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xury brain [6702] · MS 2002 · 쪽지

2004-10-15 16:17:01
조회수 6,465

luxury brain ... the time of cha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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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원하는 만큼 잘 보지 못 했지만 수능이후의 남는 시간을 즐겨야 했다.

남들은 논술이니 면접이니 준비를 했지만 그런건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나에게 필요한 건 면접 준비가 아니라 과연 내신을 극복할 수 있느냐 였다. 하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난 내신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단지 서울대

1차 전형은 수과외다. 2차에는 잡다하게 무언가 있다라고만 알고 있었다.

(아마 이러한 무지로 인해 입시에 실패한 뒤로 미친듯이 서울대에 대한 정보를

모은 것 같다.)

폐인생활... 매일 여자친구와 있을 수 있어 즐거웠고 고등학교 친구들, 종로학원

친구들, 얼마 되지는 않지만 몇몇 연세대 친구들을 자주 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내가 좋아하는 게임인 레드얼렛2를 즐길 수 있어 그 즐거움이 더 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그렇게 몇 일을 보내니 부모님의 태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시험결과가 좋았다면 부모님이 걱정할 일이 없으셨을 것이지만 수능 보고

와서 시험결과에 대한 말은 꺼내지도 않고 격일로 집에 들어 왔으니 마냥 걱정만

하고 계셨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시험 망쳤냐?\"

\"생각보단 망친 것 같아요..\"

\"네가 원하는 대학 갈 수 있겠냐? 포항공대나 카이스트는 될 수 있니?\"

\"아직 모르겠어요...(사실 포공이나 카이스트는 어림도 없었다. 그 대학들은

모두 총점 반영이라 내 점수로는 정말 불가능이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중국유학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셨다. 아버지의 친구분이

현재 중국에서 교수를 하고 계시고 그 분의 자제도 칭화대 컴공과에서 수학하고

있다고 하셨다. 갑자기 이게 왠 말인가...

난 두려웠고 한 편으로는 짜증이 밀려왔다. 그리고 도피유학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또한 난 중국이란 나라에 대해 매우 안 좋은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

어서 더더욱 싫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다 내가 중국으로 유학을 갔으면 하는 바람이셨다.

오히려 부모님은 서울대를 가는 것 보다 한창 발전중인 중국의 북경대나 칭화대로

가길 바라셨다.

처음 이런 말을 듣고 부모님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아직 입시는 시작되지도 않았

는데 벌써 내가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신 듯 했다. 난 무조건 가기 싫다고 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이번에 대학에 떨어진다면?...

삼수인가... 그야말로 고졸자로 남는 것인가.. 고민이 되었다.

까짓 것 밑지는 셈치고 중국유학에 대한 준비를 하기는 시작했다.

중국어학시험인 HSK 자격도 확보되어야 하고 영어, 수학, 과학에 대한 시험도

있기 때문에 준비할 것이 많았다. 특히 HSK 6급이상을 따야하기 때문에

부담은 더 컸다. 이게 칭화대 본과에 들어가기 위한 필수조건이었다. 하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난 한자를 매우 싫어했고 공부하기도 싫었다. 하지만 이 자격

을 따려면 최소 6개월을 공부해야한다고 했다. 도저히 불가능했다. 물론

이 때부터 준비하면 간신히 내년 9월학기에 입학할 수도 있겠지만 한자를 그렇게

열심히 공부할 자신도 없고 중국어회화 자체도 너무 귀찮고 어려워서 포기상태가

되었다. 아버지는 이런 나를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하셨다. 중국에 계시다는 그 친

구분을 통해 칭화대에 대한 여러 정보를 알아오셨다. 다행히 HSK자격이 없어도

입학이 가능한 전형이 있다고 하셨다. 물론 이건 특별전형이라 수학, 과학 능력이

매우 우수하고 한국에서 다닌 고교성적도 반영이 된다고 했다.

물론 영어능력도 필수였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수능이 끝나고 더 많이 놀고 싶었지만 앞날이

불확실한 나에겐 조금의 휴식도 사치였다. 우선 토플학원부터 등록해서 하루종일

토플공부를 했다. 그렇게 나의 수능 후 생활은 공부로 도배되었다.

어느 덧 12월초... 수능 성적표가 나온다.

그리 긴장은 되지 않았다. 난 가채점이 거의 틀린 적이 없기 때문에 혹여나

성적이 떨어진다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 날 고등학교에 갔다. 불행히도 재수생 성적표를 고3담임이 주고 있었다.

