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843417] · MS 2018 · 쪽지

2020-07-27 19:30:48
조회수 3,112

수험 기간 마주하는 어둠에 대처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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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먹고 밤을 새면서 쓴 이전 수필에서도 말했지만, 저는 조울증 환자입니다.


그래서 제가 하는 말에 조리가 있을 거라는 장담도 하지 않을 것이고, 


더욱이 제가 하는 말이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을 거라고는 당연히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어두운 감정들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그리고 제가 수험 기간동안 마주한 어두운 감정들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그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저나 이 글을 읽어주실 여러분들께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냐면, 일단 저로서는 이렇게 글을 쓰는 활동이 치유의 한 방법이 됩니다.


제가 제대로 마주하고 있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말의 정체조차 가늠이 되지 않는 그 무언가를 


직시하고, 곱씹고, 뭉근하게 머릿 속에서 포용하는 것은 제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께는, 제가 쓴 글의 내용 뿐만 아니라 제가 글을 쓰고 있는 이 행동 자체에서


무언가를 얻어갈 수 있는 행동이 될 것이므로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확신은, 제가 살아오면서 여러 사람들을 지켜보고 그들을 공평하게 판단한 


저의 삶의 경험에서 기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적용이 안 될 지도 모르겠지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수험기간, 저는 이미 우울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부터가 크나큰 고역이었습니다.


단순히 피로감에 절어서 몸을 움직이기 귀찮다, 뿐만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보낼 오늘 하루가 헛되이 날아가면 어쩌지?’에서 시작하는 수많은 자기 비하와 자기 불신, 그것이 ‘고역’의 정체였습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최소한의 단장을 하고 학원으로 향하는 버스를 탄 20여 분 남짓한 시간 또한 제게는 큰 내적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이 버스를 그대로 타고, 학원 앞에서 내리지 않는다면, 나는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을텐데.


그래서 실제로 몇 번은 그렇게 학원 앞에서 내리지 않고 어딘가로 떠난 적도 있습니다.


특히나 저는 대구에서 상경한 지 몇 년 안 되는 촌뜨기였기 때문에, 서울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것 자체로도 큰 재미가 있었습니다.


일단 버스에서 내리고 나면, 학원에서 공부하는 것 자체는 의외로 어렵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벌써 수험 공부가 세 번째 이기도 하니, 항상 공부했던 것들과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이 저와 놀아준다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보면 결국 나 혼자였기 때문에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하루를 정리하고 집에 돌아오면, 그래서 기진맥진한 채로 자취방에서 잠이 들면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는 삶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수 많은 스트레스 요인들이 많았습니다.


가령, 눈을 돌리면 이미 학교 생활을 만끽하고 있는 대학 동기들.


군대에서 이미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고향 친구들.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고, 무언의 압박감을 주는 내 주변의 친인척들... 부모님을 포함해서.




어찌어찌 대학을 잘 갔습니다만, 여전히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지방 일반고에서 삼수 끝에 겨우 경영학과에 들어온 저와는 달리, 동기들은 외고다 명문사립고다 민족사관학교다 유명한 학교에서 굉장한 스펙과 엄청난 선행학습을 하고 왔기 때문에 학점 경쟁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운동으로 치면, 수행 능력의 근본 자체가 달랐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헤어졌던 전 여친과 다시 사귀고, 또 다시 헤어지기도 했습니다.


3수를 하면서 언변능력도 떨어졌습니다. 아예, 말하는 것 자체가 어색해졌다고 하는게 정확할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할아버지의 장례식과 관련한 트라우마가 스멀스멀 마음의 깊은 곳에서부터 악취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친구도 잘 사귀지 못하고, 이미 사귀었던 친구들도 멀리 있거나 학교가 달라 생활 패턴이 달라졌습니다.


여러모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약을 먹고 상담을 받기 전 까지는, 방 안에서 나가는 것조차도 잘 하지 못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저는 이만큼은 괜찮아져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어째서 괜찮아졌냐고 하면, 저는, 항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를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재수, 삼수를 하면서 힘들었던 때에도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생활의 끝은 정해져있다.' 라고 생각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에 가면 내가 다 이긴다.' 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약을 먹기 전의 힘든 시기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은 나아질 것이다.' 라고 생각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나는 일어설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제게는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만휘에서 인터뷰를 받을 때에도 저는 제가 가진 꿈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잠깐 언급 하자면, 저는 글을 써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저를 영원히 기억해줬으면 합니다.


