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 & Ins [669448] · MS 2016 · 쪽지

2016-06-01 19:4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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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아들에게 에이즈를 주사한 아버지, 그리고 살아남은 아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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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piration & Insight 는 일정 주기로 영감과 통찰을 주는 기사를 송출합니다. 주로 외신 기사를 번역하지만 기고문을 받기도 합니다. I&I는 6월 30일까지 시험적으로 서비스되며, 지속 여부는 시험 서비스 종료일에 결정됩니다. I&I의 기사가 오르비 회원 여러분들의 견문의 폭을 넓히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장 이광복.












아들에게 에이즈 바이러스를 주사한 아버지, 그리고 살아남은 아들의 이야기 



A Positive* Life: 아버지에게 HIV를 주사받은 아들은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24년 전, 미국 미주리 주의 어느 아버지가 섬뜩한 악의를 품고 HIV 양성 혈액이 든 주사바늘을 자기 아들의 핏줄에 찔러넣었다. 당시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끔찍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가장 믿기 힘든 사실은, 그 아들이 살아남아 지금까지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점이다. 


*Positive는 '긍정적인'이라는 의미와 '검사에서 양성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중의적인 표현





배저는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배저는 죽어가고 있었기에 단어를 신중하게 골랐다. 말할 기회는 한 번밖에 없었으니까.


“아버지는 왜 나한테 그렇게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까요?


배저의 본명은 아버지와 똑같은 “브라이언”이었다. 아버지 브라이언은 아들 브라이언에게 상상도할 수도 없는 범죄를 저지른 죄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일곱 살인 배저는 열이 펄펄 끓었고, 간은 부어올랐으며, 귀는 만성 감염에 시달렸고, 손톱 밑에는 곰팡이가 들끓었다. 스물 세 가지나 되는 약을 먹어야 했고, 몸의 면역 체계는 작동하지 않았다. 역병, 그것도 최악의 역병이 배저의 핏줄 속을 헤엄쳐 다녔다.


지금보다 힘이 남아 있을 때의 배저는 세인트루이스 아동병원의 복도를 걸어다녔다. 목에는 “도전 환영”이라는 글귀와 함께 커다랗고 붉은 입술 모양이 그려진 표지판을 걸었다. 간호사들에게 뺨에 뽀뽀해 달라는 의미였다. 배저는 포레스트 검프를 숭배하다시피 했고, 자기 병실에 들어오는 의사 모두에게 영화 에서 제일 좋아하는 대사를 읊으며 병상에 놓인 작은 상자에서 초콜릿을 꺼냈다. 그러면 의사들은 배저가 돼지저금통처럼 갖고 있는 알루미늄 깡통에 25센트 동전을 넣었다. 몇 년이 지난 후에도 배저의 어머니는 그때 동전이 딸랑거리는 소리를 기억했다.
배저는 두 번이나 죽음의 문턱까지 갔고, 의사들은 한 번 더 이런 상태가 되면 아들을 소생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의사들은 장례식 준비를 할 것을 권했고, 배저의 어머니는 권고에 따라 아들의 시신에 입히기 위해, 배저가 어느 결혼식에서 반지를 나르는 동자 역할을 맡았을 때 입었던 작고 하얀 양복을 챙겼다.


그래서 배저는 재판정에 직접 나가 아버지에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읽어주지 못했다. 대신 병실에서 한 말을 받아적은 다음, 1998년 가을 재판정에서 어머니가 그 말을 읽었다.


“나는 아버지가 감옥에서 나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짓을 하면 안 되는 거였어요.”


배저의 어머니 제니퍼 잭슨은 배심원단과 판사의 앞에서 아들이 받아적게 한 말을 힘겹게 읽어나갔다.


“왜 아버지는 미안하다고 하지 않죠?”


배저의 아버지 브라이언 스튜어트도 재판정에 있었다. 나무 탁자 뒤, 변호사 옆에 앉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머리는 군인처럼 짧게 깎았고, 면도를 말끔하게 했으며, 양손을 가슴팍에 모아 꽉 쥐었다. 엿새 동안 진행된 재판에서, 브라이언은 자신을 변호하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미주리 주 세인트 찰스 카운티에서 세기의 재판으로 꼽히는 이 재판에서, 엘스워스 컨디프 판사는 배저의 말을 들은 후 브라이언에게 대놓고 말했다.


“나는 믿습니다. 피고가 마침내 신의 부름을 받으면, 피고는 영원히 지옥의 불길 속에서 타오르는 형벌을 받으리라고. 그것만이 피고의 삶이 끝났을 때 마땅히 실현되어야 할 정의일 것입니다. 생후 10개월 된 자식에게 AIDS 바이러스를 주사한 행위는 전범, 그것도 가장 악질적인 전범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당신에게 내릴 수 있는 최고형은 무기징역입니다. 당신의 아들이 앞으로 겪어야 할 일을 생각하면, 죄값에 맞는 형벌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그 아이는 사망할 테니까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말입니다.”



. . . . .



