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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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오르비에 불티나게 글을 쓴 적이 있다.
글 뿐만이 아니라 댓글, 쪽지, 개인채팅까지 마치 오르비에서 월급이라도 받는 사람마냥 글을 써댔었다.
온갖 인신공격 수준의 댓글을 받아가면서도 꾸준히 글을 썼다.
사실 이유는 간단했다.
외로움과 함께, 수험생은 지나가는 개미가 움직이는 것만 보고 있어도 즐겁지 않은가?
장르도 다양했다. 만물상이라도 되는 마냥 온갖 잡학사전을 펼쳐대고 있었다.
어느덧 수험생 신분이 끝이 나고, 이제 수험생이 아닌 사회인이 된 후에는 오르비 글쓰기가 예전같지 않더라.
외롭지도 않고, 지나가는 개미는 그냥 지나가는 개미일 뿐이더라.
그러다보니 점점 글을 쓰지 않게되고, 오히려 글을 쓸 때 마다 부담감이 밀려왔다.
반응이 안 좋으면 부끄러움과 함께 지우게 되고, 글을 쓰다가도 에이 됐다하는 생각에 인터넷 창을 꺼버렸다.
이제까지 지운 글만 해도 30개는 넘었다.
그리고 종종 글을 쓰더라도 내 글이아닌, 나에대한 부정적 견해가 들려오면 기분이 상하기 마련이었다. 나도 사람인디 쓰벌
그렇게 조회수와 좋아요가 충분하더라도, 댓글이 부정적이면 민망한 기분과 함께 '내가 욕 먹을 짓을 사서 하는건가?..' 글을 지웠다.
그래 내가 수험생도 아닌데 여기서 뭐하고 있는건가?
마지막 수능을 보고, 대학을 포기한 뒤 수많은 일에 도전했다.
에세이작가부터 유튜버, 주식, 아마존셀러등등 유튜브에 뜨는 핫한 직업이라는 직업은 하나하나 다 해본 것 같다.
해 본 것도 아니지, 그냥 '이거 대박인데?'라는 생각에 준비만 꾸준히 해봤다.
하지만 세상사 쉬운 일이 뭣도 하나도 없더라.
내가 준비해 온 모든 일은 성공한 사람들의 정상만 보고있었고, 정작 나 자신을 파악하진 못했다.
준비하는 나는 분야가 뭐가 되었든 막 시작하는 새내기중의 새내기였지만, 내 기준은 늘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위대한 스토리를 담은 책을 쓴 작가
100만 유튜버
수익률 10000% 슈퍼개미
월매출 10억 아마존셀러
이런 기준속에 나는 하염없이 벌레만도 못한 존재였다.
시발... 유튜브에서 00만 하면 된다고 했단말이야
사기꾼같은 넘들
그렇게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며 마지막 20대를 보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내 20대 인생의 황금기가 언제일까?
글쎄... 20대 내내, 아직은 오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지나가버린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더라.
명문대라는 목표만 보고 20대를 걸었는데, 목표가 사라져버린 후의 나에게 황금기라는게 언제였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 국어 성적을 올려서 장학금을 땄을 때?
- 연세대 논술을 기가막히게 썼다고 스스로 자화자찬 했을 떄?
- 제대했을 떄?ㅋㅋ
- 새로운 여자친구를 만났을 때?
누가보면 존나 한심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어쩌면 오르비에서 의미있는 글을 써오던 그때 그 시기가 아니었을까?
진짜 한심하디 한심하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그때를 제외하고는 난 누구에게 무언가를 준 기억이 없더라.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준다는 것...
난 늘 얻으려고만 했다.
학벌을 얻으려고 했고, 인기를 얻으려고 했고, 돈을 얻으려고 했고, 여자를 얻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오르비에 글을 남기던 그 시절엔 늘 주고싶었다.
주6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신림동 드림마트 배달 알바를 마치고는 마트 유니폼 벗지도 않은채로 신림동 피시방에 갔다.
롤도 안켜고, 피시방 가장 구석진 자리에 가서 오르비에 접속하여 뒤에 누가 보면 서울대생 코스프레하며 글을 남기곤 했다.
누가 월급 주는 것도 아닌데 뭣하자고 잠도 안자고 그 난리를 쳤는지...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때만큼 남에게 주고자 하였을 때가 있을까?싶다.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 지식, 경험, 감정 등등 온갖 것을 다 주고싶었다. 받고자 하는 것 하나 없이...
기브앤 테이크라고 얻고자한다면, 주는게 순서일텐데 왜 늘 얻고만 싶은 사람이 되었을까?
내 황금기는 그때의 오르비하던 그 시절이 분명하다.
이 생각이 머리에 미치자 모든 것이 명료해졌다.
농담이 아니라 쇠몽둥이로 뒤통수 와닥! 맞은 기분이더라.
세상사람 아무도 모르는 신비한 계책이라도 얻은 느낌이었다. 이 감정 참 설명하고 싶은데 어렵네
얻고자하면 어떻게 얻을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먼저 간 사람이 어떻게 얻었나, 혹은 옆사람은 무엇을 얻고싶어하나 쳐다볼 수 밖에 없어지잖아.
그러면 나와 너가 무슨 차이가 있을까? 경쟁 또 경쟁 뿐인데
그냥 주고 주고 또 주다보면 얻고 싶은건 따라오더라.
글쓰기? 솔직히 내가 지금 하는 일의 반 이상은 글쓰기로 먹고사는 듯한 기분이다.
내가 언제 글쓰기 솜씨를 얻고자해서 얻었을까? 아니다. 그냥 주고싶은걸 주다보니 얻은거 아닐까?
장담컨대 그때 글을 쓰지않고 어디 카피라이팅 학원을 3년내내 다녔더라도 지금보다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세상 모든게 단순해진다. 너무 쉽잖아. 그냥 받을 생각 없이 주면 된다.
학벌? 명예? 권력? 월급? 여자? 다 좋다 나도 하나도 빠짐없이 싹 다 좋아하는 것들인데
그런 어떤거를 얻을 생각 이전에 내가 줄 수 있는게 무엇일까? 고민 해보자구
'학벌' 말구 내가 알고있는 지식과 지혜를 어떻게 줄까
'명예' 말구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과 감정을 어떻게 줄까
'권력' 말구 내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어떻게 행사하여 다른 사람의 삶을 조금 더 살만하게 해줄까
'월급' 말구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어떻게 사용해서 가치를 만들어줄까
★★★'여자' 말구 내가 가지고 있는 매력과 여유로 상대방을 행복하게 해줄까?★★★
(자꾸 괴상끔찍한 선물을 위장한 고백으로 상대방 혼내주지말구...)
그러고보면 그때 나는 진짜 많은 것을 주고싶었나보다.
그때의 나로 돌아가구싶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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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이 글 지우지 말아주세요
와닿는 글이네요
앞으로 글 쓴건 가능하면 안 지우려고 노력해 볼게요.
이렇게 글을 잘쓰시는분이 왜 그렇게 오랫동안 공부하셨는지 궁금하네요...혹시 서울대만 쓰신건가요???
그런건 아니구요. 매번 나오는 결과를 인정하기 싫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