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식

Stark [242228] · MS 2017 · 쪽지

2009-12-14 00:36:55
조회수 126

대한민국 대표잉여,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에 가다 - 1편. 어린시절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1442646

어린 시절>>



나의 삶에 대한 기억은 5살 때 창동에서 시작한다. 창동시절의 나에 대한 기억이라면, 지금은 망한 ‘대교TV’의 어린이 방송 <송이야 놀자>에 정기적으로 출연했던 것이다.
사족을 좀 붙이자면 <지붕뚫고 하이킥>에 나오는 신세경 누나도 나랑 같이 출연했었다. 못 믿으면 우리 집에 VTR 들고 와서 녹화 테이프 보여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신세경 누나랑 대면한다고 해서 누나가 날 알아본다는건 아니다. TV출연은 내가 97년 7월경에 내가 의정부로 이사하면서 그만두었다.
그리고 의정부로 이사하면서 나는 조금씩 공부와 접하게 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학업에 두각을 드러낸 것은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3학년부터 학기마다 보았던 교내 수학/과학 경시대회에서 거의 매번 1등을 하였으며,
특히 4학년 여름에 3~6학년 까지 다 보았던 경기도 수학경시대회 예선에서 6학년까지 통틀어 1등을 하였고, 특히 2등이랑은 거의 40점 이상 높았다.
이 일을 계기로 어머니는 내가 서울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으셨고, 나는 자칭 제2의 대치동라는 노원구 중계동 은행사거리로 입성하게 되었다.



서울이라는 곳은 참으로 무서운 아이들이 바글바글한 동네였다. 하지만 곧 나는 우수 학생으로서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고, 주로 영어와 수학 공부를 하였다.
서울에서 5,6학년을 마치고 나는 중학교로 진학하였다. 그리고 서서히 나는 외고와 서울대 법대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하였다.
당시에는 법대가 사라질 것이라곤 상상할 수도 없던 때니깐...




<<중학생 시절>>



중학교 때의 공부는 영어와 수학, 그리고 내신 위주로 진행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쓸.데.없.는. 중학교 내신에 내가 왜 목숨을 걸고 덤볐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래도 2학년 끝날 때까지 피터지게 내신을 해서 그런지 중2때 학생회장을 하면서도 1,2,3,4 등을 골고루 했었다.
진심으로 말하는 거지만, 외고가 목표가 아니라면 중학교 내신은 버리는 것이 좋다. 중학교 내신은 결코 고등학교 내신과 비례하지 않는다. 중학교 내신에 명분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부모님의 자존심뿐이다.


영어와 수학은 민족사관고등학교와 대원외고를 목표로 T종합학원에서 배웠다.
혹시 중학생이 이걸 보거나 중학생 동생을 둔 고등학생을 위해 말해주는 거지만, 중학교 1, 2학년 때는 종합학원보다 영어/수학 단과학원을 다니는 것을 추천한다.
아무튼 영어는 CBT 위주로 공부하여 중3 초에 270점을 취득하였다.
수학은 초등학생 때부터 열심히 한 것이 주요했다. 그냥 심심해서 치러 갔던 서울과학고 영재교육원 수학반에 합격한 것이다.(이것을 나는 내인생 첫 번째 기적이라고 부른다.)
또, 학원에서 민사고 수학경시대회를 준비하였고, 과학고 반과 함께 KMO 1차 준비를 하기도 했었다.
생각해보면 고3시절보다 중2때 수학을 더 잘했다. 중2때는 미친 듯이 수학만 풀다가 시계를 보니 세시반 네시였던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고3때 이랬으면 수능 만점 받았을텐데...


중2 여름방학 때에는 진지하게 문과와 이과 사이에서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 문과의 길을 선택하였다.
중3 첫 중간고사를 망친 그 뒤부터 나는 민사고/외고 진학을 포기하고 내 인생 첫 잉여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에 대한 이유는 앞으로 지균론에서 밝히도록 하였다.
그로부터 약 7개월 동안 나는 위닝 중독자가 되어 학교 일과가 끝난 4시반 부터 잠자기 전까지 위닝을 끊이지 않고 했었다.
속으로는 ‘나 이러고도 서울대 갈수는 있을까?’ 했지만, 내 몸은 열심히 좌날도 우조콜을 조종하며 ‘크로스~ 골~’을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중학교 내신 5등으로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첫번째 댓글의 주인공이 되어보세요.