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gnita Sapiens [847641] · MS 2018 · 쪽지

2025-03-04 08: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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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가 없으면 실패도 없고 시련도 없다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72324279





 제목의 모티비는 영화 <국제시장>에서 정주영 회장이 한 말 '시련은 없어도 실패는 없는거야' 입니다. 조금 있다가 설명을 하겠지만 위대한 지도자나 기업가들은 하나 같이 도전을 강조했는데, 이는 제가 강조할 '작위적' 행위에 대해서 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작위적' 행동을 더욱 편하게 생각하고 선호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러한 관성을 깨야 한다는 의미에서 위대한 사업가나 사상가들이 작위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을 강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천히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왜 성공한 기업가나 위대한, 존경받는 이들은 하나같이 도전과 경험을 강조했을까요? 오늘 칼럼에서 한번 부작위의 함정, 달콤한 유혹, 관성과 나태에 대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https://voda.donga.com/3/all/39/708076/1





 오늘은 제가 부작위의 위험성, 그리고 여러분이 인생을 바꾸고 발전하고 싶다면 얼마나 이 부작위라는 것을 극복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저는 이전에 부작위의 함정이라는 칼럼을 통해, 사태를 방관하고 문제를 방치하며 손해를 수동적으로 보는 상황을 사람들이 얼마나 민감하지 않게 보는지, 그러한 사태에서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해결 의지를 느끼지 못하고 계속 손해를 보는 행동에 대해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예컨데 남북한 통일 문제의 경우, 통일로 인한 비용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통일에 대한 노력을 들이지 않는 대가로 인하여, 평화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으로 인하여, 평화롭지 않은 분위기가 연출되고 전쟁 위협이 고조되는 것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라던지 남성은 1년 6개월 군대를 가야 한다던지 등등. 




 반면 우리가 작위적인 노력을 들여서, 통일을 하자! 라고 하고, 통일을 해버리는 순간 그때 발생하는 비용은 눈에 뚜렷이 보이고, 인과관계가 명확히 보이며, 이것은 일종의 책임 소재가 분명히 정해지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게 왜 문제냐면, 인과관계는 곧 책임을 의미하며 책임은 부담을 의미하거든요. 예컨데 문재인 대통령이 외교를 엄청나게 잘해서 통일이 덜컥 되어버렸다! 물론 엄청나게 어려운 업적이기에 칭송받긴 하겠지만, 그로 인해 발생한 직접적인 통일 비용을 국민이 떠앉게 되니 당장 많은 국민들은, 자신들이 지금 당장 짊어지는 경제적 사회적 부담을 문재인 대통령 탓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는 것이죠.




 그러나 분단으로 인한 비용은 애매모호 합니다. 누구의 탓일까요? 남한을 선제적으로 침공한 김정은? 혹은 맨날 북한 쳐들어간다고 시비걸다가 미국한테 전차 한대 지원 못 받고 남한군의 약화를 초래한 이승만? 궤멸 위기의 북한군을 구원 투수로 등장하여 북한에 생명줄을 달아준 중공군과 마오쩌둥? 여러 사람의 책임이 들어가 있고, 분단으로 발생하는 비용은 이미 발생하고 있는 비용이며 부작위적으로 계속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누군가가 앞장서서 책임을 따질 필요가 없죠. 애초에 따지기가 어려우니까요. 좀 감이 잡히실까요?









https://orbi.kr/00068946193

 





 법률에서 작위적인 행동은 처벌이 간단하며 명확하고 그 정도도 강력합니다. 예컨데 직무 유기와 직권 남용 중 직권 남용은 작위적인 행동에 해당합니다. 나의 직권을 이용하여, 나쁜 짓을 저질렀다는 것은 매우 뚜렷하게 그 인과 관계가 성립하며 적극적인 행동으로 보이기에 처벌 수위 또한 큽니다. 반면 직무 유기는, 부작위적인 행동으로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다 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건 일단 증명하는 일 부터가 매우 복잡합니다. 세세하게 모든 일이 메뉴얼에 정확히 정해진 것도 아니고, 심지어 인정이 되어도 직권 남용보다는 수동적인, 부작위적인 행위이기에 그 정도가 낮다고 보고 처벌 수위도 약해집니다.




