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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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굽은 채로 걸어간다.
내일도 굽은 채로 걸어갈 것이다.
어제도 굽은 채로 걸어왔다.
누구보다도 꼿꼿하게 서기 위해
나는 굽은 채로 걸어간다.
미래에 쫙 펴고 살기 위해
뿌리처럼 뻗치고 싶은 등은
더더욱 안으로 굽어버린다.
피는 순간 더 곧게 필 수 없기에
괜찮아, 조금만 이따가 펴자고 다독이며
공벌레처럼 굽히고 또 굽힌다.
등은 내게 묻는다.
언제쯤 필 수 있냐고
등을 차마 마주보지 못한 채
곱추는 공연히 눈물지우며 허리를 두드린다.
오늘은 필 날이 아니야, 조금만 더 굽자.
등은 그렇게 필 날만을 기다리며
굽고 또 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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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