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인문학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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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인문학을 하려는 수험생 및 대학생 여러분을 위한 글입니다.
* 좀 기니까 수험생분들은 수능 끝나고 읽으셔도 좋겠네요.
모토: 나는 오바마를 지지하라고 설득하는게 아닙니다.
오바마를 뽑으려는 사람들이, 투표를 마치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 어느 오바마 지지자
전 지금 4학년인데
1학년 때까지만해도
게임을 정말 좋아했죠.
아 물론 중학교때부터 말이죠.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게임을 안하고 있네요.
왜 그런지 생각해봤습니다.
왜 내가 스타 대신 순수이성비판을 들고 있는가.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재밌어요.\"
1학년때까지만 해도 저런 말을 접하면
다른 세상얘기인줄 알았고
나랑은 상관없는거고
그냥 저런 신기한 사람도 있구나 하고 넘겼습니다.
만,
어느 순간 제가 저렇게 되어 있습니다.
주위에서는 저를 희한하게 바라봅니다.
언젠가 어느 교수께서 저더러
\"이 학생은 참 대단한 학생입니다.\"
하며 칭찬하셨습니다.
저는
\"아니요.. 저야 뭐..
칸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이랬더니
옆에 한 대학원생이
\"지금 자신을 칸트에 비교하는거에요?(ㅋㅋ)\"
이러더군요.
여러분,
칸트.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도 칸트와 같은 인간입니다.
다만 방법을 모를 뿐이죠.
인문학 길잡이를 해드리고 싶어서 글을 시작했습니다.
인문학은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테크트리가 있고, 레벨이 있습니다.
렙업 잘하는 방법이 있고, 여러 팁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재미있습니다.
(벌써 뒤로가기 누르는 소리가 들리네요)
한 번 시작해볼까요.
(아참, 미리 말씀드리지만, 아래 적은 얘기를 저도 아직 못하고 있습니다.
말만 잘하는거죠...)
대학에 입학하시면,
2학년 되실 때까지
영,불,독,라틴어,한자 를 마스터 합시다.
마스터 = 원어민수준 입니다.
\"저걸 언제 다해!\"
\"저걸 혼자 어떻게 다해!\"
네.
저걸 2년동안 혼자 다 할 수 있습니다.
마스터는 힘들지만, 원서 읽을 수는 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교수께서 20세기 초에
동경대에 입학하시고나서
독어 수업 시간 때 일이랍니다.
독어 교수가 하는 말이
\"독어, 여러분 혼자 다 할 수 있습니다. 끈기만 있으면 됩니다.
일본에서 가장 독어에 뛰어나셨던 분은 죽을 때 독어 문법책을 손에 들고 죽으셨습니다.\"
여러분,
좋은 교재 넘치고 넘칩니다.
혼자 다 할 수 있습니다.
하루 10시간 꾸준히 한다면
2년이면 충분합니다.
가장 힘든건, 하루 10시간 할 수 있는 끈기 입니다.
스타는 10시간 하겠는데, 공부는 도저히 못하겠다고요?
언어 공부하는게 정말 재밌다는건 좋은 교재를 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
단어 하나하나 알아가는 느낌,
새로운 세상을 접해가는 느낌.
나중에 쌩땍쥐베리의 어린왕자를 원서로 읽을 수 있다는 기대,
키케로의 수사학을 음미할 수 있다는 기대,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를 읽을 수 있다는 기대,
세네카의 주옥같은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기대,
셰익스피어, 푸코, 칸트, 헤겔, 니체........
명문대?
갈 필요 없습니다.
좋은 교수 한 분,
좋은 책.
이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왜냐고요?
우리나라에 명문대 따위는 없기 때문이죠.
명문학생이 없는데, 명문대학교는 어디 있나요?
성균관대 의대 교수 가운데 공 교수라는 분이 계십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는 유명하신 분입니다)
요즘 이런 말을 하십니다.