 예컨데 두 유명한 민정 수석이 있습니다. 한 명은 조국이고, 한 명은 우병우 입니다. 우병우 민정수석이나 조국 민정수석이나 둘 다 비상한 머리를 가졌던 것으로 유명한데 둘 다 불명예스럽게 각각 직무 유기, 직권 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그런데 우병우는 그 내용을 보면, 최순실을 막을 수 있었고 대통령이 외부인의 개입에 의해 조종당하는 것을 사전에 알고서도 방지하고 컷 할 수도 있었음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부작위적인 행위에 대해서, 조국 민정수석은 정확히는 저도 잘 모르겠는데 울산 시장 선거 개입인가? 뭔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권한을 남용하고 적극적으로 나쁜 짓을 벌인 점에서 작위적인 행동을 해서 재판에 넘겨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둘 다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여러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통되었으나, 왼쪽 분은 직권 남용이라는 작위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으로, 오른쪽 분은 직무 유기라는 혐으로 부작위적인 행동으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당연히 오른쪽이 덜 처벌받았습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23093.html


https://www.youtube.com/watch?v=aHrHaNm3yV8







 작위적인 행동은 뚜렷하고 처벌이 쉽습니다. 니가 이런 일을 해서 결국 이런 결과로 이어졌고, 따라서 너의 잘못이 크다! 너가 이런 결과에 대해서 잘못이 있고 책임이 있다! 라고 명쾌하지만 부작위는 애매모호 합니다. 가정법으로 남기 때문이죠. 예컨데 우병우가 최순실을 알고는 있었는데, 사전에 미리 알고 차단하거나 미리 검찰에 보고해서 막았다면? 적극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여 대통령이 외부인에게 개입되는 것을 막았더라면? 아마 국정농단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지만 여전히 가정법으로 남습니다. 그래서 우병우 민정수석은 자신의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여 책임을 다하고 성실하게 다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받지만, 그 책임 소재가 모호하고, 국정 농단의 모든 일을 이 사람 한 사람의 탓으로 하기에는 너무 애매하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보아도 작위적인 행동이 부작위적인 행동보다 더 크고,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하며, 더 큰 잘못인 것 같긴 합니다만 위의 사레는 특히 공무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공무원은 철저한 공문주의, 보신주의, 철밥통이라고 비판받는 이유는 바로 이런 작위와 부작위의 뚜렷한 차이 때문입니다. 마치 물에 타면 물에 탄 것처럼, 현상 유지를 선호하고 뭔가 개혁적으로 나서는 순간 책임의 대상이 될 수 있기에 매우 조심스러워 한다는 것이죠.




 특히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우병우는 상당히 일처리를 잘하고 비상하고 머리가 뛰어나면서 주위에서 오만하고 현실적이고 계산주의적이라는 평가를 매우 다수로부터 확실하게 받은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런 사람이 최순실을 알고도 은폐했으며(이 또한 적극적으로 은폐한 것이 아니라 모른척 이라는 부작위 ㅋㅋ)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점에서 분명 국민에게 많은 손해를 끼쳤고, 그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까지 탄핵되는 일로 번졌으니 적지 않은 기여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병우가 만약 제대로 감찰을 했더라면? 이런 관계를 사전에 알고 차단을 시도했더라면? 조기에 문제가 해결되고 국민과 나라는 적은 비용을 들이고 문제를 해결하고, 심지어 (제가 싫어하는) 박근혜 씨도 탄핵까지 가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되지 않았을까? 하는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이 논의 자체가 부작위와 작위의 뚜렷한 한계를 보여줍니다. 작위는 벌어진 행위에 대한 과거형이고, 부작위는 실행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가정법인 셈이죠.




