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3일 오늘의 상식: 유럽의 중국, 적반하장의 대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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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인공 아이티

오늘의 이야기는 이 나라가 시시각각 무너져 내리는 가슴 아픈 이야기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은 것 같지만 아이티는 원래 '생도맹그(Saint-Domingue)'라는 이름의 프랑스 식민지였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지도 속의 섬인 '히스파니올라 섬'을 1492년 발견한 이후 아이티 원주민들의 대부분은 스페인에서 건너 온 전염병에 걸려 죽고
생존자들은 스페인 침략군의 총칼에 전부 학살당했다
그렇게 원주민들이 죽고 난 자리에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들여 왔고
9년 전쟁을 종결시킨 레이스베이크 조약에서 스페인이 프랑스에 히스파니올라 섬의 절반을 할양하기로 하면서
1697년부터 프랑스의 식민지가 된 것
프랑스는 중남부 아메리카에 식민지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아이티를 특히 아꼈고
이곳의 기후가 플랜테이션 농업에 적합했던 관계로 사탕수수 및 커피 재배를 주력으로 하는 플랜테이션이 오늘날의 아이티 도처에 자리하게 된다
문제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면서 시작된다
유럽에서부터 불어온 자유주의 분위기, 본국의 정권 교체로 인한 혼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구의 90%가 흑인 노예라는 기형적인 인구 구조에서 기인한 모순으로 인해
머잖아 이곳 생도맹그에서는 흑인 노예들을 중심으로 아이티 혁명이 시작된다
중간에 프랑스군에 밀리고 지도자가 체포되는 위기가 있었음에도 아이티 혁명 세력은 혁명정부에도, 그 뒤를 이은 나폴레옹에게도 연이어 승리했고
마침내 1804년 독립을 쟁취한다
여기에서 모든 일이 끝나고 아이티가 행복해졌다면 참 좋았겠지만
세상 일은 원래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1814년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최종적으로 패배하고 프랑스에는 왕정이 복고되었다
모처럼 유럽에서 대규모 전쟁이 끝났고 아이티 혁명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본 왕정도 돌아왔으니 프랑스 입장에서는 아이티를 다시 노려볼 만도 한 상황
자신들 뜻대로 왕정이 복고된 프랑스가 해외원정을 뛰러 바쁘면 영국이나 신성 로마 제국은 오히려 좋아를 외칠 게 뻔했고
굳이 그런 게 아니더라도 백인 국가가 흑인 노예들 때려잡으러 가는 데 반대하는 나라는 없다...는 것이 당대의 인식
결국 아이티는 자신들이 한때 프랑스를 무릎꿇리고 독립을 쟁취했다는 자존심도 버린 채
바로 그 독립을 지키기 위해 프랑스와 굴욕적인 협상을 해야만 했다
프랑스는 여차하면 조금 무리해서라도 함대를 보낼 수 있는 입장이었고 아이티는 아니었기에 항상 프랑스가 갑이었고
협상 결과, 프랑스는 아이티의 독립을 인정하되 1억 5천만 금 프랑의 배상금을 받는 것으로 결정이 된다
문제는 이 금액이 당시 아이티 GDP 추정액의 4~6배에 달하는 거액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갑자기 나라에 갑자기 1경 원짜리 빚이 새로 생기는 거다
심지어 아이티는 이때 오랜 내전과 플렌테이션 붕괴로 심각한 경기 침체 상태였기에 이런 상태에서 배상금을 갚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프랑스의 함대에 독립을 내어 줄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그들은 돈을 마련해야만 했고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프랑스의 여러 민간 은행들로부터 자금을 차입하는 것
거기에 자국에서 나오는 세금까지 얹어서 매년 프랑스에 갖다 바쳤지만
펀더멘탈이 안 되는데 원리금을 깔끔하게 상환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 결과 1825년 시작된 배상 채무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7년까지 이어졌고
이때가 되어서야 아이티 공화국이 프랑스 공화국에 빚을 완납하면서 두 나라 사이의 채무 관계는 완전히 끝을 맺는다
그 사이에 아이티에 있었던 일이야 뻔하다
교육이나 국방, 기타 사회 간접 자본에 투자되어야 할 소중한 세금이 모조리 빚 갚는 데 쓰였으니 경제 발전이 될 리가 없었고
새로 인프라를 지어 올리지 못하니 당연히 산업화도 제대로 이룰 수 없었으며
그 사이에 정치적 혼란은 더욱 가속화되어 미국으로부터 침공을 당하질 않나 군정이 끝나자마자 군사 쿠데타가 벌어지지를 않나
아주 나라가 개판이 되어 버린다
시야를 넓게 보면 이 모든 개판이 상당 부분 프랑스의 말도 안 되는 배상으로부터 비롯된 일인데
조금 이상하지 않나? 식민 지배를 했던 나라가 오히려 새로 독립한 국가에 배상금을 요구하는 꼴이라니
뭐 그 시절이야 잘 알려진 제국주의 시대라지만 깔끔히 떠나보내질 못할 망정 GDP의 4~6배에 달하는 배상금을 요구하는 것은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 일이다
이 때문에 지난 시절의 역사를 재평가하는 학자들은 당시 프랑스의 과도한 배상금 책정이 잘못되었으므로 아이티에 배상금을 반환해 주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프랑스가 아이티로부터 뺏어갔던 인프라 축적과 경제 발전의 기회를 돌려주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당장 자기네 국민연금 채워 넣기도 빠듯한 프랑스 정부가 그 말을 들어줄 리가 없고
아직도 아이티는 내전과 대지진 이후 상처뿐인 독립 아래서 하루하루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내고 있다
아이티의 가혹한 처우를 두고 보면 우리나라도 저렇게 되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1965년 한일협정의 초기 논의 당시에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에 배상금을 요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헷갈린 게 아니다, 방금 막 불주사 두 방 맞은 'Japan'이 방금 막 독립한 'Korea'에 배상금을 요구한 거다
한국 정부는 자기들이 돈을 받아야 하지 않냐며 게거품을 물었고 곧이어 일본이 배상 요구는 철회했다고 하나
만약 일본이 미국과 태평양 전쟁을 벌이지 않고 승전국으로 조선 지배를 유지했다면 어땠을까?
어차피 미국이 패권을 잡았을 테니 일본도 영국 프랑스 하듯이 식민지를 놓긴 놓았을 것이다
문제는 곱게 놓았을 것이냐는 거다
프랑스가 아이티에게 했던 것처럼 수십 수백 년을 질척거리지 않았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는 거라지만 정말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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