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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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원숭이가 사람의 흉내를 내는 것이 내 눈에는 참 밉다. 어쩌자고 여기 아이들이 내 흉내를 내는
것일까? 귀여운 촌동(村童)들을 원숭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나는 다시 개울가로 가 본다. 썩은 물, 늘어진 대싸리 외에 아무것도 없다. 그런 나는 거기 앉아서
이번에는 그 썩는 중의 웅덩이 속을 들여다본다.
순간, 나는 진기한 현상을 목도한다. 무수한 오점이 방향을 정돈해 가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생물임에 틀림없다. 송사리 떼임에 틀림없다.
이 부패한 소택 속에 이런 앙징스러운 어족이 서식하리라고는, 나는 참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요리 몰리고 조리 몰리고, 역시 먹을 것을 찾음이리라. 무엇을 먹고 사누. 벌레를 먹겠지. 그러나,
송사리보다도 더 작은 벌레라는 것이 있을까?
잠시를 가만있지 않는다. 저물도록 움직인다. 대략 같은 동기와 같은 모양으로들 그러는 것 같다.
동기! 역시 송사리의 세계에도 시급한 목적이 있는 모양이다.
차츰차츰 하류를 향하여 군중적으로 이동한다. 저렇게 하류로 하류로만 가다가 또 어쩔 작정인가?
아니 그들은 중로(中路)에서 또 상류를 향하여 거슬러 올라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장 하류로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하류로, 하류로!
오 분 후에는 그들의 모양이 보이지 않을 만치 그들은 멀리 하류로 내려갔다. 그리고 웅덩이는 아까와 같이 도로 썩은 물의 웅덩이로 조용해지고 말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풀밭으로 가보기로 한다. 풀밭에는 암소 한 마리 있다.
그 웅덩이 속에 고런 맹랑한 현상이 잠복해 있을 수 있다니─하고 나는 적잖이 흥분했다. 그러나 그 현상도 소낙비처럼 지나가고 말았으니, 잊어버리고 그만두는 수밖에.
소의 뿔은 벌써 소의 무기는 아니다. 소의 뿔은 오직 안경의 재료일 따름이다. 소는 사람에게
얻어맞기로 위주니까, 소에게는 무기가 필요 없다. 소의 뿔은 오직 동물학자를 위한 표식이다.
야우(野牛)시대에는 이것으로 적을 돌격한 일도 있습니다─하는, 마치 폐병의 가슴에 달린 훈장처럼 그 추억성이 애상적이다.
암소의 뿔은 수소의 그것보다도 더한층 겸허하다. 이 애상적인 뿔이 나를 받을 리 없으니, 나는 마음 놓고 그 곁 풀밭에 가 누워도 좋다. 나는 누워서 위선 소를 본다.
소는 잠시 반추를 그치고, 나를 응시한다.
'이 사람의 얼굴이 왜 이리 창백하냐? 아마 병인인가보다. 내 생면에 위해를 가하려는 거나 아닌지,
나는 조심해야 되지.'
이렇게 소는 속으로 나를 심리하였으리라. 그러나, 5분 후에는 소는 다시 반추를 계속하였다. 소보다도 내가 마음을 놓는다.
소는 식욕의 즐거움조차를 냉대할 수 있는 지상 최대의 권태자다. 얼마나 권태에 지질렸길래 이미
위에 들어간 식물을 다시 게워, 그 시금털털한 반소화물의 미각을 역설적으로 향략하는 체해
보임이리요?
소의 체구가 크면 클수록 그의 권태도 크고 슬프다. 나는 소 앞에 누워 내 세균같이 사소한 고독을
겸손하면서, 나도 사색의 반추는 가능할는지 불가능할는지 몰래 좀 생각해 본다.
6
길 복판에서 육칠 인의 아이들이 놀고 있다. 적발동부(赤髮銅膚)의 반라군(半裸群)이다. 그들의 혼탁한 안색, 흘린 콧물, 두른 베두렁이, 벗은 웃통만을 가지고는 그들의 성별조차 거의 분간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여아가 아니면 남아요, 남아가 아니면 여아인, 결국에는 귀여운 오륙 세 내지 칠팔 세의 '아이들'임에는 틀림없다. 이 아이들이 여기 길 한복판을 선택하여 유희하고 있다.
돌멩이를 주워 온다. 여기는 사금파리도 벽돌 조각도 없다. 이 빠진 그릇을 여기 사람들은 버리지
않는다.
그러고는 풀을 뜯어 온다. 풀─이처럼 평범한 것이 또 있으까? 그들에게 있어서는 초록빛의 물건이란 어떤 것이고 간에 다시없이 심심한 것이다. 그러나 하는 수 없다. 곡식을 뜯는 것도 금제니까 풀밖에 없다.
돌멩이로 풀을 짓찧는다. 푸르스레한 물이 돌에가 염색된다. 그러면 그 돌과 그 풀은 팽개치고, 또
다른 풀과 돌멩이를 가져다가 똑같은 짓을 반복하다. 한 십 분 동안이나 아무 말이 없이 잠자코 이렇게 놀아본다.
십 분 만이면 권태가 온다. 풀도 싱겁고, 돌도 싱겁다. 그러면 그 외에 무엇이 있나? 없다.
그들이 일제히 일어선다. 질서도 없고, 충도의 재료도 없다. 다만 그저 앉았기 싫으니까 이번에는
일어서 보았을 뿐이다.
일어서서 두 팔을 높이 하늘을 향하여 쳐든다. 그리고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 본다. 그러더니 그냥 그 자리에서들 겅중겅중 뛴다. 그러면서 그 비명을 겸한다.
나는 이 광경을 보고 그만 눈물이 났다. 여북하면 저렇게 놀까? 이들은 놀 줄조차 모른다. 어버이들은 너무 가난해서, 이들 귀여운 애기들에게 장난감을 사다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하늘을 향하여 두 팔을 뻗치고, 그리고 소리를 지르면서 뛰는 그들의 유희가 내 눈에는 암만해도 유희같이 생각되지 않는다. 하늘은 왜 저렇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푸르냐, 산은, 벌판은 왜 저렇게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푸르냐는 조물주에게 대한 저주의 비명이 아니고 무엇이랴.
아이들은 짖을 줄조차 모르는 개들과 놀 수는 없다. 그렇다고 모이 찾느라고 눈이 벌건 닭들과 놀
수도 없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너무나 바쁘다. 언니 오빠조차 바쁘다.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노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체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놀아야 하나? 그들에게는 영영 엄두가 나서지를 않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듯 불행하다.
그 짓도 오 분이다. 더 이상 더 길게 이 짓을 하자면, 그들은 피로할 것이다. 순진한 그들이 무슨
까닭에 피로해야 되나? 그들은 위선 싱거워서 그 짓을 그만 둔다.
그들은 도로 나란히 앉는다. 앉아서 소리가 없다. 무엇을 하나 무슨 종류의 유희인지, 유희는 유희인 모양인데─이 권태의 왜소 인간들은, 또 무슨 기상천외의 유희를 발명했나.
오 분 후에 그들은 비키면서 하나씩 둘씩 일어선다. 제 각각 대변을 한 무더기씩 누어 놓았다. 아─
이것도 역시 그들의 유희였다. 속수무책의 그들 최후의 창작 유희였다. 그런 그중 한 아이가 영
일어나지를 않는다. 그는 대변이 나오지 않는다. 그럼 그는 이번 유희의 못난 낙오자임에 틀림없다.
분명히 다른 아이들 눈에 조소의 빛이 보인다. 아─ 조물주여, 이들을 위하여 풍경과 완구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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