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전교꼴찌 [825838] · MS 2018 · 쪽지

2020-11-25 22: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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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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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일기장. 혼자 갖고있기에는 아까워서..


원래는 사실 아무 생각도 없었어. 사실 수능이라는 것에 대한 실감도, 그 시험장의 모든 상황들도. 내 가능성도 잊은 채 묵묵히 하루하루 일어나고 씼고. 밥먹고 옷 입고. 운동하고. 엄마랑 얘기하면서 고양이 몇번 만져주고. 그러고 머리 말리고 양치하고 시계보면 6시. 아무생각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하루를 출발했고 학원에 도착해서 아침에는 좀 졸리지만 그래도 수업때까지는 졸 망정 자지는 않을려고 매3비에 제멋대로 푸는지 낙서하는지 풀었고, 특히 국어 공부는 정말 열심히 한 것 같아. 아침 수업은 정말 다 졸렸어. 제대로 들은 적이 몇 번 없었던 것 같아. 그래도 시험 보는 날 시간은 정말정말 졸리더라도 종 딱치면 최면 풀리듯이 열심히 시험보고. 또 보고. 또 보고. 몇백번은 본것 같아. 잘 볼때도 있었고, 못 볼때도 많았어. 처음엔 남들과 비교하고, 내 뒤처지는 성적이 정말 끔찍할 정도로 싫었어. 그런데 많이 보다보니 체념인지 아니면 방관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내 실력에 불만은 없어졌어. 성적도 안정화되고, 내 스스로의 실력을 인정하고 그냥 담담히 별로 의미부여를 안하게 됬어. 그렇게 무심히 살았어. 무려 5개월 남짓동안. 매일매일 플래너에 하루의 계획표를 쓰고, 내 지나온 주들을 보며 항상 뿌듯하면서도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었어. 그렇게 쓰고. 넘기고. 쓰고 넘기고. 어느덧 그 주들이 20개를 넘었을때 문득 더이상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 느껴졌어. 정말 긴 시간이었거든. 나 그렇게까지 힘들진 않았던 것 같지만, 모르겠어. 고생을 했는지도 회의감이 드는 건 항상 그랬으니까. 확실한 건 이렇게 돌아보면 계속 조금씩 울컥해. 참 길고 외롭고 생각도 많고 바깥 세상에 대한 갈증과 두려움. 자아성찰과 여러가지 다양한 인생과 세태에 대한 생각들을 내 자신과 대화하고, 가족의 소중함도 새삼 느껴보고. 얻은게 있는지는 글쎄, 뭐라 답해야겠지 모르겠지만 그런걸 굳이 억지로 찾아내야 되나 싶기도 해. 오늘 수업이 다 끝났고. 내일은 이제 끝이야. 이제 다음주 목요일 날 모의고사 한세트 더 풀면 난 다시 더 많은 걱정들과 고민들을 해야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잘될지도 뭐 그대로 일상일지라도, 다음주 목요일은 지금까지의 너의 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마라톤. 너의, 운전대를 잡은 너가 달려온 5개월간의 기록에 대한 수료증이야. 성적표가 아니라 수료증이야. 달려온 사실에 대한 소박한 자격증이야. 독서 마라톤 다 끝나면 끝난 기념으로 상장을 주잖아? 똑같이 가서 당당하게 받아오란 말야. 완주 다했는데 왜 소심해. 넌 끝까지 달렸잖아. 넌 받을 자격이 있어. 가서 멋있게 멋지게 어깨피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 수료증 받아와. 그러고 시원하게 끝내. 알겠지? 받을 자격이 있다는 말에 울컥하는 내가, 얼마나 인정받고 싶었는지 나도 몰랐네. 이 기분을 나중에 일고 똑같이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누구보다 수고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해. 




이 글은 수능 끝나고도 생각날때마다 항상 읽은 글입니다. 글 내용을 거의 외울정도로...

정말 글 쓰고 많이 울었었는데... 

모든 수험생분들, 진심으로 고생하십니다. 꼭 모두 수료증 당당하게 받아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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