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792] · MS 2002 · 쪽지

2004-08-25 22: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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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대학생으로... 고3 수능과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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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수능 시험 전날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다른 친구들과 시험장이 달라 따로 움직여야했다. 그것이 어쩌면 조금 더 긴장하게 된 원인인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했던 것이 더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원인인지도 모르겠다.
언어 영역부터 어려웠다. 쉬운 수능이 아닐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언어가 꽤나 어려웠기 때문에 시간이 모자라지는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다행히 찍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점수가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수리는 거의 악몽 수준이었다. 너무나 높아진 난이도로 적응이 되지 않았다. 30번까지 푸는데 못 푼 문제가 상당수였다. 끝나는 시간이 될수록 초조함이 온 몸을 휘감았다. 도저히 다 풀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상태가 되자 마지막에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찍은 것도 있었다. 그렇게 쉽지 않은 수리 영역이 끝나고 점심시간. 밥은 잘 넘어가지 않았던 것 같다.
사과탐은 사탐이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사탐은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정시에서 생각하고 있던 대학 중에 전 영역을 반영하는 곳은 연대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과탐은 별로 어렵지 않았던 지라 안심했다. 외국어는 자신 있게 풀었다. 시간이 남은 유일한 과목이었던 것 같다. 제 2 외국어는 매우 쉬웠다. 일본어를 응시하고 학교에서는 독일어를 배워 둘 다 풀었는데도 시간이 남았다.
그렇게 수능이 끝나니 참 허무하다는 생각도 들고 시험 점수가 낮게 나와 앞으로 어쩌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집에 가서 맞춰보니 점수가 376... 70점대 점수는 3학년 때 맞아본 적이 없는 점수라 좌절감이 들었다. 완전히 망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래도 끝난 것이니 하면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일어나서 선생님께서 전화를 걸어 점수를 물어보셨다. 말씀 드렸더니 아마 네가 제일 잘 봤을 거라고 하신다. 별로 믿겨지진 않았지만 그런가보다 했다. 그리고 학교에 가니 정말 그런 듯 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친구들은 학습실을 정리(?)하고 있었다. 난 정말 거의 모든 것을 다 갖다 버렸다. 갖다 버리면 안돼 보이는 것 까지 갖다 버려서 나중에는 후회하기도 했지만, 그때는 정말 그러고 싶었다.
그 다음날부터 기말고사가 시작되지만 공부를 했을 리 없다. 수시로 갈 친구들은 대충보고 정시를 생각하는 친구들은 열심히 보는 분위기였는데 난 정시를 생각했으므로 열심히 보았고 덕분에 석차는 이때까지 중 가장 높게 나왔다.
기말도 끝나고 고등학교 생활은 완전히 끝이었다. 나에겐 정시가 남아있긴 했지만.
수능 성적이 발표되고 이제 결정의 시간이 왔다. 수능 성적으로만 응시하는 카대 의대 수시에 합격하여 내가 붙은 수시는 세 개가 되었다. 이제 수시 중 하나를 고를 것인지 아니면 정시를 쓸 것인지의 문제가 남았다.
내 성적으로 서울대 의대를 쓸 수는 없었다. 그리고 연대 의대는 간당간당해 보였다. 그 두 개 의대를 빼고 나니 정시를 그렇게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맘때부터 법대가 눈에 들어왔는데 법대를 지망한 이유는 아마 내가 인문계에 대해 가진 관심이 법 쪽으로 쏠려서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고대 법대도 물망의 대상이었다. 이런 생각에 대해 선생님들,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고 결국 정시를 쓰지 않고 수시중에서 가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의대를 갈 것인가 또 다른 진로를 찾을 것인가.
그래서 의대를 포기하고 서울대를 가서 전과를 하기로 결심했다. 전과를 생각한 것은 자료를 찾던 중 우연히 서울대의 전과 제도를 보게 된 것인데 그때까지만 해도 전과는 그리 흔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입학할 때에만 해도 많은 사람이 주목하지 않던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들어가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테지만 안 되더라도 서울대가 종합대라는 것에 맘이 끌렸고 거기 가면 여러 가지 교양 수업을 들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다. 어쩌면 수능 시험을 다시 보게 된다고 할지라도 거기서 배울 수 있는 지식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난 서울대 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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