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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grey [44110] · 쪽지

2005-07-11 06: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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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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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교육 과정에 분노를 품기 시작했다. 드디어 이 사회에 위험한 존재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조금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니 이 사회는 온갖 부조리와 음모로 가득찬 곳이었다.
나는 몇 권의 책을 읽고, 여러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나에게만 속하는 존재 감정, 분노를 잊고
처음으로 이 사회의 정의롭지 못함과 수정해야 할 것에 대한 대안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고의 폭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언어점수는 내려갔다.
그래서 한 번은 그 원인을 고려해 보았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사고의 수축의 수축만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창의력을 완전히 죽이고 오직 틀에맞춘 논리 과정
을 통해서만 풀 수 있는 시험>이라는 거였다.
이걸 잘한다고 해서 언어 능력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언어영역을 잘 보기 위해서 나는 언어시험을 볼 때 나만의 사고는 죽여버리고
출제위원들의 사고 체계를 내 머릿속에 넣어서 고득점을 따냈다.
사회의 압제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셈이었다.

수리는 언제나 40% 가까이를 틀리고 있었다.
고2 여름방학이 끝나기 직전 설날 시즌에 을 한번 팠다.
그리고 각 단원의 개념과 그것들이 응용시킨 문제들의 유형을 몇개 이해했다.
수리가 80점대로 올랐다.

외국어는 그냥 언제나 점수가 잘 나오는 편이었다.
의외로 외국어는 단순 단어 암기보다는 언어적 감각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문법은 포기했다. 감으로 때워맞췄다.

사탐은 분량이 너무 많았다. 공부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나에게 사탐처럼 많은 시간의 투자를 요하는 과목은
쥐약이었다. 역사과목의 전체적인 맥락 이해와, 중요한 몇몇 것들을 외우고,
정치 역시 사고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을 조금 메꾸었지만 틀리는 문제들은 매번 나왔다.
그나마 사회문화는 수월했다.

더 자세히 말하고 싶지만, 사실 이게 다일 뿐이다. 문제집 이름도 말할 것이 없다.
학교 부교재들이나 풀었다.

그래도 체계적으로 과목들에 대한 정리가 끝나고 나자 점수가 많이 올랐다.
440-50대의 점수로 분명 한국에서 알아주는 대학은 갈 수 있었다.
고1 들어갈 때부터 부모님은 서울에 있는 대학만 가도록 열심히 하라고 말씀하셨고,
나 역시 고1 때 처음 목표를 한양대로 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유명한 성균관대 정도에 입학할 만한 점수가 이루어진 것이었다.
조금 더 열심히 하면 연고대에 입학할 수도 있을것 같았다.

하지만 오르비에 올때마다 나는 자신감을 잃고는 했다.
사실 오르비를 처음 알았을 때는 여기저기 눈팅하며 공부에 대한 열의를 새롭게 하거나 하였지만
나름대로의 사회적인 시각을 갖추게 되면서 부정적으로 여기게 되었고,
발길을 끊게 되었다.

사회 재생산론이라는 것이 있는데, 한국 사회와 같은 곳에서 중등교육, 고등교육, 학벌과 같은 교육과정들이
결국 사회의 극소수 상류층의 의한 전체의 지배를 계속적으로 가능하게 해준다는 내용을 생각해 낼 수 있는 이론이다.
그 이론에도 동의하고 있었던 나는 한국 사회의 권력 분배 과정에 문제의식을 품었고
오직 그것만을 삶의 목적으로 삼고 있는 듯한, 몇몇 오르비인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 칼게에서 보이는 정떨어질 만한 극우반동적인 시각들, 그것도 대부분
자신의 사고가 부재하는 그냥 단순한 생각에서 멋대로 써대는 여러 글들도
나로 하여금 오르비에 발길을 끊게 만들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나 자신이었다.
나는 날이 갈수록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하는 자조적 생각만 더해갔다.
사실 나는 명문대 입학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가 필요했다. 사랑에서 보상 심리를 느끼는 바보같은 생각을 하게 된 나는
이것 저것 다 필요 없이 그녀만 내 옆에 둘 수 있게 된다면,
18년 동안 허무로 가득찬 내 삶을 역전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되었다.
수능이 200일도 남지 않았는데 나는 그녀에게 고백을 했다.
그냥 학교 후문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당연히 매몰차게 차였을 뿐이었다.
내가 못생겼고, 볼품없기도 하였지만 그걸 떠나서도
이미 2학년 여름에 학원을 그만둔 그녀는 내 이름 석자와 얼굴만 아는 상태였다.

예상된 결과긴 했지만.. 그걸 알면서도 그런 무리한 일을 감행한 나였지만
충격은 컸다. 게다가 그 날은 기말고사 마지막 전날이었다.
기말고사 마지막 시험 두개를 망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 일로 인해, 내 망가진 18년 간의 삶을 인증받았을 뿐 아니라
그것을 역전시킬 수 있는 마지막 수단마저도 잃은 셈이었다.
처음으로 직접 소주를 사서 혼자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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