꽤 단순하고, 어이 없고, 실현 불가능한 꿈인 듯 싶습니다. 저 자신도 일단은 그렇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 이 꿈은 소중합니다. 그리고 소중한 만큼 그 자신의 강한 힘을 제게 행사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참 이상한 동물이라서, 자신의 사고 방식을 'A이면 B이다'를 'B이면 A이다'로 생각보다 쉽게 바꿀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조건이 갖추어졌기 때문에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꿈을 꾸기 때문에 조건을 충족시켜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것들은 그 자체로 밝게 빛나기 때문에 우리가 절대로 놓쳐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잃는다는 것은 인생의 등불을 잃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어떤 것들'중에는 꿈도 포함됩니다. 나머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만.


꿈은 항상 바뀌기 때문에, 불안정성을 근거로 수험 생활의 등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꿈에 대해 항상 솔직하고 정직한 태도를 유지한다면, 


여러분은 곧 꿈은 바뀌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임을 깨달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꿈을 가로막는 이런 저런 사고의 장애물들을 걷어내고 나면 우리가 그 시점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꿈의 결정체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지는, 여러분이 꿈을 가지고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일본 여행을 하면서, 교토의 기요미즈데라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기요미즈데라의 본당 지하에는 암실이 있습니다.


암실을 걸어가다보면, 정말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나, 중간에 무언가가 튀어나오면 어떡하나, 만약 길을 잃어버리면 나를 누군가가 찾아줄 수 있을까를 걱정하기도 합니다.


정말이지, 어른이 되어서도 그 암실의 기억은 공포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암실을 걸어가다보면 중간에 '빛나는 돌'이 있습니다.


절의 스님은 그 돌이 스스로 빛나는 것이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사실은 천장에 구멍이 뚫려있어 햇빛이 그 돌을 비추어주는 것 뿐이었습니다만, 뭐 중요하진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상상하실 수 있을까요? 제가 그 때 느낀 그 기분을.


어두컴컴한 암실을 걸어가며 공포에 떨고 있을 때, 그 빛나는 한 조각의 돌을 발견한 그 기쁨을.


그 날의 기억은 꽤나 강렬해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꽤나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어쩌면 이 이야기가 다 인지도 모릅니다.


검은 복도를 걷다보면 빛나는 돌이 기다리고 있다는, 그런 얘기.


그런 얘기를 여러분이 좋아하실런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늘인 이유는


실로 그 이야기가 가치있다는 사실을, 그 스스로 빛나는 등불 중 하나라는 사실을, 여러분께도 확인받고 싶어서 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 등불이 실로 우리에게 유용하고 유익하며 마음을 복돋아주는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수험 생활은 검은 복도와도 같습니다. 꽤나 무서운 경험입니다, 그것은.


그래서 '빛나는 돌'이 하나 둘 쯤은 필요합니다. 많을 수록 좋겠지만, 그걸 다 들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제 글이,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여러분께 그런 돌 한 조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약을 먹고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글이 두서가 없을 수도 있고, 중구난방이어서 결론이 모호한 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글에 드러났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만 글을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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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망자 · 951267 · 20/07/27 19:37 · MS 2020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베르나르 · 843417 · 20/07/28 18:38 · MS 2018

    감사합니다 :)

  • 140일의 의대전사 · 946194 · 20/07/27 20:10 · MS 2020

    이미 이전 글 한편으로도 글쓴 님은 제게 기억되기 충분히 강렬했나봅니다.
    제가 닉네임을 그리 잘 기억하는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닉네임을 보자마자 어 그분? 하고 들어왔으니까요.
    저도 머리가 복잡할 때 글쓰는 것을 좋아하는데 겉으로 보이는 성공과 괴리되는 자아를 잘 표현하시는 듯 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존재'된다'와 살아'진다'는 표현은 아직까지도 제게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네요. 저도 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곤 했으니까요.
    베르나르 님께서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쓰다보니 두서가 없어졌는데 ㅋㅋ 아무튼 감사합니다!

