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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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을 다녀오니 오르비가 많이 좀 바뀌었군요! 8월 출국해서 11월 엊그제 귀국했는데, 독일에서는 오르비에 접속해도 다 깨져서 글을 하나도 못 썼습니다 전부 블로그에 쓰고 있었습니다.
필자는 여러 번 누차 말해왔듯이 만년 4~5등급을 왔다갔다하던 수포자였습니다. 재수를 한 이유도 삼수를 한 이유도 수학 때문이었는데, <수능 국어 비문학의 과학적 학습법>을 깨닫고 쓸 수 있는 내공을 쌓을 때 쯤 국어 뿐만 아니라 수학을 어떻게 공부하고, 어떻게 풀어야 잘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면서 1등급을 계속 찍게 됩니다(그래서 2등급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ㅋㅋ).
제가 독일에 있으면서 재미있는 영상 썸네일을 하나 보았는데요, 내용이 '수학자들이 엄선한 신발끈 묶는 방법'이라는 제목이었는데 그 가짓수가 무려 352,152,252개 였습니다. 이걸 보는 순간 느꼈습니다 아! 확률과 탐구 문제를 예시로 한번 썰을 풀면 되겠구나! 라구요.

쉬운 확률과 통계 문제는 무슨 특징이 있나요? 바로 '문제를 파악하는 순간 딱 한방에 풀린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데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는 문제가 나와다고 생각해봅시다. 전체 경우의 수는 3x3으로 9가지 인데, 그 중에서 내가 이기는 경우는 내가 낸 각각의 3가지 경우에 대해서 상대방이 딱 나한테 지는 대응을 하는 것으로, 승률은 3/9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확률과 통계의 쉬운 문제들을 보면, 문제를 파악하는 순간 그냥 곱셈 몇 번 하면 바로 게임이 끝나는 쉬운 문제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확률과 통계에서도 어려운 문제로 넘어갈 수록 이렇게 문제를 관통하는 수식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x4! 3x3! 이런 식으로 한방에 안풀리고, 경우의 수를 세세하게 나눠서 어떤 경우, 이런 경우, 저런 경우를 각각 나눠서 계산하고 맨 마지막에 더해야 하는 문제가 많이 출제됩니다. 그러니까 문제 풀이의 단계가 생기는 것이죠.
제가 기억하는 확통 문제 30번 문제(30번 문제가 제일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제 시절에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요)는 정말 토가 나올 정도로 경우를 세세하게 나눠서 일일이 구해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곱셈 한방에 손쉽게 풀리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제 왜 제가 수학자들이 엄선한 신발끈 묶는 방법을 가져왔는지 알겠나요? 저 숫자가 큰 숫자인 것도 있지만, 우리가 아는 특정 숫자의 배수로 딱 보이지 않죠.
그러니까 경우를 세세하게 나눠서, 각 경우에 대해서 곱셈을 처리해서 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5x4! 8x3! 이런 식으로 한방에 풀리는 문제가 아니라, 신발끈을 어디에 위치했느냐에 따라서 분기점이 갈라지고 다시 생각을 하고 각 경우에 대해서 곱셈을 처리하고 그걸 나중에 다~ 더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너무 설명만 해서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기 어려울 것 같은데, 저한테 상대적으로 쉬웠던 19학년도 21번 문제를 가져와서 좀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이 문제는 문제의 형태인 (가) 만 잘 보고 뭘 해야할 지를 알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전 그래서 이 문제는 30초만에 풀고 넘어갔습니다. (가) 식을 자세히 보면, 맨 앞에 f(x)가 원래는 제곱이었는데 그걸 미분한 꼴로 되어 있습니다. f(x)^2 를 미분했을 때 2가 앞으로 튀어나오고 속미분을 해서 f(x)의 미분형태가 나와있죠. 뒷 부분도 보면 f(2x+1)^2을 미분한 꼴이 나와 있습니다 계수는 정확하지 않지만.
