가 써있었다. 허허 ;

정신을 못차렸으니 공부는 했을 리가 없고 성적은 1점도 오르지 않고

시나브로-_- 떨어졌다.  

급기야 6월 모의고사에서는 백분위 68-_- 반석차 10등의 위업을 달성했다.

다만 발전한 것이 있다면

2학년때와는 다르게 팔씨름 반랭킹 1위를 다퉜다는 것이다. -_-

하루평균 10회의 팔씨름을 했다.

게다가 1학년때 국어선생님의 총애를 받은 반면에

2, 3학년 국어선생님과는 마찰이 생겨서 국어시간은

정해놓고 자는 시간이었다. -_- 물론 국어는 1주일에 5번 이상이었다.

땃쥐님의 담당교사와 과목은 별개다;라는 말을 알았어야 했다.

이러다보니 하루 수면시간이 최대 14시간에 이르렀다.

학교에서 6시간 독서실에서 2시간 집에서 6시간.

그렇다. 나는 고3이라 사람이기를 포기하고

수면기계의 길을 택한 것이엇다. -_-

초반에 조금 올랐던 성적은 아랑곳하지 않고

성적이 계속해서 떨어지니

특단의 조치로 담임선생님은 어머님께

\"절대로 명문대학 못갑니다.\" 라고 말씀을 하셨고

나는 이때부터 독을 품고 공부를 했어야 하는데 -_-

그냥 그러려니;; 하고있었다.

3월달에 뽀록으로; 맞은 60점대의 수학점수는 날로날로 떨어졌고

언어점수는 꽤나 잘나오는 편이었다.

외국어 역시 적당히 나와줬으나

수탐2 점수는 형편없어서

외국어과 수탐2가 동점;인 경험도 해봤다.

(사실 2학년 4월은 외국어가 더 높았다;;; )

이런 결과가 계속 나와서인지 주변의 친구들과 부모님은

나의 문과행을 계속 종용했고 난 완강히 반항했다.

이런 나에게 변화의 계기가 생겼으니 그것은 바로

2학기 수시였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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