 그 똑똑하고 계산적인 사람이고 눈치 빠르다고 소문난 우병우라는 사람이 개입하지 않고 사태를 방관하며 부작위적으로 문제를 냅두고 사태가 커지는 것을 냅두었다면, 그만큼 이 사람의 관점에서 이 사태에 책임을 지기 싫어하며 작위적으로 행동했을 때 소위 자신이 총대를 메고 해결을 위해 고생을 해야 하는 것을 잘 알았을 것이며, 이에 따라 작위적인 행동보다는 부작위적인, 소위 직무 유기가 더욱 유리했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으리라 봅니다. 그런 면에서 직권 남용이 작위적이기에 직무 유기보다는 더 강한 처벌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경향이라고 생각하지만, 과연 우병우가 정말 조국보다 덜 잘못했냐? 라고 하면 좀 아닌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듭니다. 부작위에 대한 비판을 제가 좀 이어서 계속 할텐데 들으시다 보면 약간 좀 더 이해가 되실 듯 합니다.












젠슨 황은 한국 국민들에게 미국 주식의 가능성과 신뢰성을 잘 보여준 사례입니다

https://www.sisajournal-e.com/news/curationView.html?idxno=403793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젠슨 황의 엔비디아는 정말 호재에 호재를 탔으며,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으며 주식을 잘 모르는 저까지 들을 정도로 매우 극단적으로 성장을 잘 하였습니다. 조기에 엔비디아를 사두었다가 폭등을 맛본 사람들은 엄청난 이득을 봤지요.




 그런데 이 또한 제 입장에서는 부작위로 인한 손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제가 주식을 전혀 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성이 매우 낮긴 하지만, 만약에 제가 주식을 해서 엔비디아에 조금 돈을 넣었었더라면 상당한 이득을 올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근데 안넣고 이득을 받질 못했잖아요? 이것 또한 손해, 정확히 말하면 부작위로 인한 소극적인 행동으로 인한 손해라고도 할 수도 있는 것이죠. 여기서도 어김없이 가정법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이 큽니다.




 이 또한 마찬가지로 앞서 설명한 통일 비용에도 해당합니다. 제가 만약 직접 주식을 했었다면 손해도 났고 이익도 났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 손해가 날 확률이 좀 더 높겠죠. 따라서 작위적인 행동은 좀 더 위험부담이 큽니다. 만약 제가 작위적인 행동으로 엔비디아 대신 엔디비아 라는 이상한 개잡주를 골라서 잘못 사는 바람에 손해가 났더라면, 저는 제 스스로의 작위적인 행동을 원망하고 한탄했으며 크게 상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부작위적으로 애초에 주식에 발을 들여놓지도 않았는데, 이런 소극적인 행동의 장점은 실패할 확률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패할 확률이 없다는 것이 곧 성공을 의미하는 이분법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애초에 시도를 안 했기에 시련도 없고 실패도 없지만, 마찬가지로 성공도 없고 달콤한 과실도 없고 배움도 없습니다. 전 이 점이 매우 무섭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것에 익숙하고, 당장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결하는 것에만 바쁩니다. 뭔가 새로운 일을, 작위적으로 적극적으로 했다가 그것이 실패를 한다면 모든 책임과 과오는 오롯이 자기가 짊어져야 하기에 부담을 가지고, 그래서 보수적이고 경직되게 됩니다. 반면 부작위적으로, 그냥 흘러가는 대로 인생 뭐 있나~ 하면서 정해진 수순대로, 남들이 시키는 대로만 한다면 특별히 성공할 일도 실패할 일도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작위적인 행동은 실패의 리스크를 가져오지만 동시에 성공을 위해서 필연적인 과정입니다. 그러나 부작위적인 행위로 인한 손해에는 인간이 일단은 굉장히 둔감하면서도, 동시에 책임 소재가 모호하다는 점에서, 마치 직무 유기처럼 심지어 자신의 할 일이라고 적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소극적으로 안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그 권리를 행사해서 나쁜 짓을 벌이는 것보다도 처벌이 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매우 젊은 나이에 고시를 패스하고 무려 4급까지 단 나름 고위 공직자가 사표를 내고 경직된 공직 사회를 비판하는 책을 쓴 일이 있었습니다