이 문제는 (가)식을 보고 원래 이 식은 뭔가를 미분한 식이며, 그래서 양 변을 적분한 다음 (나)식에 주어진 함숫값을 일일이 대입해서 적분상수 c를 찾아서 원함수를 찾고 -1을 넣으면 되는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가 상대적으로 쉽다는 것은 절대 여러분을 놀리는 것이 아니고, 단지 문제의 형태를 보고 힌트를 통해서 어떤 짓을 하면 되는지만 알면 몇 단계 거치지 않고 바로 풀 수 있는 문제였기에 상대적으로 쉽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좀 다른 예시로 맨 위의 과학 채널에서 다른 영상을 가져오겠습니다. 제가 한창 고등학교를 다니던 2014~2015년 경 노벨상을 받은 연구가 '파란색 LED' 였습니다.

우리가 지금 쓰는 LED를 보면 원래는 빨간색과 초록색만 있었답니다. 빛의 3원색은 파랑까지 있어야 하는데, 빨강과 초록만 있으니 신호등에만 쓰일 수 있는 수준이었답니다 LED가. 그런데 파란색을 만들기가 정말 까다로워서 여러 난관을 계속 해쳐나가면서 눈물겹게 오랫동안 멸시도 받으면서 파란색 LED를 개발한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멋지더군요.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크게 3가지 단계를 거쳐서 한 가지씩 문제를 풀었어야 했고 하나 하나가 절대 쉽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1. 제대로 된 결정을 만들어야 한다 2. n형과 p형 반도체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3. 일정한 빛의 출력을 달성해야 한다. 이 3가지 문제 하나 하나가 마치 수학 수능 30번처럼 어려웠는데, 하나를 해결하고 나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이야기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우리가 완성된 제품을 보기에는 '그냥 파란색 LED 개발해서 땡! 하고 만든거 아냐?' 라고 할 수도 있는데, 현대의 파란색 LED 제작 공정도 상당히 복잡한 편입니다. 그 복잡한 공정을 하나하나 실험을 하고, 한 단계씩 문제를 해결하면서 그 다음 문제로 넘어간 것이죠. 이야기를 들어보면(영상 시청을 추천합니다) 하룻밤 고민한다고 해서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었습니다. 한 문제를 무려 몇 년씩이나 헤메야지 풀 수 있는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요새 필력이 딸려서 걱정인데, 하여튼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게 뚝딱! 도깨비 방망이 같이 풀리는 것들은 정말 쉬운 문제들이고 출제자들은 결코 그렇게 간단하게 학생들이 넘어가길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 힌트를 조합해서 생각을 해보고, 경우를 나누고 단계를 나눠서 한 계단씩 올라가서 여러 사고의 과정을 거쳐야 풀 수 있는 문제를 어려운 문제로 출제한다는 것이죠.
제가 수학 성적을 극복하게 된 것도 결국 '오래 생각하고 고민하기'를 할 수 있었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수학에서도 어려운 3점이나 쉬운 4점은 조금만 발상을 잘 해도 한두단계만으로 간단하게 풀릴 수 있는 문제들이 많지만, 어려운 문제로 갈수록 3단계, 4단계... 점점 한두가지 도구로 쉽게 풀리고 간단간단하게 풀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 도구를 응용해서 조합을 할 줄 알아야지 풀 수 있는 문제가 나온다는 것이 제 깨달음이었습니다.
여러분 자동차 정비하시는 분이라던지 뭔가 도구를 조립하거나 하다 못해 프라모델 같은 장난감을 조립할 때만 하더라도 여러 단계가 존재하고, 여러 판넬이 모듈로 나뉘어져 있으며, 딱 한 가지 도구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을 주변에서 심심찮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제작이나 조립에 몇 시간이 걸리는 것들에 비하면 수능 수학은 쉬운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1시간 내외의 시간 안에 모든 문제를 풀 수 있게 설계를 해놨으니까요. 우리는 생각보다 오래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을 대단히 힘들어 합니다.
제가 독일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세상에 도깨비 방망이 같은 개념은 없어서, 처음에는 직관적으로 'A라는 아이디어가 정답 아닐까!?!??!' 생각이 들면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것의 한계와 약점이 보였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른 B라는 아이디어를 가져오고 다시 C라는 아이디어로 보강하고... 3개월 동안 그런 지식 노동만 반복했습니다. 이 세상은 단순한 개념으로 쉽게 움직이지 않더라는 것이 제가 느낀 점입니다.
나중에 시간과 기회가 난다면 제가 독일에서 한 연구를 통해서, 생각을 깊이 오랫동안 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한번 썰을 풀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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