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평 생윤 논쟁, 여기서 끝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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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4일 시행된 202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 생활과 윤리 11번 문항과 관련하여 논쟁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였으나,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저도 첨언을 해보려 합니다.
물론 해당 내용은 매우 모호한 사안이며, 따라서 글 이외의 기타 질문은 받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제 잠정적 결론은 2027학년도 6월 모의평가 11번 문항의 ㄴ 선지, “정당한 시민불복종이 반드시 양심적 행위인 것은 아니다”를 피터 싱어(Peter Singer)의 입장에 부합하는 옳은 선지로 출제한 것은 오류라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나 부적절한 출제라는 것입니다. 이는 싱어가 철학적 논의의 대상으로 삼았던 ‘양심’의 개념과 ‘불복종’의 본질적 전제 조건을 출제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평가원’)이 단편적으로 해석한 결과입니다.
싱어의 원전인 『실천 윤리학(Practical Ethics[PE])』(황경식·김성동(역), 철학과 현실사.) 과 『민주주의와 불복종(Democracy and Disobedience [DD])』(Clarendon Press, Oxford, 1973) 을 기반으로 주장을 이어가 보겠습니다.
1. 양심 개념의 엄밀한 구분: ‘전통적 양심’과 ‘비판적 양심’
이 사안을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은, 싱어가 대중이 혼용하는 ‘양심’ 개념을 두 가지로 엄격히 분리했다는 사실이다(DD, 93-94).
전통적 양심(Traditional Conscience):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알려주는 내면의 목소리 같은 것(something rather like a voice inside them which tells them what they ought to do and what they ought not to do).”
비판적 양심(Critical Conscience): “자신의 진지하게 숙고한 도덕적 신념에 기초하여 행동할 때(when he acts on the basis of his own seriously thought out moral convictions).”
싱어는 직관에 불과한 ‘전통적 양심’에 맹목적으로 의존하는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양심을 따르는 것’이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가 행하도록 촉구하는 것을 행하는 것이라면, 양심에 따르는 것은 합리적인 주체로서의 자신의 책임을 포기하는 것이 되며, 모든 관련된 사항들을 고려하여 상황의 옳고 그름에 대해 내린 최선의 판단에 기초하여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 된다. ‘내면의 목소리’는 참된 윤리적 통찰의 근원이기보다는 양육과 교육의 산물이기가 더 쉽다(PE, 455).”
요컨대 싱어에게 ‘양심’은 한 덩어리의 개념이 아니다. 그는 한편으로 ‘내면의 목소리’로서의 양심을 비판하고, 다른 한편으로 ‘숙고된 도덕적 신념’으로서의 양심을 긍정한다. 바로 이 분화가, 뒤에서 보듯 ㄴ 선지를 양방향으로 모두 읽을 수 있게 만드는 구조적 원인이다.
2. ㄴ 선지를 ‘옳은 선지’로 옹호할 수 있는 근거
평가원의 발표대로 ㄴ 선지를 옳은 것으로 읽는 입장도, 텍스트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첫째, ‘양심적’을 ‘전통적 양심(내면의 목소리)을 따르는 것’으로 해석할 경우, 싱어는 오히려 정당한 불복종이 그러한 의미의 ‘양심’을 따르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책임 있는 도덕적 행위자는 내면의 목소리가 아니라 ‘모든 사항을 고려한 최선의 판단’에 따라 행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독해에서는 “정당한 시민불복종이 반드시 (내면의 목소리로서의) 양심을 따르는 행위인 것은 아니다”라는 진술이 성립할 여지가 생긴다.
둘째, 싱어 윤리 체계에서 불복종의 최종 정당화 기준은 양심성이 아니라 공리주의적 결과이다. 즉 ‘양심에 따른 행위라고 해서 그 자체로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며, 정당화의 근거와 동기의 양심성은 개념적으로 구분된다. 이로부터 ‘정당성’과 ‘양심성’을 분리해 읽으려는 시도가 가능하고, 그 결과 “정당함과 양심성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방향의 해석이 도출될 수 있다.
이 두 근거는 결정적이지는 않으나, ㄴ 선지를 옳다고 본 출제 의도가 자의적이거나 무근거한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3. ㄴ 선지를 ‘틀린 선지’로 옹호할 수 있는 근거
그러나 같은 원전은 정반대 독해 역시 강하게 뒷받침한다. ‘양심적’을 ‘비판적 양심(숙고된 도덕적 신념)’으로 읽으면, 정당한 시민불복종은 본질적으로 양심적 행위가 된다.
『민주주의와 불복종』 제2부에서 싱어는 자신이 다룬 모든 정당한 불복종이 본질적으로 ‘양심적’임을 분명히 한다.
“Our discussion of conscience, then, has led to the conclusion that conscientious objection is either an unreflective act, not the act of a responsible moral agent, or else no different, in so far as it is conscientious, from all the acts of disobedience discussed in this book, for they have all been motivated by moral considerations (DD, 96-97).”
