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792] · MS 2002 · 쪽지

2004-08-25 08:5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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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대학생으로... 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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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2 1학기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앞으로 반년 뒤에는 나의 운명을 가를 만한 결정을 해야 될 때이다. KAIST 아니면 일반대. 어디를 고르느냐에 따라 나의 고등학교 생활이 2년으로 끝나는지 3년이 되는지가 결정된다. 또한 당연히 앞으로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런 중요한 시기에 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난 성실하지 못한 학생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었다. 나의 공부 스타일은 한 마디로 ‘벼락치기’로 표현할 수 있다. 시험 마다 벼락치기 하는 기간의 차이가 있을 뿐 공부 방식 자체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결과가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었다. ‘카이스트를 가기 위해서라면’ 그랬다. 카이스트는 학교 내의 전체 석차를 중요시했기 때문에 과목 석차 같은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석차는 카이스트를 가기에는 안정적이었다. 큰 변수가 없다면 카이스트를 지망한다면 무난하게 갈 수 있을 그런 성적이었다. 그런 성격과 성적. 그리고 적성을 합쳐서 선택을 해야 할 때였다.
처음에는 카이스트를 희망했다. 난 컴퓨터를 좋아했기 때문에 컴퓨터를 전공하고 싶었고 그걸 하기엔 카이스트가 맞는 것 같았다. 당시에 의대는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오히려 가고 싶지 않은 편이었다. 그 당시 의대 열풍은 아니었다. 하지만 의대는 분명 각광받는 분야 중 하나였고 다른 사람들의 희망 중 상위에 랭크되어 있었다. 난 그런 것이 싫었던 것 같다. 돈을 위해 가는 것 같았고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적어도 그때는 그랬다.
그렇게 1학기가 흘러가고 있었다. 내가 결정을 했던 때가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일반대로 굳혔다는 것이다. 이유는 종합대와 KAIST와의 비교에서였다. 내가 과연 ‘공학’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인문 쪽 교양도 많이 듣고 싶었는데 KAIST는 그걸 만족시켜 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가 KAIST에 갔을 때 과연 잘 할 수 있을지도 조금은 의심스러웠다. 내가 학교에서는 중상위라고 하지만 KAIST 가는 사람들만 보면 중위권 정도였다. KAIST 가서도 그런 현상은 아마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드라마에서 보던 KAIST의 이미지도 있었지만 그 좋았던 이미지보다는 아마 현실적인 면이 더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결국 그렇게 난 일반대 반을 선택했다.

고2 여름
고등학교 2학년 여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KAIST반과 일반대 반이 갈리게 된다. KAIST는 내신은 끝났으므로 면접 준비에 열심이고 일반대반은 슬슬 수능 준비를 시작하게 된다. 이전까지는 수능이란 걸 한 번도 준비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에겐 상당히 생소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모의고사도 보게 된다. 학교 특성상 사회과목 수업은 과학 과목에 비해 매우 비중이 적었기 때문에 수능에 포함되어 있는 사탐 영역은 그리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또 언어도 그러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성적은 내신에 비해 잘 나오는 편이었다. 모의고사 성적은 내신과는 달리 대개 상위권을 유지했다. 고 2 때는 모의고사를 거의 보지 않아 고 3때부터가 진정한 것이기는 하지만.
처음으로 맞이하는 수능이라는 체제, 그리고 일반대를 간다는 생각. 그렇게 보면 아직도 고등학교의 반이나 남아 있는 것이다.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안도감이 들기도 하고 그래도 해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았다는 불안도 들었다. 고 3에서 배울 예체능에 대한 걱정도 됐다. 하지만 일단 결정하고 나니 그런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적당히 약화되었다. KAIST 입시를 중심으로 고 2 여름은 지나갔다.

고2 2학기
2학기가 되었다. 2학기 초에 KAIST 입시가 있고 발표가 있다. 발표 후에는 KAIST 합격자와 일반대반을 완전히 가르게 된다. 이제 진정한 일반대반 생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올해는 전보다 KAIST에 많이 합격했다. 우리 학년부터 정원이 70명으로 줄었는데 합격자수는 크게 줄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절반 정도 붙었다. 예년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숫자라 이번 입시는 성공적이었다고 학교에서 평가했다. 물론 그 와중에 안타까운 친구들도 몇 명 있었다. 갔어야 했던 친구들도 몇 명 안 되는 일도 있었다. 그 친구들도 같이 일반대반에 편성된다. 때문에 초반 분위기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고2 2학기를 우울하게 만드는 다른 하나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자퇴이다. 자퇴는 비교내신제가 폐지된 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우리 바로 위에서 절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정확한 사람 수는 알 수 없지만... 우리 학년에서도 어김없이 일어났다. 자퇴를 하는 이유야 다들 알 것이다. 어쨌든 1년 반 이상 정들었던 친구들이 하나 둘 씩 떠나가는 모습은 쓸쓸함을 자아냈다. 슬프기도 했다. 내신 때문에 이렇게 가야 하다니. 그래도 분명 다시 좋은 모습으로 만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행이었던 것은 인원수가 예전에 비해 줄었다는 점이었다. 사실 우리 기를 마지막으로 자퇴는 거의 사라졌다(고 알고 있다). 조기졸업이 본격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도 말하겠지만 우리 때는 여러 가지 면에서 과도기적 성격이었다.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2학기의 내신은 일반대반 위주로 운영된다. KAIST반은 이제 내신이 의미가 없으므로 결국 일반대반의 내신이 올라가는 현상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래봤자 정원은 70명이고 내년에는 30명대가 될 것이다. 석차 백분율을 사용하는 대학의 경우에는 이 내신은 아마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이었다. 그리고 나의 평어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아마 우리 때부터 내신 부풀리기라는 용어가 유행했던 것 같은데 그것도 고 3때 얘기였다. 고 1때까지만 해도 절대 쉬운 시험은 아니었고 수 받는 것도 그렇게 용이하지 않았다. 내 성적표에는 미가 2개 있다. 지금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다행히 2학기 이후에는 거의 수였다.
  12월에 수능 결과가 발표되었다. 만점이 대량 양산되었고 나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수능이 이렇게 쉽게 나온 것에 대해. 어쩌면 이것이 나에게 조금은 불리하게 작용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뒤의 모의고사도 이 경향을 그대로 따랐고 그것에 익숙해져있던 나에게 1년 뒤에 수능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만 것이었다.
고2 겨울에는 보충수업이 있었지만 따분한 것이었다. 수업은 큰 의미가 없었고 자율학습이 주가 되었지만 나의 나태한 생활은 이어졌다. 선생님들의 감독 속에서 기숙사에서 자다가 걸리기도 하고 그러니 학습실에서 공부가 잘 될 리 없었다.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겨울방학은 그렇게 흐지부지 지나갔다.
고2가 끝나면서 카이스트 친구들은 수료와 함께 떠나갔다. 이제 일반대반끼리의 고3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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