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답안구조 암기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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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레테입니다.
모평 전 마지막 주말아침이네요. 다들 준비는 잘 하고 계시겠죠?
논술입시에 있어서도 9평이 가지는 의미가 큽니다. 9평이 끝나고 나면 6월과 9월 점수를 기반으로 최악, 최고의 상황을 가정해서 수시카드를 쓰게 되니까요.
9월 모평은 운빨로 대박 터지지 않는 것이 이롭습니다. 괜히 점수가 공부했던 것보다 잘나와버리면 그것을 자신의 실력으로 착각하고 자만하기 쉽거든요. 딱 공부한 실력만큼만 보고 정확한 진단을 통해 더욱 열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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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첨삭관련해서 상담을 해주다가 한 학생이 제가 과거에 언급한 모범답안 구조해체법에 대해서 질문을 해주었습니다. 거창한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저만의 컨텐츠이다보니 공개할 수 없다고 양해해주십사 말씀을 드렸지만 덕분에 오늘까지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됐어요. 이왕 한 생각, 글로 한 번 남겨둘까 합니다.
저는 논리학을 배우고 처음 논술을 독학할 때, 글쓰기의 막연함에 압도되어서 연필을 한 시간을 넘게 쥐고도 단 한 글자도 적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논리학을 배웠다는 사실이 더 독이 되었던 것 같네요. Formal, Informal logic을 모두 만족시켜서 반드시 sound argument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거든요. 그래서 제시문에 밑줄만 열심히 쳐댔죠. 글은 한 자도 못쓰구요.
그러다 그 막연함을 깨야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한 것이 바로 모범답안을 해체해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단구조를 유형화하는 일이었습니다.
'합격자들의 도입부는 보통 이렇게 시작하고 이렇게 마무리하는구나.'
'합격자들의 답안에 어휘들은 이런 뉘앙스를 가지는구나.'
'합격자들은 문단구성을 저런식으로 나누는구나.'
답안의 틀을 완성하고나니 마음의 부담감이 현저히 줄더군요. 제가 미리 정리해둔, 그래서 이미 외워져있는, 그 틀에 키워드만 박아넣으면 글이 한 편씩 완성되었으니까요. 당시에 저는 제가 논술천재라고 생각했어요.
이건 혁명이다! 키워드만 잡아내면 나는 모든 논술 답안을 쓸 수 있어! 하면서요.
그런데 세상일이 그렇게 쉽지는 않죠ㅋㅋ. 그렇게 한참을 쓰다보니 한계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단순한데요. 그 정도로 쓰는 사람은 너무 많다는 거에요. 변별력이 없어요. 그러니까 그런 답안은 못봐줄 정도는 아닌데 안정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기는 힘들겠다고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다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논술 노베이스가 처음 딱 시작할 때 글쓰기에 대한 막연함을 해소시켜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러면서도 변별력을 갖는 구조를 잡아낼 수 있는 걸까?
답이 안나오더라구요. 저에게 논술의 물꼬를 터준 소중한 친구였는데 그 친구가 곤경에 처하니까 너무 갑갑했어요.
저는 철학을 배우면서 가장 좋은 건 답답함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그 무언가를 끌고와서 나에게도 적용시켜보는 것이었는데요. 그래서 당시에도 마찬가지로 시도해봤습니다.
아, 잠시 스포를 좀 하자면 제가 시작한 alone 연재에서 곧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다룰 건데요. 그 책을 보면 과학이론은 기존의 성과들이 누적되면서 진보하고, 그것이 어느 임계치에 도달하면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해요. 그래서 저도 그 생각이 들어, 패러다임을 뒤집어보려고 해봤습니다. '아 어쩌면 구조를 잡는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걸까?' 하고요.
그러니까 답이 보이더라구요. 구조를 방향으로 치환시켰습니다.
완벽한 틀을 가지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 글 구조의 방향성을 잡고 시작하는 것으로요. (개요짜기와는 살짝 다릅니다.)
아마 이게 무슨 차이가 있느냐하고 의문을 가지시는 분들도 있을거에요. 하지만 제법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융통성'에서 나타나요.
글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으면 논제에 따라 혹여 생경한 발문이 등장하더라도 융통성있게 비비고 넘어갈 수가 있어요. 그에 비해 엄격한 답안구조를 외우고 있는 친구들은 그런 융통성이 발휘되기 힘들죠. 외우던 틀하고 딱 들어맞지가 않거든요. 그건 시험장에서 불안함을 낳고, 불안함은 멘붕을 부르고, 결국 아는 것도 제대로 못쓰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아니면 사소한 부분이니까.. 하고 무시하고선, 가지고 있던 답안 구조대로 쓰고 나와요. 그랬다가 그 무시했던 부분에 발목을 잡히는 경우도 있죠. 주로 대형학원이나 인강을 통해 논술을 배웠다가 떨어지는 경우는 이런 케이스가 많더군요. 혹시 이 글을 읽는 학생들 중에도 논술실패의 경험이 있다면, 학원에서 논술답안은 이러이러하게 쓰고 키워드를 넣으라고 배우진 않았나요? 되돌이켜 보면 아마 꽤 많은 학생들이 그렇게 배웠을겁니다.
결국 요약하면 이래요.
처음 논술에 접근성을 높이려면 구조틀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을 저는 '장려'하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수능 이후 논술고사 직전에 처음 논술공부를 시작하는 학생들요. 이런 학생들은 그동안 학생이 살면서 무의식중에 갈고 닦았던 사고력과 어휘력으로 승부하는거거든요. 감점 당하지 않을 정도의 구조만 들고 가서 내가 살아왔던 삶을 무기로 싸우는겁니다. (사실 이 사람들은 일찍하든 늦게하든 누구한테 배우든 붙었을 거에요. 사고력이 다르거든요.)
반면에 논술 글쓰기에 어느정도 익숙해진 학생들은 고정적인 틀을 잠시 내려놓는 것이 좋아요. 대신 그 틀을 활용해서 일정한 방향성을 지니고 가는거죠. 딱딱한 나뭇가지를 들고 싸웠다면 조금 유연한 회초리로 바꿔 들고 싸운다고 생각하면 쉬울까요? 딱딱한게 단단하다고 느껴질지 몰라도 쉽게 부러지곤 하잖아요. 내구도는 오히려 유연한게 좋아요.
논술도 마찬가지에요. 사고는 유연할수록 단단한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채점기준에서 가장 중요한 '창의력'과 연결되구요. 창의력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들이 보통 합격권에 들어요.
다음에 여유가 생기면 이 창의력에 대해서도 적어볼게요. 쓰다보니 많이 길어졌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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