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쌤의아구몬 [1245407] · MS 2023 (수정됨) · 쪽지

2024-01-28 16: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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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 시리즈 3편. 언어의 기원(ft. 언어 유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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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 시리즈의 글들은 장영준 교수의 “언어학 101”과 김진우 교수의 “언어 이론과 그 응용"의 내용을 요약한 것임을 알립니다. 



언어학 시리즈 1편: 언어란 무엇인가

언어학 시리즈 2편: 동물에게도 언어가 있는가




언어의 기원(ft. 언어 유전자?)



사람들은 의논하였다. “어서 도시를 세우고 그 가운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탑을 쌓아 우리 이름을 날려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 


야훼께서 땅에 내려오시어 사람들이 이렇게 세운 도시와 탑을 보시고 생각하셨다. “사람들이 한 종족이라 말이 같아서 안 되겠구나. 이것은 사람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에 지나지 않겠지. 앞으로 하려고만 하면 못 할 일이 없겠구나. 당장 땅에 내려가서 사람들이 쓰는 말을 뒤섞어놓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해야겠다.” 


야훼께서는 사람들을 거기에서 온 땅으로 흩으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도시를 세우던 일을 그만두었다. 야훼께서 온 세상의 말을 거기에서 뒤섞어놓아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고 해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불렀다.


창세기 11장 4~9절(공동번역)



언어는 신의 선물일까? 아니면 자연의 산물일까? 언어라는 것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인류의 역사가 몇 백 만년이나 되는데 과연 정확히 언제 인간이 언어를 구사하게 됐을까? 만약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라면 어떠한 유전자가 작용했기에 인간만이 언어를 구사하게 된 걸까? 이와 같은 의문에 답을 내리기 위해 언어학자들이 내놓은 결론을 살펴보자. 



언어 유전자가 존재한다?


2001년 자연과학 저널 《네이처》에 언어와 말을 담당하는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저널이 올라왔다. 옥스포드 대학교의 연구팀은 영국의 한 가족 세 세대를 관찰하였을 때 31명의 가족 구성원 중 절반 이상이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었고 이중 15명이 FOXP2라는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공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2년 8월에는 독일 막스플랑크진화인류학연구소와 옥스포드 대학교 연구진이 공동으로 《네이처》에 보고서를 올렸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인간과 영장류 모두 FOXP2를 가지고 있지만 인간에게만 발견된 돌연변이로 인해 인간만이 언어 능력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연구진 중 한 명인 볼프강 에나르트(Wolfgang Enard)는 여러 인종의 유전자를 분석해 본 결과 유전자 변이가 일어나면서 20만 년 동안 언어가 퍼져나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2009년에는 UCLA대학의 대니얼 개슈빈드(Daniel Geschwind) 교수의 연구팀이 《네이처》에 인간은 말하기 능력을 갖기 시작했을 무렵 FOXP2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100여개의 다른 유전자를 침팬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통제하게 되었다는 연구 결과를 게재했다. 


학자들은 희귀한 유전적 언어 장애를 겪는 가족들의 대부분이 FOXP2 유전자에 똑같은 결함이 있다는 것 그리고 실어증 환자들에게도 FOXP2 유전자의 결함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 FOXP2와 비슷한 유전자가 쥐나 박쥐, 명금류가 소리를 내는 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언어 유전자는 정말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정말 FOXP2 유전자가 언어의 기원이라면 인간들이 언어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은 우연히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발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여러 반론이 등장했다. 호모 사피엔스에게만 있을 것으로 여겨지던 인간형 FOXP2가 네안데르탈인에서도 똑같이 존재했단 것이 밝혀진 것이다. 이에 따라 연구자들은 네안데르탈인도 초기 호모 사피엔스와 비슷한 언어 구사를 했을 것으로 보고 언어의 등장을 50만 년 전까지 소급하는 것으로 길을 돌린다. 그렇지만 FOXP2를 언어 유전자라는 지위에 놓으려는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8년 앳킨슨(Elizabeth Grace Atkinson)을 필두로 한 연구로 인해 FOXP2의 취급이 완전히 뒤바뀐다. 


