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gnita Sapiens [847641] · MS 2018 · 쪽지

2025-12-05 13:5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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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이야기 - 지는 싸움이라도 최선을 다해서 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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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수험생들을 보다보면 패배주의나 허무주의 혹은 무사안일주의에 빠진 학생들을 종종 보곤 합니다. 예컨데, '어차피 올해는 망했고 재수를 할테니까 올해는 그냥 놀자~' 정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겠지만, 저런 정신머리로 내년에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죠? 저도 그랬습니다.



 특히 제 동기 중에서 정말 낙천적인 친구가 있었는데요 '어차피 재수할 테니까 수시는 안쓴다'는 매우 실용주의적인(?) 태도를 가진 친구가 있었습니다. 뭐만 하면 '어차피 재수할테니까' 였는데 참으로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이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성격의 친구였습니다. 



 어차피 올해는 포기했으니까~ 라는 말 만큼 무서운 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생각해보면 내년에 다시 도전할 것이기에, 올해 최선을 다해보고 내년에도 최선을 더 하면 최종적으로 더더욱 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보통 학생들이 그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비슷한 예시로 625 전쟁 초기의 남한의 상황을 들 수 있습니다. 초기 625 전쟁에서 우리는 교과서에서 매우 간략히 배우므로, 제대로 기습 남침에 대비하지 못한 남한군이 초기부터 왕창 박살나면서 속절없이 밀렸다고만 간략하게 요약해서 배우지만 사실 실상은 조금 다릅니다(그리고 그 부분이 교과서에도 잘 반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우리 조상님들이, '어차피 진 전쟁 그냥 대충대충 하지 뭐~' 라는 식의 태도를 가졌다면 한국이 살아남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번 '춘천 전투'에 대해서 좀 썰을 풀어보겠습니다.





https://namu.wiki/w/%EC%B6%98%EC%B2%9C-%ED%99%8D%EC%B2%9C%20%EC%A0%84%ED%88%AC




 전쟁사에 '포위 섬멸'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보여준 위력적인 전술인데요, 1차 세계대전까지만 하더라도 공격력이 방어력을 압도했습니다. 공격력 즉 기관총이나 개개인의 무장 화력이 사람을 쉽게 대량 살상 할 수 있을만큼 기술이 발전했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공격력이 생각보다 낮았기에, 아래의 그림과 같이 좀 무식하게 전쟁을 했었습니다.



일렬로 쭉~ 군인들이 정렬되어(중간에 줄 잘 섰는지 막대기로 검사하는 사람 모습도 보이는군요) 다 같이 행군하는 것이 중요했었습니다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68362432




 1차 세계대전 당시 기관총의 발전은 저렇게 무식하게 전진해오는 군인들을 화끈하게 맞이해줄 수 있었습니다. 분당 수십 발을 발사할 수 있는 기관총은 대량의 인명을 손쉽게 살상할 수 있었고,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삽으로 땅을 파고 참호 속에 웅크리고 숨어서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흥미롭게도 1차 세계대전 이전 강력하고 빠른 기동력을 바탕으로 재미를 본 사람이 나폴레옹이었거든요. 불필요한 것을  최대한 줄이고 빠른 기동력으로 적재적소에 군대를 배치한 그는 항상 숫적 우위를 바탕으로 적을 압도하는 전력에서 유리하게 전투를 시작하기로 유명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시작할 당시에도 그런 전훈이 반영되어, 빠르게 군대를 모집하고 선전포고를 때리고 선제공격을 하는 국가가 무조건 더 유리할 것이라고 상상하고 다들 전쟁에 뛰쳐들었죠.



 몇 개월 안에 빠르게 결판이 날 것이라고 생각한 군대는 몇 년이 지나도록 지지부진했고 후방의 막대한 물자를 고갈시키면서 온 국민의 피로를 가중시켰습니다. 특히 독일은 이때 많은 것을 느낍니다. 빠르게 프랑스를 무너뜨리고 서부전선을 안정화한 뒤에 동부전선의 러시아와 싸운다는 전략을 세웠지만 결국 프랑스를 빠르게 점령하지 못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에서 연구된 전차전, 전격전은 전차와 차량화 보병의 빠른 기동성을 바탕으로 적이 진지를 구축하고 방어태세를 갖추기 이전에 돌파하여, 후속 부대가 재빠르게 뛰쳐와서 후방의 보급을 담당하는 우수한 전략이었고 현대전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전략입니다. 이전에 칼럼에서도 사막의 폭풍 작전에 대해서 설명한 글이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독일이 쏠쏠한 재미를 본, 전차를 이용한 빠른 기동전으로 적을 돌파하고, 후방을 차단하여 보급을 차단시키는 식으로 적을 쌈싸먹는 전술을 개발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한 당대의 천재 하인츠 구데리안

https://namu.wiki/w/%ED%95%98%EC%9D%B8%EC%B8%A0%20%EA%B5%AC%EB%8D%B0%EB%A6%AC%EC%95%88




