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회복기) 어른들이 살라고 하는 대로 살기 싫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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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실존하게 된 이후부터, 내가 얻게 된 첫 번째 실존적 과제는, 험난한 교육이었다.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받아쓰기에서 한 개를 틀리면 죄인이 된 듯 기가 죽어야 했고, 수학학원에서 문제집 한 권 분량의 진도를 다 나갔는데, 틀린 문항을 스스로 고치지 못해 결국 10시까지 수학 선생과 나머지 공부를 해야했다. 그것이 다 끝난 후, 집으로 가는 큰 한숨을 쉬는 꼬맹이만이 길거리에 있었다.
10대의 시공간에 있으면서 교육이란 나의 정체성 전부를 규정하는 하나의 레테르와도 같았던 것. 그러기에, 공부를 못하면 인간 쓰레기인 줄 알았다. 그 생각을 더 심화시키고 부추겼던 것은 다름 아닌 내 주위에 존재하던 수많은 어른들이었고, 그들 중에선 당연히 우리 부모도 포함된다. 나머지 공부를 하게 되어 집에 늦게 귀가할 거라는 연락이 부모에게 닿았을 땐 늘 꾸지람을 받았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시험 성적표에 따라서 선생들이 학생의 정체성을 감히 규정하기 시작했다.
얘는 수시로 대학가서 우리 고등학교 간판에 실을 가능성이 있는 놈. 얘는 정시로 가능성이 있는 놈. 이도 저도 아닌 놈. 그냥 지거국 보내고 시마이 내버리면 될 놈. 내 수업 안 듣고 혼자 자습해서 꼭 수능 망했으면 하는 놈. 물론, 학생 앞에서는 참 조용했던 사람들이지만, 그네들이 바라보는 시선으로 나는 그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규정된 정체성만을 확인했을 뿐, 내가 바라보는 나 자신의 정체성이란 도대체 볼 수 없었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또 무엇을 좋아하는지, 하고 싶은지, 내 태생의 감정선이란 무엇인지. 왜 나라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 같다는 핀잔을 듣는지. 정말 섬세한 감정을 느끼면서, 고민들에 치이고 치이는 데도.
20대가 되어보니 알겠더라.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바라보는 "나"라는 걸. 사실 삼수를 한다고 주변에 알렸을 때도, 나를 욕하고 더럽혔던 사람들이 퍽 많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런 음담패설들은 내게 문제되지 않더라. 중요한 것은 규정된 "나"가 아니라, 규정하는 "나"라서. 나만이 나를 진리로서 규정할 수 있다. 그 누구도 나를 딱 꼬집어 무엇이라 말할 자격도, 그럴 수도 없다. 그들은 내가 아니니까. 그들은 나로서 이 세상에 호흡하고 있지 않으니까.
그래서, 나는 대학을 오래 다니고 싶다. 솔직히 그렇지 않나? 대학과 전공은 성적에 맞추어 정해질지 모르지만, 여기 서있는 나라는 사람은 그깟 수치에 따라 결정되는 존재가 아니다. 되려, 나는 내가 투영하는 의미에 따라 변화한다. 즉, 다시 말해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나의 정체성이 규정되기 시작한다.
그 과정이 상당히 오래걸릴 것이란 걸 난 알고 있다. 10대를 지나오면서 나는 규정된 정체성만 있었던, 빈껍데기 같은 사람이었거든. 다시 말해서, 비본래적 존재자였다고. 세상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었을 뿐이야. 그 어떤 것에서도 나, 자신만의 의미를 투여하지 못했다. 내 자신에게. 불안이란 심정성에 억압되어 그랬겠지. 그래서 어른들의 말을, 다시 말해 공동존재의 빈말을 따라 들었을 것이고.
20대의 젊음으로서, 나는 나를 확인하고 싶다. 직접. 시간이 오래 걸릴 지라도, 이것이 내 인생에서 정답이다. 더 이상 교육이란 존재자도, 공동존재의 빈말도, 나 자신이 느끼는 불안이란 심정성도 나를 가로막을 순 없다. 나는 나를 알아가고 있는 사람이라서, 공동존재의 빈말도 흘려들을 수 있고 불안이란 감정에서 되려 내가 호흡하고 있다는 진리를 깨달을 수도 있으니까.
경제학을 전공한 놈이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이 죄인가? 더 나아가, 경제학을 전공하는 놈이 때론 교수의 말 안 듣고 혼자 교보문고가서 문학을 들여다보면 안 되는가? 금지된 것이 어디있어. 내가 책임지는 나의 삶인 것을. 경제학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때, 경제학을 공부하는 것이 맞다는 입장이다. 제 아무리 자기가 경제학도라도.
때론 그가 참으로 멍청하다고 욕하겠지. 그러다가 후회한다면서. 그렇지만, 그런 자세야 말로 나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규정해나가는 것이 아닌가고 생각된다. 요즘엔 말이다. 까짓거 늦게 공부하면 어때. 인생 긴데. 아니 더 나아가서 경제학 전공해놓고 다른 분야로 나가는 것은 또 왜 안돼? 나만이 나의 움직임을 규정지을 수 있는 것.
더 이상 어른들의 말이, 또 주변인들의 말이 내 인생에서 정답인 삶이 될 수는 없다. 나는, 나만이 정답인, 그런 복잡 미묘한 존재자다. 20대를 들어서면서, 배운게 있다면, 그런 것이다. 글을 마치면서 갑작스레 눈에 띄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가 반갑게 느껴진다. 아마도 이 밤도, 누군가의 감정과 나의 감정을 섞으면서 보낼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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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글 잘쓰시네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진짜 20대로서 느끼는 감정을 너무 잘 표현하시는거 같아요.. 공쥬님이 쓰신 글들 두고두고 읽어보고 싶어요 글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