앳킨슨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 사람을 포함해 53명의 사람과 침팬지 10마리, 3명의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으로부터 게놈 정보를 모아 FOXP2 유전자의 전 영역을 해독한 뒤 분하였는데 이 유전자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빠른 시간에 널리 퍼졌다는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We do not dispute the extensive functional evidence supporting FOXP2’s important role in the neurological processes related to language production. However, we show that recent natural selection in the ancestral Homo sapiens population cannot be attributed to the FOXP2 locus and thus Homo sapiens’ development of spoken language.”라고 앳킨슨은 말한다. FOXP2는 더 이상 언어 유전자로 불리기 어렵게 된 것이다. 관련 언급을 보자. 


  • At the time the discovery of FOXP2 was announced, Faraneh Vargha-Khadem said that she didn’t believe it was accurate to call it a language or grammar gene. As she explained, “The core deficits of the FOXP2 gene have much more to do with speech and articulation than with the more complex aspects of language.”


FOXP2 is the kind of gene that turns a tree of other genes on and off, so there is no one-to-one correspondence between it and a single trait.


Christine Kenneally, “The First Word: The Search for the Origins of Language.”



  • “It’s good that it is now clear there is actually no sweep signal at FOXP2,” says evolutionary geneticist Wolfgang Enard of Ludwig Maximilian University of Munich in Germany, who was a co-author of the 2002 study.


Matthew Warren, “Diverse genome study upends understanding of how language evolved.”


2001년 논문의 공동 저자 바르카-카뎀은 “FOXP2 유전자의 결정적인 결함은 말과 명료한 발음과 많은 관련을 가질 뿐, 언어의 더 복잡한 측면까지 설명해주지는 않는다”라고, 2002년 논문의 공동 저자인 울프강 에르나트는 “FOXP2에 selective sweep의 신호가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다(여기서 말하는 sweep은 selective sweep을 말함).”라고 밝혔다. 결국 언어만을 위해 발달한 단일 유전자 즉 언어 유전자라는 것은 없고 여러 유전자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언어 능력을 담당하게 됐다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단 하나의 유전자가 문법의 기초를 이루는 모든 회로를 담당한다고 보는 건 상당한 엄밀성을 요구하는 이야기다. FOXP2의 연구자들이 간과한 사실은 단일한 유전자가 문법을 손상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단일한 유전자가 문법을 지배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스티븐 핑커는 “점화장치를 제거하면 차는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점화장치가 차를 지배한다고 할 수는 없다"라며 FOXP2의 한계를 명확히 밝혔다(사실 스티븐 핑커의 언어본능에도 재밌는 얘기가 많지만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자). 


한편, 생물학자 마르크 하우저(Marc Hauser)와 테쿰세 피치(W. Tecumseh Fitch), 그리고 언어학자 놈 촘스키(Noam Chomsky)가 공동으로 2002년 11월호 《사이언스》에 논문을 냈다. 앵무새 알렉스와 같은 새와 유인원 등의 동물들이 인간의 언어능력의 중요한 일부 특성을 공유할지도 모른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이 논문에서 동물과 인간의 동일한 이 특성을 광의의 언어능력(the faculty of language in the broad sense, FLB)이라고 불렀는데 FLB는 우리가 주변 세계와 상호작용할 수 있게 해 주는 운동 및 신경 체계와 소통을 가능케 하는 소리, 움직임을 담당하는 신체 및 신경 체계를 포함한다. 일부 동물들은 환경에 대한 지식을 저장하고 그렇나 지식을 바탕으로 의도를 형성하며, 그러한 의도를 바탕으로 행동한다. 야생 침팬지는 먹이를 구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도구를 만드는 행동을 한다. 