 위 책에서는 매우 과감한 비판을 하는데, 공직 사회에서 벌이는 일 70퍼센트는 헛수고, 헛일, 쓸데없는 보여주기식 노동이다. 그래서 난 그걸 처음에는 국가를 위해서 일한다는 명목으로 열심히 했는데 그냥 의미 없는 일이라서 현타 쎄게 와서 때려 치웠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공직 사회는 철저한 부작위 중심의 사회입니다. 작위적이고 뭔가 적극적인 정책은 대통령이 바뀐다던지, 수뇌부가 바뀌면서 제시하는 정책에 의해서 제시되었을 때만 뚜렷하게 움직이고(그마저도 잘 안 움직이고), 그런 것이 없다면 그저 현상 유지를 하려는 강한 관성과 보수적이고 경직된 조직 문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작위적으로 내가 나서서 뭔가 문제를 타개하고 상황을 변화하기 위해서 나서는 순간, 특히 그 시도가 실패를 하는 순간 뚜렷한 책임 소재가 갈려버리기에 내가 위험해지기 때문이죠.




 요새 최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미임명 문제가 화두가 되고 있죠. 저는 정치색을 떠나서 이 사건을 보는 순간 바로 이 작위 부작위 문제를 느꼈습니다. 최 권한대행은 오랫동안 공직에 있던 사람으로 관료로서의 관성이 강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기본 의식은 '현상 유지'에 있지, 무슨 윤석열이나 이재명처럼 대선에 나가서 국민과 나라를 위해서 한 몸 불사지르고 개혁을 시도하는 그런 종류의 인물도 아닐 뿐더러, 그런 위치에 있지도 않습니다. 권한 대행입니다 말 그대로.




 헌법 재판소에서는 마은혁 헌법재판관을 미임명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뚜렷하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체없이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헌재 판결문을 존중한다 잘 읽어보겠다' 는 식으로 퉁치고 있는 것 또한 일종의 부작위적인 행동입니다. 다만 이 부작위는 앞선 부작위와는 다른 것이, 부작위가 위헌이라고 뚜렷하게 나왔기에 약간 다르긴 합니다만 여전히 작위적인 행동과 달리 부작위적인, 그러니까 '임명을 하지 않는다'라는 어떤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서 직무를 유기하는 행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연히 야당인 민주당에서는 곧장 탄핵 카드와 더불어 최 권한대행을 직무 유기 혐의로, 헌법 재판소에서 위헌이라고 결정을 했는데 어째서 헌재의 엄중한 명령을 지체없이 따르지 않느냐고 강력하게 공격하면서 고발을 해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최 권한대행은 부작위로 일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작위적으로 자신이 임명을 해버렸을 경우 그 후폭풍과 더불어, 그 결정으로 인해 여권과 친여권 관료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작위적으로 내가 임명을 해버리는 순간, '내가' 임명을 했다는 매우 뚜렷한 인과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아까 말한 것처럼 부작위라는 보수적인 관습에 젖은 관료에게는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분이 마은혁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는 것에는 당연히 여러 정치적인 배경이라던지 복잡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의 큰 요인은 바로 부작위의 약한 책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작위적으로 내가 임명을 한다? 그럼 나는 평생 소위 '윤석열 대통령을 배신한' 부하로 찍히고 낙인이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 부작위로 임명을 안한다면 직무 유기로 고소 고발을 받긴 하겠지만, 작위적인 행동을 했을 때보다는 덜 처벌(?)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소극적인 행동이니까. 물론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이라고 못을 박아버렸기에 소극적인 행동 하면 너 이 ㅅㄲ야 처벌받어! 라고 정해졌기에 마냥 그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https://namu.wiki/w/%EC%B5%9C%EC%83%81%EB%AA%A9%20%EA%B6%8C%ED%95%9C%EB%8C%80%ED%96%89%20%EC%B2%B4%EC%A0%9C





 최근 의정 갈등이 장기화가 되면서 환자인 국민이 피해를 본다는 뉴스가 자주 뜹니다. 대구에서는 머리에 피부가 찢어져서 응급실을 3군데 정도 돌다가 사망한 일이 있던데, 상식적으로 과다출혈은 간단한 응급 처치와 지혈로 해결이 될 것 같은데 뭔가 다른 이유로 인해 사망하신 듯 합니다 굉장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정말 이런 시국에 재수없게 사고가 나거나 부상을 입으면 목숨이 왔다갔다 하게 됩니다.