브라이언 스튜어트는 야간에 근무하는 채혈전문의였다. 세인트루이스 소재 반즈 병원에서 환자들의 피를 뽑는 일이 직업이었다. 그는 특히 “나비바늘”이라는 주사침을 능숙하게 썼다. 나비바늘은 아주 작은 바늘로 군대에서, 또는 겁먹은 아이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의사들이 흔히 쓰는 주사침이다. 동료 채혈전문의들은 환자의 혈관을 잡지 못하면 으레 스튜어트에게 부탁했고, 그러면 스튜어트는 조심스러운 손놀림으로 혈관을 찾아냈다. 하지만 스튜어트는 기이한 사람이었다. 법정에서 나온 증언에 따르면 그는 병원에서 자신이 들어갈 권한이 없는 곳에 출입을 했고, 온갖 종류의 혈액에 손을 댔다. 때로는 환자에게서 피를 너무 많이 뽑기도 했고, 자기 집 냉동고에 혈액 병을 보관하기도 했다.


스튜어트는 키가 크고 말쑥한 느낌의 남자로, 오른쪽 뺨의 보조개가 눈에 띄었다. 다른 채혈전문의보다 옷을 잘 입었다. 카키색 바지에 잘 다린 셔츠를 주로 입었고, 병원 밖에서도 실험실 가운을 입고 다녔다. 이 사소한 버릇이 나중에 그를 옭아매게 된다. 


스튜어트는 배저가 태어나기 직전인 1991년 걸프 전쟁의 “사막의 폭풍” 작전에 참전했다. 제니퍼와는 1990년 미주리 주 트로이라는 도시에서 만났다. 군사 훈련을 받고 있을 때였다. “그때 브라이언은 정말 잘생겼었죠.” 제니퍼는 이렇게 회상했다. 짧게 깎은 머리, 말쑥한 옷차림, 그리고 매력적인 보조개. 두 사람은 약혼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실제 약혼을 하지는 않았다.


제니퍼와 다섯 살인 배저가 치료에 필요한 기구들을 정리하는 모습


제니퍼는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나쁜 남자”에게 매력을 느꼈다. 몇 년 후 스튜어트와 헤어진 그녀는 경찰 보고서에서 둘의 관계가 몹시 불안정했다고 털어놓았다. 제니퍼는 스튜어트가 자신을 타박상이 생길 정도로 수 차례 때렸다고 경찰에 말했다. 화가 날 때면 공기가 가득 든 주사기로 찔러 색전증이 생기게 해주겠다는 협박도 했다. 1990년 12월, 제니퍼가 배저를 임신하고 있을 때 스튜어트는 성관계를 하자고 강요했고, 제니퍼가 거부하자 그녀의 자궁 속으로 손목께까지 손을 밀어넣고는 다른 누구보다도 그녀를 “망쳐놓겠다”고 말했다. 경찰에 체포된 후에는 감옥에서 제니퍼를 불러 사과를 했고, 그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소는 취하되었다.


스튜어트에게도 부드러운 면모가 있었다. 출산일이 임박하자 부모가 되는 기쁨을 노래한 시를 액자에 넣어 제니퍼에게 선물했다. 스튜어트가 “사막의 폭풍” 작전에 참전하러 가기 전, 두 사람은 아들을 키우는 기분이 어떨 것인지 대화를 나누었고, 혹시라도 스튜어트가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경우에 대비하여 아들 이름을 아버지와 똑같이 짓기로 합의했다. 제니퍼가 출산할 때 스튜어트는 중동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아기가 얼마나 커? 몸무게가 얼마야? 나한테 아들이 생긴 거야?” 배저는 1991년 2월 24일에 태어났다.


스튜어트는 몇 달 후 전쟁터를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제니퍼는 공항에 마중을 나갔고, 스튜어트는 아들을 품에 안고 흐느껴 울었다. 셋은 한 가족으로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스튜어트는 제니퍼를 위해 문을 열어 주고, 손을 잡고, 키스를 했으며, 모호하나마 미래를 위한 계획도 이야기했다. 하지만 제니퍼는 이때에도 그가 말다툼을 벌이다 주먹으로 자동차 유리를 깬 적도 있다고 말했다. 결국 그녀가 더 이상 같이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자, 스튜어트는 내가 언제 떠날지는 내가 결정하겠다고 대꾸했다. 그러고는 이삼 일 정도 집을 나갔다가, 돌아와서 한동안 머물렀다가, 다시 떠나기를 반복했다.


제니퍼는 이미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 딸이 하나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이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제니퍼는 결국 스트레스 문제 때문에 스스로 정신병동에 입원했다. 스튜어트는 자기가 배저의 친아버지가 맞는지 대놓고 묻기 시작했고 양육비를 내지 않고 버티다가 친자 확인 검사를 거친 후에 양육비 지급 명령을 받기도 했다. 제니퍼는 그에게 이제 “전” 여자친구가 되었다. 한때 아들을 간절히 원했던 불안정한 아버지가 이제는 아들을 원하지 않게 된 것이다.



스튜어트는 기이한 사람이었다. 법정에서 나온 증언에 따르면 그는 병원에서 자신이 들어갈 권한이 없는 곳에 출입을 했고, 온갖 종류의 혈액에 손을 댔다. 



1992년 2월의 어느 날, 제니퍼는 스튜어트의 직장으로 전화를 걸어 생후 11개월 된 배저가 세인트 조셉 웨스트 병원에 입원했다고 알렸다. 천식이 심해 링거를 꽂고 있다고. 제니퍼는 전화를 받은 여자가 경악스러운 질문을 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브라이언 스튜어트 씨를 찾으시는 게 맞나요? 브라이언은 아들이 없는데.”