 저도 전쟁을 직접 치뤄본 적이 없습니다만 실제 가끔 유튜브에서 전쟁의 전개를 every day 하루 단위로 끊어서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는 영상을 보면, 상대와 아군이 끊임없이 돌출부를 통해 상대방을 포위 섬멸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마치 바둑에서 단수를 쳐서 상대방의 돌을 먹는 것처럼, 빠르고 강력한 기동력과 화력을 가진 전차가 적 심장부에 깊숙히 진출하여 전방을 지키고 있는 적들의 후방을 끊어먹고 단수를 치는 것이 자주 보입니다.




끊임없이 상대방을 포위해서 잡아먹으려는 공격 측과 끊임없이 적절한 후퇴를 통해 전선을 유지하면서 포위당하지 않으려는 방어 측의 치열한 교전이 벌어집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u3p7dxrhl8

 



 전쟁에서 포위당한다는 것은 대단히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아무리 강력한 군대라 하더라도 보급이 없으면 순식간에 전투력이 급감하기 시작합니다. 이를 잘 아는 현대의 군사전략가들은 무엇보다도 전면에서 무식하게 상대방을 들이받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옆을 우회해서 상대방의 후방까지 침투하여 보급을 끊는 식으로 '포위섬멸'을 자주 시도합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북한군도 625 전쟁 당시 바보가 아니었던지라, 무식하게 정면에서 남한군을 밀어내기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춘천 방면에서 남한의 중부를 노리고 내려와서 곧장 서울 아래까지 밀려내려온 남한군의 뒤를 기습하여, 남한군의 주력을 포위 섬멸하려는 계획을 짰습니다. 그나마 전선이 밀리면 전략적으로 후퇴를 하면서 전력을 온존하여 이후 다시 싸울 수 있지, 한번 주력이 제대로 포위섬멸 당할 경우 그 이후 후방은 텅텅 비게 되므로 매우 치명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1군단이 서울을 정면으로 밀고 내려가는 동안, 2군단은 춘천 방면에서 빠르게 내려와서 남한군의 주력 부대를 포위 섬멸한다! 가 북한군의 큰 그림이었습니다. 만약 남한군이 빠르게 증발해버렸다면 미군 주도의 UN군이 참전하기도 전에 부산에 인공기가 꽂혔을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_cjI6QSM03Y




 자세한 전투에 대한 이야기는 링크의 영상과 글을 보시길 바라며 마저 설명을 드리자면.



 춘천에서 빠르게 중부의 남한군을 밀고 내려와서 서울 이남으로 밀려내려온 남한군을 포위 섬멸해야하는 춘천 방면의 2군단이 결국 빠르게 밀지 못하고 질질 시간이 끌려버리자, 서울을 점령한 주력 1군단은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해놓고선 3일동안 한강에 묶여서 내려오질 못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맞이하게 됩니다. 



 결국 춘천 방면을 지키던 국군 6사단은 화력의 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후퇴를 하긴 하지만 매우 성공적으로 적을 지연시켰고, 지연된만큼 아군 주력이 무사히 후퇴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됩니다. 





인민군 사단장 싸그리 다 해임 엔딩 ㅋㅋㅋ




 너무 뻔한 이야기지만 제가 맨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어차피 진 전쟁이고 어차피 밀릴 전선이기에 대충 싸웠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그 다음에는 막대한 손해를 입었어야 할 것이고 전쟁의 큰 향방이 갈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진부한 이야기를 정말 싫어하는데 평소 최선을 다하는 것만큼 진부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질 땐 지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져야지 그 다음에 겨우 기회가 있는 법입니다. 



 모든 것이 열세였던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다한 군인 장병 선조분들이 계시기에 우리가 지금 이런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겠죠. 싸움에서 지고 이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경우도 많고 억울한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얼마나 노력할 지는 우리가 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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