\"요즘 학생들은 아예 내가 상대를 하지 않아. 꼴보기도 싫어.
애들이 벌써부터 콧대나 들고 다니고, 영 미래가 없어.\"
저는 지금 특정 대상을 꼬집는게 아닙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 대학생 전부를 반성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국감이 있었죠.
국회의원들 하는 모습 다 보셨죠.
대통령 및 행정부 다 보셨죠.
지금 우리는 그들을 비난할 때가 아닙니다.
우리도 이대로 가면,
똑같이 그럽니다.
국회의원들이 어쩜 저렇게 무식할 수 있냐고요?
명문대 들어가서,
엘리트 의식에 빠져 살다가
자기가 최고인줄 알고
남을 꺾고 높은 자리 올라가는 비법만 죄다 얻은 다음
그 자리를 딱 얻었는데,
안 그럴거 같나요?
나는 정말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
나만큼은 법의 정신을 지키는 판사가 되겠다.
홉스, 카우프만 안 읽고 될까요?
레미제라블 한번 안 읽어보고 판사가 된다고요?
그럴려면
명문대 들어가는거 다 쓸모 없습니다.
서울대 들어가는거 오히려 빗나가는 지름길입니다.
명문대가 좋은건 딱 두가지 이유입니다.
좋은 교수진,
좋은 도서관.
나머지는 학생들이 학교를 대표하는 겁니다.
캠퍼스에 순수이성비판을 들고 다니는 학생의 수,
수업에 늦을까봐 뛰어가는 학생의 수,
도서관에서 원서를 읽는 학생의 수,
무거운 책들을 낑낑거리며 강의실을 찾아가는 학생의 수,
땅만보고 생각에 잠겨 걷는 학생의 수,
연애할 시간도 없이 줄창 스터디 뛰는 학생의 수.
명문대.
우리나라에 지금 없습니다.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 생기리라는 희망도 줄어드네요..
따라서 명문대 못 갔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습니다.
인문학에 명문대 간판 따위 필요 없습니다.
\'나중에 교수될껀데 인맥이 중요하다던데?\'
그렇게 교수될꺼면 인문학 때려 치십시오.
인문학은 그런게 아닙니다.
그렇게 교수가 된다한들, 제대로 된 교수이겠습니까?
수업 시간 잠만오는 지금의 교수들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학생들 피땀어린 돈 그냥 받아먹고
학회장이나 이 자리 저 자리 감투만 탐내는 교수와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좋은 교수와 도서관만 있다면 충분합니다.
명심하십시오.
자, 영,불,독,라틴어,한자
휴 겨우 끝냈다.
이렇게 해내셨다고요?
대단합니다.
그런데 공부하다보면 느낄 것이지만,
미리 말씀드릴게요.
공부하는 자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딱 두가지 입니다.
첫째는 정직성,
둘째는 완벽성 입니다.
정직하다는 것은,
아는 것은 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
이것을 할 줄 알고, 하는 것입니다.
요즘 수업들어가면 교수들께서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대답을 하도 안해서, 우리 교수들끼리 그럴 때 뭐라고 하는 줄 아나요?
벽보고 수업한다고 하죠.\"
정직한 학생은 교수와 말을 많이 합니다.
\"여러분, xx가 뭡니까?\"
\"여러분, xx의 xx가 뭡니까?\"
라고 물었을 때,
정직한 학생이라면 둘 중 하납니다.
\"yy 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정직함은 공부의 기본입니다.
알아도 모르는 척,
몰라도 아는 척.
이건 그 때 그 순간은 넘길 수 있어도,
절대 발전이 없습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입니다.
정직해야 완벽할 수 있습니다.
빠뜨리지 않아야 합니다.
빈틈은 메꿔야 합니다.
누가 푸코 발표를 했다.
그런데 난 푸코에 관심이 있다.
그런데 발표를 이해 못하겠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냥 열받아 하면서 집에 돌아갑니까?
아니죠.
