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kkia [332350] · MS 2010 · 쪽지

2021-09-23 00: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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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쥰내 열심히 해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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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고시원에 총 3년 있었음


19살때 산속고시원 1년 있었고

20살떄부터 27살까지는 신림, 노량진, 포항공대, 군대 전전하며 수험생을 위장한 한량인생살다가

27살때 다시 산속고시원 들어가서 2년 한량짓을 추가했는데


결국 내 최종학력은 대학중퇴로 마무리됐고 지금은 사회생활중

한마디로 수험생활에 있어서 실패했다는 말




그런데 아직까지도 산속고시원에서의 그 순간들은 잊혀지지않음


- 내가 진짜 서울대를 갈 수 있을지 없을지 테스트해본답시고

미친놈처럼 3일동안 1시간도 안자고 50시간 스탑워치 채웠던 그날 저녁 잠의 달콤함


- 아침 5시 반에 눈이 떠져서 논밭 주변 걸어다니며 폴폴 피어나는 이슬냄새 맡으면서 

오늘은 진짜 제대로 한번 해봐야지 지금이라도 다시 태어나야지 다짐하던 그때 그 순간의 향기와 감정


- 수험생으로서 가장 정석적인 새벽 6시 자습실 In -> 저녁 11시 종료! 지킨 뒤에

계획했던 모든 공부를 끝내고 이대로만 하면 서울대 충분하지 않겠냐고 나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는

자습실 나가며 마침 하늘을 봤는데 별이 고생했다고 반겨주듯 반짝반짝 빛나고 있던 순간의 황홀함


이런 장면들과 향기 그리고 감정은 마치 어제일처럼 선명함




결과라는 것은 이런 과정과 감정을 타인에게도 어렴풋이 전달할 수 있는 힘을 줄 뿐

결국 이 또한 '어렴풋이' + '환상'일 뿐이지 진또배기 순수한 감정은 경험한 너밖에 모르는 소중한 것

무엇보다 결과가 실패한다고 해서 그날 스스로 경험했던 과정과 순간의 감정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님


그러니까 쥰내 열심히 해보라고,

결과내기 위함이 보다도, 그날의 과정, 그때 그 순간의 감정은 영원하고

이 감정들이야말로 먼 훗날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들 때 끝까지 지탱해줄 소중한 지지대가 되어줄테니까

(기왕이면 마지막 스퍼트에 제대로 미친놈처럼 해서 결과까지 딴다면 남들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는 1석2조 효과)


인간이 언제 또 이렇게 미친듯 노력해 볼 수 있겠음?


누구에게나 떳떳할만큼 자랑스러웠던 지난 10년은 아니었지만

나마저도 이런 순간들 하나하나가

실패뿐이었던 지난 10년을 떠올리고싶은 소중한 기억으로 만들어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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