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트★ [58000] · MS 2004 · 쪽지

2011-10-10 03:04:55
조회수 3,878

공부법의 맹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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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부터 지금까지 6년동안 '공부법'에 관해 많은 글을 써왔습니다.
초반에는 과목 공부법, 수능 공부법 위주로 가다가 작년부터는 마음가짐에 대해 주로 써 왔는데요..
그 과정에서 저는 제가 공부법 글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저 자신은 부끄럽게도 공부를 잘 못하는 경우를 많이 발견하였습니다.
예를 들어서 시험 전날 공부는 안하고 글을 올린 적도 있습니다..-_-ㅋ;

 
사실 이런 현상은 저한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상담해주는 다른 여러 전문직 종사자에게서도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서  주식 상담사인데 정작 본인은 주식으로 큰 돈을 벌기는 커녕 쪽박을 찼다든지,
부부관계 상담사인데 정작 자신은 이혼을 했다든지 하는 등입니다...

 
이렇게 이론은 항상 자기모순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음은 제가 솔직하게 인정하는 자기모순적인 부분입니다.
여러분도 다음과 같은 점을 같이 공유하고 인식할 수 있다면, 조금 더 합리적으로 공부법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아는 순간 이미 아는 것처럼 만족하게 된다.
 
 

 
공부법을 알게 되면 이미 자신이 뭔가를 잘하게 된다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수학을 못하는 학생도 수학 공부법을 보게 되면 
'아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하고서는 이미 수학을 잘하는 것처럼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즉, 섣부른 성취감을 느끼면서 만족하게 된답니다.

 

 
부끄럽지만 저 역시 이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의지력 관리'에 대해 깨달음을 얻고 그 글을 쓰고 나면,
전 이미 의지력에 대한 관리법을 마스터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어,
오히려 이상하게 전보다 더 허접해집니다.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선 머리로 아는 것(이론)과 몸으로 아는 것(실전)을 철저히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가 깨달은 공부법 이론은 이게 실제로 아는 게 아니라 그냥  머리로만 아는 환상이라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 현실에서 그 이론을 적용했을 대 실제로 어떻게 달라지는지...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시간관리에 대한 글을 읽었다면 그것을 실제로 적용해보면서 자신이 어떤 점이 달라지는 지 지켜보는 것이죠.
 

 

 
2. 시행착오를 덜 겪게 만들어서 깨달음의 깊이를 낮춘다.

 


많은 사람들은 최단경로를 좋아합니다.
마치 스타크래프트에서 최적화된 테크트리에 따라 건물을 짓듯이,
진로계획을 짤 때도 
공부를 할 때도
가장 적은 시간에 가장 많은 돈 (또는 스펙)을 쌓으려고 계획을 짭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최단경로로 가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최단경로로 가면 시행착오를 한 경험이 부족하기에... 
계획했던 것과 약간만 다른 상황이 나와도.. 당황하게 되고 쉽게 좌절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지문 분석법 중에서 가장 좋은 법을 찾아서 공부하다가도,
보통 보는 지문과 다른 형식의 지문이 나왔을 때에는 어떤 식으로 해야할지 자꾸 두번 세번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것은 자꾸 자기가 하는 것이 맞는지 회의가 들게 하게 됩니다. 
자꾸 더 나은 정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부법을 '배운 것'에 대한 맹점이죠.


공부법에 대해 올라오는 사람들의 글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얻어낸 '결과'입니다. 
시행착오의 '과정' 중에서 '깨달음'을 얻고 '결과'를 서술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영어를 공부할 때 제대로 해석하지 않고 단어만 보고 대충 퍼즐 끼워맞추기 식으로 공부하다 피를 봅니다. 그 이후로 그는  하나하나 제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확신을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결과가 좋으면 그에 대한 영어 공부법을 쓸 것입니다.

하지만 공부법 글에는 그 깨달음을 얻게 되기까지의 시행착오의 '과정'이 생략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냥 '영어는 하나하나 제대로 해석해라!' 식의 글이 올라오게 되죠. 