얼른 성적표를 달라고 했지만 그렇게 보내줄 선생이 아니었다.

담임 왈... 수과외 잘 봤네

사탐은 왜 이러냐... 어디 쓸거냐? 넌 서울대 안 되는데 어디가려고?

황당했다. 서울대가 안 된다고 노골적으로 말을 해주었다. 그 때부터 왜 안 되는지

를 쫙 설명해주셨다. 그제서야 난 사태파악을 했다. 내신에 대해 너무 무관심했다.

담임은 딱 잘라 안 된다고 했다. 2차전형은 100% 내신+면접이고 특히 내신이

안 좋으면 불가능이라고 했다. 수능성적 때문에 불안하긴 했지만 결국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진 것이다. 정말 사면초가였다.

서울대는 내신때문에 못 가고 포공과 카이스트는 총점때문에 못 간다.

갈 생각은 없었지만 연세대도 총점이다. 그야말로 갈 대학이 없었다. (사실

결론적으로는 연세대는 확실히 갈 수 있었다. 공대의 몰락으로 --;

계산은 안 해봤지만 가중치때문에 포공과 카이스트도 해볼만 했을것이다. --;)

이 때 담임이 제시한 방법은 의대를 가라는 것이었다. 02학년도 부터는 영역별

반영이 시작되어서 수과외로 갈 수 있는 의대가 꽤 있다며 남들 다 의대선호하니깐

나도 의대나 가라고 했다. 의대는 절대로 싫었다. 난 생물에 대해 아는 게 없고

의사는 분명 어느정도의 봉사정신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같이

남을 위해 봉사하는 걸 싫어하는 인간과는 맞지 않는 타입이라 생각했다.

성적표를 빨리 달라고 하고 얼른 학교를 나와버렸다.

날씨는 쌀쌀했다.

내 머리와 가슴도 너무 추웠다.

진짜로 중국을 가야하는가...

성적표를 받았으니 원서를 쓰긴 써야했다. 하지만 별다른 고민은 없었다.

너무도 명확했다. 난 서울대이외의 학교는 가기 싫고 서울대에 떨어질 확률은

크다. 그렇다면 선택은?

결론은 서울대만 원서를 쓰자는 생각이었다. 서울대는 나군...

가군과 다군에는 연세대 한양대 같은 학교도 있었지만 딱히 쓸 마음은 없었다.

떨어지만 중국 아니면 삼수다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정하고 토플 공부에 총력을 기울였다. 오히려 수능공부할 때 보다

더 열심히 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는 계속 토플학원에서 강의를 듣고

사람들과 모여 스터디를 하고 자습을 했다. 저녁에는 여자친구를 만났지만 여자친

구에게는 지금 내 상황을 말하지 않았다. 그냥 이래저래 좀 바쁘다고만 핑계를

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서접수할 시기가 왔다. 이 당시 서울대는 광역화모집을 했다.

공학계열을 단일계열로 하여 900명가량을 한 계열로 뽑아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2학년 때 학과를 나누는 그런 희한한 방법...

학교 선생은 내가 불가능 할 거라고 했지만 난 혹시나 혹시나 하는 생각을 했다.

분명 의대열풍은 시작되었고 그에 따라 공대 점수는 분명 하락할 것이기 때문이었

다. 나는 이미 초탈한 상태였기 때문에 원서를 첫 날에 넣을 수도 있었지만

입시전쟁이란 걸 직접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마지막 날 원서접수를 하기로

했다. 여자친구와 함께 서울대를 갔다. 전에도 몇 번 가본적은 있지만 학교 안을

자세히 관찰하기는 처음이었다. 정말 컸다. 학교인지 산인지 ;;;

내가 도착한 시간은 12시경이었고 원서를 넣을 학생들은 모두 한 장소에 모여

경쟁률 전광판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사실 이 당시는 광역화모집이기 때문에

딱히 눈치작전이 크지 않았다. 공대 내의 여러 학부로 나누어 뽑아야 서로 눈치를

보며 학부를 바꾸며 쓰겠지만 다 뭉뜰거려 뽑는 것이기 때문에 공대냐 자연대냐

농생대냐 생과대냐 이정도를 가지고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나야 사실 눈치작전을 할 일은 없었지만 이런 일들이 너무 재밌었다. 이런게

입시의 묘미가 아닌 듯 싶다...

원서마감 시간인 5시가 될 무렵 까지 난 여자친구와 서울대 내를 구경했다.

