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u Roman. [69422] · MS 2004 · 쪽지

2015-06-01 00:3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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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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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쉬울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어떻게든 될 거란 믿음만 있었지.

믿음은 희망을 잉태하고 희망은 현실을 정당화한다. 결국 안주를 택한다.
어떻게든 될 거라는 믿음은 불멸하니까.

나의 머리, 나의 노력, 동일 집단에서 유지하고자 하는 나만의 하한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지금의 나를 빚어냈다. 빛도 없지 않았지만 상처도 있었고 영광도 있었다. 영광의 상처도, 상처뿐인 영광도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영광은 영광이었고 상처는 상처일 뿐이었다.

10여년 전 대학을 입학할 때, 그 때의 감정을 잊지 못한다. 재수할 때의 고난과 부모님의 눈물, 친구들과의 갈등, 나에게의 원망은 모조리 다 합격이라는 두 글자 아래 옅고 곱게 채색됐다. 채색은 이게 또 다 수분이라 형체를 묽게 하고 흐리게 만든다. 난 어느새 재수할 때의 고통을 잊게 됐다. 앞일은 즐길 일만 남게 됐다.

어렵다. 

어떻게든 될 거란 믿음은 나로 하여금 하기 싫은 것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노력을 하게 하고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최대한의 열정을 쏟아붓게 한다. 여기에 담보잡히는 것은 '어떻게든'이라는 미명 하에 저만치 밀어놓은 위기의식이다. 'Whatever'는 'only if'를 배제한다. 어떤 상황이 닥치든 'Whatever'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를 때 그 때 나는 이미 조금씩 사회화되었던 것 같다. 

남들 하는대로 따라가는 게 제일 안전하고 쉬운길이라고들 하는데 역설적으로 그렇게 하기 싫은 것은 본능 탓이다. 그래서 어렵다. 본능이 꼭 최선의 결과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걸 여러차례 난 생채기를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렵다. 

하지만 잘 될 것이다. 아직 내게 이런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다. 어릴 적 서울예고에 다니며 예술이 아닌 전공으로 좋은 학교를 갈 수 있을 거라 호언했을 때 조소했던 이들을 훗날 비웃었던 것처럼, 조금만 독해지면 될 일이다. 적어도 대학에 오기 전에 '어떻게든' 이라는 단어를 허용한 적은 없었다. 모든 길을 어렵게 생각하자. 어려우니, 어떻게든 되지 않으므로,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 좀 더 독해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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