그래서 최단경로로, 시행착오 없이 공부법을 우리에게 적용하려고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저자가 겪은 시행착오의 경험(=퍼즐 끼워맞추기 식으로 하다 피본 경험)이 없기에,  영어를 하나하나 제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최고의 공부법으로 공부한다 하더라도..
'이렇게 천천히 영어문장을 읽어도 되나' 하는 회의가 듭니다.

결국 시행착오 과정에서 생긴 깨달음이 없기에, 
자신의 공부법에 대한 확신이 없게 되고,  자꾸 흔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 공부법 저 공부법 기웃거리게 되다가...모든 것에 대해 회의가 생기죠.

 
 
이런 맹점을 극복하기 위해선 반드시 시행착오를 겪어야 합니다. 
즉, 과정을 공유해야죠. 
이런 점에서 시행착오는 선택이 아닙니다. 
항상 최적화를 쫓는 학생들에게는 정말 죄송한 말입니다만,
시행착오는 필수입니다.

가장 빠른 길, 최고 빠른 테크트리가 가장 좋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적절한 시행착오가 있어야 좋은 공부법을 자신에게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쓴 공부법은 다른 사람의 독특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나온, 개인화된 '스킬'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 개인화된 스킬을 자신에게 적용하려 하지만, 사람은 똑같지 않기 때문에 절대 그대로 적용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될 때 , 나에 맞게 변형/적용시킬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더더욱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시행착오의 과정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알려줄 수 있는 아주 좋은 지침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잠 5시간 자는 것을 실천했는데 그대로 되지 않다가 7시간 자면서 하니 잘되었다면,'나는 7시간은 자야되는 사람이구나' 하고 알게되듯이 말입니다.


 
여기에 한가지 덧붙여 조언을 드리자면, 글을 읽을 때에는 반드시 그 글에 '과정'이 담겨있는지를 확인해봐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무조건 의지력을 발휘해라! " "많은 공부를 해라!" 식의 '선언적' 공부법은 일시적 자극으로만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히지만 그런 메시지 안에 자신의 시행착오 '과정'을 담은 글은 좋은 간접경험이 된답니다.
(특히 실패한 글들을 많이 찾아보시면 좋습니다.)



 
3. 공부법을 인식하는 순간 집중상태가 깨진다.

 
 

 


공부에서는 집중이 중요하다는 것은 다들 아실 것입니다.
무아지경의 몰입상태(flow)에 빠져서 시간감각을 잊고 그 상태에 빠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집중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더 집중을 못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던가요?

"제가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 순간, 전 집중상태에서 흐트러집니다."
이건 제가 한 말이 아니라, 미국의 여 배우인 맥 라이언이 한 말입니다
이렇게 공부법을 아는 것이 오히려 몰입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현상은 '과목공부법' 보다도...제가 주로 쓴 '마음가짐법'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요. 
예를 들어 '겸손해야지' '불만족해야지' '몰입해야지' 하는 것이 오히려 몰입에 방해가 됩니다.
자꾸 공부법 의식을 해서 내가 이론대로 하고 있는지 체크하게 되고...
이게 집중상태를 깨게 만들기 때문이죠.

 
이런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순간에는 모든 것을 잊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공부법을 잊어버리세요.
저 역시 마찬가지로 기존의 제가 만든 이론들을 부숴버리고 현재의 흐름에만 맞췄을 때
가장 공부가 잘되었습니다.

 
 

 
4. 과거를 미화한다

 
시중에는 많은 합격수기 책들이 있습니다.
이 책들은 대부분 '사건 중심'으로 쓰여졌습니다.
그 글만 보면 마치 영웅 일대기를 보는 듯하며, 모든 사건이 운명적으로 일어나죠.
흥분과 열정의 도가니탕입니다. 
사랑에 빠져서 흔들리고 점수에 울고 다시 3시간 자면서 공부해서 대박역전을 이루어냅니다.
화려하죠.

 

 
하지만 실제 공부 해보면 그런가요?
최소한 전 그렇지 않았습니다. 
물론 '의미있는' 사건도 일어나긴 했지만 그건 전체 경험 중에 1%밖에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 매일매일은 지극히 평범하디 평범한 일상이었습니다.
일주일 내내 같은 장소에 앉아서 전혀 화려하지 않은 생활을 했습니다.
(지금도 연구실에 앉아서 전혀 화려하지 않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ㅠㅠ)
지루하디 지루한 나날이 계속됩니다.
그냥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마저 부러울 정도입니다.