놈 촘스키의 언어이론은 언어를 인지과학적 연산체계라고 본다. 인간의 정신은 소리나 단어와 같은 유한수의 항목을 이용하여 그것들을 문법이라 부르는 프로그램에 따라 재배열함으로써 무한수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의 일부 요소는 보편적이고 생득적이며, 또 어떤 요소는 학습된다. 이런 점에서 2002년 11월호 논문에선 인간 언어에게만 독특하게 나타나는 특성이 있다고 보았고 이를 협의의 언어능력(the faculty of language in the narrow sense, FLN)이라고 불렀다. 협의의 언어능력은 회귀성(recursion)을 주요 특성으로 가지고 있는데 인간의 언어만이 이러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과연 인간언어만이 회귀성을 가지는가에 대한 의문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논의될 여지가 많은 부분이다. 그렇다면 현대 언어학이 회귀성과 같은 개념을 쌓아올리며 언어의 기원을 설명하기까지 어떠한 논의가 있어 왔을까? 함께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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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신의 선물인가?


1866년경 프랑스학술원에서는 언어의 기원에 관한 논문을 더는 출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당시의 학문적 수준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이야기들뿐이었기에 회의적인 시선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프랑스에선 100여년 동안 언어의 기원이나 진화에 관해서 이렇다 할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18세기 중엽에서는 전 유럽이 언어의 기원의 논쟁에 뛰어들었다. 독일의 언어학자 요한 고트프리트 폰 헤르더(Johann Gottfried Herder)는 1772년에 『Abhandlung ber den Ursprung der Sprache(언어 기원론)』을 출판하였다. 이 책에서 헤르더는 기존의 “언어는 신적 이성의 산물"이라는 주장에 맞서 “언어는 인간 이성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헤르더는 인간은 동물에 비해 감각과 본능이 떨어지지만 인간에게는 이성 내지는 성찰이라는 타고난 사고력이 있어 인간의 신체적 결함을 보충해 주는 동시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준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인간이 자기 본래적인 성찰의 상태에 놓이고 이 성찰이 처음으로 자유롭게 작용하면서 인간은 언어를 발명했다"라는 것이다. 


헤르더의 주장을 시작으로  진화생물학, 유전학, 언어학의 발전과 더불어 언어는 신이 준 선물이라는 신적 기원론이 아니라 인간의 진화 결과라는 주장으로 흐르게 된다.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언어를 신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한 걸까? 대부분의 종교와 신화에서 언어는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집트 신화에서는 토트(Thoth)가, 바빌로니아 신화에서는 나부(Nabu)가, 인도 신화에서는 사라스바티(Sarasvati)가 각각 언어를 창조한 것으로 되어 있다. 기독교 구약 성경 창세기에서도 언어의 기원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인간은 예전부터 언어의 기원에 관심이 많았다고 볼 수 있는데 자연 현상을 신의 행동으로 치부했듯이 언어를 신의 창조물이라고 본 것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그 기원을 설명할 수 없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18세기 독일의 요한 쉬스밀히(Johann Süssmilch)는 인간은 사고력 없이 언어를 발명할 수 없고, 사고는 언어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이러한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언어를 신이 주었다고 보는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언어의 기원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신이 준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논리이다. 





언어는 자연의 산물인가 


언어는 신의 선물이라는 주장에 맞서 언어는 인간이 발명했거나 자연환경에서 스스로 생겨났다는 주장 역시 제기되었다.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The Descent of Man』에서 “I cannot doubt that language owes its origin to the imitation and modulation . . .”이라며 인간의 언어가 새의 지저귐이나 짐승의 짖음에서 진화했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언어가 자연의 필요에 의해 탄생했다는 주장은 여러 가지 이론으로 나뉘게 된다. 


멍멍설(bow-wow theory)은 언어가 동물들의 의성어가 보여주듯 동물의 울음소리를 흉내내면서 시작되었다는 이론이다. 이외에도 인간이 사물 고유의 소리를 표현하면서 언어가 시작됐다는 딩동설(ding-dong theory), 감탄사와 같이 감정을 나타내는 말에서부터 언어가 시작됐다는 푸푸설(pooh-pooh theory), 원시인들이 부르던 노래에서 언어가 시작됐다는 노래설(sing-song/la-la theory), 원시인들이 끙끙대거나 신음을 내는 등의 비언어적 행위에서 언어가 시작됐다는 끙끙설(grunt/yo-he-ho thery) 등이 있다. 


