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xury brain ... 두번째 전쟁을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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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학년도 수능이 약 1달 남은 무렵...
작년에도 그랬듯이 막상 이 시기에는 할 게 없었다.
공부에 마지막 박차를 가해야 할 시기이지만 정리를 다시 하는 것이
너무 귀찮았다. 내 단점 중 하나가 바로 공부한 것을 또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공부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난 장수를 했다.)
결국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을 때까지 공부와 노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수능 전날 오전....
고등학교에 가서 수험표를 받아와야 했다. 직접 고등학교에 갔다. 매우 쪽팔리긴
했지만 그래도 난 대학 다니다 재수하는 거라고 자기 위안을 하며 갔다.
수험표를 받고 잠시 작년 3학년 담임선생님을 뵙기 위해 갔다. 때마침 선생님은
본인께서 맡고 계신 반 학생들에게 격려를 하고 계셨다. 선생님께 인사를 했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반 학생들에게 나를 소개시켜주시면서 너네들 얘랑 경쟁해야
한다고 하셨다. 난 부끄러웠지만 한마디 했다.
\"내가 선배이니 올해는 내가 먼저 대학갈게.. 너네는 좀 쉬엄쉬엄해..
재수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야..\"
농담같지만 진심을 약간 섞었다. 그렇게 말하고 같이 재수하던 친구들과
함께 시험을 보게 될 학교에 가보았다. 예비소집 시간보다 훨씬 일찍 갔다.
(예비소집일에 별다른 할 일이 없다. 수능에 대한 규칙따위를 설명해주고
프린트 나눠주는 게 전부다. 예비소집에 가봐야 도움이 안 되니 차라리 집에서
마음을 다잡거나 명상을 하라고 권하고 싶다.)
내가 예비소집 시간보다 훨씬 일찍 간 것은 이유가 있다. 대개 예비소집일에는
학교 내부로 들어가 자신이 배정된 반에 들어가 자기 자리를 볼 수 없게 한다.
하지만 일찍 가게 되면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지 못 한다. 아직 학생
들이 안에 있으니깐.. 가서 내 자리를 확인했다. 내 책상이 생각보다 너무 낮았다.
중학교라 그런지 낮은 책상들이 몇 개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몰래 다른 책상으로
바꾸고 스티커를 떼어서 좋은 책상에 갖다 붙였다. 이제 안심하고 수능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작년처럼 히터가 내 근처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감독관이
걸리적거릴 만한 앞자리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한가운데 자리도 아니었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석 자리였다. 수능보기 위한 환경으로는 나에게 가장 좋았다.
예감이 좋았다. 유유히 학교를 빠져나와서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근처 오락실에
잠시 몸을 풀었다. 오후에는 여자친구를 잠시 만났다. 고맙게도 수능에 필요한
것들을 잔뜩 사왔다. 여자친구와 좀더 이야기를 나누며 있고 싶었지만 당장
내일이 수능이기 때문에 오래 있지는 못 했다. 8시쯤 집에 들어가서 잠시 명상을
했다. 작년에는 여러 친척들이 수능 전날 와서 방해를 받았지만 올해에는 부모님께
미리 말을 해두었기 때문에 집에 아무도 오지 않았다. 명상을 하고 일찍 잠을
청하려고 했지만 잠이 올리가 없었다. 잠시 컴퓨터를 키고 사포신 몇 편을 감상
했다. 12시경 여자친구는 내가 안 자고 있을 것을 알았는지 얼른 자라고 문자를
보내주었다. 그 문자가 아니었으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계속 애니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작년같이 시험에 부담은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
었다. 비록 소심한 성격인 나지만 수능만큼은 남보다 많이 알고 어느 정도
패턴을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두렵지 않았다. 그래도 잠은 오지 않았다.
간신히 1시쯤 눈을 붙인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작년과 비슷한 풍경이 연출되었다.
어머니께선 바쁘게 도시락을 준비하시고 나도 얼른 필요한 준비물을 챙겼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부모님 두 분 모두 동행하여 나를 시험장까지 태워다 주셨다.
작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나에겐 긴장감이 없었고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무척이나 걱정을 하셨지만 난 잘 다녀오겠습니다 한 마디만 하고
얼른 시험장으로 향했다. 시험장 학교 교문에는 여자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히려 나보다 여자친구가 더 걱정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난 이번 수능 엄청
쉬울거야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이 말을 했던 내가 참 후회스
럽다. TV에서 보면 어떤 연인들이 수능 시험장 앞에서 키스를 하는 장면이
보여지기도 했지만 우리는 그런 장면을 연출할 만한 깡은 없었다. (실제론
내 마음 속으로 한 번 그래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했다.)
그렇게 여자친구를 뒤로 한채 시험장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먼저 와 있던 학생들이 저마다 긴장을 하며 정리노트를 보거나
그동안 틀렸던 모의고사 문제들을 점검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눈을 감고 명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난 재수생이다. 여기 있는 너희들 현역 고등학생들보다
더 잘 볼 자신있다.\'라고 생각했다. 이 당시 난 재수생티가 팍팍 나는 학생이었다.
