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고 싶었던 일기1)2019년 6평을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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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의 지대에 서 있다. 흑과 백 사이의 무수한 회색들을 바라보기 위해, 젊음의 일념으로 이 자리에 섰건만, 강한 모습으로, 굳어지지 않는 모습으로 이곳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지금의 내겐 도대체 이뤄질 수 없는 유토피아로 보일 만큼 괴롭고 또 아프다.
한데, 이 아픔은 이 지대에 서 있는 모든 이들이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한과 북한의 보잘것없는 이념 투쟁으로부터, 자신만의 사랑과 이상을 지키기 위해 푸른 광장의 무한함을 향해, 거침없이 바다를 향해 뛰어들었던 철학과 학생 이명준이 그랬고, 체제와 반체제 그 모든 것을 거부하고 ‘비체제’라는 이념을 택한 이어령 선생이 그러했다.
그 아픔의 대가는 무엇이었는가. ‘평화로움’이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치열한 싸움 끝에는, 무고한 이들의 죽음만이 있을 뿐이었다. 우파와 좌파의 이념 갈등 끝에는 서로 간의 혐오와 적대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이 사실을, 최인훈 선생과 이어령 선생은 알고 계셨고, 그러기에 양쪽으로부터 비난받을 수밖에 없는 회색을, 남들은 어둡지도 밝지도 않다고 비난하는 그 애매함을 선택하신 것이다. 그 아픔과 고독을 감수하더라도, 연대와 협력은 꼭 지켜야만 했다. 그것이 진정, 지식인이 걸어가야 할 길이었으므로.
그러나 내가 서 있는 이 회색은, 우파와 좌파를 양극단으로 삼고 있는, 거룩한 애매함은 아니다. 다만, 나는 입시와 젊음의 사이에 서글프게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나만의 평화로움을 줄곧 꿈꾸면서. 입시를 위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 러셀에 부끄러운 몸을 맡기고, 하루의 공부가 다 끝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세로 집에 힘겹게 왔음에도, 호젓하게 이상을 다짐하며 책을 읽고, 젊음의 상념에 깊이 젖은 채 잠을 청하는 것이 나의 하루인 것.
나의 이런 일상들을 부모나, 선생들에게 공유해보면 내게 오는 반응은 딱 한 가지이다. 도대체 왜 책을 읽고 깊은 상념에 젖어 있냐고. 너는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고. 당장, 대학을 2번이나 낙제한 녀석이, 그렇게도 잘나지 못한 녀석이, 왜 그렇게 애매한 자세로 서 있느냐고. 때론 이상보다는 현실이 더 중시되어야 한다고. 네가 발버둥 친다고 해서 이 세상이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현실 도피하지 말라고.
그럴 때마다 나는 줄곧 얘기해왔다. 대학 가는 것, 수능 성적을 잘 내는 것도 물론 중요한 것이 맞고, 내가 여기에 서 있는 근본적인 이유도 대학을 가야 하기 때문임도 맞지만 이런 행위들이야말로, 나를 근원적으로 성장시키는 것들이 아니냐고. 내가 애매함에 서 있는 이유는, 입시와 젊음의 그림자들의 교집합에 서서 그 두 가지 각각이 가진 장점들을 모두 내게 끌고 오기 위해서라고. 나의 삶의 관점에서 이해해줄 수는 없냐고. 공감해줄 수는 없냐고. 존중해줄 수는 없냐고.