그리고 다시 원서접수하는 곳으로 왔을 때에도 많은 학생들이 원서접수를

하지 않고 있었다. 5시 안에만 건물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모두 눈치만 보고 있었다. 희안하게도 간호대, 공대, 농생대, 자연대 모두 경쟁률

이 낮았다. 특히 간호대와 농생대는 0.5:1이 안 되었다.

공대와 자연대도 그것보단 높았지만 1:1이 되질 않았다.

1차는 2배수를 뽑는데 이정도 경쟁률이면 분명 1차는 전원 통과였다 ;;;

나도 그냥 원서를 공학계열에 넣어버렸다. (여기서 말한 공학계열은 지금의

공학계열과는 다른 광역화된 공학계열이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경쟁률을 확인했다.  결국은 서울대 자연계에서 의대를 제외한

나머지는 2:1을 채우지 못 했다. 즉 1차전형은 전원통과였다.

난 울 수 밖에 없었다...

엉엉 ㅡㅜ







//어젯밤을 새워서 중간고사 공부하고 지금까지 컴질을 하네요. 정신없이
글썼네요.빨리 잠이나 자야겠음 ;; 오늘은 즐거운 개교기념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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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x · 65065 · 05/10/15 17:07 · MS 2004

    레드얼럿 2~ 저도 좋아하는데 ㅎ

  • 임페라토르 · 14704 · 05/10/15 17:38

    02때 sky공대 싸그리 망했죠.ㅋ 특히 연공..

  • 관악폐인™ · 20361 · 05/10/15 18:35

    나는 복받은거네 ㅡ.ㅡ;

  • 태풍신 · 50219 · 05/10/16 00:02 · MS 2004

    헉 서울대 개교기념일이 10월 15일인가요...제 생일인데...ㅋㅋ

  • 곽웅섭 · 56249 · 05/10/16 13:37

    정말 재밌어요 ㅠㅠ;

  • Equilibrium · 65254 · 05/10/16 18:02

    서울대 개교기념일이 정말 저희학교와 같군요 -┏;;

    음 02년 입시...;

  • Marshall · 63170 · 05/10/17 16:57

    02때는 수능 아무리 못봐도 내신좋았으면 합격했다는얘긴가요 ? ..

  • luxury brain · 6702 · 05/10/17 20:27 · MS 2002

    ↑그건 아니죠. 서울대의 경우 1등급이내의 학생만 지원이 가능했습니다.
    1등급 밖은 당연히 지원불가 ;;
    1등급이내 학생은 1차에서 100% 붙었다는 얘기죠

  • 파닥(-_-),, · 43590 · 05/10/19 15:58

    에고..럭셔리브레인선배님 02수능때 불어과 16기 x동x 라고 아시죠? 목소리 굵고 응원할때 항상 우리 불어과의 지존이 되었던..그 선배두 02때 379점 맞았는데 서울대 떨어져서 연대갔어요 ㅠㅠ 말도 안돼 우리모두 분노했었는데ㅠㅠ 2차때 내신과 면접만으로 뽑았었군요..완전 어이없네..

  • 저널리스트™ · 39214 · 05/10/19 19:36 · MS 2003

    379에 연대 초압박 -_-

  • luxury brain · 6702 · 05/10/19 20:44 · MS 2002

    16기라면 혹시 그 우락부락하게 생긴 김x윤을 말하는것?ㅋ
    걔 공부 못 하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단 잘 하는군요 ;;
    걔는 잘 안 친해서 잘 몰라요;; 그 인간이랑 친한 연예인 최성준은 잘 아는데;;
    최성준 이놈도 대일외고 불어과 16기죠-- 이 자식이 연예인 됬다고 연락도 안함 --

  • FrodoBeggins · 64084 · 05/10/21 18:09

    명덕외고 등등 제친구넘도 37X맡고 연대사회로 ~~
    수능 고득점자들이 손해를 많이봤던 한해 ~

  • 파닥(-_-),, · 43590 · 05/10/26 14:06

    흑..ㅠ-ㅠ 네. 바로 김x윤 그 선배 맞아요 어쩐지 그 점수에 떨어질 수가 없는데 사악한 서울대 같으니..쩝 ㅡㅁ ㅡ;
    최성준 선배님 우리 불어과 17기 아이들의 우상이었지요 ㅋ
    자퇴하실때 수많은 아이들이 안타까워 했는데 ㅋ 불행히도 저는 먼 발치에서만 뵈었다는 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