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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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무엇인가를 자꾸만 주고 싶어한다.빨간 표지의 수첩을, 목도리를, 비누를, 사진을 그렇게 과거를 떠맡기고 여자는 떠나는 것이다. 남자는 그 물건들에 둘러싸여 사랑하는 이라고 불러본다. 여자는 내게 자살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고도 생각해본다. 히히 18세기로군, 또는 유행가. [누이를 사랑하기 위해서, 김승옥]
남긴것도 가진 것도 없는 나는 무엇을 그리워하는가? 끊임없이 나에게로 침잠하는 것은 나에게 몇가지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이미 나는 이해되지 않는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에게도,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이젠 더 이상 주장이란 것이 사라지고 느낌만을 말할 수 있는 사회에서 시대에 뒤쳐진 지식인은 쓸모가 없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더 개인적인 영역으로 침잠하게 된다. 혼자서 생각한다는 것,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하게 된 이 시대에서 옛 지식인은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곤한다. 더욱이 자신을 옭아매고 스스로를 가학하며 더욱이 내면으로 빠지게 된다는 것은 이제는 의미가 없어졌다. 더욱이 입밖으로 내는 것도 말이다. 스스로 이해되길 원하면서도 동시에 이해되지 않기를 바라는 이중적인 태도를 가진다 하더라도 더 이상 이런 유치한 장난에 놀아줄 이들도 없다. 그리하여 나는 대책없이 걸을뿐이다.내가 너무 많이 나아가진 않았던가? 단지 내가 하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나의 삶이 그렇게 무의미하지는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한때 하나의 마음만을 품고 나아가던 그 때의 나의 삶에 대한 순수성을, 당시의 시대를 나는 사랑하는 것이다. 나의 의미없는 전진을 멈추어 삶에는 가치가 있다고 나에게 인식시켜준 사람은 떠나곤 했다. 아마 너무도 내가 너무도 기뻐했기 때문이겠지. 아마 나는 나와 너무도 오래 대화한걸지도 모른다. 더이상 나 이외의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걸지도. 하나의 세계가 형성되는 과정이 한마디로 얼마나 기막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 과정 속에는 번득이는 철편(鐵片)이 있고 눈 뜰 수 없는 현기증이 있고 끈덕진 살의가 있고 그리고 마음을 쥐어짜는 회오(悔悟)와 사랑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봄바람처럼 모호한 표현이 아니냐고 할 것이나 나로서는 그 이상 자세히 모르겠다.
재수의 슬픈점은 글을 쓸 시간도 없다는 것, 곧 생각할 겨를도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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