이렇게 역설할 때마다, 조금 조금씩 힘이 빠져갔다. 이명준의 상황처럼, 회색 지대에 서 있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고독과 외로움을 동반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까. 6월 모의평가를 일주일 앞두고 이런 글이나 쓰고 있는 것이 어쩌면 그들에게 또 한 번의 공격을 허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굴하지 말아야겠다. 도대체, 나는 이 애매함 속에서 상당히 많은 고귀한 가치들을 깨닫게 되고 있음이 분명하므로. 조한혜정 교수의 말씀대로,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근대’가 가진 연속적 서사성을 토대로 앞으로만 내달리는 맹목적 믿음이 아니라, 나의 고유함을 찾고 또 그를 토대로 누군가의 고유함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성찰과 연대의 자세이므로. 그리고 이러한 사유들을 해나가는 것이 분명한 나의 평화로움일 수 있으므로.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요, ‘공간’이다. 나의 고유함을 내가 직접 찾아 나설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고, 공간이 필요하다. 나는 ‘3수’라는 시간에 ‘고시원’이라는 공간에서 나의 고유함을 찾아 나서고 있을 뿐이다. 도대체 이 여행은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혹자들은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 자세는 대학에 가서 만들어도 족하지 않냐고. 그러나 내가 얘기해두고 싶은 것은, 지금 이 용기를 내지 않으면, 명문 대학에 가게 되더라도 그 용기를 가지고 살아내기란 도대체 불가능할 거란 것이다. 회사의 창업 자금을 대기 위해서 여러 경험을 축적하리란 굳센 의지를 갖고 일단 다른 회사 사원으로 들어간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더라도 그는 종시 창업에 대한 무서움을 뿌리치지 못한 채 자신의 회사가 아닌 누군가의 회사에서 그의 꿈을 죽여버리지 않는가.
젊음이 도전할 수 있는 용기, 나의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는 용기는 하루아침에 ‘탁’하고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또, 나만의 특별함과 고유함이 없어질 위기에 처했을 때, 덧없이 세상이 힘들어지고 나의 생이 위협을 받을 때, 내가 나를 일으켜 세우지 않으면 나는 평생 일어날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나의 존재를 연구할 수 있는 적기이다. 내가 잃을 것이라곤, 나를 묶어두는 쇠사슬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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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는 용기를 내 안에서도 찾고 싶었다... 이 말인가..
그렇다기 보단, 입시의 본질이 "대학"인가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입시의 본질이 대학일 수 있나? 여전히 회의적이에요. 사실 1+1=2와 같은 사실 명제로 분류되어도 전혀 손색없는 주장일 수 있겠지만, 저한테는 그건 말도 안 되는 사이비 명제같아요. 사유, 혹은 이성이라고 합시다. 주체성을 회복하는 그 과정 속에 입시는 자연스레 놓여야 한다고 봐요. 대학이야 잘 가면 좋은 거고, 못가면 그냥 마는 거고. 차피 그게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닌데.
대학이...막 밥을 먹여주는 거라고 단정짓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학이라는 스펙으로 취업에 들어가 먹고살고 있는게 현실이라.. 안타깝네요.. 하지만 저는 그것도 옳은거라고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학을 가기 위해 했던 수 많은 노력이 의미가 없는 행동이 되어 버리니까요.
당연히 대학도 중요하지요.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우선시해야하는 가치가 존재한다고 저는 주장하는 것입니다. 정답 찍고 넘기고, 문제 유형에 익숙해지는 공부만 하다보면, 주체성이라는 관념이 결핍된 채 젊음을 맞이하게 되겠지요. 그러면, 이후에 큰 돈을 벌 확률, 그리고 스스로가 행복해질 확률은 매우 낮다고 봐요. 개인의 역량과 고유한 아이덴티티가 생산의 원료가 되어버린 이 시대에서, 대학이라는 관념이 주체성을 억압할 정도로 중요한 걸까. 그런 의심인 것.
그래서 저는 고교자퇴했어여 책읽으면서 사는게 낙임 요즘은 원래 취지는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서 나랑 맞는 적성이 뭔지 찾는거였는데 요즘은 철학이 재밌네요 ㅎㅎ
그렇게 살아가는 당신이 1류. 나는 그렇게 못 살아서, 늦깍이 깨달음을 얻고 나아가는 중이에요. 앞으로 사회에서는 사회학과가즈아 친구같은 사람이 추앙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근데 궁금한게 이건 글쓰면 달라지는게 있어요???
진짜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