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해 [351250] · MS 2010 · 쪽지

2011-07-03 02:3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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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의 1번타자 강동우~ 안타를 날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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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플레이오프 2차전, 삼성팬에겐 잊을 수 없는, 잊기 힘든 경기다. 

LG와 맞붙은 삼성은 1차전의 패배 후 에이스 김상엽을 선발로 내세우며 배수진을 쳤다. 박빙의 승부가 이어졌다. 김상엽은 2회 타격감이 좋은 이병규와 만났다. 직구를 꽂았고, 노리고 있던 이병규는 크게 방망이를 휘둘렀다. 공은 멀리 뻗어나갔다. 홈런성 타구였다. 공은 빠른 속도로 펜스를 향해 날아갔다. 

최소 2루타, 발 빠른 이병규에겐 3루타도 가능한 코스였다. 삼성팬들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나 이내 탄식은 '탄성'으로 바뀌었다. 공만큼 빠른 속도로 달려가, 펜스에 부딪히며 기어이 공을 잡아냈다. 

팬들의 탄성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펜스에 부딪혀 쓰러진 선수는 좀처럼 일어날 생각을 안했다.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무릎을 붙잡고 그라운드 위에서 한동안 쓰러져 있었다. 

결국 들것에 실려 나갔다. 삼성 응원석은 숙연해졌다. 응원하는 입장에서 어떤 선수든 부상당하면 마음이 아프기 마련이다. 근데 이 선수의 부상은 마음의 아픔 정도가 심했다. 

삼성 공격의 물꼬를 트던 톱타자였다. '거북이 군단' 삼성에서 도루를 22개나 성공했다. 에누리 없이 3할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했다. 홈런도 10개나 때려냈다. 

무엇보다도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건 삼성의 미래를 책임질 '신인 선수'였다는 것이다. 그 놀라운 신인의 이름은 '강동우'다.  

지독한 부상 후유증... 부활과 부진을 반복하던 강동우 

이용규와 이종욱, 한국을 대표하는 톱타자다. 준우승을 차지한 WBC와 금메달을 따낸 베이징올림픽에서 이 둘은 사이좋게 맹활약했다. 빠른 발을 가진 두 선수의 어떻게든 살아나가려는 집념으로, 한국은 여유 있는 공격 야구를 선보일 수 있었다. 

11년 전의 강동우가 그랬다. 1번 타자였던 그는 어떻게든 살아나갔다. 빠른 발로 투수를 흔들었다. 홈런을 10개나 쳐낼 만큼 1번 타자답지 않은 장타력도 갖췄다. 이용규-이종욱도 신인 땐 강동우만큼 못 했다. 

98년 플레이오프에서의 부상은 놀라운 성적을 거두며 승승장구하던 강동우의 발목을 잡았다. 강동우는 팀이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는 모습을 병상에서 지켜봐야했다. 

부상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치료와 재활 기간이 꽤나 길어졌다. 방콕 아시안게임 국가대표에 선발 됐지만 심재학에게 그 자릴 내줬다. 99년엔 아예 한 경기에도 나오지 못했다. 2000년에 간신히 후반 13경기에 나올 수 있었다.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해 타율은 딱 1할이었다. 

2001년, 강동우는 다시 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독한 부상의 터널에서 벗어나 다시 풀타임 출전 선수가 됐다. .251 타율을 기록했다. 신인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제 몫을 해줬다. 2002년 드디어 강동우는 완벽히 부활했다. 타율 .288을 기록했고 134개의 안타를 쳐냈다. 다시 붙박이 1번 타자로 자리 잡았다. 강동우의 맹활약은 삼성의 한국시리즈 첫 우승에 기여했다. 1차전에서 투런 홈런을 쳐내며, 98년의 악몽을 깨끗이 씻었다. 

