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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읽는사람 [1256968] · MS 2023 (수정됨) · 쪽지

2026-02-04 00:43:03
조회수 174

[칼럼] 지문을 읽고 있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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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반갑습니다. 글읽는사람입니다. 


오르비에 처음으로 수능 국어 칼럼을 쓰게 되었습니다. 

긴 글이지만, 국어 독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간단히 제 소개를 하자면, 2026학년도 수능에서 언어와 매체 백분위 100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수능 국어에서도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독서 공부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시험장에서 지문의 내용을 모두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수능장에서 지문의 모든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지문은 낯설며, 심리적 압박도 큽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벽한 이해를 포기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시험장에서 완벽한 이해가 힘들기 때문에, 연습할 때는 반드시 완벽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분들은 이런 의문이 들 겁니다.


‘실전에서 써먹지도 못할 거 왜 연습할 때는 완벽해야 하는데?’


저는 평소 공부할 때 한 문장 한 문장을 눌러 읽으며 끝까지 이해하려는 연습을 해왔습니다. 필요한 정보만 찾아내는 ‘눈알 굴리기’가 아니라, 그리고 문장을 그냥 ‘읽히는 대로’ 날림으로 넘기지 않고 이 문장이 왜 필요한지, 앞 문장과 어떤 논리 관계를 맺고 있는지, 이 문장으로 평가원이 말하고 싶은 바는 무엇인지를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묻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과정은 분명히 느리고, 힘들고, 비효율적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런 훈련이 있었기 때문에 수능장에서 사고의 방향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26수능 인격의 동일성 지문을 떠올려보면, 시험 시간 안에 그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고 푸는 것을 사실상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 연습 과정에서 지문을 완벽하게 이해하려고 끝까지 붙잡아 본 경험이 있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의 결과는 분명히 갈립니다.


연습할 때 독해가 되지 않는 문장을 끙끙대며 이해하려 하고, 글과 대화하며 글 자체를 납득해보고, 왜 이런 내용이 나올 수밖에 없는지를 고민해 본 학생은 시험장에서 이해가 100% 되지 않더라도 문제를 풀 수 있는 ‘사고의 틀’을 이미 몸에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고 과정을 연습할 때는 호기심을 가진 채 의식적으로 끝까지 질문해 보고, 완벽히 이해한 상태로 정리한 뒤, 반복 훈련을 통해 몸에 새기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가장 본질적인 독서 공부법입니다.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26수능 12번 문제입니다.



무려 AI도 못 풀었다는 괴랄한 문제라고 언론에 보도됐었던 문제입니다. ebs 기준 오답률이 77.7%에 달하는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글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을 던지며 읽었다면 어떨까요?


아래는 제가 글을 읽는 방식으로 생각의 흐름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물체의 휨의 정도는 곡률로 수치화할 수 있는데, 띠 또한 휨의 정도를 곡률로 나타낸다. (→ 곡률의 정의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곡률은 휨의 정도지.)


띠의 길이에 비해 두께가 매우 얇고 폭이 좁아 띠를 하나의 곡선이라고 간주하면, 띠를 원의 호로 생각할 수 있다. 이때 이 원의 호를 포함하는 원의 반지름을 휘어진 띠의 곡률 반지름이라 하는데, 곡률은 이 곡률 반지름의 역수이다. (→ 곡률을 구하는 공식이 나왔으니 문제로 나오겠네. 체크해 두자.)


즉, 곡률 반지름이 작을수록 더 심하게 휘어진 것이다. (→ 반대추론으로 문제에 내려나? 곡률 반지름이 크면 곡률이 작겠지.)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두 물질의 선형 열팽창 계수 차이가 크거나 온도 변화가 클수록 띠가 더 휘어진다. (→ 선형 열팽창 계수의 차이가 크면 한쪽의 길이 변화가 더 크니까 더 휘어지겠네. 그런데 온도 변화가 크면 왜 더 휘어지지?)


온도 변화량이 같아도 띠를 이루는 물질에 따라 띠가 휘는 정도는 달라지며, 이를 나타내는 것이 휨 민감도이다. 휨 민감도가 더 크다는 것은 같은 온도 변화량에서 띠가 더 심하게 휨을 의미한다. (→ 휨 민감도가 이런 거구나. 곡률이랑 비슷하네. 그런데 같은 온도 변화량이라고 했으니 온도 변화가 클수록 곡률이 커진다는 것과는 관련이 없겠네. 휨 민감도가 크다는 의미는 선형 열팽창 계수, 즉 길이 변화량의 차이가 크다는 뜻이구나!)


띠가 휠수록 고정되지 않은 끝의 이동 거리는 커진다. (→ 당연하지!)