저 우스꽝스러운 명칭은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언어학을 가르치던 막스 뮐러(Max Müller) 교수가 찰스 다윈을 비방하기 위해 붙인 명칭으로 저 가설들이  음성상징어와 같은 일부 극소수의 어휘의 출처를 말해줄 뿐, 일반적인 어휘와 문장구성의 법칙이 어디서 어떻게 비롯되었는가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는 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한국어의 ‘개', 영어의 ‘독(dog)’, 독일어 ‘훈트(Hund)’ 등은 개 짖는 소리와는 상관이 없어 보이고 문법이라는 것이 자연에서 비롯됐다고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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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와 언어의 탄생 


인간은 언제부터 말을 하기 시작했을까? 언제부터 소리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기 시작했을까?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아직 인간이 언제부터 말을 하기 시작했는가 하는 문제의 정답은 확실히 나오지 않았다. 인간이 확실히 말을 할 수 있었다는 증거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토기판에 새겨 넣은 비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기원전 4천 년경의 수메리안 비문은 고작 6000년밖에 되지 않았다. 따라서 막연한 추측보다 엄밀한 논의를 위해 학자들은 고고학과 해부학, 생리학으로 눈을 돌렸다. 학자들은 출토된 뼈의 나이를 추정하고 해골의 구조, 그 당시 원시인들의 호흡 방식 등을 연구했다. 여러 학자들이 모두 동의하는 한 가지 결론은 바로 인간이 단어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사고하는 능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사고하는 능력을 가지려면 그 전에 먼저 ‘개념'을 만들어냈어야 한다. 즉 인간은 눈앞에 보이는 실제 나무와 그가 머릿속에 만들어내는 ‘나무'라는 그림을 구별할 줄 알아야만 한다. 머릿속에 만들어내는 그림이 바로 ‘개념'이다. 대부분 동물의 뇌는 그런 구별을 하지 못한다. 사물을 보고 있지 않아도 의식적으로 그 사물의 그림을 두뇌 안에 불러들이는 것, 이러한 개념화 능력이야말로 인간의 사고를 가능하게 해주는 기본 조건이다. 


학자들이 인간이 ‘개념'을 형성하기 시작한 단계가 이미 몇 백만 년 전에 분명히 있었으리라고 보는데 이는 일부 원숭이들도 ‘개념'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개념을 만들어내는 사고의 초기 형태가 언어를 구사할 정도의 복잡한 고차원의 사고 능력으로 발달하기까지 그 기간이 있었을 것이다. 인간이 원속 동물과 분화됐을 때부터 충분한 의미체계의 습득을 가능케 할 정도의 지능을 지니기까지 점진적으로 언어의 생성 조건이 발달됐을 것이다. 인지언어학자이자 인류학자인 필립 리버만(Philip Lieberman)의 견해를 위주로 살펴보자. 


지능을 결정하는 것은 두뇌의 용량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용량이란 두뇌의 절대 용량이 아니라 체중과의 비율이다. 약 300만 년 전 인속(Homo)과 원속(Australopithecus)의 분화가 시작되던 무렵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의 경우 두뇌의 용적이 440~450 cm³이었고(오늘날의 원숭이류가 이 정도의 용적을 가진다), 약 200만 년 후 직립원인(Homo erectus)이 되었을 때는 900cm³로 늘었으며, 오늘의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의 두뇌는 300만 년 전의 3배가 넘는 1400cm³이다. 두뇌가 커진다는 얘기는 지능이 점점 발달된다는 뜻인데, 어째서 인류는 고도로 발달된 지능을 필요로 한 것일까? 이런 질문에 우리는 추측을 할 수밖에 없는데, 사냥에 필요한 더 좋은 도구의 발명과 사용, 협력과 단체 행동의 필요성, 불의 통제 등 사회생활이 더 복잡해짐에 따라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지능이 필요하게 되어 두뇌가 조금씩 증대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증대된 두뇌는 더욱 복잡한 사회생활을 가능케 했을 것이며, 이보다 더 복잡한 사회제도는 더욱 더 큰 두뇌를 낳고,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며 두뇌와 환경은 서로를 증강시켰을 것이다. 언어는 이 틈에서 태어난다. 그러나 두뇌가 언어를 낳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 기간이 어느 정도였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간접적인 증거로 그 출생 시기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말하는 간접적인 증거란 고고학적 유물로, 그것이 제작되려면 적어도 언어만큼 복잡한 현상을 구사하는 데 필요한 지능을 전제로 해야 하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유물의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면 언어도 그때쯤 발생했을 것이라고, 혹은 적어도 그 이전에는 발생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의 출현을 위해서는 최소한 그만큼의 유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의 지능을 소유하고 있었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볼 것은 “얼마만큼 진화된 두뇌가 필요했는가?”이다. 인간의 행동은 지능을 기준으로 "단선적(linear)" 행위와 "추적적(tracking)" 행위로 나눌 수 있다. 어떤 목표를 일직선으로 걷는 것은 단선적 행위이고 원이나 정삼각형을 그리며 걷는 것은 추적적 행위이다. 일직선으로 걷는다면 얼마나 어떻게 걸어왔는가를 신경 쓸 필요 없이 앞만 보고 똑바로 걸으면 된다. 반면, 걸어서 원이나 정삼각형을 그려야 한다면 지금까지 걸어 온 각도와 거리 등을 항상 신경을 쓰고 즉 "추적"하면서 걸어야 한다. 