 

 
이렇게 과거를 미화시키는 현상은 합격수기 뿐만 아니라 성공한 사람의 자서전에서도 많이 일어납니다.
별 생각 없이 선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기억을 미화시켜서 
마치 엄청난 의도를 갖고 대단한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그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사람의 기억과 경험이 다른 데에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합격수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보고 그대로 해서 될 리가 없습니다.

 
합격수기를 보시게 되면 거기에 있는 운명적인 일들은 싹 다 빼고....
매일매일의 일상생활 정도만 조금 참고하시면 됩니다.

 

 

 

 

 

 
이 네 가지 맹점의 공통점은 바로,
공부는 지극히 실천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자전거를 탈 때 자전거 타는 법을 아무리 잘 알아도 자전거를 타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자전거를 많이 탄 경험이 쌓인 이후에 이런 저런 이론을 알면 조금은 도움이 되겠죠.


결국 공부는 본인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솔직히 말해서 이론을 많이 아는 것은 큰 쓸모가 없습니다.
실천이 중요합니다.
이론은 실천 중 수많은 시행착오에서 헤맬 때...간접답안을 제시해주는 정도로 그쳐야 합니다.
자신의 경험이 쌓인 이후에 이론을 알아야 조금은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조금은 외람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맹점은 공부법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대부분의 이론에서도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사회는 우리에게 최적화 테크트리를 요구합니다.
가장 빨리 학교를 졸업하고 가장 빨리 돈을 벌고 가장 빨리 유명해지면
성공한 인생처럼 묘사됩니다.
마치 계단을 차곡차곡 밟아 올라가듯이
하나하나 단계를 착실히, 완벽하게 밟아나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올바른 길처럼 묘사됩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우수한 스펙으로 졸업한 후 열심히 길을 밟아나가면 모든 보상이 앞에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전 인생에서 그런 이론화된 최적화 테크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생은 그렇게 하나하나의 단계로 밟아나가는 컨베이어 벨트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실패했던(또는 성공했던) 과거의 경험들이,
또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과거의 경험들이,
현재 하고 있는 일에 기가 막힌 기회로 연결되어
인생이 180도 바뀌는 일들을 너무나도 많이 보아 왔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의 나 자신, 그리고 흐름입니다.
모든 것을 내던지고 지금 흐름에 나를 맡기고 배우는 것에 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리는 경험이어서 가르칠 수가 없다. 그것은 지식이 아니고 존재하는 것이다. 

-라즈니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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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된 미래 · 380570 · 11/10/10 03:11 · MS 2011

    이 글은 곧 인기글이 됩니다.

  • 진리의기출 · 377066 · 11/10/10 17:47

    헐 서형일님.....?

  • real크롬 · 337425 · 11/10/10 19:11

    흠흠... 절 부끄럽게 만드는 글이군요

  • JM절망 · 292997 · 11/10/11 00:19 · MS 2009

    정말 좋은 글이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ㅎㅎ
    특히 마지막 진리는 경험이다 이 말 정말 와 닫네요 ㅋ

    계속 인강에 의존해서 지식습득위주에 공부만하다 요새는 여러 파이널문제집을 시간재서 풀면서 경험이 정말 중요한거같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타이밍 좋게 이런글이 ㅋ

    정말 경험이 중요한거같아요 지식을 단순히 보고 듣는거만으로는 점수가 변하지않는거같아요 ㅠㅠ

  • gesture · 381703 · 11/10/18 07:41 · MS 2011

    감사합니다..

  • [고구마] · 348398 · 11/12/29 15:08 · MS 2019

    좋은 내용이네요.
    공부법 자체는 지도라고 생각합니다.
    지도를 알고 있다고 해서 이미 그곳에 도착한 것이 아닌 것처럼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실천입니다.

    공부법은 실천하려는 의지가 없는 학생에게는 단순한 지도에 불과하지만
    실천하려는 의지가 있는 학생에게는 목적지에 쉽게 도착할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길잡이가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부법을 아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 베니 · 374249 · 12/01/06 23:33

    수기 파트에서 살짝 공감이 가네요...... 추천하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