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정신에게, 김윤식(1994.3.1)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33729772
군의 입학이 유독 축복을 받아야할 이유가 있을까. 조금 생각해보기로 하자. 군의 입학이란 한갖 우연성의 일종이라 볼 수 없겠는가. 군보다 머리 좋지 않은 자, 이 세상에 혹시라도 있을까.어림도 없는 일이다. 당초부터 단추구멍 뚫는 데로 간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우연히도 군은 밥술이나 먹는 집에서 태어났고 그 때문에 고액의 과외 또는 재수도 할 수 있었고 혹은 튼튼한 육질과 맑은 귀를 유지할 수 있지 않았던가. 밥은 잘 먹었느냐, 잘 잤느냐, 내복 입었느냐, 공부해느냐고 묻는 보살핌 속에 군이 놓여있지 않았을까. 심지어 기르는 강아지조차도 군의 안색을 살피는 그런 속에서 군은 살았다. 무슨 대학을 가야 된다든가. 무엇을 전공해야 된다는 것도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갈 데 없는 돼지였다.
군을 노예로 만들기 위해 그들은 아마도 사랑이란 위선의 이름으로 그렇게 했던 것이리라. 군이 돼지 또는 노예였음이란 물론 군의 잘못이 아니리라. 군이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닌 까닭이다. 군은 다만 태어나졌을 따름. 던져진 존재였던 것. 어디에 던져졌던가.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이 아니겠는가. 거기 군은 혼자 던져졌고 따라서 불안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혼자있음, 불안, 무서움. 이 삼각형의 도식이 군의 본래의 모습이었다. 이 조건을 철저히 은폐시킨자 누구였던가.
다름 아닌 지금까지의 군을 에워싼 아비 어미이고 환경이었다.군을 노예로 만들기 위해 그들은 아마도 사랑이란 위선의 이름으로 그렇게 했던 것이리라. 운명의 순간은 가차없이 예감처럼 온다.
그러나 어느 순간 군은 마침내 운명이 순간에 직면하지 않으면 안되는 계기에 직면하게 된다. 그들의 간교한 전략을 간파하는 순간이 오고 만다. 그 계기란 도처에서 예감처럼 온다.
군이 창공의 별을 응시할 때 온다.헤겔을 읽을 때 온다.'무진기행'을 읽을 때 온다. 릴케를 읽을 때 온다.'태백산맥'을 읽을 때 온다. 들판에 외로이 핀 이름없는 꽃을 볼 때 온다. 가차없이 오되 예감처럼 온다.
돼지에서 벗어나 이 저주스런 자유인으로 변신하는 장대한 장면의 입구에 작은 팻말이 하나 서 있지 않겠는가. 거기 적힌 글씨를 군은 이제 똑똑히 읽을 수 있으리라.
'대학'이라는 두 글자가 그것.
어떤 역사적 사회적 조건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나' 자신의 세상에서의 있음의 의미란 무엇인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인가. 어떤 방향성도 해답도 없음을 서서히 군은 알아차릴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다. 지금 여기 '나'가 있다는 것. 이것만은 절대로 의심할 수 없다.
여기 '나'가 있되 혼자 있다는 것. 불안하다는 것. 무섭다는 것. 이 엄청난 짐을 지고 있다는 것.
이 짐은 아무도 벗어날 수 없다. 차라리 의무라 불러야 마땅하리라. 의무는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다. 의무니까.
이 의무를 수행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있다. 권리가 바로 그것.
혼자있음으로 말미암아 감당해야 될 불안과 공포를 대가로 하여 비로소 얻어진 권리,
이를 두고 자유(Freiheit)라 부를 것이다.
자유이되, 무한한 자유가 아닐 수 없는데 그것은 던져진 존재로서의 그 의무의 철저함에 정비례하는 것.
이를 결단 또는 계획(Entwurf)이라 부를 것이다.
'나'는 무엇이며,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그 아무도 궁극적으로는 관여할 수 없기에 그 계획은 저주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의무 그것만큼 권리의 처절함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지 않겠는가.
군은 아는가.
훔볼트가 세운 저 베를린 대학의 창립 이념을. '혼자 있음'과 '자유'로 그 이념이 요약되어 있음을.
대학의 주체는 학생(시설 이용자)도 선생(지식 전달자)도 건물도 아님을. 이념 그것이 이곳의 주체임을.
'살아있는 정신'이라 부르는 이 자유 앞에 군은 지금 서 있다.
군의 입학이 축복받아야 될 이유가 혹시 있다면 바로 이 장면에서이리라.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확통 ㄹㅇ아예 노베라 2단원이 시험범위지만 띰0부터 쭉 듣는게 나을까요? 순열 조합...
-
ㅇㅇ...
-
오늘 노래방 감 2
무희 가질수없는너 사랑을전하고싶다든가 오래된노래 viva la vida
-
외모평균 왜케높음 ㅆㅂ!!!
-
리트 300제랑 그릿 겹치는거 많나요
-
잇올에서 매일 10번은 마주칠 정도로 자주 마주치는 남자애 마주칠 때미다 ㅈㄴ...
-
문과 한의대 / 연고대 상경 목표로 기하 사탐 어떤가요 6
국어영어 보통 1뜨는 편입니다 수학은 공통을 잘하는데 미적을 잘 못해요
-
노래방 가야할 때 너무 곤란해 죽겠음
-
'상쇄'되어함숫값
-
안암입갤 2
고대생들 다 나와
-
계속 습관처럼 폰을 하게 되네 폴더폰으로 바꿀까 아니면 걍 폰 자체를 없앨까...