언어는 어휘가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입밖으로 내뱉어서 문장이 이루어지는 "단선적" 현상이 아니라, 그 발언과 이해에는 지나간(생략된) 것을 기억할 수 있는 지능이 필요한 "추적적" 현상이다. 


“철수는 기차로, 영자는 고속버스로 서울로 갔다.”


화자나 청자나 이 문장 안에는 “철수는 기차를 타고 (대전이나 부산으로가 아니라) 서울로 갔다”라는 뜻이 있음을 안다. 그 이유는 “철수는 기차로 (서울로 갔다)”와 “영자는 고속버스로 (서울로 갔다)”가 합쳐진 문장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즉 반복된 부분이 생략되었음을 청자가 "추적"하고 이를 다시 부활시켜 이해하는 것이다. 언매에서 배우는 동일 성분 생략도 같은 맥락이다. 약 100만 년 전 초기 구석기 시대까지만 해도 부싯돌이나 손도끼 같은 석기를 보면 이미 목적물과 비슷한 돌덩이를 골라서 모서리만 조금 다듬었을 정도였다. 완성품의 모습만 염두에 두고 돌을 다듬으면 될 뿐이라 단선적인 두뇌만 필요하다. 


그런데 약 50만 년 전인 구석기 시대 중엽에 르발루아 기법이라는 제작법으로 만들어진 석기가 등장한다. 고갱이 돌을 구하고 모루돌 위에 얹어 놓고 돌망치로 치거나, 아니면 가슴팍의 힘으로 눌러 돌껍질을 벗긴다. 이때 벗겨진 돌껍질이 창촉이나 부싯돌로 쓰였는데 이말인즉 어느 크기의 돌조각을 어느 모습으로 쪼아낼까 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다시 말해 바라는 도구의 모양이 되도록 추적하며 돌을 쪼갰단 것이다. 


언어의 구사가 추적적 현상이므로 그만한 능력을 가진 두뇌를 전제로 하는데 고고학사상에서 추적적 두뇌의 최초의 산물이 약 50만 년 전의 르발루아 기법의 석기이므로, 언어의 출현/발생은 이보다 뒤지면 뒤졌지 앞설 수는 없었을 거라고 추론한다. 그러니까 언어의 발생이 두뇌의 진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전제하에 50만 년보다 더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단지 발달된 뇌가 있다고 해서 언어를 구사할 수는 없다. 저번 편에서 말했듯이 언어는 음성과 의미가 독립적인 관계를 갖는 이원성을 특징으로 한다. 음성체계의 실현을 가능케 하는 발성기관의 진화 역시 필요하다. 약 200만 년 전만 해도 인간의 성대는 말을 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았다. 말을 하기 위해선 자신의 호흡을 조절해야 한다. 인간의 언어란 성대와 혀와 목구멍과 치아 안에 들어있는 공기를 특정한 방식으로 진동하며 내쉬는 운동의 결과인데 인간이 자신의 호흡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없다면 언어 구사가 불가능하다. 동물들은 이러한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침팬지는 소리를 지를 수는 있지만 낱낱의 음절소리를 낼 때마다 새로 숨을 들이마셔야만 한다. 그렇다면 현대 인간의 발성 기관은 대체 어떻게 다른 걸까? 