스튜어트는 배저를 보러 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흰색 실험실 가운을 손에 들고 병원을 찾았고, 가운을 병실의 흔들의자에 걸쳐 놓았다. 배저와 함께 병실에 있던 제니퍼는 나중에 법정에서, 그가 “실험실 가운을 차에 놔두기 싫어서 들고 왔어”라고 말해서 좀 이상하다고 느꼈다고 증언했다. 그녀는 목이 마르다고 불평했고, 그러자 스튜어트는 나가서 탄산음료라도 사먹으라고 권했다.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은 15분 정도 병실에 둘만 있었고, 제니퍼가 돌아왔을 때 스튜어트는 흔들의자에 앉아 악을 쓰며 우는 스튜어트를 안고 있었다.



. . . . .



4년 후, 세인트 찰스 카운티 보안관 사무소의 케빈 윌슨 형사는 가족 서비스부 사건을 맡게 되었다. 세인트 루이스 아동병원에서 어느 남자아이가 HIV 합병증으로 죽어가는데 대체 어떻게 HIV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미혼모 어머니와 5살까지 정상적이고 건강한 삶을 살았다. 의사들은 검진을 통해 그 아이가 다른 나라에서만 발생하는 희귀한 질병을 비롯하여 수많은 질병을 앓고 있음을 알아차리기 전까지는 HIV 검사를 해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이 엄마는 몇 달 동안이나 아들이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전혀 모르다가, 배저가 젖먹이 아기였을 때 양육 문제를 두고 스튜어트와 격한 말다툼을 벌였던 일을 기억해냈다. 법원에 제출된 서류에 따르면, 스튜어트는 제니퍼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당신을 떠날 때는 아주 영원히 떠나는 거니까, 모든 걸 다 매듭짓고 떠날 거야. 나한테 양육비 어쩌고 하면서 연락할 일도 없을 걸. 네 아들은 오래 살지도 못할 테니까 말이야.” 제니퍼가 무슨 소리냐고 따져 물었다. “걱정 말라고. 난 네 아들이 다섯 살을 못 넘길 거라는 걸 아니까.”


건강하고 늘씬한 체격에 잘 다듬은 갈색 콧수염을 기른 윌슨 형사는 응급의료원이기도 했기에, 사람들이 아직 HIV가 어떻게 퍼지는지도 모를 무렵부터 HIV가 전파되는 양상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가족, 친구, 과거 베이비시터, 가족 주치의, 소아과 의사와 면담을 했다. 세인트 루이스 카운티 보건처로 하여금 배저가 지금껏 살아온 6년 동안 가까이 했던 30명도 넘는 사람들의 혈액 검사를 하게도 했다. 그 중 HIV 감염자는 없었다. 하지만 스튜어트는 HIV에 감염된 혈액에 접근한 적이 있었고, 아들에게도 접근했다. 채혈전문의로서 지식도 있었다. 그리고 양육비를 지급하고 싶지 않다는 동기도 있었다.


HIV에 대해 연설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미국 국회의사당에 온 열세 살의 배저.


윌슨 형사는 이 사건이 스튜어트가 1992년 세인트 루이스 웨스트 병원 238호실에서 아들에게 HIV를 감염시킨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근무하던 곳에서 가져온 감염된 혈액 병을 작은 호스로 나비 바늘과 연결하고, 실험실 가운 안주머니에 넣어 병실에 온 것이다. 그때 배저가 악을 쓰며 운 것은 자기 혈액형과 맞지 않는 피가 몸에 들어오면서 용혈 반응을 일으키는 바람에 열이 치솟았기 때문이라고, 형사는 의심했다.


윌슨 형사는 스튜어트를 미행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병원 주차장에서 만난 그를 경찰서로 끌고 가 심문했다. 스튜어트는 여덟 시간이 넘는 심문을 받는 동안 거의 입을 열지 않고 벽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윌슨은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튜어트는 자기를 유죄로 만들 만큼 똑똑한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겠죠. 나는 ‘당신 아들이 몹시 아픈데, 아무도 왜 그런지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배심원단 앞에서 당신을 괴물로 묘사해 주겠다고도 했지요. 그리고 그러는 동안에도 둘 다 꼬마 브라이언은 죽게 될 것이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어요.”


재판이 시작되었고, 기소자측에서는 스튜어트의 과거를 보여주는 으스스한 일화를 수도 없이 밝혀냈다. 그의 전 아내 엘리자베스 스톨트—스튜어트가 제니퍼와 헤어진 직후 결혼했으나 금방 이혼했다—는 스튜어트의 접근을 금지하는 보호명령을 두 번 받아냈다. 증인석에 앉은 그녀는 제니퍼도 그랬듯이, 스튜어트가 폭력적이었다고 증언했다. “결혼 생활 중에 스튜어트는 나한테 수도 없이 협박을 했어요. 내가 자기한테 거슬리는 짓을 했다가는 절대 자기가 의심받지 않고 사람을 제거하는 방법을 쓸 거라고도 했죠.”


주 방위군에 근무하는 어느 증인은 스튜어트가 그 비슷한 말을 했던 것을 기억했다. “차를 몰고 가는 중이었는데, 나한테 이런 말을 했어요. 누가 자기를 엿먹이면 주사기로 뭘 주사해 버릴 거라고요.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도 모르게 될 거라고 하면서요.”


스튜어트가 악당이라는 확신이 커져갔다. “악마 같은 인물이에요. 아들에게 HIV 바이러스를 주사할 때 아들을 죽이겠다는 의도가 확실했지요.” 윌슨 형사의 말이다.