 의정갈등이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면서, 그 피해를 국민이 받는 것 또한 일종의 부작위적인 문제 방치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일단 대통령이 탄핵 심판으로 식물이 되버리면서, 적극적인 동력을 잃어버렸고 밑의 관료나 공무원들은 감히 누구 하나 나서서 적극적으로 정책을 번복한다거나 여러 협상 카드를 제시하면서 전공의를 달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다 손을 놔버리는 것입니다 그 피해는 국민이 받고요.




 특히 윤석열 대통령의 강력한 총애와 신임을 받는 것으로 보이는 박민수 차관의 거침없던 행보는, 이전의 부작위적이고 수동적이던 관료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그리고 어쩌면 관료가 함부로 작위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을 했다간 다수의 사람들이 잘못된 정책으로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 관료제는 부작위가 일단 맞고 역시 안전지향적이라는 깨달음을 주는 것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세기는 언제 오냐??

https://www.youtube.com/watch?v=XOqO95VKkDc





 정부가 근거도 없이, 회의록이나 기타 자료도 충분하지 않게 제시하지 못하면서 2천명을 그냥 증원을 해버리는 작위적인 행동을 하니까, 전공의들은 그냥 병원을 나가버렸는데 문제는 병원에 소속된 상태에서 나간 것이 아니라 그냥 일을 안하고 백수로 버티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부작위이죠.




 의사와 보건복지부, 차관, 장관, 대통령실 등 관계자들이 모두 부작위로 일관을 해버리니 결국 사태는 점점 악화되고, 응급실에 의사는 점점 떨어져나가고(피로가 가중되고 과부하가 걸리면서 점점 의사가 퇴직을 해버림), 이전에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들은 적체가 되는 악순환이 계속 벌어지고 있습니다. 시간은 우리의 편이 아닙니다 이 사태는 최대한 빨리 해결하면 해결 할 수록 좋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누가 책임을 지나요? 모두가 부작위적으로 일관하고 있으니까 책임 소재가 굉장히 모호해집니다. 만약에, 의사가 병원에 소속된 상태에서 파업이라는 매우 작위적인 행동을 했다면 그때는 의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사는 파업이 아니라 복귀를 안한 것입니다. 법적으로 강제로 일자리에 앉혀서 일을 하라고 시키기에는 모호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의사 또한 부작위적으로 일관하니 의사에게 책임을 묻기에는 힘듭니다.




 그럼 박민수 차관에게 물을까요? 박민수 차관 또한 이 사태를 촉발한 당사자라는 점에서 작위적인 정책을 내세우고 의료 개혁을 추진하면서 대화와 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사태를 이 지경까지 끌고온 점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고, 전세기 타령하고 의사 수입하고 뭐 전화를 할 수 있으면 경증이네 이딴 개소리를 하니까 의학 분야 대가 교수들로부터 온갖 쌍욕과 비판을 다 받았습니다만 여전히 박민수 차관을 검찰에 넘기기도 힘듭니다. 비록 박민수 차관이 문제의 시발점이 된 부분이 있기 하지만 책임 소재가 모호하고, 박민수 차관이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응급실 뺑뺑이가 줄어든다는 확실한 원인과 결과가 성립될 것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 박민수 차관을 제외한 휘하 보건복지부에서 근무하는 의료계 관련 전문가들(놀랍게도 박민수 차관은 의사들이 지겹게 공격하는 것처럼 경제학 출신이면서 동시에 의학 생물학에 대한 학위나 전문 지식이 전혀 없더군요)은? 그 관료들 또한 부작위로 사태를 방관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 사람 중에서 누군가가 나서서 대타협을 시도하거나, 박민수 차관 직할의 누군가 뭐 한 3~4급 정도 되는 나름 고위 공직자, 국장급이 나서서 실무 회담을 나서서 열어서 어떻게든 양 측을 설득하고 해결을 한다면 많은 국민들이 목숨을 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했잖아요 작위적인 행동은 위험하다고. 게다가 작위적인 행동을 한다고 해서 성공할 보장이 없을 뿐더러 잘못해서 오히려 의사와 보건복지부의 갈등이 더 깊어지는 순간 그 작위적인 행동으로 인해서 이런 부정적인 결과가 나왔다고 뚜렷한 책임소재로 인해 직권남용(?)으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공무원들이 딱히 직무유기(?)로 처벌 받는다는 소식은 없죠? 그러니까 그만큼 직무유기로 처벌을 받는 다는 것 자체부터 애매하고, 그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입증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정부와 대통령실(탄핵 당해서 정신이 없긴 하지만), 여당은 그리고 의협은 각자 부작위에 의해서 조금씩 환자인 국민들의 희생에 방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처벌을 받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잘했고 그들의 잘못이 없어서가 아니라 책임 소재를 명확히 가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서로에게 책임을 넘기고 서로를 고소 고발하고 있거든요