인간(A)과 오랑우탄(B), 원숭이(C)의 발성 기관 비교

김진우(2017: 52)


인간의 발성기관과 원속 동물의 발성 기관의 가장 현저한 차이는 인간의 경우 성문(glottis)이 목 가운데에 있는데 원속동물의 경우 목 위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인간은 설근이 인두의 앞 벽을 이루고 있어 구강과 인두가 합햐서 ㄱ자 모양의 이관형 기관(two-tube tract)을 갖게 된다. 반면 원속은 인두의 부재로 구강 하나로만 구성된 일관형 기관(one-tube tract)를 갖게 된다. 


인두 하나 차이가 큰가? 할 수 있지만 발성의 다양성에서 그 차이가 매우 현저히 드러난다. 일정한 길이의 공명관은 나오는 소리가 정해져 있는데 만약 두 개의 공명관이 이어져 있고 상대적인 길이를 바꿀 수 있다면 여기서 나오는 소리는 그만큼 다양해진다. 결국 일관형 기관을 지니는 원속과 달리 인간은 혀를 앞뒤와 아래위로 그 위치를 바꿈으로써 구강과 인강의 상대적 크기를 변화시켜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모음 이[i]는 구강이 좁고 인강이 넓은 반면, 모음 아[ɑ]는 구강이 넓고 인강이 좁아져서 나오는 소리이며, 모음 우[u]는 그 가운데 소리로 구강과 인강의 크기가 거의 같을 때 나오는 소리다. 


김진우(2017: 53)


즉 성문이 하강한 것이 언어 발달에 필요한 또 하나의 진화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진화는 유아의 발성기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재요약한다(ontogeny recapitulates phylogeny)”라는 말이 있다. 개체의 일생이 그 개체가 속하는 계통의 진화 과정을 축약해서 보여줄 수 있다는 말로, 개구리의 알→올챙이→개구리라는 일생이 개구리의 계통이 난생동물에서, 파충류로, 그리고 척추동물로 진화된 과정을 보여준다는 것이 그 예이다. 인간의 경우, 원속동물에서 진화하면서 성문이 하강했다면 이 현상이 개체에서도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태아의 발성 기관

김진우(2017: 54)


실제로 태아의 발성기관을 보면 성문이 성인보다 높음을 알 수 있다. 성문의 하강이 생리적으로 불리함에도 일어났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인강 깊숙이 내려간 후두개가 잘못 말리면 숨이 막혀 죽을 수 있다. 우리가 보건 시간에 배우던 하임리히법을 쓰는 때가 바로 후두개가 이물질에 눌리는 경우다. 이러한 위험에도 성문이 하강한 것은 하강함으로써의 장점(언어의 발성 내지는 의사소통의 발달)이 단점보다 더 컸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때부터 혀를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근육 조직과 후두를 연결해 주는 발굽 형태의 작은 뼈인 설골이 발견되기도 하고 FOXP2 등의 발성의 중요 부분을 담당하는 유전자가 발견되기도 하는 등 발성 기관의 발달이 보였다. 이를 바탕으로 학자들은 추적적 행위를 가능케 하는 두뇌의 진화(두뇌 용적 증대)와 다양한 말소리의 발성을 가능케 하는 발성기관의 진화(성문의 하강)의 교차점에서 언어가 발생했다고 추리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진화가 언어 출생만을 목표로 두고 진행되었으리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물고기의 부레가 허파의 전신이듯, 이미 있는 기관을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필요에 적응시켰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발성기관이라는 기관 자체가 원래는 호흡과 저작 운동을 위해 생긴 기관이다. 즉 성문의 하강은 언어의 발성을 목표로 했기 때문이 아니라 사족보행에서 이족보행으로 바뀌며 앞을 내다 보기 위해 쳐들었던 수평적인 머리와 고개의 위치를 수직적으로 적응시키는 과정에서 성문이 내려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두뇌의 진화도 마찬가지다. 언어발생을 위해 두뇌가 발달한 게 아니라 더 복잡한 사회생활, 더 복잡한 도구의 제조와 사용을 위해 두뇌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언어가 부산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필립 리버만에 따르면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언어에 견줄만한 “언어”의 기원은 약 50만 년 전 즉 호모 에렉투스에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리버만이 직접 이 인종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시기상 이 인종으로 분화될 때)로 될 즈음 두뇌 용적이 약 1000cm³에 달하고 성문이 하강하였을 때라고 할 수 있다. 