피고측에서는 배저가 다른 경로로 HIV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고 반박했다. 마약을 하는 제니퍼의 여동생과 친구들이 집에서 헤로인을 주사하고 놔둔 바늘에 찔렸거나, 성적 학대를 받았거나, 아기 때 병원에 있으면서 누군가의 실수가 있었거나, 이도 저도 아니라면 지금껏 발견되지 않은 경로를 통해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배심원단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배저가 소모성 질환 단계에서 몹시 쇠약해진 사진을 보았다. 성적으로 학대를 받은 징후도 없었다. 제니퍼의 여동생과 그 친구들은 HIV 음성이었고, 1992년 2월 이전에 채취한 배저의 혈액 샘플도 음성이었다.


로스 불러 검사는 최종 의견진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황 증거는 밧줄과 같습니다. 여러 가닥의 줄이 한데 모이면 아주, 아주 튼튼해집니다. 아주 튼튼한 밧줄이 되어 유죄 선고의 무게를 견뎌낼 수 있게 됩니다.” 말을 마친 검사는 양복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높이 쳐들었다.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 그것은 나비 바늘이었다.



. . . . .



배저의 건강은 간신히 유치원에 갈 수 있을 정도는 되었으나 특수한 백팩을 매고 다녀야 했다. 백팩은 긴 튜브로 배저의 배에 뚫은 구멍, 일명 G버튼과 연결되어 배저에게 영양액을 공급해 주었다. 배저는 피자 같은 일반 음식은 먹지 못하고 토해버리기 때문이었다. 제니퍼는 집에서 아들을 돌보기 위해 일을 그만두고 다니던 2년제 대학도 자퇴했다. 두 사람은 푸드 스탬프(역주: 미국에서 정부가 저소득자들에게 주는 식료품 할인 구매권)와 메디케이드(역주: 미국의 저소득층 의료보장제도), 라이언 화이트 케어 법(역주: 저소득층 HIV/AIDS 환자와 그 가족에게 치료비를 지원하는 법으로, 혈우병 치료 중에 수혈로 AIDS에 감염된 뒤 AIDS 연구와 대중의 인식 전환에 힘쓰다 사망한 라이언 화이트라는 소년의 이름을 따서 1990년 제정된 법)에 의지하여 살아갔다.


항레트로바이러스 약물로 배저의 생명이 연장되자, 제니퍼는 아들을 학교에 보내기로 결심하고, 학교 당국에 자신이 HIV에 대해 배운 지식을 모두 알려주었다. 그래도 배저는 특수 화장실을 써야 했고, 장애인용으로 제작된 소형 버스를 타야 했으며, 아미카신이라는 약물이 귀 속의 신경 종말을 모두 죽여버렸기 때문에 청력의 80%를 잃었다.


배저는 귀에 끼우면 귀가 툭 튀어나오는 거대한 보청기를 꼈다. 보청기는 허리띠에 매는 주머니와 코드로 연결해야 했다. 언어 장애 때문에 배저의 말투는 둔했다. 배저는 미식축구를 하지도, 레슬링부에 들지도 못했다. 심지어 보이스카우트에도 가입할 수 없었다. 보이스카우트 대표들이 그가 HIV 양성인 것을 알고 아연실색했기 때문이었다. 5학년 때는 떠밀려서 타일 바닥에 넘어졌다. “에이즈 환자다!”


배저는 자기 본명을 증오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아버지와 같은 이름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8살 때 법적으로 이름을 바꾸겠다고 결심했다. 새 이름으로는 “브랜도”나 “션”을 원했지만, 어머니가 간청을 했다. 이름은 네 자신의 일부이니, 바꾸려면 철자만 바꾸라고. 그래서 배저는 브라이언이라는 이름을 철자만 바꾼 이름 “Brryan”을 법정에 제출했다. 그때는 이 이름이 멋있어 보였다.


“브라이언(Brryan)”은 자신을 벽으로 밀치고 바닥에 넘어뜨린 아이들과 싸우다가 정학을 당했다. 체내 바이러스 양이 다시 검출 가능할 만큼 많아지면서 9학년을 거의 쉬다시피 했고, 하루에 20시간씩 잠을 자게 되었다. 그는 여전히 아팠고, 이름을 바꾸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때로는 그 자신도 죽기를 바랐다.

 
하지만 배저(오소리)는 살았다. 이 별명은 HIV에 감염된 아이들을 위한 휴양지인 네브레스카 주의 킨들 캠프에서 얻었다. 이곳의 아이들은 모두 자연에서 유래한 별명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고, 배저가 원한 “스쿼럴 베이트(다람쥐 미끼)”는 이미 다른 아이의 별명이었기에, 그곳의 카운슬러가 골라준 별명이었다. 배저는 자신감을 얻었고, 사람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생겼음을 깨달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그는 대중 강연가로서 약간의 유명세를 얻었다. 처음에는 세인트 찰스와 그 주변에서 강연을 했고, 차츰 지방 TV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가족 소유의 도요다 캠리를 타고 25개 주, 16만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여행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2009년의 어느 날 밤, 뉴욕 주 알리시아 키즈 블랙 볼에서 배저는 영화배우 새뮤얼 L. 잭슨과 한 테이블에 앉았다. 그는 어색한 침묵을 깨기로 마음먹고 이렇게 말했다. “잭슨 씨, 반갑습니다. 저도 잭슨 씨입니다.”(역주: 배저의 어머니 제니퍼의 성이 “잭슨”이다.) 새뮤얼 L. 잭슨은 웃음을 터뜨렸고, 배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값비싼 포크를 내려놓고 외쳤다. “와우! 대단하군요!”