최대 이동 거리는 휨을 방해하는 외부의 힘이 없다고 가정할 때, 주어진 온도 변화량에서 띠의 끝이 최대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이다. 이 값은 띠의 길이에 따라 달라진다. (→ 최대 이동 거리의 정의니까 확실히 이해해야겠네.)


띠가 휘면서 띠의 끝이 외부에 힘을 가할 수 있는데, 이 힘은 띠의 끝이 최대 이동 거리에 도달하여 휨이 완료되었을 때 소멸된다. 따라서 띠가 외부에 가할 수 있는 힘이 소멸되는 시점은 최대 이동 거리에 도달했을 때이고, 이는 띠가 휘는 과정에서 최대의 곡률에 도달했을 때와 같다. (→ 당연하지! 최대 이동 거리에 도달하면 움직이지 않으니 힘이 소멸될 것이고, 최대 이동 거리에 도달한다는 의미는 최대의 곡률에 도달한 거겠지.)



반응 완료 시간 또한 고려해야 하는데, 반응 완료 시간은 온도를 올리기 시작한 시점부터 띠의 끝이 최대 이동 거리에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이고, 띠의 두께가 얇을수록 짧다. (→ 반응 완료 시간이 이런 거구나. 반응 완료 시간이랑 최대 이동 거리에 도달하는 시간, 힘이 소멸되는 시간이 같겠네.)



이렇게 글을 읽고 선지를 보겠습니다.


① T0에서 T1로 올렸을 때보다 T0에서 T2로 올렸을 때, a와 b모두 외부에 가할 수 있는 힘이 소멸되는 시점의 곡률은 더 크겠군. (→ 온도 변화가 크면 곡률이 큰 이유에 대해 궁금증을 가졌는데 선지에 바로 나왔네? 당연히 맞는 말이지!)


이렇게 판단하여 사실상 5초 안에 풀 수 있는 문제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나머지 선지도 판단해 보겠습니다.


② T0에서 T1로 올렸을 때, a와 b 각각의 휨이 멈춘 시점에서의 a의 곡률 반지름은 b의 곡률 반지름보다 작겠군. (→ a보다 b의 선형 열팽창 계수의 차이가 크다고 했으니 b가 더 곡률이 크구나. 곡률과 곡률 반지름은 반비례 관계니까 당연히 a의 곡률 반지름은 크지!)


③ T0에서 T1로 올렸을 때, A와 B 각각의 동작이 멈추는 데 걸린 시간이 서로 같았다면 b의 반응 완료 시간이 a보다 짧겠군. (→ 반응 완료 시간의 정의를 바탕으로 동작이 멈추는 데 걸리는 시간과 동일한 의미니까 반응 완료 시간도 같겠지.)

 

④ T0에서 T2로 올렸을 때, a의 최대 이동 거리가 b보다 더 크겠군. (→ b가 더 곡률이 큰데 왜 a가 더 커. b가 더 크지.)


⑤ B와 달리, T2가 되어야 A가 물체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a가 b보다 휨 민감도가 크기 때문이겠군. (→ 지문에서 휨 민감도가 크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봤으니 쉽게 접근할 수 있겠네. b가 더 크지!)



저는 이 문제가 ‘사고력을 요구하는 문제’였을 뿐, 이해의 범위를 벗어난 문제였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누군가는

“야. 이렇게 차분하게 생각할 시간이 있었으면 다 1등급이지. 시험장에서 어떻게 해?” 

라고 반문하실 수 있습니다.


이제는 반복 훈련이 필요한 차례입니다. 몇몇 지문으로 글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셨다면, 혼자서 기출을 정말 많이 읽어보며 사고하는 훈련을 하셔야 합니다.


저는 9월 모의평가 이후 기출문제집을 새로 구입해 수능 전까지 같은 방식의 훈련을 반복했습니다. 매일 아침 약 3시간 동안, 속발음을 하며 문장마다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지를 의식적으로 점검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처음 보는 문장을 마주해도 ‘어떻게 읽어야 할지’에 대한 사고의 방향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상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국어 지문을 대하는 태도를 한 번 이해했다고 해서 실력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태도를 몸에 새기기 위해서는 반복적이고 충분한 양의 훈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저는 이 과정을 ‘생각의 자동화’라고 부릅니다.


시험장에서는 문장 하나하나를 의식적으로 점검할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연습 과정에서 만들어 둔 사고의 틀이 시험장에서는 시험지에 몰입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수능 국어라는 시험의 중요한 특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글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수능 국어 독서는 요령을 익히는 문제가 아니라, 지문을 대하는 태도를 만들고 그 태도를 반복 훈련을 통해 자동화하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한 달만이라도, 매일 3~5지문을 한 문장씩 생각하며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처음엔 느리고 답답하겠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생각이 먼저 튀어나오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반응이 괜찮다면, 다음 글에서는 이 사고 훈련을 실제로 어떻게 연습했는지 더 구체적으로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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