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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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즉 크리스마스로부터 하루가 남은 날이다.
‘하루'는 15세기에 등장한 'ㅎㆍㄹㆍ'로 소급된다. 단독으로 나타날 때나 자음으로 시작하는 조사 앞에서는 'ㅎㆍㄹㆍ로,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 앞에서는 'ㅎㆍㄹㄹ'로 나타나 'ㅎㆍㄹㆍ/ㅎㆍㄹㄹ'의 이형태 교체를 보이던 놈이었다. 뒤에 오는 조사의 음운론적 자격에 따라 'ㅎㆍㄹㆍ도(ㅎㆍㄹㆍ+도)'로 쓰이기도, 'ㅎㆍㄹㄹㆍㄴ(ㅎㆍㄹㆍ+ㅇㆍㄴ)'으로 쓰이기도 한 것이다.
16~18세기 문헌에서는 어중의 'ㄹㄹ'을 'ㄹㄴ'으로 표기하는 경향에 따라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에 결합하는 'ㅎㆍㄹㄹ'을 'ㅎㆍㄹㄴ'으로 표기한 예도 나타난다. 19세기에 들어와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 앞에서도 ‘하로를’과 같이 나타나면서 위의 이형태 교체가 사라지고 'ㅎㆍㄹㆍ'형으로 통일되었다.
16세기에 아래아의 제1차 음가 소실에 따라 제2음절 이하의 모음 'ㆍ'가 'ㅡ'로 바뀌었지만, 간혹 'ㅗ'로 바뀌기도 하였다. 'ㅎㆍㄹㆍ'는 그 희귀한 경우여서 제2음절의 아래아가 'ㅗ'로 바뀌어 17세기부터 'ㅎㆍ로' 형태가 등장하였다.
18세기에는 아래아의 제2차 음가 소실에 의해 제1음절의 'ㆍ'가 ‘ㅏ’로 변하였는데, 17세기의 'ㅎㆍ로'도 이러한 변화를 겪어 '하로'가 등장한다. 한편 19세기에는 모음 'ㅗ'가 'ㅜ'로 바뀐 'ㅎㆍ루' 형태가 등장하였는데 19세기 정도면 표기에서만 아래아가 보이고 음소로서의 자격은 거의 잃어버렸다 봐도 무방하므로 19세기의 'ㅎㆍ루'는 '하루'와 발음이 같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아래아가 자모 체계에서 완전히 퇴출되고 이 'ㅎㆍ루'가 '하루'로 표기되면서 현재에 이른 것이다.
그러니 표기상으로 보이는 변화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5세기~19세기)ㅎㆍㄹㆍ>ㅎㆍ로(17세기~19세기)>하로(18세기~19세기)/ㅎㆍ루(19세기)>하루(20세기~현재)
어원을 보자면 하나를 뜻하는 'ᄒᆞᆯ'과 일을 뜻하는 'ᄋᆞᆯ'의 조합인 'ᄒᆞᄅᆞᆯ'로 추정된다. 이는 여러 방언들에서 나타나는 '하를/할ㄹ-'의 형태와 중세 한국어에서도 나타나는 'ᄒᆞㄹㄹ'을 바탕으로 재구한 것이라고 한다. 이를 내적 재구라고 하는데 이를 통해 15세기 이전엔 ‘ᄒᆞᄅᆞᆯ’이라는 단일형을 취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이틀'이나 ‘사흘', ‘열흘' 등의 옛말에서 보이는 ‘ᄋᆞᆯ’은 ‘일(日)’을 뜻하니까 딱히 오류는 없는 이론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하나(一)를 의미하는 'ᄒᆞᆯ'이 문제다. 훈민정음 표기 이전까지 범위를 넓힌다면 얘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알아내는 게 큰 문제다. 이를 해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냥 고대 국어 시절의 'ᄒᆞᄃᆞㄴ'으로 상정하는 것이다. 제망맹가나 계림유사에서의 음차 표기를 보면 '하나'에 대응하는 고대 국어는 'ᄒᆞᄃᆞㄴ' 정도로 재구된다. 제망맹가의 '一等隱'의 '等'은 'ㅎㆍㄷㆍㄴ'으로, 계림유사의 '一曰河屯'의 '河屯'도 대충 'ㅎㆍㄷㆍㄴ'으로 재구되는데 여기서 ㄴ은 ㄹ로 달리 재구되기도 한다.
아무튼 여기서 실질적인 의미를 지닌 어근을 'ㅎㆍㄷ'으로 보게 되면, 고대에도 ‘하루'에 대응하는 어휘가 존재했다는 가정하에 'ᄒᆞᄃᆞㄹ'(ㅎㆍㄷ+ㅇㆍㄹ)이라는 형태를 상정할 수 있다. 여기서 고대의 'ᄒᆞᄃᆞᆯ'이 단일형 'ᄒᆞᄅᆞᆯ'로 변한 것은 '바다'의 옛말 '바ᄃᆞᆯ'이 '바ᄅᆞᆯ'로 변한 음운 현상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이를 다시 한번 정리하면 고대 시절까지 범위를 넓힌 변화는 'ᄒᆞᄃᆞㄹ>ᄒᆞᄅᆞㄹ>ᄒᆞᄅᆞ>ㅎㆍ로>하로>하루'라는 단계가 나온다.
다만 고대국어는 아직까지 그 체계가 학자마다 통일되지도 않았고 다른 의견을 지니고 있기에 확실한 정설이랄 만한 게 없다. 자료도 부족하고 음운이나 형태에 관한 부분은 거의 정립된 체계가 없다시피 하므로 고대국어를 말하는 글이 있다면 웬만큼 신뢰할 만한 교수나 전문가의 글이 아니라면 일단 거르자. 특히 환빠나 르완다어빠만큼은.
국어 어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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