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쥬✨ [979083] · MS 2020 (수정됨) · 쪽지

2020-12-18 23: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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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자신의 무게를 떠받치는 것이 힘들어질 때, 종종 위험해지곤 한다. 사람들은 그걸 자살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는 그것은 도대체, 살인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내 삶의 무게감을 더 늘였다면, 필시 그는 살인을 한 셈이다. 젊음에 들어서고, 나는 내 자신의 무게감이 한껏 더 무거워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무엇도 알 수 없어, 그저 방랑하는 것만이 여행의 루틴인 길. 삶. 불안감과 압박감으로 가득 찬.


나의 아픔을, 내가 키운 것은 도대체 아니다. 그저, 세상이 참 미웠다. 갖가지의 풍요로운 자신의 색깔들과 고유한 정체성. 그것들이 한갓 아마추어의 객기로 폄하되는 것이 참으로 증오스러웠다. 어린 왕자를 그토록 읽길 요구했던 시대의 어른들이, 그와는너무나도 정반대인 스탠스를 취하는 이 세상이 미웠다.


그렇게 내 공황은 시작되었다.


하이데거가 얘기했던 실존적 불안감과 이 세상의 짙은 회색. 그것들이 한데 모여, 결국 나를 죽이려고 들었던 것. 그래, 이건 나의 잘못이라고만은 말 못하겠지. 


삶을 놓으려는 그 순간에, 도저히 이 불안감과 억울함, 나름의 강박관념을 버틸 수 없어 보이는 그 순간에, 나를 구해주었던 것은, 다름아닌 이 고양이들이었다.


고양이들에겐 이상하게 순수가 있었어. 어린 왕자가 얘기했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말이야. 낯선 나를 무서워하는 그 시선들, 먹을 것으로 두려움에 떠는 그들을 위로하고 나서, 자리를 뜨려는 그 찰나, 나의 몸에 덕지덕지 냄새의 메모리를 남기는 섬세함.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은 도저히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고양이의 감정.



그래, 세상은 아직 맑아. 분명 이런 고양이들처럼 맘 속 깊숙하게 순수를 유지하면서 세상을 비추는 사람이 있을 거야. 지금은 그저, 비가 내리는 중인 거야. 맑게 개는 순간, 기다렸던 햇살이 찾아온다고. 내가 원하는 색깔과 정체성들로 살아가는 일상들이. 그러기에 더할 나위없는 소중한 ‘삶’이.


고양이들과의 경험은, 누군가에게 참 메스껍게 다가오거나, 한편으론 오글거리게 느껴질 것 같은 생각은 여전히 있다. 그렇지만, 순수를 향해 뜀박질쳤던 청년이 그들을 보면서, 살인적인 세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음은 변치 않는다. 


세상이 더 맑아졌으면 좋겠어. 효율성과 경제관념이 강하게 자리 잡힌 이 세상이. 빠른게 다 좋은 게 아니고, 정해진 것이 다 올바른 것이 아니야. 느린 것, 다른 것, 특이한 것, 정해지지 않은 것. 그것은 틀린 것이 아니야. 그저, 누군가의 색깔인 거야.


순수를 토대로 삶을 살아가. 그렇게 해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것들을 모두 챙기면서 살아. 나 혼자서 세계를 바꿀 수는없어. 하지만,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누군가의 세계는 바꿀 수 있지. 그것이 지속되고 반복되다보면, 결국 세상의 흐름은 바뀌는 거야. 잔물결의 파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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