(양심에 대한 우리의 논의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양심적 거부는 책임 있는 도덕적 행위자의 행동이 아닌 비반성적 행위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양심적이라는 점에서 이 책에서 논의된 모든 불복종 행위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그 모든 행위들은 도덕적 고려에 의해 동기부여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싱어는 사적 이익이나 단순한 일탈을 목적으로 한 위법 행위는 애초에 논의 대상인 시민불복종의 범주에 들지 않음을 분명히 한다.
“In recent years the growth of open disobedience to the law, not by self-seeking criminals, but by people inspired by ideals such as equality, justice, liberty, and peace, has put before us in modern form the ancient philosophical problem of political obligation (DD, 1).”
(최근 몇 년간 법에 대한 공개적 불복종의 증가는, 이기적인 범죄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평등·정의·자유·평화와 같은 이상에 영감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이는 정치적 의무라는 오래된 철학적 문제를 현대적 형태로 우리 앞에 제기했다.)
이 독해에서는 ‘도덕적 고려에 의해 동기부여된 행위’가 곧 ‘양심적 행위’이고, 정당성을 논할 수 있는 시민불복종은 모두 이 조건을 통과한 것이므로, “정당한 시민불복종은 (비판적 의미에서) 필연적으로 양심적”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렇다면 ㄴ 선지는 틀린 진술이 된다.
4. 다방면 해석의 여지와 용어의 모호성
2절과 3절을 나란히 놓으면 문제의 본질이 드러난다. ㄴ 선지의 참·거짓은 ‘양심적’이라는 한 단어를 어느 의미로 고정하느냐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양심적’ = 전통적 양심(내면의 목소리를 따름) → 싱어는 정당한 불복종이 이를 따라서는 안 된다고 보므로 ㄴ은 옳은 선지가 된다.
‘양심적’ = 비판적 양심(숙고된 도덕적 신념에 따름) → 싱어는 정당한 불복종이 모두 도덕적 고려에 의해 동기부여된다고 보므로 ㄴ은 틀린 선지가 된다.
문제는 싱어 본인이 이 두 의미를 명시적으로 구분해 둔 반면, 한국어 ‘양심적(良心的)’은 이 둘을 한 단어로 뭉뚱그린다는 데 있다. 그리고 문항의 선지는 어느 의미를 의도했는지 한정하지 않는다. 정당한 시민불복종이 양심적 행위의 ‘성격’을 지닌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양심적이라고 단정할 근거도, 단정적으로 부정할 근거도 원전만으로는 확정되지 않는다. 경계는 본질적으로 흐릿하다.
이는 풀이자의 오독이나 학습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의미로 읽든 그 독해를 뒷받침하는 원전 근거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 명제가 하나의 정답으로 수렴하지 않는 미해결의 해석 쟁점임을 증명한다.
5. 책임은 ‘가르친 사람’이 아니라 ‘출제한 기관’에
표준화된 객관식 평가의 선지는 합의된 단일 정답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ㄴ 선지는 그 전제를 충족하지 못한다. 선지의 정오(正誤)가 ‘양심적’이라는 미정의(未定義) 용어의 해석에 달려 있고, 그 해석은 싱어 원전 안에서 양방향으로 모두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두 가지가 따라 나온다.
첫째, 이 사안은 ‘누가 옳게 가르쳤고 누가 틀리게 가르쳤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ㄴ을 옳다고 가르친 사람도, 틀리다고 가르친 사람도 각자 원전에 근거한 독해를 제시할 수 있다. 수험생 역시 어느 쪽으로 판단하든 텍스트적 근거를 가진다. 어느 편도 ‘오독’의 책임을 단독으로 떠안을 이유가 없다.
둘째, 책임은 이 모호한 명제를 실제 시험에 그대로 출제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있다. 평가원은 ‘행위가 정당화되기 위한 최종 기준(공리주의적 결과)’과 ‘행위가 성립하기 위한 동기적 성격(양심성)’이 싱어 안에서 어떻게 얽히는지, 그리고 ‘양심’이라는 말이 그의 체계 안에서 두 갈래로 분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통제하지 못한 채 단정적 진위를 묻는 선지를 구성했다.
따라서 해당 선지는 ‘틀린 정답을 발표한 명백한 오류’라기보다는, 하나의 정답으로 확정될 수 없는 해석상의 쟁점을 고부담 시험의 객관식 선지로 출제한 부적절한 출제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이 문항은 출제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수험생의 정확한 학리적 이해와 평가의 공정성을 위해, 이 사안은 ‘누구의 잘못인가’를 가리는 방식이 아니라 ‘부적절한 출제’ 그 자체에 대한 검토와 시정으로 다루어지는 것이 마땅하다.
6. 그렇다면 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미 해당 부분은 이의 심사 끝에 '이상 없음'으로 발표된 내용이며, 수능을 준비하는 모든 수험생들은 싱어의 입장에서 '시민 불복종이 반드시 양심적 행위인 것은 아니다'라는 명제가 옳은 것으로 숙지하고 공부해야 한다. 수능의 근거에는 학술적 자료보다 기출 문항이 더 우선 순위에 있음이 분명하다. 학술적 근거를 넘어서 해당 선지는 이미 평가원의 교육적 근거로 남은 '기록'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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