가서 발표자를 붙잡고 묻습니다.
\"저기 발표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xx는 알겠는데, yy 는 뭔가요?\"
이런식으로 솔직해야 합니다.
겉멋 신경쓰다가는 본질에서 멀어집니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한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한다.
모르는 것을 채워간다.
이게 공부하는 방법입니다.
이런 사람만이 나중에 감투 욕심 안내는 학자가 됩니다.
감투에 욕심을 내는지 아닌지는
딱 하나만 보면 됩니다.
그 사람이 스스로 그 자리를 찾아 다니는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여러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인지.
정직한 학자는 감투 따위는 탐내지 않습니다.
무엇이 진짜인지 알기 때문이죠.
감투 탐내는 자는, 감투가 본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 모른다는, 자기 부인을 하는 자입니다.
습관만큼 고치기 힘든것도 없습니다.
자, 3학년이 되었다면,
전공 수업을 듣습니다.
이 때 원서를 쉽게 읽을 수 있겠죠.
이 때 각종 참고문헌 모두 찾아 읽습니다.
그리고 교수와 많이 얘기를 나눕니다.
교수가 금새 실력을 알아볼 겁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구글 검색하면 온갖 자료 넘칩니다.
영어만 되도 잘 줏어 읽을 수 있습니다.
칸트를 듣는다면, 순수이성비판을 원어로 직접 가져다 독파합니다.
(이하 생략)
정직하고 완벽한 공부를 하는 것은,
처음이 정말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만 넘기면
미친듯한 세상이 펼쳐집니다.
게임?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칸트라는 천재가 평생을 다 바쳐 펼쳐놓은 미지의 세상을 직접 탐험할 수 있는데
저글링 몇마리 컨트롤 하는 걸로 비교나 할 수 있을까요?
음 글이 꽤 길어졌군요.
일단 여기까지 오셨다면 학적으로 레벨5는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학에도 레벨이 있듯이
학생에도 레벨이 있죠.
레벨5면 고려대 도서관 수준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여기까지 오셨다면 인문학이라는 세상의 출입구에 도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문을 열고 들어갈 일만 남았습니다.
오바마를 지지한다면, 투표장에 가서 투표를 해야겠죠?
아 참, 중요한걸 빠뜨릴 뻔 했네요.
수험생 여러분 모두 자기실력 발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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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하려는사람은 아니지만 ㄷㄷ 존경합니다.ㄷㄷㄷㄷ
좋은글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최근에 부족함이 자꾸 보이고, 그만큼 더 갈증이 나던차에
좋은 자극이 되었습니다.
가슴이 콩닥 거리는 글이네요 .. 좋은 글 읽고 갑니다. ^^
멋져보이긴 하지만 실상은 말도 안되는 글이네요
순수이성비판은
학부생이 무슨 먼나라 이웃나라처럼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_-
영불라틴어독어를 2학년끝나기전에 마스터한다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건 좀 심하셨네요
관심있는 철학분야
예를 들면 독일 관념론쪽에 흥미가 있으면 독일어를 배우면 되고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이나, 실존 철학에 흥미가 있으면 프랑스어를 배우고
그러면 되는거지 그게 솔직히 말이 됩니까?
이건 마치 고등학교 올라가는 학생한테
고등학생이라면 1학년 안에 수2미적까지는 확실하게 끝내놓고 대학교 미적분학정도는 들고다녀야 합니다
제 눈에는 그렇게 밖에 안보입니다..
순수이성비판요? 제가보기엔 그거 겉멋이에요.
그리고 하나 덧붙이자면
글을 열심히 쓰시면서 가장 중요한거는 빼먹으셨네요
순수이성비판 같은 책을 읽기 전에 해야하는 개념공부 말입니다.
본질, 실재, 실존, 직관, 명석, 판명, 실용, 이데아 등등등
이런 개념들에 대해서 알기 쉽게 설명할 수 있을정도 로 꼼꼼히 공부해야하고
철학사를 공부하면서 흐름을 읽고 시대에 따른 연관관계를 읽을수 있어야지요.