2부



어느 여름 날 오후, 세인트 찰스 카운티의 칙필라 레스토랑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는 배저. 스물 세 살이 된 그는 182센티미터의 키에, 피부는 햇빛에 잘 그을렸고, 청바지 허리께에는 열쇠 꾸러미가 매달려 딸랑거린다. 옅은 갈색 머리카락은 짧고 헝클어졌으며, 끝쪽은 햇볕에 타서 금색을 띤다.

 
카운터 뒤에 있던 소녀들이 부끄러워하며 킥킥거린다. 배저는 척 테일러 컨버스 운동화에 밝은 청색 양말을 신었다. 그가 주문을 받느라 이어폰을 끼고 있는 소년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소년도 마주 고개를 끄덕인다. 배저는 칙필라에 닭고기 샌드위치와 와플 프라이를 공급하는 일을 하고 있다.


배저는 끼고 있던 선글라스를 밀어올린다. 오른쪽 뺨에 보조개가 눈에 띈다. 그는 무심한 듯 쿨하게 카운터에 몸을 기댄다. “쿨가이 배저" 답게 “쿨내”를 풀풀 풍기며. 오글거리지만 딱 맞는 표현이기도 하다. 소셜 미디어 해시태그까지 붙여주면 말이다. 배저는 어리석은 일을 할 때마다, 가령 바나나 모양 옷을 입고 잔디를 깎는다거나 하면 “#쿨가이 배저”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올린다. 그는 청각을 거의 잃었기 때문에 언어 장애가 약간 있어 발음이 불분명하지만, 그런 말투에서조차도 “쿨내”는 흐른다. “내 말투가 좀 우습죠? 나만의 억양이라 할 수 있죠.”


이날은 미국의 아버지날 이틀 후였다. 배저의 부친은 15년 이상 경비가 가장 삼엄한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다.


“아버지날에 대해 트위터에 글을 올리긴 했어요.” 필자와 식사를 함께 하면서 배저가 말했다. “그 날에 대해 농담도 했고요. 그리고 그런 농담 중에 몇 가지는 사람들이…”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음료수를 한 모금 마셨다. “…불편해 하더라고요.”


배저의 농담이란 예컨대 이런 것이다. “썩소”를 띤 채 오렌지색 셔츠를 들어올리면서 “이거 입으면 내가 우리 아빠처럼 보일까?”(역주: 미국의 죄수복은 대체로 오렌지색이다.) 아니면 인스타그램에 자기 아버지가 “만들었다”면서 자동차 번호판 사진을 올리고, 트위터에는 “똑똑. 누구세요? 우리 아빠는 아냐.”는 글을 올리는 식이다.(역주: 미국에서 자동차 번호판은 수감된 죄수들이 만드는 경우가 많다.)


배저는 현재 비교적 건강하게 살고 있다. 이제 약은 하루에 한 알만 먹는다. 하지만 여전히 대상 포진과 피로감에 시달리며 석 달에 한 번 주치의에게 혈액 검사를 받는다.


“뭐, 이런 상황에 대해 화를 내느냐, 아니면 웃으면서 받아들이냐의 선택이죠. “#귀머거리의 문제”라는 해시태그를 시작했어요. ‘사람들은 나한테 ‘일해(work)’라고 말하는데, 내 귀에는 ‘섹시댄스를 춰(twerk)’라고 들린다니까! #귀머거리의 문제’ 이렇게요. 매일 매일 심각해지기보단 재미있게 살려고 해요. 인생은 재미있게 살고 모험을 즐기라고 있는 거니까요. 나한테 사생아라든가, 아버지 없이 자랐다든가, 청각에 문제가 있다든가, HIV 양성 환자라든가, 그런 거에 대한 농담을 하고 싶다면 하라지요. 내가 먼저 그런 농담을 해버리면 사람들이 그런 걸로 나를 놀리지 않게 되죠.”


배저의 아버지는 종신형을 살고 있다.



처음에는 이런 배저의 자조적인 태도가 성인이 되기 싫어하는 어린아이의 잠재된 방어기제로 보지 않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대중에게 보이는 모습(페르소나) 속에 미칠 듯한 분노를 억누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설령 그런 분노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배저의 의식 속 워낙 깊숙이 숨어 있기 때문에 배저 자신은 자각하지 못하거나, 자각할 수조차 없는 것이리라. 배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필자의 눈에 그는 “이건 내 인생이고, 난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 거야.”라는 태도를 가식 없이 그대로 드러냈다.


나중에 배저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사는 건 쉬워요. 하지만 나와 내 아버지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마치 스케이트보드로 묘기를 부리는 사람을 보는 것 같아요. 아주 쉽고 멋지게 묘기를 부리지만, 아주 우아하게 해내지만, 막상 직접 해보려 하면 쉽지 않죠.”


여성과 사귀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배저는 두 번 이상 여자 쪽 아버지가 개입하는 바람에 교제를 끝냈다. 아버지들은 대체로 배저를 좋아했지만 자기 딸과 진지한 관계에 이르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이 모든 일이 배저에게는 까다로운 문제다. 그는 아빠가 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병을 물려주지 않을 계획, 또는 비전도 가지고 있다. “요즘은 ‘정자 세척’이라는 게 있어요. 그 기술을 쓰면 자녀에게 HIV가 유전되지 않죠.” 아이를 갖는다는 생각을 하면 배저는 행복해진다. “난 쿨한 아빠가 될 것 같아요. 아니, 하기야 자기가 쿨한 아빠라 생각하는 사람이 실제로는 가장 당혹스러운 아버지였죠. 그래서 두려움은 좀 있어요. 내 아이들이 나를 당혹스러운 아빠라고 생각하면 곤란하죠.”