2003년,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시즌 중반 체력의 부담을 느낀 그는 박한이에게 1번 자리를 내주고 하위타선으로 밀려났다. .266의 타율을 기록했다. 이듬해 .297의 타율로 다시 부활했다. 그렇게 부활과 부진을 반복하던 강동우는 다시 2004년 한국시리즈에 섰다. 

삼성에서 두산으로, KIA로, 다시 한화로... 

현대와 만난 삼성은 1승1무1패의 팽팽한 줄다리기 싸움을 하고 있었다. 4차전 선발 투수 배영수는 비공인 10이닝 노히트노런의 환상적인 피칭을 선보였다. 

12회말 2사 만루 찬스에서 강동우는 현대의 특급 마무리 조용준을 상대했다. 안타 하나면 경기를 끝낼 수 있었다. 사구도 괜찮았다. 초구가 몸쪽 깊숙이 들어왔다. 공을 그대로 맞으면 밀어내기로 끝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강동우는 공을 피했다. 이후 평범한 플라이로 물러났다. 경기는 무승부로 끝났다. 

몇몇 팬들은 그런 강동우를 '근성이 부족하다'며 비난했다. 그러나 다수의 삼성 팬들은 위력적인 조용준의 공을 잘 피했다고 생각했다. 다시 강동우가 부상당하는 걸 원치 않았다. 

신은 가혹했다. 중요한 순간, 또다시 강동우가 타석에 섰다. 폭우 속에 치러진 마지막 9차전(3무승부로 9차전까지 치러졌음)에서 9회 2사 1점차 박빙의 승부에 강동우가 대타로 나선 것이다. 힘껏 방망이를 휘둘렀지만 평범한 땅볼이 됐다. 강동우가 고개를 떨어뜨리는 순간, 한국시리즈 우승은 현대 차지가 됐다.  

2005년, 선발과 백업을 오가며 .240의 평범한 타자가 된 강동우는 이듬해 3월 김창희-강봉규와 2대1 트레이드로 정들었던 파란 유니폼을 벗었다. 영원한 '삼성의 톱타자'로 남을 줄 알았던 강동우는 그렇게 삼성을 떠났다.  

두산에서 기대이하의 활약을 했던 강동우는 2008년 KIA로 갔고, 다시 올해엔 한화의 주황색 유니폼을 입었다. 최근 1년간 1할대라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한 그는 '저니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두산팬과 삼성팬이 함께 부른 응원가 

2006년 잠실구장, 삼성과 두산의 경기에서 참 신기한 장면이 벌어졌다. 두산 타자 강동우가 타석에 서자, 두산의 응원석에서 강동우 응원가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삼성팬들이 부르던 응원가였다. 

"안타를 쳐주세요 강동우, 안타를 쳐주세요 강동우, 안타 안타 안타 강동우 안타!" 

몇몇 삼성의 팬들이 강동우의 응원가를 함께 따라 불렀다. 이젠 상대편이 된 선수의 응원가를 불렀다. 첫 타석에서도 그랬고, 그 다음 타석에서도 "안타를 쳐주세요"는 잠실 구석구석에서 울려 퍼졌다. 

유니폼을 세 번이나 바꿔 입었다. 최근 2년 간 1할대 성적을 거뒀다. 평범하다고 하기조차 민망한 성적을 거두는 타자가 됐다. 하지만 삼성팬들의 마음속에 그는 영원한 '1번 타자'다. 

마침 한화에서 1번 타자 자리를 꿰찼다. 그동안 거포는 풍부했지만, 마땅한 1번 타자가 없던 한화였다. 완벽히 부활해 한화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불씨가 되길 기대해본다. 

물론 세월은 많이 흘렀다. 11년 전처럼 완벽한 1번 타자가 되긴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여전히 타석에 서는 한, 삼성팬들은 그를 응원할 것이다.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서른여섯 노장 타자, 강동우를 향해 외칠 것이다. 

"안타를 쳐주세요 강동우!" 출처:
blog.ohmynews.com/hitandrun/24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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