이러한 선결 조건 없이 다짜고짜 외국어 공부해서 순수이성비판 들어라?
혹시 그 책 들고다니면서 느끼는 존경의 시선을 즐기고 계시는건 아니신지요.
제가 고등학생때 에띠엔느 질송의 중세 철학사 들고다니면서 느꼈던 그런 기분을 지금도 즐기고 계시지는 않은지 걱정이 듭니다.
학생들에게 용기를 북돋으려는 글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비약이 너무 심하시네욤
글쓴분께서 공부를 하는 \'방법\' , 공부를 대하는 \'태도\' 를 우선 말하고자 하신 것 같습니다 ;;
CESTVS/
네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읽으시는 분들 CESTVS님 글도 같이 보시고 균형 잡아주세요^^
\'정직성, 완벽성\', 정말 가슴 깊이 새겨두겠습니다.
멋진 글입니다~
정직성, 이거 하나 새기고 갑니다~
재밌게 읽었습니다.
철학도라면 외국어를 공부해야된다는게 일본에서 모 철학자 독일인인가 그분에서 비롯된걸로 아는데 가물가물
서강대학교 철학과 모교수님 생각나네요.
그분의 특강(기독교강좌였습니다.)를 들었는데
나오는 언어가
히브리어,라틴어,영어,독일어,프랑스어,일어,한자,헬라어,네덜란드어 정도였음(전성기에는 중국어반정도에 벨기에어정도 제가 기억나는게)
그분이 훈련소에서도 책을 읽었던 분이라고 하네요 훈련소기간동안 4권이였나(철학관련으로요)
참 존경하시는분임(교수님 어서 쾌유하셔서 사도신경강해를 마무리지어다실라는 ㅋ)
지금 저글링 컨트롤을 무시하다니..
지금 저글링 컨트롤을 무시하다니..2
좋은 글 감사합니다 ^_^
순수이성비판.........
교수님들도 머리 싸매시던데 ㅇㅅㅇ
여튼, 저렇게까지 공부할수만 있다면 세상에 못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다
알아도 실천을 못하는게 ㅜㅜㅠㅠㅠㅠ
인문학을 떠나서, \'진짜 공부\'는 스스로에게 정직해야하고 완벽을 추구해야함을 많이 느끼는 요즘입니다 추천드려요
정말 멋있습니다. 제가 원하는 삶이에요. 저정도는 살아야 멋진 인생아닐까요....근데 고2인 전 막연한 두려움이 생기는게 사실입니다....먹고 살길....이상....
ㅋㅋ 나도 겉멋때문에 순수이성비판을 들고있는건강
저는 제 지적능력을 평가하기 위해서 약간의 호기심 충족을 위해서
순수이성비판을 읽고있습니다. 근데 머릿말부터 쉽게 풀리진 않네영
대학에 입학하시면,
2학년 되실 때까지
영,불,독,라틴어,한자 를 마스터 합시다.
마스터 = 원어민수준 입니다.
↑이 부분에서 그만 스크롤 내리고 말았습니다.
아직 잣대가 완전히 세워지지는 않았습니다만, 다시봐도 공부는 이렇게 해야만 하는것 같습니다.
좋은 글이긴 한데 약간 오바가;;
국회의원은 무식하지 않아요. 굉장히 똑똑하죠. 국회의원 자기 밥그릇 챙기는거랑 처신,자기관리 하는거 보셨나요? 엄청납니다. 괜히 명문대생 엘리트코스를 밟은게 아니더군요. 개인적으로 학문 못지않게 도덕적소양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연인하고 서강경 두군데 넣어놨는데 이글보니 인문학은 아무래도 제 길이 아닌듯하네요..후우..간판vs실리
목적과 수단을 헷갈리고 있던 저에게 정신이 번
쩍 들게 하였습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좋은 글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