배저는 항상 “아빠”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을 지칭할 때, 그 단어가 암시하는 열망과 사랑을 담아서. 가령, “당신 아빠는 어떤 분이신가요? 저는 다른 사람들의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거든요.”라고 말하는 식이다. "아버지”라는 단어는 브라이언 스튜어트에게만 쓴다. 그의 말투에서 이 짧은 단어는 어색하게 질질 끌린다. “아버어져.”


배저는 미주리 주 수감번호 1018559인 재소자에게 편지 한 통 보낸 적 없고, 미네랄 포인트 소재 포토시 교도소로 전화 한 통 건 적 없다. 브라이언 스튜어트는 배저가 새로 사귄 친구들이 궁금해할 때나 배저의 사연이 뉴스에 등장할 때 이야기 속이나 몇 장의 사진 속에서만 나오는 인물이다.
배저는 자신이 아버지와 많이 닮았다는 것을 잘 안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똑같은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요구했던 것도 잘 안다. 아버지가 어머니 제니퍼에게 자기한테는 아들이 없다고 말한 사실도 잘 안다. 이 이야기를 할 때면 배저는 머리를 흔든다. 마치 아직까지도 믿고 싶지 않다는 듯. 배저는 아버지가 감옥에 가기 전까지 매달 267달러를 양육비로 보냈다는 사실을 잘 안다. 궁금증, 침묵, 자신을 불완전하게 만든 정보 부족은 이제 그의 일부가 되어 있다. 수수께끼와 질병,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이 두 가지만을 남겼다.


배저는 궁금해 한다. 자신이 HIV 단체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알고 있는지. 케냐로 가서 HIV에 감염된 어린이들이 모인 어린이집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HIV는 사형 선고가 아니에요!”라고 말했던 것을, 산악지대를 비틀비틀 올라가는 버스 속에서 가수 마일리 사이러스와 노래하고 춤을 추었던 것을, 미 의회에서 연설을 한 것을 알고 있는지. 그리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전에서 시구를 했다는 사실을 아는지 궁금해 한다. 그때 그는 맨발이었고, 등에 특별히 “B. 잭슨”이라고 쓰인 상의 유니폼을 입었으며, 전광판에는 그의 사연이 소개되었다.


배저는 늘 아버지가 자신을 살해하려 했다고 확신에 차서 말하지만, 아직까지도 그 사실을 머리로 납득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상투적인 이유, 추측은 물론 있다. 아버지는 양육비를 주고 싶지 않았고, 어머니를 해치고 싶어했다. 하지만 지금도 확실한 이유는 모른다.


“난 사실 아버지에게 아무 감정이 없어요. 그 사람을 잘 모르니까요. 그 사람이 한 짓만 알죠. 그리고 사람은 자기가 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하지 않나요? 물론 후회라든가, 심경의 변화가 있을지는 모르죠.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그 사람을 용서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니까요. 그냥 내 삶을 살고, 내가 어떤 일을 해냈는지 그 사람한테 보여주는 거죠.”



. . . . .



배저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삶을 사는 동안, 스튜어트는 보호 구치를 받으며 매일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른 죄수들이 그가 어떤 죄목으로 갇히게 되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감옥 안이든 밖이든 그 누구와도 거의 대화하지 않지만, 편지는 가끔 쓴다.


제니퍼가 스튜어트가 근무하던 병원 행정 부서에서 그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알았어야 했다는 주장을 반복하며 병원을 고소하자, 스튜어트는 자신이 아들을 사랑한다는 선언으로 가득 찬 장황한 편지를 썼다. “나를 아는 선량한 사람들은 내가 기소된 그 사건을 저지르지 않았음을 마음으로, 또 머리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배저에게 최선의 이익을 가져다주기 위해 애썼고, 배저가 자신의 친아들임을 안 후에는 제니퍼에게 낙태시키지 말라고 설득하여 사실상 아들을 구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아들을 붙잡고, 포옹하고, 젖을 먹인 후엔 트림을 시키고, 시간을 내어 보살피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목욕을 시키고, 흔들어서 재웠다고 편지에 썼다. “아버지로서 내가 가장 사랑했던 것은 아들의 소중한 미소를 보고 그 웃음 소리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필자는 이 기사문을 작성하는 동안 스튜어트 가족의 친구가 스튜어트를 위해 보낸 소포를 받았다. 안에는 편지가 동봉되어 있었다. 편지는 “그 누구도 브라이언 (스튜어트) 쪽의 이야기는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라고 시작하면서, 배저의 어머니에 대한 비난과 언론 및 HIV에 대한 정보를 나열했다. “스튜어트의 아들은 살아 있으며 페이스북에 자기가 해낸 일을 올리며 자랑하고 있습니다.” 편지는 스튜어트의 아들이 살아 있을 뿐 아니라 건강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즉, 배저는 실제로 HIV를 보유하지 않았으며 스튜어트의 유죄 판결은 잘못되었다는 것이었다. 소포 안에는 또 HIV 전파에 대한 낡은 유인물, 스튜어트가 미주리 주 주지사와 미 중서부 결백 프로젝트(역주: 중범죄 사건을 조사하여 억울하게 수감된 자의 누명을 벗기고 결백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 단체)에게 보낸 편지가 들어 있었다. 미 중서부 결백 프로젝트는 스튜어트 사건 조사를 거부했다.