기적 같은 언어 현상은 도저히 자체 생성이나 자연발생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언어가 신의 선물이라는 얘기도 이러한 가정에 기인한다. 그러나 다윈의 진화론은 경이로운 기적 같은 현상이 어떤 개체에 발생할 수 있음을 가르쳐 주었다. 언어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저서 『The Language Instinct』에서 코끼리의 코로 진화의 불가사의함을 설명한다. 


“The elephant's trunk is six feet long and one foot thick and contains sixty thousand muscles. Elephants can use their trunks to uproot trees, stack timber, or carefully place huge logs in position when recruited to build bridges. An elephant can curl its trunk around a pencil and draw characters on letter-size paper. With the two muscular extensions at the tip, it can remove a thorn, pick up a pin or a dime, uncork a bottle, slide the bolt off a cage door and hide it on a ledge, or grip a cup so firmly, without breaking it, that only another elephant can pull it away. … The trunk is lined with chemoreceptors that allow the elephant to smell a python hidden in the grass or food a mile away. Elephants are the only living animals that possess this extraordinary organ” (Pinker 332). 


인간에서의 언어의 발생은 이러한 코끼리의 코의 진화보다 더 신기할 게 없다는 얘기다. 우리는 앞서 필립 리버만이 인간의 지능을 바탕으로 추론한 결과 언어의 발생은 대략 50만 년 전으로 잡을 수 있다고 보았다. 몇 십 만 년으로 잡는 학자들은 언어의 자연선택을 통한 점진적인 진화를 믿기 때문에 편의상 “점진파"라고 부르자. 몇몇 점진파는 호모 하빌리스까지 언어의 역사를 소급하며 그 역사를 몇 백만 년까지 늘리기도 한다. 


“점진파"가 있다면 응당 그 반대도 있는 법인데 대표적인 학자가 놈 촘스키와 로버트 버윅(Robert C. Berwick)이다. 이들은 언어의 발생을 아무리 일찍 잡아도 10만 년 전보다 더 이전으로 잡을 수 없다고 본다. 호모 사피엔스를 언어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다. 보편문법(Universal Grammar, UG)이라는 인간에게 내재된 시스템이 있는데 UG의 한 요소인 통사체의 병합(Merge) 즉 언어 능력이 단 한 번의 단발적 변이로 인해 출현했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들을 “단발파"라고 부르자. 이렇게 언어의 최초 출현에 대해서는 점진파와 단발파가 첨예한 대립을 이루는데 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문제인 데다가 이 당시의 실제 언어 구사가 어땠는지 알 수 있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으므로 이 둘 중 무엇이 확실하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나무위키의 ‘다윈의 문제' 문서에서도 간략히 다루고 있으니 참고 바람). 

 

아무튼 이렇게 언어의 진화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았다. 언어란 것은 소리와 뜻이 연결되어야만 이루어지므로 언어의 발생은 소리를 내는 발성기관의 진화와 뜻을 이해하는 지능의 진화를 전제로 한다. 이 소리는 성문이 내고 뜻은 두뇌가 해석한다. 소리가 집합하여 단어를 이루고 단어가 집합하여 문장을 이룬다. 이에 언어학은 말소리, 단어, 문장, 등의 언어의 단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생성되며, 어떤 뜻을 유도하는가를 연구한다. 언어학 시리즈는 “언어이론과 그 응용(김진우)”의 순서를 따라 단위가 작은 말소리부터 시작해 더 큰 단위로 한 단계씩 올라가 볼 예정이다. 



다음 주제는 음성학(Phonetics)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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