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괴물 [26215] · MS 2017 · 쪽지

2004-08-07 13:31:09
조회수 4,538

파란만장 뒷산괴물 대학생 만들기 - In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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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도 꺾인 이 시점에서 할 일이 없기도 하고...

그동안 여러 수기를 재미있게 보기도 했고...해서

수기를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여기 쓰시는 다른 많은 분들처럼 ㅚ수도 아니고 -_-

평범한 학생일 뿐이지만 가끔은 이런 사람도 수기를 써야

수많은 평범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용기내어 써봅니다. 글재주도 매우 부족하지만 잘봐주세요-_-a



나는 어렸을 적부터 승부욕이 매우 강했다. 허나 예외가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공부-_-였다. 일상적인 승부라 하면 짧은 시간내에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엄청난 근성;으로 이길 수 있었지만 공부는 평소에 묵묵히 해온 것이

시험 때 발휘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근성으로 시험 전날 용을 써도 평소에 해온

아이들에게 이기기 힘든 것이었다. -_-;


누구나 그렇듯 국민학교-_-시절 나는 공부를 매우 잘했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쉴새없이 떠들기만 하면서도;

항상 성적은 좋았다. (뭐 그때 성적이라고 할게 있겠냐만;;;)

중학교에 입학할 당시만 해도

나는 내가 계속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반배치고사는 나의 그런 생각을 송두리째 -_-;

날려버렸다.

반에서 7등-_-a

일단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오르비에 있는 수많은 ㅚ수들 중 하나는 아니다.-_-

나는 배치고사를 보고 약간의 충격을(나는 좀 태평;한 타입이다.) 받았고

주말마다 구립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두달 가량의 시간이 흐르고 중간고사를 쳤다.

반에서 2등. 전교 14등. -_-a

이것은 내가 중학교 3년 동안 낸 가장 좋은 성적이다.;

중학교 3년동안 나는 반에서 2~8등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나름대로 상위권\'인 학생일 뿐이었다.

당시에 서울과학고의 180여명 서울대 지원자 전원합격;으로 인해서

특목고 열풍이 불기 시작했는데 내 성적은

비교적 낮은 외고를 간신히 들어갈 정도였다.

특목고에 가고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당시에 내 꿈은 공학도;였기 때문에

크게 욕심을 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는 외고는 비싸다;는 것이었다.

당시에 집안 형편이 꽤 어려웠기 때문에 실력을 떠나서 외고에 가려는 꿈은 사치일

뿐이었다.

그리하면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선지원을 하지 않고 근거리 배정을 받으면

가게 되는 학교는 교통이 불편해서 통학시간이 30분이상 걸렸다.

대체 뭐가 근거리인지 납득할 수가 없다 -_-;

다행스럽게도 4:1의 경쟁을 뚫은 (물론 뺑뺑이;) 나는 1지망 학교에 배정받았고

이곳은 통학시간이 20분정도 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행정의 문제점은 여기저기에서 많이 드러나고 있다;;

공부 좀 해보겠다는 푸른 꿈을 가지고 들어간 고등학교.

이곳에서도 나는 중학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성적은 더 떨어졌다.

첫시험 평균 74점 -_-; 울고 싶었다.

하지만 시험이 극악;의 난이도였기 때문에

반에서 5등, 전교에서 34등을 마크할 수 있었다.

(Ray님께서 내신이 엽기적이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내 내신은 영장류의 것이 아니다. -_-)

나중에 알게된 사실은 전교 1등이 평균 89점이었다는 것.

요즘 같은 학교시험이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_-

그나마 중3때까지는 책이라도 꾸준히 읽었으나

고등학교 1학년때 컴퓨터를 장만하는 바람에

그동안 유지해온 책과의 1촌을 끊고 ;

새로이 컴퓨터와 우정을 쌓아갔다.

물론 그러는 동안 성적은 말이 아니었다.

고1내내 반에서 5등 안으로 들어가본 적이 없었다.

많은 ㅚ수분들을 보면 뭐 전교5등;도 안타까워 하시던데...

부끄러울 따름이다. -_-

그렇게 어영부영 고등학교 1학년을 보내던 중에

다니던 학원에서 생애 첫모의고사를 보게되었다.

400점 만점에 291-_-a 백분위 40;이라는 멋진 점수를 받았지만

수능에 대해서 전혀 개념없던 나는 상처도 받지 아니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통탄할 노릇이다. -_-

이런 식으로 1학년을 마치고 이제 고등학교 2학년. 문,이과를 선택해야 할 때가 왔다.

앞서 말했듯이 그동안 꾸던 공학도;의 꿈으로 인해

나는 이과로 가게되었다.

학교 국어선생님의 총애;를 받기도 했고

나름대로 말빨 좀 세웠던 나인지라

주변에서는 문과를 권유하기도 했지만 나는

이과를 고집했다.

1학년 때 못차린 정신은 2학년 때도 차릴 수 없었다.

공부는 여전히 안했고

다만 여러 학생들과 선생님들 사이에서

만담가-_-로 소문이 난 것과 팔씨름 반랭킹 2위를 다툰 것이

내 고등학교 2학년 생활의 전부였다. -_-

그나마 2학년 때 본 모의고사는 백분위가 60;으로 올랐다는 것이

조금의 위안이 되었다. 물론 이것은 고1 때보다 고2때 모의고사 보는 인원이

더 많아서 하위권이 늘어났기에; 생긴 현상일 뿐 점수는 오히려 더 떨어져

270을 맞았을 뿐이다. -_-

그렇게 1년을 보내고 2학년 겨울방학이 왔다.

이제 고3이다라는 불안감이 작용한 것인지

조금 빡세게 하고자 하는 마음에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는 학원엘 갔다.

거의 재수학원의 시스템이었다. -_-;

그나마 여태까지 보낸 나날 중 가장 빡세게 (물론 지금 생각하면 이때도

공부 징그럽게 안했다. -_-;) 겨울방학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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