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그릇대로 먹고 사는거다"라는 말이 제일 무섭습니다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23992079
필자가 살면서 싫어하게 된 말, 좋아하게 된 말, 무서워하게 된 말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이번에는 '무서워하는 말'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미국 교육에서 아주 중요시하며 자주 말하는 단어가 'consequence'입니다. 영단어 중에서 다소 학생들이 생소하게 느낄 단어인데, 뜻은 '결과'입니다. 좀 더 의도와 내포한 의미를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대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인이 초딩 1년을 미국에서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해당 단어를 꽤 자주 들었었죠. 수업시간에 이 단어를 가르쳐주는데 단순히 의미를 알려주는게 아니라 자기네 교육철학, 사고방식에 중요한 개념을 말해주었습니다.
(consequence는 단순히 '결과, 결론'보다는 '맞을 짓을 했으니 맞는다'라는 개념에 좀 더 가깝습니다)
어느 한 가정에서 아이가 부모님과 약속을 했습니다. 오늘 저녁 6시 전까지 밖에서 놀다가 집으로 들어오겠다고. 그런데 그 아이는 놀다가보니 너무 재미있어서, 그 약속을 어기고 저녁 7시 쯤에 들어갔습니다. 그 아이의 부모님은 이런 메세지를 남기고 집을 비워두셨습니다.
"오늘 엄마아빠랑 저녁 6시까지 집에 돌아오기로 약속했지? 근데 니가 약속을 어겨서 기다리다가 니 동생이랑 3명이서 밖에 저녁을 먹으러 나갔단다"
이게 실제 수업에서 선생님이 읽어준 수업 자료입니다. 전 여기서 '공포'를 느꼈습니다. 보편적인 한국인의 시선에서도 보면 다소 매정하고 차가워보이며, '아무리 그래도 애가 좀 놀다보면 늦을 수도 있지 그걸 가지고 저렇게까지하나'라는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 대목이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교육철학적 차이입니다. 미국은 개인주의적이며, 아주 강력한 국토를 가지고 외세에 대해서 안전한 나라입니다. 또 사회 자체도 한국처럼 역전이라던지, 아주 큰 사회적 성공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소하게 자기 즐길꺼리 즐기고 일하다가 조용히 삶을 마치죠.
그래서 사람들이 정말 자기 그릇대로 살아갑니다. 사회나 부모가 터치도 별로 안하고, 자기가 하고 싶으면 열심히 하고 크게 성공하는거고, 아니면 그냥 적당히 하면서 자기 삶 사는거죠. 자신이 어떤 삶을 '선택' 했으니, 그에 대한 책임과 결과를 자신이 짊어져야 한다고 미국교육에서 강조합니다.
(한국에선 마치 모든 학생들이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가 되길 바라는데 절대 불가능한 소리입니다. 미국에서도 극단적인 성공이자 극단적인 소수의 사례이기 때문에 우리 귀에까지 들려오는거지 모든 미국인이 이런 삶을 사는건 아닙니다)
반대로 한국은 누구나 사회적인 큰 성공, 역전, 아주 짜릿한(?) 결과를 원합니다. 누구나 큰 성과와 발전을 추구하며, 그렇기에 악착같이 무언가를 하기도 하며 사회나 부모님이 눈치도 많이 주십니다.
그런데 한국인 부모님들이나 선생님들 중에서 학생들을 전혀 터치하지 않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통 이런 분들은 이런 말씀을 합니다. "자기 그릇대로 먹고 사는거지"
마치 미국의 교육철학처럼, 이런 분들은 우리에게 자유와 선택할 기회를 주되 그에 대한 책임과 대가를 스스로 짊어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분들을 많이 만나봤었는데, 이분들이 평소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하시지 않는다고 제 공부에 무관심하신게 아닙니다. 오히려 평소 잔소리하고 참견하시는 분들보다 더 냉정한 눈으로 저를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부하고 일하라고 때리고 회초리를 드는 사람들보다, 이렇게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냅두면서 그에 대한 결과를 스스로 짊어지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훨씬 더 무서워합니다. '자기 그릇대로 먹고 사는거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태한 필자는 화들짝 놀랍니다.
(정치에서도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국민들은 자유롭게 선택과 투표를 했기 때문에 그로 인한 혜택을 누리고, 또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한국은 점점 더 미국같은 성격을 띠게 될 것이며 이미 상당부분 과거에 비해 더 자유로워지고 여유로워졌습니다. 그러나 잔소리가 사라졌다고 해서, 사회의 참견이 사라졌다고 해서 방종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는 불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대신 책임의 일정 부분을 물지 않았지만, 이제는 모두 우리 스스로의 책임이 됩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겠냐? 대한민국 명실상부 최고의 대학 지역거점국립대학 경북대학교인데 다들 대학 서열...
-
수1 4점 질문 0
추론부터 막혔는데, 어떤식으로 진행해야 하나요?제가 사진에 적은 최댓값의 경우가...
-
접속자 수 많다고 안들어가지는디
-
전 외모 평균이상 재미있고 털털하신 여성분
-
안녕하세요 김승리 강의를 아수라만 들어서 아직 붙여읽기가 너뮤 힘든데 김승리가...
-
높2~낮1에서 오르질 않음 틀리는 영역도 일관성이 없음. 고3때 본 모의고사에서...
-
이원준 계간지 0
님들 강의도 다 들음?