https://m.yonhapnewstv.co.kr/news/MYH20240408005600641





 제가 법률가는 아니지만 전 적극적인 행동을 매우 중요하게 바라보는 측면에서 일단 이 사태를 촉발시킨 정부와 박민수 차관(아까 말했듯이 작위적으로 2천명을 내지른 시점에서 꽤 책임이 분명하게 있긴 합니다), 보건복지부 장관 등에게 상당한 책임이 있으며, 많은 국민들이 희생한 것에 대해서 잘못을 물어야 하고 또한 이 사람들이 조금만 더 작위적으로 적극적으로 행동한다면 이 사태를 조기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엉터리 의사는 한 100명 쯤 살해할 수 있을까요? 오진을 해서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의료 사고로 보내봤자 평생동안 100명을 넘기는 것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엉터리 정책, 이상한 정책으로 굉장히 뛰어나고 접근성이 매우 높다고 평가받던 한국의 의료 체계를 박살내버린 정책 입안자들과 관료들은 몇 명이나 여태 살해한 것일까요? 이들로 인해서 희생당한 국민들 또한 정말 부작위에 의한 살인이다 보니까, 애초에 살인인지도 불분명하고 논쟁적이며 그만큼 책임 소재를 다루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공무원들의 경직되고 부작위적인,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보수적인 경향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대통령이라도 살아 있었더라면, 지지율이라는 지표를 통해서 심판을 받았을 것이기에 어쩔 수 없이 압박을 받고 작위적으로 행동을 해서 뭔가 해결의 실마리를 잡았겠지만 지금 탄핵 심판 중이고 조만간 탄핵 당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관료들은 다음 대선인 5월까지, 그야말로 요지부동입니다.




 국민들은 분명 의료 서비스를 누리지 못해서 오징어 게임 마냥, 공유의 러시안 룰렛 게임 마냥 죽어나가고 있는데 대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고, 이런 살벌한 상황일 수록 공무원들은 절대로 작위적으로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습니다. 정말 의료 서비스를 누리지 못해서 사망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져서 나라가 존폐 위기에 서지 않는 이상 공무원들의 경직성을 깨기에는 힘듭니다. 제가 공무원을 특별히 엄청 비판하는 것은 아니고, 단지 앞에서부터 시스템과 합리적인 이성, 법률이라는 것이 우리를 지배하는 윤리가 작위적인 행동보다는 부작위적인 행동에 훨씬 덜 엄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의정 갈등으로 인한 사망 사고도 참 다루기 애매한 수치입니다. 책임 소재도 애매하고 그 피해 규모도 애매하고 그럼 그 피해를 본 가족들도 누구를 고소를 해야 할지 애매하기에, 결국 아무도 고소를 못 합니다. 저도 경찰서에서 누구를 고소해본 적이 잇는데 정말 육하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확실하게 누구를 고소를 해야 하는지를 확정을 지어야 하거든요. 모든 사람들의 부작위적인 행동이 낳은 비극입니다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50205/130969398/2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부작위적으로 행동한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총대를 메고,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사퇴를 해야 하고, 누군가는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다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전세기 운운하던 정신나간 차관 ㅅㄲ가 모가지가 날아가야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근 3년간 나라가 정상적이었던 순간이 있었나요. 결국 이런 관료를 승진시키고, 이런 관료를 주요 정책 입안자로 선정시킨 그 정부를 뽑은 국민들에게 되돌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 윤리에서도 여러 사람의 책임이 분산되는 것으로 인해서 책임 소재가 모호해지는 현상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예컨데 인공지능이 실수로 사람을 죽였을 때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요? 인공지능 설계자? 구매자? 사용자? 관리자? 아니면 설계자 중에서도 하드웨어 설계자? 소프트웨어 설계자? 이를 책임 격차 혹은 책임 분산이라고 하더군요.