한참 후에 스튜어트가 필자에게 직접 편지를 보냈다. 어투는 우호적이었다. “답신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는 인터뷰에 응하겠지만 몇 가지 조건이 있다고 했다. 그 조건 중에는 “당신이 ‘내 아들의 HIV 검사 결과가 양성이라는 것은 거짓이다.’라는 문장을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기사에 써야 합니다.”가 포함되어 있었다.


스튜어트는 또한 (기사를 싣게 될) GQ 측이 “퍼스 그룹과 AliveandWell.org 양측 전문가가 제시하는 관련 과학 지식을 게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퍼스 그룹은 HIV의 존재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호주의 단체 이름이다. AliveandWell.org는 “HIV 검사의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웹사이트로, AIDS 부정론자인 크리스틴 매기오레가 설립했다. 크리스틴 매기오레는 2008년 AIDS 관련 질병으로 사망했으며, 그 딸도 AIDS 합병증으로 세 살 때 사망했다.


우리의 서신 교환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 . . . .



현재 배저는 세인트루이스 외곽에 있는, 마당에 핑크색 플라멩코가 장식된 작은 집에서 살고 있다. 주소는 “호프(희망) 드라이브” 거리이다.


그는 어머니가 반즈 주이시 병원과 반즈 의료원을 대상으로 제기한 의료 과오 소송에서 받은 돈으로 이 집을 샀다. 모자는 이 사건에 대해 공표 금지령을 받았지만, 합의한 덕분에 물질적으로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되었다.


집 안은 사진으로 가득하다. 킨들 캠프에서 찍은 배저의 사진이 많다. 킨들 캠프를 졸업한 그는 이제 킨들 캠프의 카운슬러가 되었다. 캠프에서 배저는 웃통을 벗고 누군가가 소프트볼로 과녁 한가운데를 맞출 때마다 물탱크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염소 처리한 물에 빠지면 오래 전 G버튼이었던 둥근 흉터가 번들거렸다. 배저는 생존의 모범, 초탈의 본보기였다. 어느 날 밤 늦게 배저는 모닥불 앞에 섰고, 카운슬러가 그를 소개하며 “배저는 기적입니다.”라고 말했다. 캠프에 온 사람들은 나무로 만든 관람석에 앉아 숨을 죽였다. 불꽃이 탁탁 소리를 냈고 배저의 얼굴은 강렬한 오렌지색으로 물들었다. “내가 5학년 때 다른 학생들은 매일 나에게서 도망치기 바빴죠. 마치 내가 총이라도 들고 있는 것처럼요. 그런 애들 때문에 나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괴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지구에서 내가 있을 곳은 아무 데도 없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나는 나쁜 아이라고 생각했고… 또… 나중에… 내 아버지처럼 될 것 같았습니다.”


배저의 집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는 색색의 분필로 쓴 글과 그림이 가득했다. “어서 오세요. 잭슨 슈퍼돔입니다.” 알고 보니 필자가 방문한 그날 배저의 형제자매(16세와 14세의 남동생 콜틴과 레이딘, 그리고 12살인 여동생 섀닌)들이 당분간 배저와 같이 살기 위해 그 집에 온 것이었다.


제니퍼는 지금까지 다섯 남자 사이에서 자녀 여섯을 낳았다. 배저가 보기에는 자신의 아버지 이후의 남자들도 아버지보다 그리 나을 게 없는 사람들이었다. 배저는 그들이 어머니를 때리고, 버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자신들의 아이도 한 명만 빼놓고는 모두 제니퍼에게 떠넘겼다. 제니퍼는 아이들이 좀더 좋은 학군에서 학교를 다니기를 바라고 지금의 남자친구가 자신을 위협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장남의 집에 보내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이리하여 배저는 일종의 수양 아버지가 되었다. 아빠 없는 청년이 아빠가 되는 법을 배우는 중인 셈이다. 


“나는 안 좋은 선택을 여러 번 했지요.” 제니퍼의 말이다. “브라이언 스튜어트는 내가 더러워졌다고 말했어요. 그 바람에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일에서 점점 희망을 잃게 됐지요. 다른 여자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사람들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조차 없게 돼요. 지금은 노력하고 있지만요.”


배저는 그답게 상황을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는 자기보다 한참 어린 남동생과 여동생을 키우는 일을 좋아한다. 아이들의 숙제를 봐주고, 등교를 도와주고, 싱크대 위에는 치즈볼 큰 박스를 항상 구비해 놓고 있다.


“난 엄마가 만나는 남자들에 대해서 항상 회의적이었어요. 엄마 인생에 들어왔다가 나가는 그 멍청이들은 다들 엄마를 개똥 취급하죠. 나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를 똑똑히 볼 수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에요. 아버지가 나를 거부한 것도, 또 HIV를 가져온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지도요.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 사람처럼 되지는 말아야지’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은 항상 있죠.”


배저는 강연을 할 때면 어머니를 영감의 원천으로 활용, 자신을 살리기 위해 어머니가 인생의 많은 부분을 희생했다고 말한다. 그는 손뼉을 짝 하고 치면서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는, 우리 선택에 달려 있어요.”라고 차분히 말하곤 한다.