-
지각이야지각 4
아 늦잠쳐잠 크아악
-
기만질 한번 더 3
슬프다…남치니가 연락을 안본다 무슨일 있나
-
이거 몇 분 동안 푸는건가요? 한 25분 잡고 풀면 되나요? 그리고 난이도는...
-
우리가 보는 것이 진짜일까요? 조금 더 넓은 범위에서 말해봅시다. 우리가 느끼고...
-
[고1~고2 내신대비 자료 공유] 고1 국어, 고2 문학, 언매 분석 문제 배포 0
안녕하세요 나무아카데미입니다.2025학년도 고1~고2 내신대비를 위해 고1 국어,...
-
이걸 보고 저걸 추론하라고?? 해설 볼때마다 싶음
-
국수영탐 노베시절 평균 거의 57312에서 올해 평균 24211인데 … 나 수학만...
-
제가 님들 미분해드릴게요
-
문학은 그렇다고 알고있는데 독서도 그렇나요?
-
수험생을 죽였으니까 킬러지 특수한 도구(삼도극, ..)로 죽였다고 킬러인게 아니잖음...
-
아니 작년수능 문학 기출 유네스코로 보는데 가지가 담을넘을때 문제가 적절한걸...
-
오지기출 어려운거만 싹 해얘되나 아직 스텝투 이렇게 갈라져있나요?
-
괜찮은 방법인가요?
-
서로를 이등분하던가?
-
돈없어서 ebs국어 실모사려하는데 퀄 많이 구림?
-
유웨이에서 한국전자인증에서 인증서 내라는데, 발급하려고 들어가니 돈 내라고 하는데 맞나요?
-
김승리 0
님들 성탄제 맨마지막 연 길이 돌아가는 사슴이라고 되어잇잔아여 김승리는...
-
쪽지 ㄱㄱ
-
두분 각각 자료가 서바 해설관련해서 서바 해설된 프린트 자체가 배부되나요 아니면...
-
본인 인서울은 가능했을까...
-
학원 재원생들 파이널 얼마에 사셧나용 20??0
-
강k 3회 답지 0
강k 3회 답지 받을수있을까요ㅠ
-
스카 훌쩍빌런 4
환절기라 훌쩍대는건 나도 어느정도 그러니까 이해할려고 해도 10연발 연속으로...
-
ㅈㄱㄴ
-
1999년의여름밤
-
기술도 없는 나라 제품을 왜 쓰는지
-
서울 학생수 16%인데 서울대 합격생은 35%…"'수능 40%룰' 깨야" 13
[편집자주] 한국은행이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입시경쟁 과열 해결책으로 제시하면서...
-
도서관 가야겠다 8
집에잇으니깐 자꾸 딴짓하게되내..
-
뒤질래?
-
이 미친 독서실 관리자야 지금 밖이 30돈데 변기에 엉따를 틀어놓으면...
-
독서는 비독원 하고 있어서 괜찮은데 문학은 기출 안 본 지 꽤 되어서 다시 보려고...
-
미적 6모 88 (현장 x) 9모 96 그 전까진 아무것도 안하다가 8월부터...
-
인기글에 꼭
-
한랭전선면의 기울기는 전선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감소한다는게 무슨 뜻인가요 ㅜㅜ 11
질문이요,, ㅜ
-
하 왜 몰랐지
-
평가원 교육청 언매는 다 맞거나 1개 틀리고 사설 모고는 계속 2~3개씩 틀리는데...
-
예전에 잠깐 내신기간에 학원 근무할 당시 여자쌤들은 교무실에서 다 죽어가는데...
-
네
-
독서 -2점 문학 -5점 언매 -2점 91점. 문학 34번은 소거법으로 겨우 맞춤....
-
전체 줄거리,전문 봤는데도 효과 못봤다고 그러는거임? 국어 못하는 입장에서...
-
1교시발 0
으악
-
교재 구매란에서 없어졌네요
-
질문있어요 1
학교에서 수험표? 같은걸 내라는데 이게 안되면 안되나요? 수시 수험표인듯 이걸...
ㅇㄱㄹㅇ 진짜 진짜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저 마인드를 못고쳐서 우리나라가 근본적으로 그런겆죠 ㅇㅅㅇ
우리나라에서 맨날 말하는 '애가 좀 그럴수도 있지' 마인드 정말 싫어요
애는 그럴수 있어도 너(애 부모) 는 그러면 안되죠
자유가 주는 압박이..ㅇㅅㅇ
저도 저렇게 '스스로 선택한것을 스스로 책임져라' 교육하시는분들 생각하면 할수록 살면 살수록 더 무섭게 느껴집니다.
제가 돈벌고 공부해보니 저말이 더욱 무겁게 느껴집니다
consequence(s)는 원인과 결과를 거의 다이렉트하게 연결짓는 것이 가능할 때, 결과쪽 부분을 가리킵니다...
제일졷같음
부모님이 저런 케이스이신데
확실히 탓할 사람이 저밖에없으니까 혼자서 이것저것많이고민하다 선택하게되더라구요
우리 국민의 수준은 문재인이라는거네요....
ㅠㅠ
개인적으론 저 철학에 백번 공감하게 된 것이 사람 고쳐쓰는 게 아님을 경험들을 통하여 깨닫게 되면서부터였네요
전 오히려 이런 철학이 더 마음에 드네요. 사회나 부모로부터 오는 집착이 너무 싫습니다 ㅠ
내가 나를 놓아버릴까봐 무섭다
You deserve it
원래 자유의 대가가 크죠..
오랜만에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글을 읽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