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단약기20)당신들의 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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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입시 시스템에 큰 회의를 갖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물론,입시 원서철이 되면, 이것저것 배치표, 라인, 누백을 살펴보면서어떤 대학을 가야하는지를 관찰하기는 하지만. 두 눈을 부릅 뜬 채로.
수시라는 전형을 제외하고, 오로지 정시라는 전형에서, 상위 10개 대학을 들어간 사람이 ‘입시 성공자’라고 가정할 때, 문과를 기준으로 그 비율은 4%를 넘짓한다. 다시 말해, 96%는 수능이란 시험에서 미끄러져, 좌절할 수밖에 없는 것.
한데, 우리 사회 어른들은 4%에 들으라는 얘기만을 할 뿐, 96%를 위한 조언은 하지 않는다. 실패하면 가차없이 무시당하고 천대받을 테니, 어떻게 해서든 그 4%에만 들으라는 말뿐.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외로움과 강박, 더 나아가 자신의 실존적 의문들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도대체, 얘기하지 않는다. 그렇게 성공한 사람만이 96%보다 더 좋은 대학에서 공부하게 된 ‘채무자’가 아닌, ‘병신’들을 이기고 정당한 권위에 올라 선 ‘승리자’의 마음으로 살게 된다.
나역시, ‘패배자’로서의 3년이었고, 또 그러기에 이 사태에 대해더 불편한 내면을 갖고있는 것이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수능을 망해서 여러가지 것들의 무서움 앞에 침잠하는 젊음들에게 꼭 말해두고 싶은 것이 몇가지 있다.
1. 원래 수능은 망해도 되는 시험이었다.
당신이 수능을 치르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모르긴 몰라도, 부모님이 당신이 8살이 되던 해에, 초등학교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당신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공부’라는 세계에 발을 딛게 되었고, 그 스펙트럼의 끝이 결국 수능이 된 것.
당신이라는 사람의 성향이 공부와 맞을 수도 있고, 맞지 않을 수도 있는데 왜 모든 이가 대학에 가야한다는 것이 어떤 이견도 없이 정당화되고야 마는 걸까?또 더 나아가 좋은 대학에 가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부르짖는 걸까? 수능을 망한 친구들에게. 얘들아, 어쩌면 니 천성이 공부와는 맞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러기에, 좋은 대학은 가지 못할 수도 있지. 그렇지만 너는 분명, 다른 분야에서 다른 재능을 갖고 있어. 그것만은 분명해. 단지 신은, 너에게 모든 것을 주지 않았던 것 뿐.
그러기에, 원래 망해도 되는 시험이었을지도 몰라. 거기에 너라는 사람의 조각과 흔적은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2. 원래 노력은 배신한다.
농사에 종사하는 한 아저씨가 그러더라. 100의 비료를 뿌렸을 때 땅 속에 깊이 들어가, 식물의 뿌리를 떳떳이 받치는 비료가 몇이나 될 것 같냐고. “많아봐야 50-60이죠. 100의 비료를 뿌렸는데, 100의 효율이 나온다고요? 그건 말도 안되는 겁니다.”
세간에서, 수능을 보기 몇일 전부터는 이런 말들이 돌아다닌다.
‘노력해온 대로, 차분하게 보고 오세요.’ 수험생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한 말이지만, 사실 시험을 보는 입장에서 그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100의 노력을 시험장에서 100으로 쏟아부으라고? 그건 정말 기적이다. 그래서 시험을 잘 본 사람은, 승리자가 아닌 채무자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연히 그대는 밥술 꽤나 먹는 집에서 태어났고, 그대가 수능에 적합한 사고방식과, 환경을 타고났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을 테니까.
노력은 언제나 당신을 배신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니, 그대의 과정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꼭 얘기해주고 싶다.
3. 지금 이 사회에서, 입시의 본질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다.
개인의 역량과 퍼스널리티가 집중받는 사회. 결국 이 사회에서 당신이 행복해지고,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당신만의 아이덴티티와 개성이 더 강해야 한다. 결국 이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Self’가 단단해야 한다. 본인의 재수, 고3시절이 부끄럽지 않았는가? 또 그를 토대로 자신과의 진솔하고 깊은 대화를 나누는 계기가 되었는가? 그럼 그것으로 됐다.
이미 네가 할 것은 다 했어. 앞으로의 챕터에서 다시 도전하든, 아니면 다음 삶의 섬광으로 나아가든, 네가 너와 이야기하고 대화해 온 그 서정의 시간들은 없어지지 않으리. 언젠가, 보상을 받으리. 다만, 그게 지금 주어지는 것은 아닐 뿐.
입시의 본질은, 네가 너와 진솔하고 깊은 대화를 하면서 너를 설정해가는 그 과정에 있어. 지금 이 사회에선 수능 성적보다도 그보이지 않는 것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단다. 그거 알아? 어린 왕자가 그랬었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으레 보이지 않는것이라고.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는 겨울이 되었으면 좋겠어.
이불 속에 숨어 있으면서, 눈물을 몰래 훔치는 그 외로움에서, 네가 너 자신을 탐구해온 역사들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더 나아가 진정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
4.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할 건 다 한 것.
세상은, 4%에게 박수를 보내고, 응원을 보내겠지만, 그리고 대학 합격증은 온전히 그들에게만 주어지겠지만, 적어도 나만큼은 그대들의 팬이 되어주고 싶어. 꼭 이겨내.
수많은 사연을 안고 달려와주어서, 이 시기를 함께 이겨내는 사람으로서, 즉 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또 젊음이란 섬광에 있는 사람으로서 존중하고, 존경한다.
끝까지 달려와주어서 고맙다. 충분히 잘했어. 실패해도 돼. 우리삶에서 실패는 별 것 아니야. 넘어지고 또 넘어져. 성공은 단 한 번이면 돼. 단 한 번. 그러니, 슬퍼하지 말고, 기쁜 겨울을 보내렴. 첫눈이 오면, 웃어.
난 그렇지 못했지만. 그래도, 웃어. 웃어, 웃어, 울어... 아니 웃어. 웃자. 그렇게 자연스러운 평온함에 이르자. 잘못한 건 없으니까.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진짜,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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