. . . . .



필자는 배저의 집에서 나오면서 세인트루이스 아동병원으로 진찰을 받으러 가는 그와 동행했다. 세인트루이스 아동병원은 카페에 거대한 열기구가 떠 있고 벽에는 색색의 동물들 윤곽이 가득 그려진 곳이었다. 이 아동병원과 유리로 만든 고가 통로로 연결된 건물이 바로 배저의 부친이 온갖 혈액을 입수할 수 있었던 반즈 병원이다.


배저는 처음 아팠을 때부터 매년 세인트루이스 아동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의사들은 배저가 생존해 있다는 소식이 실린 신문을 복도의 코르크판에 핀으로 꽂아 놓곤 했다. 간호사들에게 추파를 던지던 어린 꼬마 환자는 병원에서 자기 피를 뽑아내어 검사하게 만드는 그것이 영원히 자기 피 속에 있을 것임을 알면서도 간호사들을 유혹하는 장난을 멈추지 않았다. 배저는 병원 프론트 데스크에 팔꿈치를 얹고 몸을 기댔고, 간호사들과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얌전히 앉아서 진찰을 받는 어린이에게 주는 막대사탕도 받았다.


배저는 진찰대에 앉아 진찰 시간을 기다리면서 빨간색 톱사이더 구두를 신은 발을 바닥 바로 위에서 달랑거렸다. 진찰용 전등을 조명으로 써서 셀카도 몇 장 찍었다. 그를 담당하는 일반의가 들어와 포옹을 나누고는, 연애는 잘 되어가는지, 약은 제때 먹고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러고는 배저가 더 이상 아동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슬픈 소식을 알렸다. “이젠 공식적으로 성인이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의사는 자신이 항상 배저를 지켜볼 것이며 그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저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그 누구라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일이라고. 두 사람은 잠시 동안 나란히 앉아 말이 없었다.


배저가 병원 복도로 나서자 외래환자 담당 데스크의 간호사들이 마지막으로 그에게 환호를 보내고 키가 엄청 커졌다고 칭찬했다. 병원에 발길을 끊지 말고, 계속 보고 싶으니 가끔 들러달라는 당부도 했다. 배저는 벽에 그려진 동물, 거대한 열기구, 아픈 아이들이 살기 위해 싸우는 병실을 지나 걸어갔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중에도 그의 아랫입술에는 막대사탕이 삐죽이 나와 있었고, 팔에는 간호사가 피를 뽑아내고 감아준 가느다란 파란 붕대가 감겨 있었다.



병마와의 전쟁

배저의 23년 일생과 HIV의 역사

1991년 – 배저, 미주리 주 클레이튼에서 출생. 어렸을 때 이름은 브라이언 토머스 스튜어트-잭슨.

1992년 – AIDS, 처음으로 발병이 보고된 지 10년도 되지 않아 미국의 25세-44세 남성의 주요 사망 원인이 됨.
 
1993년 – 클린턴 대통령, 백악관 국가 AIDS 정책실 만듦. 

1995년 – 미 식품의약국(FDA), 프로테아제 억제제 사퀴나비르를 유례없이 신속하게 승인하며 “고활성 항레트로바이러스 요법(HARRTS)”의 시대를 선언. 

1996년 – 배저, 걷지 못하게 되고 열이 40도까지 치솟아 타이레놀과 나프록센이 듣지 않음. 검사 결과 완전히 진행된 AIDS라는 진단이 나옴. 

1997년 – 배저의 모친, 아직 아동에게 사용 승인이 나지 않은 프로테아제 억제제를 아들에게 투여하기 위해 청원에 나섬. 

2002년 – AIDS, 전 세계 15세-59세 연령대 인구의 주요 사망 원인이 됨. 

2006년 – 처음으로 전 세계 AIDS 사망률이 감소함. 하지만 여전히 4천만 명이 HIV 환자이며, 이 중 치료를 받는 사람은 3백만 명에 불과. 

2010년 – HIV와 같은 만성 질환 환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오바마케어(Obamacare)가 법으로 제정됨. 

2013년 – 배저, 마지막으로 아동병원 방문. 







출처 : GQ

원제 : A Positive Life: How a Son Survived Being Injected with HIV by His F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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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math b · 659033 · 16/06/01 23:08 · MS 2016

    그냥상태가호전이고  완치는아니죠?
    근데  면역계가 망가졌는데 호전될수가있음?

  • 동글망법사 · 530796 · 16/06/02 00:33 · MS 2014

    네 완치는 안되요 그래도 그 바이러스에 의해서 면역세포가 0이되는데 현재 의학에서 약을먹으면 바이러스 수치도 0이되고 면역세포수도 증가해서 호전되요.. 물론 일정수치이상의 면역력을 갖진 못하지만요.

  • IVLIVS · 652970 · 16/06/05 00:15 · MS 2016

    정말 어쩌면, 배저의 '아버지라는 사람'이 무기징역을 받은 건 참 잘된 일 같아요.
    잘 사는 게 최고의 복수이고 그걸 죽을 때까지 실감할 수 있도록 하게 되었잖아요.
    한 번뿐인 삶을 그런 식으로 살고, 주고, 죽이고, 죽으려 하다니. 아버지란 사람 꼭 에이즈가 정복된 모습 본 뒤에나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 름신 · 965022 · 21/06/10 18:59 · MS 2020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