 지금 사태도 차관 잘못 조금, 장관 잘못 조금, 대통령 및 대통령실 잘못 조금, 의사 잘못 조금 등등 여러 이해 관계자들의 잘잘못이 조금씩 섞여있고, 어느 한 쪽이 잘못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사태가 심각하게 치닫지 않았을 테니까, 그야말로 모호하고 뚜렷하게 누구 하나를 지목해서 너의 작위적인 행동으로 이런 문제가 생겼다고 정리하기가 매우 힘든 것입니다.







법에서 말하는 부작위는 좀 의미가 다르긴 합니다만 여전히 부작위의 큰 틀을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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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런 복잡한 사회적 문제는 뒷켠으로 좀 두고(언제나 그렇지만 이 문제를 푸는 것은 여러분이 할 몫이고 ^^) 전 항상 문제를 제시하고 적당히 제 의견만 말하고 뒤로 빠지는 부작위(?)를 할 뿐입니다. 전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이 따로 있습니다.




 여러분 자주 지금 인생에 고통을 겪고, 인생을 바꾸고 싶고 삶을 변화시키고 싶고, 뭔가 혁명적인 일이 일어나고 싶어하시죠. 저도 그래왔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보통 많은 사람들, 저도 그렇고 흐지부지 끝나는 경우가 많더군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오늘 제가 칼럼으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 작위와 부작위의 논리였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만약에 해야 할 일, 공부를 안 한다던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선생님께 찾아가서 질문을 안 한다던지는 잘못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안 한 일에 대해서 어떻게 책임을 묻습니까. 해야 하는 일도 아닌데요.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정주영 회장부터 유명한 성공한 기업가들이 하나 같이 도전을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도전을, 그러니까 작위적인 일을 두려워하고 하기 싫어하고, 그 책임과 대가를 짊어지기 싫어하고 실패와 리스크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책임의 대상이 되는 것을 꺼려하는 경직되고 보수적인 마인드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그랬죠 같은 과정을 반복하면서 서로 다른 결과를 바라는 것은 정신병이라고. 저 또한 마찬가지고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고, 동일한 삶 동일한 부작위적인, 동일한 수동적인 삶을 살면서 나에게 뭔가 행운이 찾아오고 뭔가 기회가 찾아오길 바라는 것은 망상이고 정신병입니다.




 여러분이 뭔가가 되고 싶고, 뭔가를 하고 싶다면 에너지를 들이고 수고를 들이고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어떤 것을 실행하는 작위적인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부작위적으로 그저 주어진 대로 시키는 대로만 하고, 부작위적으로 그저 현상 유지에 급급하고 지금 주어진 일만 해치워버리고 심지어 그것 마저도 제대로 안하는 부작위를 보이면서, 세상이 바뀌고 내 인생이 바뀌길 바라는 것은 정신병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수학을 잘 하고 싶잖아요? 그럼 더 하시면 됩니다. 여러분이 성적을 올리시고 싶으시잖아요? 이전보다 더 많이 공부를 해보면 됩니다. 더 효율적으로 공부하고 싶잖아요? <수국비> 같은 좋은 책(ㅋㅋㅋㅋ)을 사서 읽어 보시면 됩니다. 박학다식해지고 똑똑해지고 싶잖아요? 작위적으로 노력과 수고를 들여서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을 찾아가서 배움을 요청하거나, 책을 많이 읽거나 뭔가 새로운 곳에서 공부를 시작하면 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무원 수준 만큼은 아니지만, 부작위적인 행태를 고치지 않으면서 세상을 원망하고 바뀌지 않는 인생을 탓하는데 저도 로또를 맞으면 참 기쁘겠지만 그 확률은 극악으로 낮습니다. 전 로또를 바라느니 차라리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높은, 작위적인 행동 뭐 글쓰기라던지 논문 읽기라던지 책 읽기라던지 스터디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변화해서 더 많은 기회를 얻기 위해서 노력하고, 더 발전하고자 합니다. 이 세상이 변화하지 않는 것이라 여러분이 변화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rare-세종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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