  • 베르나르 · 843417 · 20/07/28 18:38 · MS 2018

    글을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을 쓰고 계신다고 하셨는데, 아무쪼록 건필하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당면한 시험이 건승하시기를 먼저 바라겠습니다 :)

  • 세계를무대로만날문학소년디카프리오 · 972101 · 20/07/27 21:01 · MS 2020

    지금 잠깐 언급 하자면, 저는 글을 써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저를 영원히 기억해줬으면 합니다.

    ->이 문장에서 댓글을 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멘토 선생님들,주위를 경험하며 홀로 깊게 생각해봤는대요.
    인생을 살면서 쉽게 말해 좌우명이나 핵심 키워드를 잡는다면 그 키워드에 부합하게 산다면 동쪽으로 가도 서쪽으로 가도 남쪽으로 가도 돌고 돈다면 키워드대로 산다고 저는 느꼈습니다.대신 꿈이 직업이 아닌 정말 키워드 처럼
    좌우명이나 규칙이여도 좋으니 그것이 있다면 아 나는 ㅇㅇ대학교 ㅇㅇ학부를 가서 돈을 n원씩 모을거야 그리고 몇 년 안에 ㅇㅇㅇ 아파트를 사고 m살때 결혼을 해서 ~~~

    이런 세부 계획이 아닌 다르게 흘러가도 실패했다거나 허망하다거나 마음이 답답한 느낌이 나 자신을 지배하지 않습니다.

    제 인생에서 꿈은ㅋㅋ...존경하는 분들의 글과 마음을 보며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 플러스 요소의 판도에 중심에 서자.라고 잡았고

    작성자님과 비슷하게 큰 범주인 예술을 사랑하게 됐습니다.

    어쩌면 이 마음을 갖고 있는 상태라면 생각한 대학이 아닌 다른 대학을 가거나 아니면 대학을 다니다가 생각하지 못 한 아르바이트나 대외활동을 할 수 있어도 '의미없네'라고 슬퍼하지 않을거고

    이 꿈이 있기에 '부모님이...' '오르비 누구님은 모의지원에서 전국 몇 등이라는데...' '오르비 다른 누구님은 GOAT 취급 받는데...'라는 생각이 제 모든걸 지배하지 않더라고요.

    슬퍼도 작성자님 말씀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마음이 생깁니다.

    작성자님 역시,현재 이 글을 작성하며 느끼는 감정과 오르비에서도 글을 작성하고 계시니

    본인만의 세계에서 본인만의 언어와 개성으로 빛나고 계십니당.글이 중구난방하지 않고 본인의 언어로 정렬된 글이라서 저는 따뜻하고 편했어요.당신의 컬러를 그 누구보다 인정하고 사랑합니다.

    또한 당신의 언어가 확실하게 존재하기에 윗댓글 분 말씀처럼
    오르비라는 세계에서 당신의 글과 존재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지요.작성자님도 ㅎㅇㅌ!!

  • 세계를무대로만날문학소년디카프리오 · 972101 · 20/07/27 21:03 · MS 2020

    아 그리고 당신의 꿈은 당신의 존재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당신 역시 소중한 존재에요 왜냐면 당신의 꿈이 소중하고 하나의 보석이자 컬러이기 때문에요.
  • 베르나르 · 843417 · 20/07/28 18:39 · MS 2018

    본인의 언어로 정렬된 글이라는 표현이 너무 감사합니다. 아무쪼록 디카프리오 님도 만사에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

  • 6야외출허용해줘 · 846025 · 20/07/28 23:20 · MS 2018

    잘 읽었어요

  • 우유비트 · 884273 · 20/07/29 00:27 · MS 2019

    좋은 글이네요. 잘 보고 갑니다

  • snuph24 · 973013 · 20/07/29 03:35 · MS 2020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혀 약을 먹고 있는 사람이 쓴 글이라고 믿기지 않았어요. 점점 나아지실 거라고 믿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