-
2025학년도 경희대 입시결과(수시, 정시_의대, 치대, 한의대, 약대 포함(국제캠퍼스 포함)) 1
2025학년도 경희대 입시결과(수시, 정시_의.. : 네이버블로그
-
쌤이 이 점수대는 원래 객관식을 50~60 맞고 서술 조져서 나오는데 니는 왜...
-
맞팔해요! 7
은테를 위하여
-
버스타고 집오는데 친한 친구들이 다 피시방 가는데 혼자 집가니까 쓸쓸하기도 하고...
-
풀리는데 그 날 공부 다 하고 다시 풀면 왜 안풀릴까 ㅅㅂ 뭐가 문제일까
-
이거 머리 많이 쓰는 게임은 맞는데 도파민 존나 터져서 수험때 시작하면 수능 좆된다...
-
작년에 사실상 쉬운 4점 기출 한 번 보고 수능 본 수준이라 올해는 기출 좀...
-
키좀 크고 비율 괜찮은데 상하의 사진 4개처럼 돌려입고 신발은 더비 이렇게 입고...
-
집을 떠나고 싶지가 않음 내 방 풍경 너무 아름답고 따뜻함 그냥..
-
기다릴게요
-
지금이 어떤지 모르겠는데 예전엔 수작업 소문 체크였어서 몇년도인지 기억은 안나는데...
-
중국과 하나가 되기 위한 초석을 다지고 있는거임?
-
헉 알바몬쓰시는분들 주의 ㄱㄱ
-
제가요 몽블랑 146ef를 샀는데 실필용으론 좋지만 잉크 흐름도 더 좋고 더 굵은...
-
작년 거 구하려 하는데 퀄 괜찮나요?
-
2026학년도, 2027학년도 메디컬 계열 논술전형 정리 자료 올려둡니다 해마다...
-
사실 그건 당연한거지 좋은 풀이 가르쳐줘야지 뭐 어떻게함 근데 뻔뻔당당하게 좋은...
-
(아까 한꺼번에 글 올릴걸;) 일단 화작 : 쉬움 독서 : 보통 아니면 살짝 어려움...
-
돈다의 돈다2 0
이제 봐서 듣고 있는데 1번 트랙에 텐타시온...
-
오르비 패스사면 1
오르비 클래스 선생님 패스사면 메가패스처럼 패스 유효 기간동안 (해당 선생님의)강의...
-
나는 버리지야 3
내신문학 시발
-
강키분 0
강민철의 키스 분석
-
1. 폐지되는 학교 있음 연세치의예, 연세미래의예, 단국천안의치 2. 중앙대 의학부...
-
스카가 4층인데 지하에 퇴폐노래방 있어서 맨날 저녁먹거나 집가려고 나오면 봉고차...
-
학원 어디갈까 지금 러셀 기숙 다니고있는데 수업안맞는 것들도 앉아있어야해서 시간...
-
점심 5
돈까스
-
절대음감이면 피아노 악보 없이 처음에 연주 가능함? 4
미친거아님?
-
갑자기궁금해짐 예전에 한번 보긴했었는데 강케이? 확통 29번이랑 빡모 29번이랑...
-
글을 읽는거자체가 힘들지 않은사람이 되면 국어를 잘하게된다라는 말이 많은데...
-
재입학할 수 있나요?
-
문학 23.2 지구과학 61.9 수학 56 영어 54 생명 40.1 화학 46...
-
그 이후로 모의고사를 본적이 없어서 지금 제 실력은 달 모르겟구요.. 작년 버전은...
-
아니 다시 열이 올랐어 11
-
롯데월드 왔는데 2
여기서까지 연대 과잠을 봐야 하는구나...
-
지인선 0
15 22는 뒤져도 못풀겠는데 남겨두고 실력 더 올려서 15,22만 다시 푸는거...
-
그냥 느낌상 은퇴하면 방송인 할것같은 촉이 옴 관상이 그럼
-
중1임
-
메디컬 1
잊시판 2년 만에?? 하는데 요즘 다 사탐런 하더라고요 메디컬 목표라 지1 생1...
-
그냥 이 사람 써진 과거 활동.관련 기사만 봐도 진짜 본인 뜻이있는 길만 쭉 했는데...
볼 때마다 가슴 속에 깊이 스며드는 글
18년 겨울에 국어 은사로부터 선물받았던 글이지요. (그 분이 누구신지는 인자강님께서도 잘 아실 것 같아요!) 여담이지만, 유튜브에 이 글을 풀이하는 영상에서 가장 앞자리에 앉아서 들었었답니다.
시간이 흘러도, 이 글은 볼 때마다 다르게 느껴집니다. 입시 배치표를 논하기 전에, 먼저 이와 같은 무거운 얘기들을 고민하는 때가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더군요.
심찬우!심찬우!심찬우!
억ㅋ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ㅋ
심멘! 심멘! 심멘! 심멘!
리듬!강조!운율!감정의 지속!리듬!강조!운율!감정의 지속!
0.5초 심호흡! 지문에 있는 내용만 나온다...!
너 또 심호흡 안했다고!
찬우쌤이 소개해준 글이네
지금까지도 청춘들을 두드리는 글인 것 같아요 :)
혹시 유튜브 영상 알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