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쥬✨ [979083] · MS 2020 (수정됨) · 쪽지

2021-01-20 23: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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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 탈출기)재수생으로 산다는 건, N수생으로 산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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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의 수능을 치러도, 내가 왜 삼수를 하게 되었는지 잘 이해가 안 갔다. 어쩌면, 재수는 필수고 삼수는 선택이라는 말이 맞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멈추어 있는 동안 세상은 분명 움직였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나는 멈춤을 선택했다. 그 선택으로 말미암아 나는 초췌해지고 더 느려지는 데도, 또 사람들의 우스운 말들을 계속 듣게 되는 데도.


결과 때문이었을까, 한낱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나보다 공부를 못했던 놈이 논술로 초 명문대를 진학하는 것이 배알이 꼴리고 억울해서였을까. 솔직히, 입시로 부터 멀어진 지금까지도 내 스스로에게 물어봐도 나는 선뜻 답을 내리지 못한다.


다만, 그런 건 있었다. 최대한 정직하게 이 시기를 보내고 싶었다는 것. 내가 왜 이곳에 존재하게 되었는지, 빌어 먹을 러셀인지 대치동인지 그런 더러운 곳에 존재하게 되었는지, 잘은 설명 못하더라도, 그 곳에서 만나는 사람, 만나는 배움, 만나는 사랑, 만나는 정경들은 내 가슴 속에 꼬옥 담아두고 싶었다.


N수라는 긴 시간 동안에, 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생존 방식으로서 깨달았던 것이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내가 왜 입시에 많은 시간을 쏟았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는지 알고 있다. 나를 찾기 위해서는 공부하는 시간을 죽여야 했기 때문인 것.


아니, 정확히 말해두자. 나를 찾기 위해서는 입시의 중심을 차지하는 학벌이라는 레테르를 과감히 벗어던져야 했다. 국어 문학 지문들에서 정말 복합적인 사람들을 만난 경험은, 문학 지문을 문학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겪기 힘들다. 그런데, 수많은 강사들이 문학 지문을 그런 식으로 다루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문학 그 자체를 음미하는 것이 아닌, 문학 문제를 푸는 것이 평가원의 명령이었기 때문에.


한데, 난 문학을 문학 지문과 다르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비록 완벽한 에피소드를 머금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 지문 속에서도 사람이 숨 쉬고 있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발견이 나를 입시 공부가 아닌, 근현대 문학으로 여행하게 했고, 더 나아가 철학으로 여행하게 했다. 러셀 3칸의 사물함 중에서 1층이 수험 도서였고, 2층이 철학 도서였고, 3층이 문학 도서였다.


그걸 본 러셀 담임이 내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렇게 공부하면 입시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또 그를 지켜 본 부모가 내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기껏해서 돈 벌어다 줬더니, 수험 공부는 안하고 책에 빠져 살고 있느냐고.


난 그럴 때마다 이른바 ‘어른’들에게 말했었다. 이것이 내게 있어 진짜 ‘공부’이기 때문에, 수험생으로 이 길을 걸어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설령, 입시에 실패할 지는 몰라도 인생 전체 큰 틀에서는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세상의 외압으로부터 나 자신을 굳건하게 지켜낼 수 있을 거라고.


난 N수의 끝을 처참한 실패로 마무리한 사람이고, N수를 지금까지도 왜 했는지, 왜 선택했는지 정확하게 대답할 수 없는 회색인이다. 그러나, 나는 N수라는 것이, ‘나’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귀중한 시공간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고 있다.


혹자들은 이렇게 반박한다.


-아니 씨발, 까짓거 입시인데, 왜 그렇게까지 해요? 그냥 대학 잘가고 시마이내면 끝이지, 왜 그것에 의미를 과하게 투여하냐고.


나는 그 때마다 이렇게 얘기하곤 한다.


-우리 인생이 대학이 다가 아니니까요. 당장, 20살 21살들 붙잡고 물어봐요. 네 꿈이 뭐냐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 몇 되겠어요? 대학 잘가면 좋지. 그런데 있잖아요. 명문대학 안에서도 사유와 이성이 결핍되는 순간, 삶은 결국 중심을 잃어요.


술자리에 가서, 내가 명문대학 다녔다고 술주정부리는 놈치고, 술값 내는 놈 잘 없어. 오히려, 고등학교 때 왕따 취급받고, 4차원이라 놀림받던 애들이 잘 내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젊음의 본질은 나를 생각하는 힘이고, 더 나아가 나를 찾아가는 능력일텐데, 중요한 건 입시가 아니라, 내가 나다워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 아닌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N수? 왜 하게 됐는지 아직도 설명이 불가능하다. 모르겠다. 수많은 원인들이 합쳐져서 그렇다고 밖엔. 그렇지만 분명한 것.


나는 N수에서 나를 알아가는 방식을 배웠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나의 생존방식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그것으로 나는 어느날 내게 찾아온 공황장애와 우울증이란 질병을 이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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