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회복기3)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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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은, 어린 내게 있어 사람의 ‘정’을 되새길 수 있는 좋은 쉼터였다. 명절이 되면, 외가댁에 가서 사촌들이랑 스타크래프트와 메탈슬러그 시리즈를 하곤 했던 추억들. 게임도 게임이었지만, 온 가족이 한데 모여 어른들은 맥주로, 어린 아헤들은 주스로 건배를 했던 그 분위기를 나는 너무나도 사랑했다.
그런데 어쩌다가, 대학이란 섬광을 지나는 지금은 명절이 그저 심심한 빨간날이 되어버리고 말았던가. 3년 전에 외할머니가 생을 놓고 나서, 어른들은 상속 문제로 싸우기 시작했고, 사촌들끼리는 대학 학벌을 논하면서 은근 슬쩍 서로를 단념시키려 들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 가족이, 아니 내가 택한 것은, 그저 이 명절을 단순한 빨간날로 치부해버리는 것.
세상은 그리도 지독하다.
아직까지도 70~80년 산업화 시대에나 통용되었던 학벌은 지금까지도 사람을 지치게하고, 미치게 만든다. 아직까지도 돈이라는 가치만이 중시되며, 고유한 개인의 순수, 이념, 정체성 따위는 쓰레기일 뿐.
20대가 되어서 어른들은 늘, 말했었다. 이제부터 먹고 살 준비를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근데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헷갈렸다. ‘삶’이라는 건 ‘먹고 사는 일’하고 동치 관계일까.
난 아니라고 생각했다. 삶은 내가 사는 것. 그것에 ‘나’라는 사람이 부재한다면 그것은 도대체 삶이 아니다. 되려, 그것은 죽음이다. 나라는 주체의 고유성을 찾아나서는 과정이 결여한 채, 늘 먹고 사는 궁리만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죽음에 가장 빠르게 이르는 길이 아니겠는가?
나의 목소리, 나의 생각, 나의 재능, 특별함. 그것들이 순수하게 인정을 받아 행복하게 먹고 사는 일이야말로 삶이다. 어른들은 숫자가 아니면 다 싫어한다.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들은 보지 못한다며 혐오한다. 어른들이 내게 어린 왕자를 읽게 했지만, 정작그네들은 그 책의 교훈을 현실에서 적용하지 않는다.
모두 죽어가고 있다.
개인의 아이덴티티를 사랑하는 사회. 아니, 그를 사랑하는 어른.
그것이 20대를 들어서면서 내가 정한 나의 궁극이었다. 먹고 사는 일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다. 푸르도록 행복하게 먹고 사는일에 나는 관심이 많은 것이다.
그리하여, 잃어버린 나의 명절을 언젠가 다시 되찾아야 겠다. 개인의 아이덴티티를 날카롭게 볼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겠다. 그래야, 내가 나중에 더 큰 어른이 되었을 때, 이런 비극을 두 번 다시는 만들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다.
여기서, 아니 지금 끝마쳐야 한다. 이 심심한 빨간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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