가방에는 종로학원에서 나눠준 언어프린트가 있었고 머리는 예전에 HOT가 한창
유행했을 때 그들이 했던 그런 긴 머리를 부시시하게 하고 있었다.
감독관이 들어오고 시험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갑자기 너무 긴장된다.
이번에는 작년만큼만 보면 된다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이과로 바꿨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르고 의대 열풍이 어떤 변수가 될지는 예상할 수가 없었다.
이런 생각을 그 동안은 안 하고 있었지만 수능 전 잡다한 생각이 또 들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떨어진다면 어떻게 되는걸까... 연세대를 자퇴한 것이
후회되기도 했다.
그렇게 짧은 순간이지만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감독관이 OMR카드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어시험지가 내 손 앞에 놓여졌다.
감독관이 손을 머리위로 올리고 시험지를 뒤집어 놓으라고 명령하지만
그 말을 듣는 착한 현역이 이미 아니었다. 재수생의 깡으로 시험지를 훑어보았다.
듣기를 보아하니 이상한 지도 모양의 그림이 있기도 하고 엄청 긴 언어지문들이
있었다. 각각의 문제마다 엄청난 길이의 보기지문들이 있었다. 작년에 비해
어려울 것이라는 건 당연한 상황이었지만 단순히 난이도가 약간 상승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덧 듣기 방송이 시작됐다.
1번 문제가 지나고 2번 듣기문제... 지도를 보고 유적(?)의 위치를
찾아내라는 문제...
아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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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가게 되면 안으로 들어가는걸 막지 못한다. 학생들이 아직 안에 있으니까.
<- 그런데 어떻게 책상을 옮기셨어요?
저도 미리 앉아보고 책상이 너무 안맞는다싶으면 어떻게 바꿔볼 생각이었거든요.
오옹 오랜만에 오르비와서 글 읽습니다^^
다음편 기대되요~
\"아뿔싸...\"
다음편에 대한 기대를 남기게 하는 저 글솜씨...Θ_Θ)乃
너무 기대되는데요;; 으윽 궁금해;;
=ㅁ= // 책상은 두 손으로 번쩍 들어 다른 자리에 놓고 다른 책상을 자기 자리에
놓으면 됩니다 --;; 그리고 자신의 신상명세가 있는 스티커를 살짝 떼어서
붙이면 됩니다 ;;;
임페라토르 // 그 여자친구와는 지금은 좋은 \'친구\'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그 스티커 잘 떼어지나요? 시험 끝나고 자기 학교 와서 그거 떼어내려고 하면 잘 안떼지고 흔적이 남던걸요.ㅠ
오옹.. 재미있다 /ㅁ/
럭셔리 브레인님// 제가 그걸 물어봤을리가 없잖아요..-_-;;; 농담하시는건가요?
대개 소집일날엔 학교내부로 못들어가게한담서요..근데 일찍 가셔서 들어갔는데, 그것이 안에 학생들이 있었기때문이라면서요..그런데 어떻게 책상을 옮겼는지 궁금해서 물어본거였는데...학생들이 교실 내에서 멀뚱히 쳐다보는 가운데 책상을 옮기신건지..
훔..근데 예비소집일날에도 학생들이 나오나? 아..그 학생들이 그 학교 학생들이라는 말이 아니라 수능보는 학생들이란건가..?ㅡㅡ;;; 이해가 안가는..=.=
아....왜 이런걸 물어보냐면, 전에 제가 수능 볼때는 예비소집일날 그 학교를 안가봐서요..그리고 수능때 책상이 좀 낮아서 불편했었는데..이번엔 한번 책상도 좀 보고 그럴까하는 생각으로 물어본건데 말입니다요..
질문해놓고보니 별 쓸데없는것 가지고 물고늘어진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_-;; 그냥 그때 예비소집일날 가서 적당히 상황을 봐야겠네요..ㅡ.ㅡ
어차피 이왕 물어본거 답변해주시길.ㅋ
수능날 오전 언어영역 치기 직전의 상황. 생각나네요 정말 긴장됐었는데.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넘 긴장되고 초조해지고 그러네요
시험치기 직전 정말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죠
올해도 또 그 순간을 겪게 되겠네요
에고..
다음편 기대되요
이번에 넘 오랜만에 올리셔서 눈 빠지게 기다렸다는 끙 ㅡㅁ ㅡ;
그 학교 학생들 맞고요 청소하느라 남는...
깡이죠 모..
학생들이 아니라 전 심지어 아직 안 나간 그 학교 선생님이 보고 있는 와중에도
책상을 옮겼는데....
인생의 중요한 시험 먼저 와서 책상 좀 바꾸겠다는데 누가 모라합니까
윗 분 말이 제가 쓴 의도였습니다. 겪어보지 못 하신 현역분들은 잘 이해를
못 하셨을 수도 있겠네요;;
기대되네요......얼른..얼른..ㅠ_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